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10대 탈선 부추기는 ‘럽실소’ 실태

공고·상고가면 동거에 임신 기본?

[일요시사=사회팀]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일명 럽실소(러브실화소설의 줄임말)가 유행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럽실소는 인터넷 소설 중 하나로 ‘러브’, 즉 사랑 이야기로만 다룬 10대 학생들의 자작 소설이다. 그런데 이 럽실소는 변태적 성행위와 자살 등 자극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뿐 아니라 아무 재제 없이 인터넷 상에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10대의 또 다른 탈선을 부추기는 럽실소. 그 실태를 파헤쳤다.


<오빠 나 해도 돼> <상가 화장실에서 돌림빵> <짝(짝사랑)남이 섹스하면 사귀어준대>….

얼핏 들으면 3류 성인영화 제목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자극적이고 저질스러운 제목들. 최근 인기리에 성행하고 있는 다양한 럽실소(러브실화소설)들 몇 가지를 나열한 것이다.

럽실소는 기존의 인터넷 소설에 비해 10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랑이야기만 다룰 것 같은 럽실소의 실체는 가히 충격적이다. 폭력적이고 엽기적이며 변태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럽실소가 자극적인 제목이나 내용을 다루고 있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욕설과 은어, 폭력이 가미돼 있고 술과 담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또한 학교 내 일진이나 훈남(훈훈한 남성) 대학생도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곤 한다.

문제는 독자층도, 소설을 쓰는 작가도 모두 10대 여학생이라는 것이다. 간혹 여대생이 학창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좋아하던 이성과 교제했던 이야기를 카페나 블로그에 텍스트 파일 형식으로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럽실소 작가층은 10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럽실소는 과연 어떤 내용으로 독자를 현혹시키고 있을까.

100% 실화란 말에
댓글만 수천개

럽실소는 10대가 실제 연애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인터넷 소설이다. 이 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점에 있다. 그렇다고 모든 독자가 럽실소를 무조건 실화라고 믿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은 실화에 어느 정도 픽션(허구)이 첨가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소설 중 여주인공과 자신을 대입시켜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즉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열망에서 비롯된 것. 보통 럽실소에 등장하는 남주인공은 아이돌 남자가수와 견줄 만큼 빼어난 외모에 소위 ‘나쁜남자’의 성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달달한 연애를 꿈꾸는 청소년 독자들은 럽실소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10대 청소년들은 자극적이고 변태적인 19금 인터넷 소설인 이른바 ‘수위 럽실소’만 다루는 사이트에 방문해 야한 부분만 내려 받아 읽기도 한다. 카페나 블로그에는 럽실소 수위에 대한 특별한 제재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누구든 내려 받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일명 ‘엄빠(엄마아빠한테 들키지 않게)주의’라는 신조어를 사용해 농도 짙은 럽실소를 게시판에 게재한 후 친구들끼리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 인기를 모은 수위 럽실소는 “연상인 20대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갑자기 자살을 시도했다”거나 “남자친구의 그곳(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더니 피가 철철 흘렀다” “수학여행 가서 OO와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뒤섞었다”는 등 변태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아름답게 미화돼 있다. 또 10대가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이나 중학교 시절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손님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설도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다. 이 외에 옆집 아저씨와 불륜을 저지른 고등학생 이야기와 반 남학생들과 둘러 앉아 술 마시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이야기, 교내 양호실에서 성관계한 이야기 등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간혹 외국 남성과의 진한 연애담이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한다.

대부분 실화에 과장된 픽션…인터넷 소설 보다 인기
미성년자 모텔 가서 연인과 잠자리 등 자극적 내용

럽실소는 10대들의 행위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돼있어 일부 독자들로부터 꾸며낸 이야기, 즉 ‘허구가 아니냐’라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럽실소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러브소설인 만큼 럽실소를 연재하려면 엄격하고 엄격한 인증절차를 걸쳐야 한다. 우선 럽실소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실제 경험임을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사진과 이성친구의 인증사진을 카페지기에게 보내거나, 연인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카카오톡 대화내용 등을 이메일로 보낸 뒤 연재 허락을 받는 절차까지 거쳐야 하는 등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심한 욕설과 변태적인 섹스묘사 등을 지속적으로 다뤘을 경우 카페에서 강퇴(강제퇴장)를 당하며 카페 운영자의 강력한 제지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럽실소가 공유되는 몇몇 인터넷 카페에서는 ‘10대 청소년 회원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자극적인 내용은 피해 달라’며 대대적으로 공지하고 있지만 여지없이 야하고 폭력적인 내용의 럽실소들이 매일 업로드 되는 실정이라 일일이 단속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포털사이트에서 럽실소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만 10여 개가 뜰 정도니 말이다.

