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간첩서 이사장으로’ 기막힌 신분 세탁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2.18 10:47:35
  • 호수 1519호
  • 댓글 3개

쿠사마 위작으로 50억 횡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교육청이 횡령 혐의로 고발한 ‘월드장학재단’의 이사장이 전 조선노동당 총책 황모씨로 드러났다. 황씨는 이사장 취임 2개월 만인 2020년 4월15일, 교육청 허가 없이 재단 자금 50억2500만원을 유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재단은 ‘월드메르디앙’으로 유명한 월드건설산업 조규상 회장이 2002년 설립했다. 회사 자산 등 5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고, 모교와 고향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조 회장이 별세하기 2년 전인 2020년 2월20일 사임하면서 이사진도 전격 교체됐다.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황씨와 더불어민주당 관련 인물이 연루되면서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모조품으로
꾸민 작전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2월 공익법인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단을 경찰에 고발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재단이 결산서 등을 제출하지 않자 확인에 나섰고, 재단 기본재산에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공익법인은 기본재산을 처분, 변경하고자 할 때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4월14일 황씨를 포함한 이사진 5명은 이사회를 열어 재단 자금 50억2500만원을 A씨에게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황씨가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2개월 여만이다.


대여금 50억2500만원에 대한 취득 담보는 A씨가 소유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작품명 ‘호박’) 2점에 대한 평가액을 55억원으로 설정했다. 대여금리는 2020년 4월14일부터 2021년 4월15일까지 연 2.4%를 적용했다고 ‘이사회 이사록’에 적혀 있다.

이어 2021년 4월15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사회 회의록에는 2022년 4월15일까지 연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한 연장에 대한 이사회에선 ‘호박’ 2점에 대한 평가액을 65억원으로 계상하기도 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사건을 주도한 인물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출신으로 알려진 장모씨라고 지목했다. 제보자는 “현재 월드장학재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사들은 대부분 장씨의 지인”이라며 “장씨가 위작을 담보로 자금을 대여해준 것처럼 꾸며 재단의 자금을 횡령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장씨가 지인과 통화한 녹취 파일에도 “내가 이사장과 이사들을 추천했다”고 언급했다.

장씨가 A씨에게 ‘호박’ 작품을 구매하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특히, A씨가 구매한 ‘호박’ 작품 2점 모두 위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쿠사마 야요이 ‘호박’ 원본의 영문 철자는 ‘Pumpkin’이지만, 이들이 담보로 제시한 작품 설명서에는 ‘Pumpukin’이라고 표기돼있다.

제보자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쿠사마 야요이 측에서 ‘진품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답변을 받았고, 감정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시리즈는 미술시장서 환금성이 높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교육청 고발, 성동경찰서 수사
허가 없이 장학재단 자금 맘대로 유용


월드장학재단 이사회 의사록이 허위로 작성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앞서 대여금 지출에 관한 의사록은 2020년도에 작성됐으나, 장씨가 A씨에게 ‘호박’을 구매하라고 지시한 시기는 2023년이었다는 것이다.

A씨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2023년에 서울 용산구서 만난 장씨는 ‘월드장학재단 자금 인출에 대한 명분이 없다. 네가 빌린 것으로 해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수긍하자 재단은 A씨가 2020년 4월15일부터 2022년 4월15일까지 50억2500만원을 대여한 것처럼 꾸며 의사록을 작성했다.

월드장학재단 자금 50억2500만원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실제로 A씨는 자금을 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내가 50억이 넘는 돈을 받았으면 이렇게 태연하게 전화를 받겠느냐”며 “장씨가 부탁해서 대여자 명의만 빌려준 것이라 황당하고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재단 횡령에 가담한 인물들에 대한 배경에 민주당 연루 의혹도 제기됐다. 먼저, 이사장 황씨는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0월6일, 국가안전기획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90여명을 간첩 혐의로 적발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안기부는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황씨 등 62명을 구속하고 300여명을 추적 중”이라고 발표했다.

황씨는 거물급 고정 간첩 이선실(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게 포섭돼 1990년 입북했던 바 있다. 이후 북한 노동당에 가입, 간첩 교육을 받은 후 ‘중부지역서 당을 조직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됐다. 국내서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활동하다 1992년 체포됐고, 대법원서 간첩 및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8년 8·15 특사 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노무현정부 때인 2003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좌파들의
횡령 잔치

황씨의 간첩 혐의는 노무현정부의 과거사 진상조사 때 재확인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는 2007년 보고서에서 “북한과 손잡고 남한 사회의 변혁을 이루고자 했던 국내 일부 운동 세력 및 인물들과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 공작이 결합돼 발생한 사건”이라고 적었다.

황씨는 1980년 사북 사태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6월 미스 유니버스 대회장 폭파 미수 사건으로 체포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황씨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직접 만든 사제 폭약을 들고 대회장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8년 강원랜드 상임감사 최종 후보에 오른 2인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은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황씨의 간첩 혐의가 명백한데도 정부가 황씨 이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강원랜드는 2018년 5월 모집 공고를 낸 뒤 임원추천위원회(비상임이사 3명·외부위원 2명 구성)의 추천을 거쳐 후보자 5인의 이력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 제출했다. 이후 위원회는 심의·의결을 거쳐 황씨가 포함된 최종 2인 명단을 강원랜드로 보냈다.


