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레커 시동’ 떨고 있는 유튜버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04 11:24:05
  • 호수 1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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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욕했다간 잡혀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거짓 영상 제작 및 유포로 논란을 빚은 유튜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정치권 개입이 시도됐다.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이른바 ‘사이버 레커 정보공개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유튜버들은 정보의 공익성마저 침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최근 사이버 레커로 지목된 유튜버 뻑가의 신상이 미국법원의 소송 결과에 따라 일부 제공됐다. 앞서 구글 측은 현행법을 준수하고 법적 요청에 협조한다고 밝혀왔다. 다만, 피해자가 가해자의 신원을 확보하려면 미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전용기 의원은 “과도한 절차적 장벽이 존재해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해석했다.

절차적 장벽
과도함 존재

일각에선 사이버 레커로 규정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정치인의 부정행위를 폭로한 유튜버마저 반대 진영서 사이버 레커로 규정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특정인에게 일어난 이슈를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해 시청자의 후원을 유도하는 유튜버를 사이버 레커라고 한다.

교통사고 현장에 난폭하게 출동해 사익을 추구하는 사설 구난차인 ‘레커(Wrecker)’에 비유한 것이다.

익명 뒤에 숨어 활동하던 유튜버 ‘뻑가’는 사이버 레커로 지목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뻑가의 신상은 BJ 과즙세연(인세연)과의 법적 공방 과정서 드러났다. 그는 과즙세연이 금전적 대가를 받고 성관계를 했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도박을 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유포했다.


이에 대해 과즙세연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뻑가를 고소했다.

소송을 대리한 정경석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으로부터 뻑가의 개인정보 일부를 제공받았다”며 “이에 따라 그의 신원이 밝혀졌다. 현재 뻑가는 한국에 거주하는 30대 후반 남성 박모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독자 114만명을 보유한 뻑가는 주로 타인을 비난하는 영상을 올리기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특정 인물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며 비판하는 영상을 다수 제작하면서도 본인의 신상은 감춰 모순적 행위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누가 죄인?’ 정치권 개입 시도
신상 탈탈···정치적 악용 우려

그의 콘텐츠 중에는 ‘반 페미니즘’ 성향의 영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2022년에는 인터넷 방송인 BJ 잼미(조장미)를 남성 혐오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며 저격 영상을 제작했다. 이로 인해 잼미와 그의 어머니가 심적 고통을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논란이 커지자 뻑가는 사과 영상을 올린 뒤 활동을 중단했으나 약 6개월 후 영상을 업로드하며 복귀했다.

신상이 공개된 뻑가는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저를 음해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최대한 강력한 대응을 할 예정”이라며 “어차피 수익도 막혔고, 잃을 것이 없는 상황서 총력을 다해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000개가 넘는 유튜브 채널 영상 중 96개의 동영상만 남기고 삭제했다. 지속적인 악의적 콘텐츠 제작에도 불구하고 뻑가의 신원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미국 소송을 통해 그가 30대 박모씨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현지 변호사 선임 비용은 8000만~9000만원 정도로 비싼 편에 속해 피해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 의원은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로부터 사이버 레커의 이름과 나이 등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해외 플랫폼을 악용한 사이버 레커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며 “명예훼손 및 허위 사실 유포로 수사 대상이 된 익명 유튜버의 기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익명과 폭력
협박과 갈취

전 의원은 입법 토론회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련 소송을 진행한 변호사들과 협력해 법률 개정을 위한 국회 입법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토론회를 통해 해외 플랫폼과 협력해 가해자의 신원 확보 절차를 개선하고, 피해자가 더욱 신속하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의원이 ‘사이버 레커 정보공개법’ 추진에 나서자, 일부 유튜버는 ‘족쇄 채우기’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유튜버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취지는 알겠으나, 사이버 레커의 기준이 모호하다. 누군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이버 레커 취급받고, 신상이 공개된다는 것은 공익성마저 저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여당 정치인을 비판하면 권력을 쥔 여당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이라며 “해당 정치인의 비리가 사실임이 입증됐다 하더라도, 명예훼손 혐의는 성립될 수 있기에 유튜버의 신상 공개 청구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공익과 자율성 침해 우려에 관해 전 의원은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 피해 입힌 익명 유튜버의 신상 정보를 온 국민이 아닌, 최소한 수사기관에서만큼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재차 설명했다.