야설·야동 맞먹는
수위 높은 성 묘사


럽실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빗나간 성 묘사였다. 12세 이상이라는 나이가 제한돼 있지만 성인코드인 수위 높은 성적 소설들만 난무하다. 특히 럽실소는 초등학생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려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성에 눈뜨지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는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럽실소앱이 따로 제작돼 불특정다수에게 무료로 유통되고 있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본 기자는 10대들에게 인기가 높은 럽실소 시리즈 중 몇 가지를 입수했다. 다양한 장르의 럽실소를 훑어본 결과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럽실소의 머리말에는 항상 실화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어 작가는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히며, 개인소장하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들이 쓰는 가명은 대부분 연예인 이름,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나 지인의 이름을 빌린 것이며, 욕설과 구체적인 성적 은어가 들어갈 때는 자음만 쓰기도 한다. 자음만 쓰는 경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안에 추가설명을 해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물론 그 흔한 띄어쓰기조차 돼 있지 않은 것은 인터넷 소설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대목이었다.

성관계·자살 등 대리만족
19금 내용 초중고생 공유

다음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공고가면 임신한대>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내려가면서 뽀뽀했지. 그니깐 갑자기 혁이가 일어서더니 날 눕히고 우린 폭풍 키스했어. 키스를 하는데 고개도 좌우로 바꾸고 내가 혁이 목에 손을 걸치고 있었고 혁인 한손은 침대에 올려놓고 있고 또 한손은 내 골반 근처에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티 안으로 손이 올라오는 거야. 이런 이야기 별로 안 좋게 보는 언니들도 있을 텐데, 혁이랑 나랑은 오랫동안 사귀었고 그만큼 믿으니깐 성관계도 하는 거야. 이상하게 안 봤으면 좋겠어. 혁이가 목이랑 쇄골 쪽을 번갈아가면서 핥는데 미치겠고. 아무튼 혁이가 내 위에 있었는데 혁이 밑에가 볼록한 느낌(?)이 들고. 그렇게 하다가 혁이가 브라후크를 풀고 또 온몸을 애무했지. 그렇게 하다가 가슴을 만지고 빨고 하는데…. 이렇게 자세히 적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가슴 애무하다가 혁이가 넣으려고 했나봐 ‘아픈데 괜찮겠나?’라고 물어서 난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혁이는 삽입을 했지. 그리고 막 흔들어댔어. 내가 신음소리 내니까 혁이 더 흥분했어.(중략)”

이는 수위 럽실소지만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구체적인 성적 묘사가 난무한 럽실소는 잘못된 성의식을 심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럽실소에서 나오는 공고나 상고학생들은 모두 공부는 뒷전이고, 질이 낮으며 비행에 거리낌이 없는 학생들로 묘사돼 있던 것이다. 공고나 상고학생들은 임신과 동거는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 선배들이나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화장실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집단 성폭행을 저지르거나 당한다고 그려지기도 했다. 

대리만족 러브스토리
나이 불문 인기 만점

서울 중랑구의 한 여중생 이모(15)양은 “요즘 학교에서 럽실소 안 보는 애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전교 학생들이 돌려가며 럽실소를 공유하고 있고, 요즘은 스마트폰 앱도 출시돼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눈치 보며 몰래 읽곤 한다”며 “야하고 폭력적인 럽실소들이 인기가 높은 이유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소설과 같은 일을 경험한 친구들이 실제로 있다. 우리 나이대와 딱 맞고,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끊기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인근의 모 초등학교 여학생 고모(12)양도 “야한 럽실소는 남자 애들한테도 인기가 많다. 남자애들은 일부러 야한 것만 골라서 보는 것 같다. 나나 친구들이 럽실소를 보는 이유는 재밌기도 하지만 내가 럽실소에 나오는 훈남이랑 사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더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학부모 단체의 한 관계자는 “성인물이나 마찬가지인 이런 소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으니 청소년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며 “해당 소설들을 강제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주변으로부터 주목받고 싶어 하는 10대의 심리가 자칫 왜곡된 성의식을 표현하는 자극적인 글을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이런 소설을 쓰기 위해 상상 속의 일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고, 보는 10대 역시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식의 학습에 따르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회성 결여 부추기는
인터넷 소설의 함정


