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산 수상한 예배당 실체

아무도 찾지 않는 국립공원 교회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북한산국립공원 자락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 호텔’이 있다.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호텔 아카데미 하우스’다. 하지만 호텔은 온데간데없이 ‘교회’와 ‘카페’만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난달 19일, 버스를 타고 4·19 민주묘지를 지나 종점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는 “내리세요. 여기가 종점입니다”라고 말했다. 내린 곳은 차고지였다.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북한산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120억짜리
‘유령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큼지막한 글씨로 적힌 ‘호텔 아카데미 하우스’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간판 옆에는 금세라도 쓰러질 듯한 낡은 경비실이 있었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구에는 누구도 지키고 서 있지 않았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붉은색 지붕의 주택이 보였다.

창문에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하얀 외벽을 따라 검은 물자국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십자가 두 개가 단상 위에 놓여있었고 양옆으로는 예배용 벤치가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영락없는 예배 공간이었다.

그곳을 나와 위쪽으로 좀 더 걷자, 4층짜리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1층에서는 인부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공사 중인 듯한 그 건물이 바로 호텔 본관이었다.


호텔 아카데미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이하 총회) 소유다. 총회는 2007년 무렵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국립공원 자락에 있던 호텔 아카데미와 주변 건물들을 120억원을 들여 매입했다. 총회는 자체 부동산을 처분하고, 교단 산하 여신도회·남신도회 등 여러 기관의 기금을 모아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

어렵게 모은 재원으로 인수한 호텔 아카데미는 숙박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교단 재정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출발했다.

이후 총회 유지재단은 호텔 운영을 시작했다. 호텔 운영은 임차 업체 A사에 위탁을 맡겼다. 계약에 따라 호텔은 A사가 맡아 운영을 이어가고, 유지재단은 임대료를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였다.

당시 총회는 “호텔 임대 운영을 통해 수익을 받아 각 기관에 배당하겠다”고 보고했다. 애초 계획은 객실 운영으로 기본 수익을 내고, 식당이나 부속 시설 등 부대 사업을 통해 추가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계약 초기부터 9년간 호텔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결국 임대계약이 해지됐다. 호텔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원인이었다.

계약이 해지된 뒤에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리모델링 공사를 맡았던 시공업체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유치권을 행사하고 나선 것이다. 유치권은 공사비 미지급 시 시공업체가 건물을 점유하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 절차다.

적자 운영으로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이런 사태가 이어진 것이다. 결국 총회가 인건비를 직접 부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애초 위탁 운영을 맡은 A사가 충당해야 할 인건비를 총회 유지재단이 수년간 대신 지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억원이 지출됐다는 사실이 특별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호텔 무단 용도변경
10년간 카페로 사용

2017년, 총회는 이례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총회 설립 이후 처음으로 총회장이 직접 공인회계사를 내부 특별감사로 임명해 진행했다. 감사 범위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의 총회 업무였고, 이 과정에서 호텔 아카데미 운영과 관련한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지적됐다.

특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호텔 운영 관련 전체 통장 잔액이 유지재단 결산보고서에서 누락된 점 ▲위탁 운영 과정에서 인건비 총액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점 ▲운영 인건비를 유지재단이 직접 지급한 점 ▲사용처와 상품권 구입 내역이 불분명한 점 등이 명시됐다.

<일요시사>가 만난 총회 관계자 이모씨는 “호텔에는 장로 출신 인사들이 재정부장으로 들어가 수천만원대 연봉을 받으며 근무했다”며 “운영이 적자인 상황에서도 두 명의 장로가 각각 4년씩 8년간 재직하면서 총회와 투자 기관에 손해를 끼쳤다. 이는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감사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드러났지만, 총회원들에게 공식 보고조차 되지 못했고, 결국 유인물 배포 수준에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위탁 운영을 맡았던 A사가 2014년 10월31일자로 계약을 해지하면서 호텔 아카데미는 사실상 문을 닫았고, 이로 인해 무려 10년 가까이 호텔 영업을 하지 못했다. 호텔 임차인을 오랫동안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회 유지재단은 2015년 1차 임대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새로운 임차인을 물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립공원 내부라는 입지 조건은 장점이기도 했지만 단점이 되기도 했다. 건물 자체가 노후화돼 대규모 개보수가 불가피했고, 그만큼 초기 투자비가 막대했다.