사이버 레커의 영향력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 앞서 1000만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쯔양(박정원)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구제역 등이 최근 유죄 판결받은 가운데, 허위 사실과 음모론은 추가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쯔양은 매체와 인터뷰서 “중국 간첩설부터 정계 연루설 등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다”며 “저는 중국에 가본 적도 없고, 진짜 전혀 아무것도 없다. 정치로 저와 연관을 지으시면,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정치 유튜버
무사 못할 것”

구제역의 법률대리인인 김소연 변호사(법무법인 황앤씨)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쯔양이 ‘중국 간첩과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을 퍼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쯔양은 가로세로연구소 등을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쯔양은 “(사생활에 대해)너무 공개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그런 루머들을 만들어내니까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검찰과 정치권에도 배경이 있는 거물이라는 가짜 뉴스에 대해서도 “제가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다면서 검찰 측에서 너무 빨리 움직이는 게 이상하다고 그쪽과 관계가 있다더라”라며 “어떻게든 저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법원은 지난달 20일 쯔양을 협박해 수천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된 구제역에게 징역 3년, 최모 변호사에게는 징역 2년을 선고하고 이들을 법정 구속했다. 공갈 혐의 공범으로 기소된 유튜버 주작 감별사(전국진)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또 구제역 등의 공갈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카라큘라(이세욱)와 크로커다일(최일환)에게는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사회봉사 240시간과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구속된 구제역은 변호사를 통해 쯔양의 인터뷰에 대해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입장문을 통해 “JTBC 보도에는 마치 제가 ‘쯔양이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쯔양이 중국 인민망과 관련 있고 비밀 경찰’이라는 식의 발언을 한 것처럼 전달됐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발언의 일부만 짜깁기 한 것으로 실제 맥락과 전혀 다르다”며 해당 보도를 정정했다.

김 변호사가 전달한 당시 발언 전문에는 ‘쯔양의 소속사 관계자들, 그리고 이번에 5000만원 구제역하고 협의 본 사람, 이런 사람들이 청년 페이 등 중국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업들이 있다’ 등의 발언을 했다.


쯔양-구제역 사건에 ‘중국 간첩설’
조만간 공익·자율성 사라질 수도?

아울러 김 변호사는 “위 발언 취지는 쯔양이 직접 중국 인민망이나 비밀 경찰 의혹에 연루됐다는 것이 아니라, 쯔양이 출시한 정원분식 위·수탁 운영과 소속사 이사와 협업 중인 박현철 액터코퍼레이션 대표 겸 S&S컨설팅 운영자가 왕해군, 동방명주 등 중국 비밀 경찰서 의혹 당사자들과 연관돼있다는 사실을 설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현철이 운영하는 S&S컨설팅에는 쯔양 소속사 이사인 최소원이 이사로 등재돼있으며 박현철은 ‘청년페이 코인’으로 논란이 일었던 한국청년위원회 이사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더 나아가 동방명주와 왕해군이 중국 인민망과 연관됐다는 보도가 쏟아지던 당시, 박현철은 왕해군과 접촉해 논란이 된 김두관 민주당 전 의원의 행사를 지원하는 게시물과 사진을 직접 올리기도 했다”며 쯔양이 중국 인민망 비밀 경찰서 의혹 당사자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제역 등은 지난 2023년 2월 쯔양 사생활, 탈세 관련 의혹을 제보받고 쯔양을 협박해 5500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또 두 사람은 사생활을 빌미로 지인의 식당을 홍보하라며 촬영을 강제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두 사람은 “네(쯔양)가 고소를 남발해 소상공인을 괴롭힌다는 영상을 올리겠다”며 쯔양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보석 석방으로 풀려났던 구제역은 다시 구속됐다. 1심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구제역과 최 변호사는 항소했다.

지난달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제역 측은 전날 법원에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항소했다. 최 변호사 측도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이 과정서 주작감별사와 크로커다일, 카라큘라도 구제역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함께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서 각자 확보한 쯔양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가 하면, 서로 통화도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밀 경찰
의혹 연루

최 변호사는 쯔양에게 “유흥업소 경험 등 과거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언론 대응 등 자문 명목으로 약 2300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쯔양 탈세 의혹 등을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 측에 제공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최 변호사는 구제역에게 쯔양 정보를 제공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 쯔양 전 남자 친구이자 소속사 대표였던 A씨(사망) 지시로 해당 정보를 제공한 것처럼 A씨 유서를 조작해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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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주범’ 김용현·여인형 증거인멸 교사 적용 내막