위원회 절차를 거치는 만큼, 공기업 상임감사위원 임명 시 정부 측의 판단이 중요하다. 공기업 상임감사위원은 감사 조직을 책임지는 역할이다. 큰 범위서 내부 비리를 감시하고 회계업무를 감독해 경영진을 견제하며 방만 경영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당시 강원랜드 언론팀은 “확인해드릴 수 있는 건 현재 (상임감사위원 최종 후보에 오른 인물은)2명이라는 사실 뿐”이라고만 밝혔다. 관계자는 최종 후보에 오른 인물의 신상에 대해서 알지 못할뿐더러 발표 이전이기에 공개하기도 힘들다고도 했다.

어떻게
돌아왔나

황씨는 정치권에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여론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2004년 2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공천권을 쥔 모 의원 등으로부터 정치 입문 제의를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황씨는 <신동아>와 인터뷰서 “정 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자기가 적극 밀 테니까 한번 만나자고 했지만, 정치에 뜻이 없어 만나지 않았다”면서 “(한나라당의 그 같은 제의를 보면서)우리 같은 전력을 가진 사람도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구나, 이제는 거리낌 없이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정 의원은 황씨의 주장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전면 부인했다. 정 의원은 “2월에는 당장 내 공천 문제 때문에 정신없던 때였는데 다른 사람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냐”고 반문하면서 “황씨와 전화 통화한 적도 있고, 한번 만난 적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일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횡령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장씨는 2022년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단체인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라임펀드 사태에 연루돼 해외 도피 중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으로부터 라임 자금 19억6000만원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장씨는 지난해 3월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이고 자금을 편취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업계에서는 장씨를 상장사 셀피글로벌, 디딤이엔에프, 메탈바인 자금 횡령 사건을 주도한 ‘기업사냥꾼’ 일당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장씨는 3개 회사의 총괄감사위원장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장씨 일당으로 언급되는 안모씨는 메탈바인의 실사주로 통하는데, 장씨는 메탈바인의 감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 안씨가 ‘작전세력’으로 지목됐던 코스닥 상장사 셀피글로벌에도 장씨의 측근이자 월드장학재단 이사인 이모씨가 2022년 8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기업사냥꾼 등장
민주당 연루 의혹

셀피글로벌 소액주주들은 안씨를 주가 폭락, 거래정지의 배후로 지목하고 규탄하고 있다.

장씨와 안씨의 연관성은 디딤이앤에프의 최대주주와 전 경영진 간의 경영권 다툼 과정서도 제기됐다. 디딤이앤에프는 2023년 3월부터 주요주주가 된 슈퍼개미(거액의 돈을 굴리는 개인투자자) 김상훈씨의 독특한 공시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코스닥 상장사다.

공시에 자신의 직업을 ‘모험가’라고 소개한 김씨는 물타기(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평균 매수단가가 현재의 주가보다 높을 때 손실을 줄일 목적으로 일정 기간을 두고 계속 매수하는 것)를 하다가 디딤이앤에프의 최대주주가 됐다. 2024년 초까지 이전 경영진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가 그해 5월 경영권 분쟁 종결에 합의했다.

사측(전 경영진)은 김씨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지난 1월 ‘주주님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김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기업사냥꾼 안씨 일당이 회사를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대주주로 오른 김씨보다는 안씨 등에 대한 폭로가 강조됐다.

회사를 괴롭히는 이들로 ‘멜파스, 유테크, 셀피글로벌 등 3개 회사를 상장 폐지시킨 기업사냥꾼 안모씨 일당’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측은 “‘안모씨 일당’이 메탈바인 감사로 재직 중인 장씨에게 디딤이앤에프와 메탈바인, 셀피글로벌 등 3개 회사의 총괄 감사위원장 직위가 각인된 위조 명함을 제작해줘 메탈바인과 디딤이앤에프가 한 회사인 것처럼 보이게 한 후 이를 활용해 투자자들을 기망하는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세청이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제도’를 시행한 지난 2009년 월드장학재단의 최초 공시를 보면 월드건설산업이 현금 약 50억7000만원, 조 회장이 현금 약 1억3000만원을 출연한 것으로 명시됐다. 이후 장학재단은 51억~52억원 규모의 자산을 유지해 왔다.

눈치보는
정치권

50억원이 정기예금에 예치돼있었던 만큼 자산 대부분은 금융자산(단기금융상품, 현금 및 현금성 자산)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2023년 1월 재단이 공시한 공익법인 결산서류를 살펴보면, 50억2500만원이 공익목적 사업의 현금자산이 아닌 기타사업의 장기대여금으로 분류됐다. 금융자산은 약 7600만원으로 명시됐다. 2022년 재무제표에는 50억2500만원이 대여금으로 분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고발한 내용은 현재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횡령 건으로 고발이 접수돼 수사 중이라 수사 대상, 자금 사용처 등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