게다가 유치권 처리 문제까지 남아 있어, 운영에 나서려는 업체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수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같은 악조건이 겹치면서 임대 협의는 번번이 무산됐고, 결국 호텔은 2014년 계약 해지 이후 2021년까지 약 7년 동안 사실상 방치됐다.

지난 2021년, 총회 유지재단은 장기간 방치된 호텔 아카데미를 다시 정상화하겠다며 임차인 모집에 나섰다. 건물은 이미 폐허에 가까운 상태였고, 유치권 문제까지 얽혀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공개입찰 방식을 택했다. 입찰에는 다섯 개 업체가 응찰했다.

유지재단 소위원들은 단순히 서류만 검토하지 않고 직접 업체 현장을 찾아가 재정 상태와 사업 계획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재무 건전성이 양호하고 구체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한 ‘B사’가 최종 선정됐다.

그해 6월10일, 유지재단과 B사 간 임대계약이 체결됐다. 계약 조건은 보증금 5억원, 월 임대료 5000만원(연간 6억원), 계약 기간 10년이었다. 특히 유치권 정리 비용은 임차인 부담으로 명시됐다. 계약 체결 직후 B사는 본격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대금 미지급
유치권 행사


10개월에 걸친 공사에 투입될 추산 비용은 약 40억원에 달했다. 초기 투자 규모가 워낙 컸던 만큼, B사는 단기간에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손실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B사는 호텔 객실 59실을 모두 철거하고, 1층부터 4층까지 대형 카페와 베이커리, 음료 판매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객실을 없애고, 새로운 용도로 전환한 것이다.

전면 개보수 공사를 마친 뒤 2022년 5월, 호텔 아카데미는 대형 카페로 업종을 전환해 다시 문을 열었다. 문제는 이 시점부터 호텔 아카데미가 본래 허가받은 숙박업이 아닌 전혀 다른 목적 시설로 운영됐다는 점이다.

이모씨는 “호텔 아카데미는 숙박업으로 등록돼있지만 실제로는 약 10년간 숙박 영업을 하지 않고, 카페로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즉, 허가받지 않은 무단 용도변경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국립공원 내에는 상업시설 허가가 제한된다. 자연공원법 제20조는 ‘국립공원 구역 안에서 건축물의 신축·증축·개축·용도변경 등을 하려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상업시설이나 종교시설은 자연공원 보전 목적에 맞지 않기 때문에 허가가 나는 경우가 드물다. 예외적으로 국립공원이 지정되기 전 있던 기존 건물에 한에서만 허용된다.


호텔 아카데미 또한 국립공원이 조성되기 이전에 있던 건물로서 허가받은 것이지만, 이미 있던 건물이라도 허가 목적 이외로 쓰는 건 ‘용도 위반’에 해당하며 불법이다.

호텔 아카데미는 숙박시설로 등록된 만큼 관광진흥법과 숙박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6개월 이상 숙박업을 영업하지 않을 경우 등록이 취소’된다. 숙박업법 제6조는 숙박자가 이용할 때 성명, 주소, 연락처 등을 기재한 명부를 작성해 관계 기관의 요구 시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모씨는 “실제 투숙객을 받은 기록이 없다. 명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출도 불가능하다”며 “호텔 직원의 4대 보험 가입 내역이나 근무 기록도 없다”고 지적했다. 호텔 영업을 했다는 흔적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4년 이후 호텔 아카데미에서 카페가 아니라 호텔 객실을 이용했다는 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한 카페 이용자는 해당 기간 방문 시 호텔은 운영되지 않았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배당금 ‘0원’
수익 행방 묘연

영업 초반에 카페 운영 매출은 나쁘지 않았다. 월 매출 2억5000만원~3억5000만원 수준이 유지됐다. 그러나 초기 공사비가 예상 지출액보다 컸고, 금리 인상과 자재비 상승 등 외부 요인까지 겹치며 B사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이로 인해 임대료가 연체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각종 공과금에 큰 규모의 공사비까지 미지급하게 됐다.