‘계엄 주범’ 김용현·여인형 증거인멸 교사 적용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 대한 증거인멸 교사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이미 방첩사와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검찰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과 핵심 인물들의 증거인멸 지시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들여다볼 방침이다. 12·3 비상계엄은 절차부터 논란이 많았다. 계엄에 가담해선 안 되는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부터 군의 국회 난입, 부실한 회의 등 하자 투성이다. 내란이자 불법 계엄이라는 지적이 거센 이유다. 핵심 인물들은 사실상 불법성을 인식했다. 이들은 관련 문서 파쇄와 핸드폰 교체 등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은폐 지시 누가? 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지난해 12월6일 자신의 수행 장교 A씨에게 계엄 당시 같이 탔던 카니발 차량의 블랙박스 기록을 들여다보라고 지시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A씨를 조사하면서 “이진우는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라고만 지시를 내렸나, 아니면 블랙박스를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지시를 했나?”라고 묻자 그는 “받아들이기에 (블랙박스를)없애야 한다고 느꼈다”고 진술했다. 실제 A씨는 블랙박스 기록을 삭제했다. 이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차량서)A도 다 들었다는 생각에 (블랙박스에)그 내용이 남아 있게 되면 나중에 엉뚱하게 오해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블랙박스에도 대통령 목소리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A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고, 블랙박스를 지우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확보한 다수의 방첩사 관계자의 진술에 따르면,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지난해 12월4일 새벽 1시3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주요 인사 체포를 위해 국회로 출동했던 요원의 복귀를 지시한 방첩사 간부를 크게 질책했다. 3시간 뒤 그는 방첩사 간부들을 소집해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서 여 전 사령관은 정치인 체포조와 관련해 “체포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목적 없이 나갔다고 해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 전 사령관이 초기부터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알고 있었던 정황이다. 검찰은 여 전 사령관이 같은 날 아침 8시30분에도 방첩사 주요 간부를 모아놓고 “‘이송·구금 지시 없이 맹목적으로 출동했다’고 진술할 수 있는 부대원이 있다면, 그렇게 내용을 정리해서 메모하게 해 달라”라고 말했다는 방첩사 관계자들의 진술도 확보했다. 비상계엄 핵심 인물들 문서 파쇄 핸드폰 교체 비화폰 서버 확보? 수사기관 압수수색 하세월 특히 여 전 사령관은 방첩사 간부들에게 체포조 운용 관련 증거를 없애라고 강조했다. 간부들은 하급자들에게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하달했으나 “못 없앤다”며 대부분이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급자들은 검찰이 방첩사를 압수수색할 때 여 전 사령관의 지시와 관련된 물증들을 보존해 왔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엔 여 전 사령관이 체포를 지시한 14명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별정직 공무원이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집사’로 알려진 양호열씨는 김 전 장관의 지시로 3시간에 걸쳐 파기한 자료가 세절기(파쇄기)통 세 번을 비울 정도였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양씨는 김 전 장관이 대통령 경호처장일 때 별정직 5급 공무원으로 경호처에 채용됐다.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으로 옮긴 뒤에도 경호처에 적을 두고 비공식적으로 김 전 장관 운전사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김 전 장관은 자료 폐기 후에도 양씨에게 ‘(김 전 장관의)휴대전화를 파기하고 다른 것으로 교체하라’는 취지로 지시했고, 양씨는 공관 뒤로 이동해 망치로 휴대전화를 부순 다음 쓰레기통에 넣었다고 한다. 또 김 전 장관은 공관 서재 서랍 속에 있던 노트북을 주면서 함께 폐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노트북은 김 전 장관이 포고령을 작성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씨가 “그냥 버리면 될까요”라고 묻자 김 전 장관이 “모두 파쇄하라”고 지시해 망치로 부쉈다는 것이다. 양씨는 파쇄 과정서 손가락을 다쳤다고도 진술했다. 양씨가 증거를 인멸하는 동안 김 전 장관은 하루 종일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양씨는 문서 등을 파쇄한 날 오전에도 김 전 장관 부부와 생선구이 식사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당시 김 전 장관 부인은 김 전 장관을 향해 ‘왜 그랬냐’ ‘혼자 다 뒤집어쓰겠네’라고 걱정했다고 양씨가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장관은 다음날인 같은 해 12월6일 변호사를 만났고, 이틀 뒤 새벽 1시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 같은 달 27일 구속 기소된 김 전 장관 측은 검찰서 “계엄 상황이 끝났기 때문에 자료를 파쇄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파쇄기통 세 번 비워” 검찰은 양씨의 진술들이 김 전 장관의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뒷받침하는 동시에 계엄의 위법성을 스스로 인정한 정황 증거로 보고, 향후 재판서 김 전 장관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경호처 비화폰 관리 실무 담당자인 송모 경호관은 지난 25일 국회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 5차 청문회에 출석해 “김 전 장관이 비화폰을 반납한 게 12월13일 또는 12일이 맞느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5일 김 전 장관의 사의를 수리했는데, 비화폰 반납은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이 검찰에 자진 출석했을 당시에도 비화폰을 갖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비상계엄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역시 12월7일까지 경호처 비화폰을 갖고 있다가 반납해, 증거인멸에도 이를 활용했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돼왔다. 