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희는 결제만…” 온누리상품권의 두 얼굴

‘돈 된다’ 소문에 너도나도 허위 매장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소상공인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온누리상품권이 비가맹 서점들의 돈줄로 전락했다. 온누리상품권 비가맹 서점들은 가맹 서점이 돈이 된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허위 매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올바른 경쟁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도서정가제도 무용지물이 됐으며, 온누리상품권의 목적과 취지는 퇴색된 지 오래다. 온누리상품권은 과연 지금도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일까?

현재 온누리상품권 비가맹 서점들이 허위 매장을 만들고 있다. 일부 비가맹점들은 ‘제2의 매장(허위 매장)’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책을 판매하지 않고 결제만 대행하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 비가맹점들이 편법을 써가며 허위 매장을 내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가맹점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 매장들

온누리상품권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온누리상품권 비가맹 서점들이 이를 악용해 불법적인 할인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쓰이고 있다. 온라인 거래상으론 도서정가제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한편, 온누리상품권 가맹 서점서 상품권을 이용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할인율이 대폭 상승했다.

소비자들은 이를 활용해 정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매할 수 있어 가맹 서점으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들은 할인율이 높은 가맹 서점만 찾아다니며 책을 구매하는데, 지역주민이 아니라도 혜택만 보고 타지역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 전집(묶음 도서)의 경우, 평균가격이 40~60만원대로 높은 편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온누리상품권을 활용한 할인 혜택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지난해 명절 기간, 온누리상품권은 페이백 이벤트까지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결과, 가맹 서점들은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비가맹 서점들이 이를 악용해 허위 매장을 만들고, 이곳에서 온누리상품권 결제를 대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온누리상품권의 비가맹 서점들은 제2의 매장(허위 매장)을 만들어 가맹점으로 등록하고 온누리상품권 결제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 운영 매장이 아닌, 결제만 가능한 ‘유령 매장’인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A 서점서 책을 고른 후, 여기서 만든 B 서점(허위 매장)서 결제만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서 소비자는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해 최대 10~15%의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명절 기간에는 페이백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한 서점 관계자는 “온누리 결제가 가능한 곳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일부 서점서 이런 방식이 사실상 공식적인 판매 루트처럼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현재 확인된 허위 매장만 26곳에 달했다. 심지어는 전국 매출 1‧2위 매장들도 허위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온누리 가맹점 둔갑한 서점들
‘유령 매장’으로 매출 올리기

해당 매장들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린이책 전집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자,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아님에도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가 가능하다”며 구매를 유도했다. 한 매장은 “가맹점이 아니라 여기서는 결제가 어렵다”며 “책은 이곳에서 보고, 결제는 다른 곳에서 가능하다”며 허위 매장 결제를 안내했다.

한편, 출판사도 허위 매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제보자는 “출판사들도 비가맹점들이 허위 매장을 운영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이를 허용해준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받고있는 A 출판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알았다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또 다른 B 출판사는 답을 주지 않았다.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등록에는 일정 요건이 필요하지만, 관리 부실로 인해 허위 매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맹점 등록은 실제 운영 여부나 재고 보유 여부 확인 없이 단순히 사업자등록증과 매장 사진 등의 서류만으로도 가능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온누리 가맹점 등록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에 편법을 이용하는 업자들이 쉽게 등록할 수 있는 구조”라며 “실제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가맹점들은 전수조사를 통해 가맹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20조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부정 사용을 하거나 실질적인 거래 없이 결제만 대행하는 경우 가맹점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지만, 현재까지도 정부기관의 단속은 미미한 상태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하 소진공)은 신고가 접수된 일부 서점들에 대해 단순 유선 계도 조치만 시행했을 뿐, 실질적인 단속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가 소진공의 계도 조치 후 해당 매장에 전화해 확인하자, 여전히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소진공은 “1차적으로 유선 계도 조치 후 재신고가 들어오면 현장 조사를 나간다”며 “현장 조사가 이뤄지려면 명확한 증거자료 제출이 필요하며, 내부서 정한 기준에 충족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기준에 대해선 “답변 드리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결국 대형 출판사들이 이익 독점”
소진공, 신고에도 계도 조치 끝?

