한국야구의 ‘WBC 습격사건’ 풀스토리

서로 믿은 감독과 선수, 그리고 국민성원의 ‘합작품’

한국 야구대표팀이 제2회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잘했다’는 찬사와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한국의 선전을 보고 행복감을 느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야구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한 이유로는 김인식 감독의 지도력을 꼽은 응답자가 48.7%로 가장 많았고 ‘선수들의 실력’이 39.9%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 일본은 WBC 2연패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가 506억엔(약 7190억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 향상으로 인한 수출증대효과도 636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회기간 동안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봤다.


WBC 경기를 앞두고 한국야구팀은 초반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타자인 이승엽, 김동주와 함께 해외파 투수인 박찬호, 김병현, 구대성 등이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승엽은 1회 대회 때 6개의 팀홈런 중 5개의 홈런을 날려 전체 85%의 비중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타점도 26타점 중 10타점을 기록할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을 정도다.
투수진 역시 1회 대회 때는 박찬호, 구대성, 김병현 같은 해외파의 이닝비중은 70%대에 가까웠고 평균자책점도 해외파(1.48), 국내파(3.10)로 해외파 투수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영화로 따지면 블록버스터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톱스타 없는 주연들로만 영화를 제작한 셈이다.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병현은 여권이 없어서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전쟁을 코앞에 두고 추신수의 출전문제 역시 대표팀의 발목을 잡았다. 클리블랜드 구단 관계자는 추신수의 MRI 검사결과를 보고 대회출전 여부를 공식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고, 검사에서 약간의 이상이라도 발견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하차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상대팀인 일본은 다르빗슈, 오가사와라 등 일본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출전 요청을 한데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조지마, 이치로, 이와무라까지 참여해 막강 전력 팀이 갖춰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 경기 한 경기 치러지면서 선수들의 진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승엽을 대신해 김태균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등장하고, 게다가 막강한 계투진(정대현, 정현욱, 임창용)의 경이적인 호투는 시합이 더해 갈수록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준결승에서 맞붙은 베네수엘라는 애초 비교자체가 될 수 없었다. 한국 선수들 전체의 몸값이 베네수엘라의 간판선수 1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 한국에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추신수 1명밖에 없었지만 베네수엘라는 무려 22명에 달했다. 올 시즌만 비교해 봐도 1000만 달러 연봉을 받는 선수가 상당수 포진해 있는 상태였다. 베네수엘라는 축구를 좋아하는 일반 남미국가와는 달리 메이저리거만 216명을 배출한 전통의 야구 강국이다. 대표팀 28명 중 18명이 현역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으며 18명의 연봉 총액은 무려 1억187만 달러(1431억원)에 달한다.
추신수를 포함한 한국대표팀 연봉 총액은 76억7000만원 정도로 베네수엘라 야구팀과 비교하면 19배나 차이가 난다. 더욱이 한국전에 나선 선발 10명의 총연봉은 7910만 달러(1111억원), 한국 주전 10명의 연봉 총액은 29억원으로 베네수엘라와는 무려 38배 차이다.
선발 중 우익수 바비 어브레이유(LA 에인절스)의 연봉은 1600만 달러(224억8000만원)로 최고액이고, 좌익수 매글리오 오도네스가 1576만8000달러(약 211억5000만원)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에 비해 유일한 메이저리거 추신수(클리블랜드)의 연봉은 40만 달러(약 5억6000만원)가량이다. 선발투수 실바(116억원)와 윤석민(KIA·1억 8000만원)은 연봉차이가 64배였다.
이번 대회에서 총 다섯 번을 맞붙은 일본의 막강전력도 한국야구팀을 충분히 흔들고도 남을 만큼 우수한 선수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선수진도 그렇지만 일본은 야구와 관련된 시장규모나 인프라에서 한국을 월등하게 압도했다.
단순히 연봉으로만 선수들의 진가를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본대표팀의 연봉 총액 역시 무려 1315억원(81억5천200만엔)에 이른다.
최고액은 역시 메이저리그의 타격왕인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로 올해 연봉이 1700만 달러이고 지난 2006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6년 동안 5200만 달러에 계약한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연평균 865만 달러다. 또 지난해 시카고컵스에 입단한 후쿠도메 고스케는 700만 달러, 시애틀의 주전포수 조지마 켄지는 630만 달러를 각각 받는다. 일본대표팀 28명의 평균 연봉은 약 47억원으로 한국선수들 보다 대략 17배나 비싼 몸값이다.
여기엔 최근의 환율 폭등도 단단히 한몫했지만 국내 유망주들이 너도나도 해외진출을 노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야구대표팀은 강했다. 4번 타자 김태균을 비롯한 타자들은 베네수엘라 투수들을 집중 공략해 투수들에게 유리하다는 LA다저스타디움에서 홈런과 장타를 펑펑 터뜨렸다. ‘한국은 스몰볼을 친다’는 선입견은 멕시코전에서 홈런 3방을 날리면서 말끔히 씻었고, 베네수엘라전에서도 홈런 2방을 터뜨리면서 ‘한국야구도 한 방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런 선수들 뒤에는 김인식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큰 몫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번 썼으면 부진하더라도 끝까지 믿고 맡기는 게 김 감독 특유의 ‘믿음의 야구’였던 것. 이는 적장인 상대팀 감독들과 야구의 본고장 미국의 전문가들도 인정한 부분이다.    
일본이 WBC 2연패를 달성하면서 얻은 경제적 파급 효과는 506억엔(약 7190억원)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포츠경제 전문가인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 교수는 경제뉴스 사이트인 ‘비즈니스 아이’를 통해 처음엔 경제 효과를 506억엔으로 예상했지만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접전 끝에 일본이 승리한 만큼 경제효과가 당초 추산치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승엽·박찬호·김병현 등 간판스타 빠져 불안한 출발
부진선수도 끝까지 믿는 ‘믿음의 야구’로 세계 놀라게 해