인테리어 공사 업체에서 또 한 번 유치권을 행사하는 일이 발생했고,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5개월간 연체가 이어져 연체금이 9억2000만원에 달했다.

이에 더해 ‘30객실 미설치’ 문제로 시정명령이 떨어졌다. 관광호텔업 등록 기준 기본 요건은 객실이 30실 이상이어야 하지만, 기존 객실을 철거해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강북구청은 2022년 11월부터 3차례에 걸쳐 시정명령을 내렸다. 1차 시정명령 후 이행이 없자 2차로 15일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고, 벌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어 3차 계고장이 발부됐으나 객실은 복원되지 않았고, 결국 4차 면허 취소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B사는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2022년 하반기부터 제3자 양도를 모색했다. 운영권을 넘기려 했지만 권리금 조정에 어려움을 겪어 협상은 번번이 결렬됐다.

이후 결국 유지재단은 변호사를 선임해 명도소송을 제기하고, 카드 매출 계좌 가압류와 점유이전금지가처분도 신청했다. 법원은 2023년 11월22일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확정했다.

그러다 2024년 1월15일, B사는 돌연 임시 휴업을 선언하고 정문을 폐쇄했다. 강북구청에는 휴업 신청을 하며 행정처분을 유예받았다. 건물 곳곳에는 인테리어 업체가 유치권 행사 중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고, 전기와 수도도 끊겼다.

유지재단은 다시 신규 임차인 모집에 나섰고, 세 곳의 업체가 응모했다. 그중 북카페와 미술관 카페 등 다수의 지점을 운영하며 재무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평가되는 C사가 선정됐다.

유지재단은 C사와 협의한 끝에 유치권 정리 비용 17억원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C사와 유지재단이 각각 8억5000만원을 내 유치권 문제를 해결했고, 이후 객실 30실도 복원해 행정처분을 취소시켰다.

수억 헌금으로 만든 산자락 ‘불법 채플’
‘호텔 아카데미’ 기금 모아 120억에 매입

하지만 이모씨는 이에 대해 “유지재단이 교인들의 헌금으로 유치권 비용을 대신 갚아준 셈”이라며 “이는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호텔 인수 당시 투자했던 교단 산하 기관들에는 2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배당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지재단은 2차 계약 당시 “월세 5000만원을 받는다”고 보고했지만, 실제 수익은 기관에 배분되지 않았다. 이모씨는 “기관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돈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교회당 불법 개축’이다. 유지재단은 아카데미 하우스 내에 ‘채플’을 만들기로 했다. “북한산을 찾는 이들이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여기엔 약 4억원이 투입됐고, 개축 비용은 전국 교회에서 모은 헌금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자연공원법상 종교시설은 국립공원 내에서 허가되지 않는다. 문제의 채플은 ‘숙박시설 개축’으로 허가받았다. 무단으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했다는 뜻이다.

이모씨는 구청에 무단 용도변경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강북구청은 “2023년 숙박시설 용도로 허가했으나 현장 확인 결과 종교시설로 사용 중임을 확인했다”며 “무단 용도변경에 따른 행정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모씨는 “이미 구청이 상황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2년 유지재단 이사장인 육순종 목사는 SNS에 “채플 공사에 도움을 준 전·현직 강북구청장, 구의원, 환경부와 국립공원 관계자, 서울시 총괄건축가 등에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설계도면 자체가 교회 건축으로 진행됐고, 설계비만 1900만원이 집행됐다”며 “언론 보도에서는 2022년에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구청은 2023년에 숙소로 개축 허가를 했다고 답했다. 이는 이미 교회 건물이 완공된 상태에서 숙소로 허가를 내줬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준공검사(사용승인) 과정에서 숙소로 허가를 내줬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강북구청의 답변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육 목사의 SNS 글에 대해 “구청에서 종교시설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축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고 질의했지만 “SNS 내용은 육순종 목사의 개인적인 사견일 뿐, 강북구청과 연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몰랐다?
자가당착

이모씨는 “호텔 운영 당시 총회가 누락한 통장 잔고와 인건비 지출 내역, 수익금의 행방 등을 명백히 밝히고 채플을 짓는 데 들어간 교인들의 헌금을 돌려줘야 할 것”이라며 “강북구청은 종교시설 개축을 허가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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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