온누리상품권의 도서 품목 허용이 도서정가제와 상충된다는 점도 문제다. 온누리상품권이 서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도서정가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서적의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대형 서점과 중소 서점 간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으나, 온누리상품권을 통한 추가 할인과 페이백이 가능해지면서 실제 시장에서는 정가 이상의 할인율이 적용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온누리 상품권 비가맹 서점에 불리하게 작용하며, 결국 온누리 상품권 가맹 서점과의 불공정 경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 서점 관계자는 “온누리 가맹 서점이 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커지면서, 서점 간 형평성이 무너지고 있다”며 “결국 대형 출판사들과 일부 온누리 가맹 서점들이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했다.

온누리상품권 제도가 도서정가제와 충돌하면서 서점 업계 내부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의 도서 품목 적용 여부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서점 업계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온누리상품권이 적용되면서 사실상 정가제를 우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도서시장이 변질된다면 결국 할인 경쟁이 심화되고 비가맹 서점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온누리상품권이 공정 경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는 “가맹제한업종에 관해 2024년 9월 검토한 바 있으나, 서점은 사업 운영 취지에 어긋나지 않아 제한 업종으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서점 업계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을 활용한 불공정 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같은 방식의 편법 거래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소상공인 위해?

온누리상품권은 소상공인의 매출 증진을 위해 도입됐지만, 현재는 특정 서점들의 편법적인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허위 매장을 통한 편법 결제, 도서정가제의 유명무실화,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까지 맞물리면서 공정한 도서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온누리상품권이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인지, 특정 업자들의 이익 수단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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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목줄 잡은 트럼프 막전막후