K방송국에서는 우리나라가 WBC에서 준우승함으로써 국가브랜드가치 향상으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만도 60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일 월드컵 당시 계산식을 준용할 경우 국가브랜드 상승효과는 약 4억6000만 달러, 우리 돈 약 6360억원으로 추산된다는 것.
이러한 수치는 야구에 관심이 큰 미주지역에 대한 지난해 수출액 837억 달러를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다. 이 지역 시장 점유율이 한일 월드컵 당시 효과의 1/5수준인 0.11%p씩 앞으로 5년간 상승할 것으로 추정해 나온 것. 이와 함께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대표팀은 총 65억원이란 거금(상금, 포상금, WBC 이익 배당금 포함)을 받게 됐다.
우승한 일본은 79억원 정도를, 미국대표팀과 대회를 주최한 WBC 등 미국 측은 총 100억원을 챙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대표팀은 준우승까지의 상금만 28억원을 거머쥐게 됐고 대회 수익분배금 27억원(추정)과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포상금 10억원도 함께 받게 됐다.
국내 포상금의 경우 KBO가 정한 ‘올림픽 금메달 및 WBC 4강 이상’에 해당하는 포상금이라 포상금액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승을 차지한 일본은 상금 310만 달러와 12% 정도 순수익 배당금(36억원)을 일본 몫으로 챙기게 됐다. 그렇지만 일본대표팀은 상금 310만 달러 중 150만 달러를 아마추어 야구발전기금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팀과 비슷한 액수를 챙길 것으로 보인다.
WBC 2연패를 달성한 일본은 전국에 410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을 보유하며 엄청난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고교야구팀 수가 55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일부지방에서는 건립된 지 40여년이 넘어 개보수를 거듭하고 있지만 협소한 관중석과 열약한 부대시설은 둘째치고라도 안전문제까지 지적당하고 있다.
일본엔 돔구장이 6개가 있다. 198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돔구장인 도쿄돔이 1호다. 프로리그 12개 팀이 있고, 돔구장이 6개라 대략 2개 팀마다 1개꼴이다.
미국은 현재 7개를 쓴다. 1965년 휴스턴 홈구장 애스트로스돔이 최초다. 이후 70년대 후반부터 돔구장 건설 붐이 불어 한때 10개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7개만 쓰고 있다.
야구관계자들은 “돔구장 건설과 관련 반대의 목소리도 있지만 중요한 건 국내 프로야구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돔구장 건설 이후 관중들은 우천 등 기상조건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아도 되고, 선수들은 규칙적인 시즌 일정으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야구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 야구의 인프라는 단순한 수치상으로 놓고 볼 때 다윗과 골리앗”이라며 “그런 가운데서도 한일전이 매번 접전이 펼쳐지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구팬들은 WBC를 통해 한국야구계가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얻어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팀이 승승장구하면서 돔구장 건립에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돔구장 계획을 백지화한 안산시가 2013년 WBC 유치를 목표로 돔구장 건설을 재추진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돔구장 건설과 지방도시 야구장 시설 보완 등 야구계의 숙원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한국 야구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돔구장 건설이 해결되면서 다시 한 번 야구 중흥기가 도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인식 감독이 걸어온 길
제1회 WBC서 4강 신화 ‘국민감독’

한국 야구를 세계만방에 알린 김인식 WBC 국가대표팀 감독은 1947년 5월생으로 돈암초등학교, 배문중학교. 배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65년 크라운 맥주에서 투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는 배문고 감독으로, 1978년부터 1980년까지는 상문고 감독, 1982년부터 1985년까지는 동국대에서 감독을 활동했다. 이후 프로팀 지도자로 변신,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해태 타이거스 수석코치로 활동하다 1990년부터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두산 베어스를 이끌었다. 이후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한화 이글스 사령탑을 맡아 활동 중이다. 지난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며 일본을 꺾고 사상 첫 동메달 따내는데 일조했다. 2002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05년 김인식 감독은 메이저리거들이 거의 모두 출전한 제1회 WBC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를 4강에 올려놓음으로서 ‘국민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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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