인터넷 소설 중 하나인 럽실소. 최근 10대 청소년들이 럽실소 등 인터넷 소설 읽기에 중독되면서 타인과 소통하기 보다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사회성 결여라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어 또 다른 사회적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 심리 전문가는 “인터넷 소설 읽기에 빠질수록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있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인터넷 소설에만 빠지지 않도록 학부모와 교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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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년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이 발의하고 여당 의원 일부가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를 낳은 국정 농단 사태의 ‘결정적 순간’이다. 8년 뒤 국회 본회의장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11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시동이 걸린 탄핵 열차는 국회를 지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향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헌재의 시간이다. 두 번 만에 직무 정지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300명이 참석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즉 200명 이상의 ‘가’표다. 범야권으로 분류되는 192표 외에 국민의힘의 8표가 필요했다. 이날 본회의서 나온 찬성 204표 중 국민의힘서 12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탄핵안 표결 전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 수인 7명보다 많다. 기권과 무효표 역시 국민의힘서 나왔다고 계산하면 23명의 의원이 당론인 ‘탄핵 반대’와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결서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위원장은 탄핵소추의결서 정본과 사본을 각각 헌재와 대통령실로 보냈다. 14일 오후 7시24분 탄핵소추의결서가 대통령실에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탄핵안이 가결된 지 2시간여 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맡는다. 한 총리는 탄핵안 가결 이후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온 힘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총리는 현재 내란 혐의 관련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만일 야당의 탄핵소추로 한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국무총리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피청구인’이 된 윤 대통령의 운명은 헌재에 달렸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직후 ‘2024헌나8’의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사건은 재판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말했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 때는 63일, 박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기각하면 탄핵안은 즉시 파기되며 윤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할 수 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이르면 내년 4월, 늦게는 8월에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상계엄 이후 11일 만 국민의힘 이탈표로 가결 문제는 헌재가 현재 ‘6인 체제’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퇴임했지만 여야가 추천 인원수를 두고 다투면서 3명을 임명하지 못했다. 헌재법 23조1항은 헌재가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7명의 출석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6인 체제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헌재는 앞서 탄핵소추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조항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시켰다. 그러면서 현재 6인 체제서 이 위원장의 탄핵 심판뿐만 아니라 헌재에 계류된 다른 사건의 심리를 모두 진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헌정사에 중요한 사건을 6인 체제로 진행하는 게 헌재 입장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6인 체제로 결론을 내릴 경우 만장일치가 돼야 한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정당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은 헌재를 ‘완전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 후보로 조한창 변호사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정계선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각각 추천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국회 본회의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다. 현재로선 한 총리가 이들을 임명하게 된다. 헌재로 공을 넘긴 정치권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0) 상태다. 지난 7일 1차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된 이후 일주일 만에 가결로 결과가 바뀌면서 본격적인 탄핵 정국에 돌입했다. 탄핵안 가결의 ‘키’를 쥐고 있던 국민의힘은 혼돈 그 자체다. 보수 진영 대통령이 두 번 연속 탄핵 심판대 위에 서게 되면서 ‘궤멸’ 위기에 직면했다. 끝까지 반성 없어 지도부 붕괴는 가시화됐다. 탄핵안 가결 이후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 5명(김민전·김재원·인요한·장동혁·진종오)은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사퇴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한동훈 대표는 직무 수행 의지를 드러냈지만 의원총회서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를 선언했다. 당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친윤(친 윤석열)계와 당권을 쥔 친한(친 한동훈)계 간의 책임론 공방은 국민의힘을 극심한 내홍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가 갈등을 벌이다가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던 8년 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이후 5년 만에 정권교체로 간신히 회복한 국민 신뢰를 또다시 잃게 됐다. 국민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11일 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특히 지난 7일 1차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은 국민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도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헌재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수사기관·정치권 등에 완전히 포위된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탄핵안 가결 이후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서 “저는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이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숨통 죄는 내란 혐의 그러면서 자신의 국정운영 성과를 강조했다. 정치권과 국민에 대한 당부 발언도 내놨다. 하지만 탄핵안 발의 배경인 12·3 비상계엄 선포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끝까지 국민에 대한 사과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윤 대통령의 태도에 비판이 제기됐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앞서 진행한 네 번의 대국민 담화서도 그는 모든 상황의 원인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정례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탄핵 표결 직전 11%까지 떨어졌다. 부정 응답은 85%까지 치솟았다. 긍정 응답은 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헌재 탄핵 심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해도 국정 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수치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대구·경북)도 16%에 그쳤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특검 등 수사기관도 윤 대통령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현재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 관련자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직접 진두지휘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란죄는 외환죄와 함께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예외 범죄다. 내란 우두머리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서 그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14일 구속된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이 ‘윗선’ 즉, 내란 우두머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여당은 궤멸 직전에 몰려 헌재 9인 체제 결론 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명태균씨 관련 수사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최근 몇 개월 새 이른바 ‘명태균 녹취록’이 민주당을 통해 일부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명씨의 행보에 윤 대통령 부부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 만에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낸 야권은 공세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그간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국회 과반 의석(192석)을 무기로 윤 대통령을 압박해 왔다. 김 여사 특검법은 이미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서 윤 대통령은 더이상 거부권을 쓸 수 없다. 내란 혐의를 받는 일부 국무위원과 군‧경 관계자에 대한 탄핵소추도 일사천리로 국회 문턱을 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후 “12·3 내란 사태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며 “내란 수괴 윤석열의 직무 정지는 사태 수습을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을 비롯해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사태의 전모를 밝혀내고 처벌이 내려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 만에 내놓은 대국민 담화서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조기 퇴진 제안에도 ‘하야보다는 탄핵이 낫다’는 입장을 보이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 당시 한 차례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율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직접 변론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앞선 대국민 담화서 비상계엄의 당위성에 대해 거듭 이야기했다. 헌재서도 자신이 왜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그 배경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와 윤 대통령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서 표류할 ‘대한민국호’의 상황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각종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면서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짐으로 얹어지고 있다. 헌재 판결, 조기 대선 등 향후 이어질 정치 일정서 일어날 갈등도 국민에겐 피로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민이 극복하긴 했지만 피로 지켜온 민주주의가 상처 입은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피해는 국민 몫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도박에 대한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걸린 시간은 열흘 남짓이다. 향후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최대 8개월까지 이 국면이 계속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청구될 계산서에는 얼마가 쓰여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