한국 목줄 잡은 트럼프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이 ‘트럼프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모든 국가와 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도 그 대열에 줄 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큰 표 차로 이기고 8년 만에 백악관에 재입성했다. 전 세계 흔들다 민주당의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를 잡은 게 승리의 요인으로 분석됐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미국에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두 개뿐”이라면서 트랜스젠더 문제에 쐐기를 박고 DEI 정책 폐기를 선언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서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미국이 지금까지 맡아온 ‘세계의 경찰’ 역할 대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관세를 내세운 ‘통상 전쟁’으로 번졌다.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이 첫 번째 표적이 됐다. 취임 당일에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 25%를 붙이고 중국에는 10%의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마약 유입과 불법 이민 문제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본질은 무역 적자라는 게 중론이다. 영토 전쟁에도 시동을 걸었다. 특히 전쟁 지역 원조를 빌미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욕을 보이면서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주변국으로 이주시키고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도 고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워싱턴DC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서 “파나마 운하는 미국인을 위해 미국인이 건설한 것”이라며 “중국이 아닌 파나마에 운하를 넘겼지만 협정은 매우 심각하게 위반됐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관세 폭탄 겁주는 줄 알았는데 진짜 또 그린란드 주민을 향해 “여러분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강력히 지지한다”며 “만약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우리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린란드 주민은 2009년 덴마크와 합의해 제정한 자치정부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추진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분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서 미국이 자유 진영서 원조해 온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 쪽으로 미묘하게 기울어진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미국의 외교 방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원조의 대가로 광물 개발권을 요구했다. 3년여 동안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서 미국은 군사 장비를 지원했다. 독일 킬 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2년부터 약 3년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은 1197억달러(174조5000억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광물협정에 협조하지 않자 모든 군사 원조를 끊겠다는 강수를 놨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세에 3개월도 못 버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서 “젤렌스키로부터 중요한 서한을 받았다”고 말했다. 광물협정에 응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국가가 ‘트럼프 태풍’에 휘말려 대응책을 논의하는 와중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었다. 한국도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있으리라는 관측은 있었지만 그게 가시화되진 않았다는 뜻이다. 전쟁 국가도 원조 끊어 한국은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등에 이어 대미 무역 흑자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달러(약 81조원)가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정부의 첫 연설서 한국을 ‘콕’ 짚었다. 99분에 걸친 연설서 한국을 공개 지목하다시피 한 것이다. 각국의 대미 관세를 언급하는 과정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4배 높다”고 말했다. 그 근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군사적으로, 또 많은 다른 방법으로 한국을 엄청나게 돕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게 우리 동지와 적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자료를 내고 대미 평균 관세율이 0.79%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로 사실상 상호 수출입 품목 대부분이 무관세다. 미국서 들어오는 공산품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0%다. 다만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에 부과하는 평균 최혜국 대우(MFN) 관세율은 13.4%로 미국(3.3%)의 4배 수준으로 높다. 최혜국 대우는 통상·항해 조약 등에서 한 국가가 외국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와 FTA를 체결한 상태여서 이 관세율이 적용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산자부 관계자는 “현지 대사관과 최근 구축한 다양한 실무협의체 채널, 방미 예정인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급 접촉을 통해 한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가 거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오해를 불식시키겠다”고 말했다. 마구잡이 주장 대응 못 하고 하지만 다음달 2일로 예정된 상호 관세와 관련해 한국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어떤 관세를 매기건 우리도 그들에게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도 거론했다. 규제와 쿼터제, 환율 등 직접적인 관세가 아니라 각국의 제도를 빌미로 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꼭 관세가 아니더라도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건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한국이 도입하고 있는 부가가치세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부가가치세 제도를 사용하는 국가를 관세 국가와 유사하게 간주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연설서 군사 지원을 언급한 점도 한국으로선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시절부터 주한미군 주둔과 방위비 분담에 불만을 토로했다.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넘어 주한미군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전쟁 중인 국가(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트럼프식 외교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정부 때부터 한국에 일방적으로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줬다. 한국이 막대한 방위비를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혜택을 베푼다는 식으로 굴고 있는 셈이다.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약 1조4900억원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재협상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첫 의회 연설에서 콕 집어 모든 논리가 돈으로 통해 여기에 ‘칩스법’ 폐지를 언급하면서 한국 기업까지 뒤흔들 기세다. 칩스법의 공식 명칭은 ‘반도체 과학법’으로 미국에 반도체 제조와 연구·개발시설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법이다. 바이든정부서 시행된 정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 영향권 아래 있다. 총 지원 규모가 2800억달러(약 408조원)에 달하고 대만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만 527억달러(약 77조원)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법은 끔찍하고 끔찍한 일이며 우리는 수천억달러를 갖고 있지만 (반도체법은)의미가 없다. 그들은 우리 돈을 가져가고 지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에도 칩스법을 ‘나쁜 법’으로 규정하고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을 겨냥해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길 원하면서 제대로 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법 자체가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요구에 한국이 내세울 마땅한 카드가 딱히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협상에 나서야 할 수뇌부가 불완전한 상태라 대응이 어렵다는 게 더 큰 문제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는 탄핵심판대 위에 서 있고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아직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간 관행이나 국제질서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국가의 영토에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전쟁 원조를 돈으로 환산하는 등 그동안 미국을 통치했던 지도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다시 말해 한국을 상대로 어떤 ‘깜짝쇼’도 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상 외교는 사실상 막혀 지난 5일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정부 고위 당국자들과의 회동을 위해 방미했다. 신 실장은 “한반도 및 동북아, 글로벌 안보 이슈를 논의하고 경제 안보와 관련해 특히 조선 협력을 비롯해 다양한 논의를 하려 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신 실장은 2기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미국 측 카운터파트와 만나는 세 번째 장관급 인사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뮌헨안보회의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했고 안덕근 산자부 장관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났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