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적 의료비’ 역대 최대, 왜?

퍼주고 퍼주다 탈모까지 지원?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재난적 의료비 지원금이 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재난 수준’으로 재정 지출이 치솟은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지원 범위가 확대된 영향으로 보이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재난적 의료비 제도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의료비 지출로 가계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돕기 위해 도입됐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도 감당되지 않는 고액 의료비 문제가 반복되면서, 정부가 직접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재난적 의료비 제도가 논의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고액 의료비 부담 문제가 있었다. 당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단계적으로 추진돼왔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비급여 항목과 고액 치료비는 여전히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암이나 희귀질환처럼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질환은 물론,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시술·검사 비용이 수백만 원 단위로 누적되면서 가계가 단기간에 경제적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심지어 의료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장기 입원비로 인해 가족 전체의 생계가 흔들리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건강보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한국의 의료비 구조는 국제 기준으로도 높은 수준이었다. 2017년 기준 경상의료비 중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비율은 33.7%로, OECD 평균(20.5%)보다 크게 높았다. 가계가 의료비를 직접 지출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질병이 발생할 경우 중산층 이하 가구는 곧바로 생활 기반이 흔들릴 위험이 크다는 의미였다.

이유는 2010년대에 들어 비급여·고액약제 사용이 늘면서 의료비 지출은 더욱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국민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이 상승함과 동시에 민간 실손보험 가입이 급증하는 현상도 함께 나타났다.

실손보험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건강보험 보장성만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결국 의료비와 가계 부담 사이의 격차가 커지면서 고액 치료비로 경제적 파탄에 이르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지적됐고, 의료비로 인해 사회적 취약계층이 양산되는 현상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는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적 안전망 도입 필요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암 등 중증질환 환자들이 비급여 비용과 고액 입원비로 인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는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되면서, 제도 도입에 힘이 실렸다.

건강보험으로도 한계가 있는 영역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직접 의료비 부담을 보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이다. 논의는 먼저 시범사업 형태로 나타났다. 2013년 보건복지부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제도를 제한적으로 운영하며 고액 의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를 선별 지원했다.

당시는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제한적 지원이 이뤄졌지만, 시범사업이 실제로 의료비 부담 경감에 기여한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제도화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병원은 지원금 신청 적극 홍보
경증 지원이 중증 지원 넘어서

이후 2017년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서도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가계 위기 문제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고,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제도적으로 확장할 필요성이 함께 언급됐다.

결국 이 같은 논의를 토대로 2018년 ‘재난적의료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되면서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 국가 제도로 공식화됐다. 법률 시행을 계기로 지원 근거가 명확히 규정되고, 지원 대상·소득 재산 기준·심사 절차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되며 지금의 사업 구조가 형성됐다.

사업의 기본 골자는 단순하다. 가구 소득과 비교해 의료비 부담이 지나치게 클 경우 정부가 의료비 일부를 대신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실질적인 이용률이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2018년 본격 시행 당시 소득과 재산 기준은 상대적으로 엄격했고, 지원 대상 질환도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희귀질환 등 중증 중심으로 제한됐다.

입원 진료는 질환 구분 없이 신청이 가능했지만 심사 기준이 높아 실제 지원 문턱이 상당히 높다는 평가가 많았다. 더불어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 등 저소득층만을 중심으로 지원하다 보니 대상 폭이 좁았다.

문제는 신청률 자체도 매우 낮았다는 점이다. ‘재난적 의료비’라는 제도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환자가 많았고, 병원에서의 안내도 충분하지 않았다.  “홍보가 부족해 실수요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서류 제출 절차 역시 까다로워 환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자료가 많았고,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을 경우 신청까지 하기는 쉽지 않았다.

기준 완화
지원 폭증

이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정부는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2021년을 전후해 재산 과세표준 기준이 약 5억원대로 설정됐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지원 비율이 80% 안팎까지 높아졌다. 연간 지원 한도 역시 상향 조정되면서 제도의 안정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편이 진행됐다.

아울러 신청 절차 간소화, 개별 심사 확대 등도 논의되기 시작하며, 초기 엄격한 요건 때문에 제도에서 배제되던 환자군에 대한 접근성 보완이 이뤄졌다.

본격적인 변화는 2023년 개편에서 나타났다. 이 시기부터 의료비 부담률과 재산 기준이 크게 완화돼 지원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소득 기준은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를 기본으로 유지하면서도, 연소득 대비 의료비 부담률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기준중위소득 200% 수준까지도 개별 심사로 지원이 가능하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재산 기준도 과세표준 7억원 이하로 완화됐고, 의료비 부담률 요건은 기존의 ‘연소득 대비 15% 초과’에서 ‘10% 초과’로 낮아졌다. 입원 진료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모든 질환에 대해 신청할 수 있었지만, 완화된 심사 기준이 적용되면서 실제 승인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외래 진료도 중증 중심 구조는 유지됐지만, 개별 심사 적용 폭이 넓어지면서 경증·만성질환이라도 의료비 부담이 커지면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재난적 의료비 신청은 제도 개선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2023년 재난적 의료비 신청 건수는 3만3585건이며, 지난해에는 전체 지원 건수가 5만735건 규모로 대폭 상승했다. 건당 평균 지원금도 상승했다. 2023년 평균 지원 금액은 약 301만원이었고, 2024년에는 약 312만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지원액은 ▲2020년 340억원 ▲2021년 446억원 ▲2022년 601억원으로 완만한 증가를 보였지만, 2023년에는 1010억원으로 처음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2024년에는 지원액이 1582억원으로 집계돼 불과 1년 만에 약 56% 증가했다.