송 경호관은 이날 ‘김 전 장관 비화폰 뒷번호가 9400번 맞느냐’는 윤 의원의 질문에 “번호는 모른다”고 했지만, 이 비화폰이 경호처에 “봉인돼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원을 켜면 통화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윤 의원은 “봉인된 비화폰을 확보해야 된다. 내란 주요 종사자의 휴대폰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면 누구보다도 (검찰이)먼저 나서서 확보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이진동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다그쳤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도 “비화폰 압수로 수사 의지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이 차장은 “알겠다”고 답했다. 비상계엄 핵심 인물들은 변호인을 통해 물밑 접촉을 시도 중이다. 김 전 장관의 법률대리인인 고영일 변호사는 이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이 윤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증인으로 출석하기 전 이들을 수차례 접견했고,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과도 접견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고 변호사는 이 전 사령관이 국회 국정조사 특위 증인 출석을 하루 앞둔 지난달 13일과 20일, 두 차례 접견했다. 여 전 사령관은 지난달 3일·9일·17일, 그리고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증인 출석 하루 전날인 이달 3일까지 총 4차례 고 변호사를 만났다. 물적 증거 확보 난항 이들은 증거인멸 우려로 인해 변호인 외 접견이 금지됐었으나 군형집행법 등은 ‘변호인이 되려는 자’ 역시 변호인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접견 중 교도관 참여나 청취·녹취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계엄 핵심 인물들이 이 같은 규정을 허위 증언·진술에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피의자 신분인 자의 적극적 방어권 행사지만 관련자를 도우려 말을 맞추거나 진술을 오염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악용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변호인으로 선임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당국 관계자들의 녹취가 허용되는 등의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검찰은 비상계엄 핵심 인물들의 증거인멸 행위를 여러 차례 파악했지만 통상 교사가 아닌 직접적 행위는 처벌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법원 판례상 증거인멸죄 입증을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서 인적·물적 증거를 인멸·위조, 위조한 증거를 사용하는 등 재판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저해하는 범죄 행위를 말한다. 대법원은 ‘인멸한 증거 가운데 공범의 것이 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를 수십년째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76년 6월 “피고인은 자신이 직접 형사 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증거가 될 자료를 인멸한 경우, 이 행위가 비록 동시에 다른 공범자의 형사사건이나 징계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결과가 되더라도 피고인을 증거인멸죄로 다스릴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결과적으로 증거인멸이 발생했더라도 ‘증거인멸의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변호인 통해 접촉 시도 “진술 오염” 우려 내란 수괴 혐의, 윤 보호용 증거 없애기? 우선 검찰은 재판에 넘겨진 인물들에 대한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수사했고 재판에 넘겨진 인물들 외에도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추가 기소할 정황과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어 언제 누구에 대해 추가 기소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김 전 장관을 포함한 계엄 핵심 인물들의 증거인멸 지시 행위가 윤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김 전 장관과 이 전 사령관, 여 전 사령관 등은 윤 대통령과 수차례 통화하거나 직접적인 지시를 받았다. 검찰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윤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비상계엄에 연루된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 재판도 지난 27일부터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이날 ▲오전 11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오후 2시 조지호 경찰청장·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오후 3시 김용군 전 정보사 대령 ▲오후 4시 김용현 전 장관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 조사 절차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재판부는 이날로 준비기일을 끝내고 다음 기일부터 본격적인 공판 절차에 들어간다. 또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건을 병합해 심리 여부도 결정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는 윤 대통령 사건도 담당하고 있다. 재판부에 배당된 내란 혐의 피고인만 6명이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만 함께 기소되고 나머지는 별도로 기소돼 5개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각 피고인의 직업, 지위마다 12·3 비상계엄 상황서 수행한 역할과 세부 혐의가 달라 분리해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주 1~3회의 ‘집중심리’를 요청하고 있다. 반면 피고인 측은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사건을 병합하고, 방어권 보장 차원서 2~3주에 1회 정도 재판을 희망하고 있다. 확인해도 처벌 불가?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현재 상황서 김용현 등의 증거인멸 지시는 교사로 처벌될 순 있지만 문서 파쇄 등의 직접적 인멸 행위는 ‘고의성’ 여부가 중요하다. 이들의 행위가 차후 수사기관의 수사에 영향을 미친 정도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윤 대통령의 재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검찰의 공소 사실 외에도 구속 기소된 인물들의 증언에 따라 윤 대통령의 재판에 영향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