사업 집행액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예산 부족
지급 지연

2025년에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액이 2000억원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있다. 실제로 지난 8월 말까지 집행된 금액만 이미 1368억원에 달해 역대 최대치 경신이 확실시 되고 있다.

신청자가 폭증하면서 예산이 조기 고갈돼 지난 10월에 일시적으로 지급이 중단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예산이 없어 지급 대기” 통보를 받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건보공단은 매년 하반기에 신청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예측한다. 이미 지난 7∼8월 보건복지부에 예산 부족 가능성을 알리고 추가 재원 확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9월부터 추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액이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신청자가 많아졌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제도 기준 완화로 인해 신청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지원액 폭증의 직접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중증질환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난적 의료비가, 최근에는 오히려 경증·만성질환 환자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건보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 8월까지 재난적 의료비가 지원된 환자 중 중증이 아닌 질환자가 차지한 비중은 52.5%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중증질환 지원액(47.5%)을 이미 넘어섰다. 전체 지원 건수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17만6000여건의 지원 중 11만2000여건(63.6%)이 중증 이외 질환이었다.

재난적 의료비가 초기에는 암·희귀질환·심장질환 등 고액 중증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경증 환자가 전체 지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특히 재난적 의료비가 실제로 지급된 상위 질환을 보면 척추병증, 추간판 장애, 무릎 관절증 등 근골격계 질환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지원액 기준 상위 10개 질환 중 6개가 척추·관절계 질환이었다.

추간판 장애만 65억원, 무릎 관절증은 64억원이 지급되는 등 중증질환보다 경증·만성질환이 더 많은 재정 지출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탈모, 성병 감염, 치아 임플란트 등 비교적 경미한 치료에도 재난적 의료비가 지급된 사례도 확인됐다. 제도 취지와는 달리 경증 환자 지원이 급격히 늘어난 셈이다.

올해 2000억원 돌파 전망
신청만 하면? 승인율 93%

경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가장 직접적 요인은 병원의 홍보다. 정형외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 등 외래 중심 병·의원을 중심으로 ‘재난적 의료비 지원 안내’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한 병원은 홈페이지에 “재난적 의료비로 의료비 지원 가능”이라는 문구를 넣어 치료비 부담이 큰 환자에게 제도를 안내하고 있다.

그동안 재난적 의료비는 환자가 스스로 제도를 알고 신청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병원이 먼저 지원금 신청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정부 지원 안내가 환자 유입에 도움이 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난적 의료비를 신청한 의료기관에서는 전체 의료비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자료를 보면 재난적 의료비 신청 기관의 의료비는 비신청 기관 대비 평균 61%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경증 환자 증가의 또 다른 핵심 요인은 인구구조의 변화다. 고령층 비중이 확대되면서 재난적 의료비 부담률 기준을 충족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졌다. 은퇴 이후 소득이 크게 줄어드는 고령층은 동일한 의료비가 발생하더라도 소득 대비 의료비 비율이 빠르게 높아진다.

실제 중증 외 질환 지원액의 84.1%가 60세 이상에게 돌아갔다. 척추·관절·근골격계 질환은 고령층에서 발병률이 높고 비급여 항목 비중도 크기 때문에, 반복 치료와 검사만으로도 부담률 기준을 쉽게 넘게 되는 것이다. 고령층의 인구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원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예정돼있었던 셈이다.

심사 기준도 문제로 지적됐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재난적 의료비 신청 건수는 5만4734건으로, 이 가운데 5만735건이 승인돼 승인율이 92.7%에 달했다. “사실상 신청하면 거의 다 통과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높다. 이는 신청자의 상당수가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심사 과정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원액 폭증에는 의료비 자체의 상승도 영향을 미쳤다. 척추·관절 질환 중심의 비급여 진료비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상승해 왔다. MRI·주사치료·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항목의 단가가 높아지면서, 경증이라도 반복 치료가 쌓일 경우 본인부담 의료비가 빠르게 커진다.

이는 부담률 기준 충족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한번 지원되는 금액 자체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만든다. 중증환자 중심이던 시기보다 경증·만성 환자가 대거 유입된 현재의 구조에서 비급여 상승은 재정 부담을 더욱 크게 만드는 요소다.

아무나
퍼주기

이 같은 흐름은 제도가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유발한다. 재난적 의료비는 도입 당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액 치료비 때문에 경제적 위기에 놓인 중증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완 장치였다. 하지만 경증·만성질환 환자가 제도에 대거 유입되면서 고액 중증 중심으로 설계된 재정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 사실상 아무나 퍼주는 제도가 됐다”며 “현재 지원금 신청 폭증으로 지급이 지연되는 상황인데 나중에는 정작 필요한 사람이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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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