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경비 삭감 여파 현장 목소리 들어보니…

돈 없어 수사 못한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검찰의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가 전액 삭감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고작 한 달 만에 압수수색은 3분의 1로 줄고 미접자 검거도 줄어들었다. 검찰이 삭감 예정부터 언급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추가경정예산서도 특활비와 특경비가 복원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검찰 특수활동부(이하 특활비)와 특정업무경비(특경비)가 전액 삭감됐다. 이에 삭감 예정 때부터 나왔던 검찰의 수사 차질이 현실화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사 차질
현실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는 지난해 12월10일, 검찰의 올해 특활비 80억원과 특경비 507억원을 전액 삭감하는 것으로 의결했다. 그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특활비 등이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는다면서 사용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에 법무부와 검찰은 특경비는 절반 이상이 각 검사와 수사관 계좌로 지급되고 나머지도 영수증 처리를 하기 때문에 증빙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계속 삭감 의지를 보이자 지난해 11월 대검찰청은 서울중앙지검을 포함한 6개 검찰청의 지난해 8개월 특경비 지출 내역을 제출했다.


제출된 지출 내역에는 특경비를 사용한 일자와 장소, 금액 등은 공개하고 특경비의 구체적인 용처가 드러날 경우 수사 중인 사건과 수사 기법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경비를 사용한 시간과 당사자의 소속, 비고란 등 내용은 가림 처리를 해 제출했다.

법무부도 지난해 1년 치 특경비 및 업무추진비(이하 업추비) 사용 내역과 최근 3년치 국내 여비 등을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 측의 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에 법무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그동안 국회 예산 심사 과정서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증빙자료를 성실히 제출했음에도, 특활비뿐만 아니라 전국의 검찰 구성원 1만여명에게 지급되는 최소한의 경비인 특경비까지 전액 삭감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대검도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검찰의 기능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검은 입장문에서 “특경비는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회, 대법원 등 다른 많은 부처에도 지급되고 있는데 유독 검찰의 특경비만 없앤다는 것은 전례가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검찰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결과가 될 것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특경비는 수사, 감사, 예산, 조사 등 특정 업무수행에 소요되는 실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하는 경비로서 수사요원 활동비, 검거 수사비, 수사 활동 및 정보 활동에 필요한 경비 등으로 구성돼있다”며 “특경비는 검사와 6∼9급 수사관을 포함한 전국의 검찰 구성원에게 지급되는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범죄, 마약범죄, 산업재해, 각종 형사 범죄 등 민생침해범죄 수사에서부터 벌금 미납자 검거, 지명 수배자 검거 등 형 집행 업무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업무 전반에 사용되는 필수적인 비용”이라고 강조했다.


자료 제출에도 전액 삭감
미루는 압수수색과 검거

이어 “특히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는 민생침해범죄 증가, 중대재해처벌법 50인 이하 사업장 적용 확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딥페이크·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 급증에 따른 수사 소요에 대응하기 위한 특경비가 포함돼있었다”고 덧붙였다.

특경비가 전액 삭감된 지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부작용은 벌써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집자(자유형 미집행자·재판 중 실형이 선고됐으나 출석하지 않고 도망다니는 사람) 수는 6155명으로 2023년(6075명)보다 80명 가까이 늘었다. 미집자 수는 2020년(4548명)만 해도 4000여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해마다 신규 미집자가 늘면서 2023년에는 6000명선을 넘어섰다.

해마다 검거(집행)되고 있는 미집자는 3000여명 수준이다. 지난해는 3611명으로 2023년(3682명)과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반면 국내외로 도피해 여전히 검거되지 못한 미집자는 지난해 2387명으로 2023년 2251명보다 100명가량 늘었다.

특경비 전액 삭감 이후인 지난 1월 검거된 미집자는 217명이다. 작년 월평균인 301명보다 30%나 감소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미집자 검거 과정서 소요되는 숙박·유류 비용은 일부 지급되지만, 최소한의 금액이라 항시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검거에 나서는)인원이 한정된 상황서 특경비까지 100% 삭감돼, 말 그대로 주머니 돈을 털어서 범죄자를 쫓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토로했다.

특경비가 전액 삭감된 이후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 건수도 줄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1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3분의 1가량 감소했다. 검찰이 교통비, 장비 사용료, 검사 및 수사관들의 출장비·식비 등 기본적인 비용 지출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급한 사건이 아니면 강제 수사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기업 범죄를 다루는 재경지검에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재경지검을 비롯한 지방청에는 비자금, 차명계좌를 활용한 조세포탈 고발건 등 경제범죄와 국세청과 금감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사건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검찰은 현재 특별한 사건(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나 국세청과 금감원, 공정위서 수사를 마치고 검찰로 넘어온 사건) 외에 경찰 송치 사건 위주로 처리 중이다.

필수적
비용도…

일례로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추가 압수수색이 불가피한 사건서도 영장 청구를 미뤘다고 한다. 설령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집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국세청이 지난해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국세청의 자료를 기다리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앞세워 검찰 몫까지 사정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예년과 다름 없이 특활비와 특경비 삭감이 없었으며, 이를 토대로 정기·특별 세무조사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 4일, 한국자산신탁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용역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등 사익을 추구한 혐의로 임직원이 구속 기소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회사로 들고 난 불법 자금이 있는지 등을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토지신탁에 대한 세무조사에도 착수했다. 한국토지신탁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이승학 부장검사)의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달에는 DL이앤씨 등 DL그룹 계열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했다. DL그룹은 사주 일가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다. 조세범칙조사는 세무조사 과정서 의도적인 조세포탈 행위가 발견될 경우 진행된다.

DL그룹 외에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효성중공업, 만나코퍼레이션, 더케이텍, 골프존뉴딘그룹, 알에프세미 등 다수 대기업의 사주 일가와 특수관계법인 간 자금 거래와 세금탈루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경비 전액 감액으로 현장서 뛰는 수사관과 검사들은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는 ‘가슴 시린 특경비’ ‘특경비 집행 지침 등 위반 여부 관련’ ‘아빠 무슨 잘못했어?’ 등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가슴 시린 특경비’라는 게시글은 지방검찰청 소속 김모 수사관이 작성했다. 김 수사관은 글에서 “검찰의 특경비는 업무 수행 실경비를 의미하며 검찰 구성원들에게 매월 정액(定額)으로 지급됐다”며 “특경비는 주요 피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가면 소요되는 경비를 보조하는 차원이었다”고 했다.

이어 “또 검찰청 어디를 불문하고 수사 활동 간 단합 도모 차원서 점심식사라도 함께하는 제반 비용으로서 활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그런 비용이 전액 삭감되면서 구성원들의 의욕이 심히 저해되고 국민 삶에 해가 직결될까 우려된다”고도 했다.

영장도
미뤘다

김 수사관은 “주 1회 점심식사 같이 하는 것도 하지 마라고 예산을 삭감했는데, 충분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에도 눈치만 볼 뿐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강경 노조 단체에 속한 근로자들의 임금이 월 2만7000원만 깎여도 어떤 상황들이 전개될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글에는 “애들 학원 끊고 외식 두어 번 줄여야겠다” “미집자는 떵떵거리며 사는데 우리 수사관들은 활동비가 없어 추위에 굶어가면서 일해야 한다” “공수처 회식을 특경비로 결제했다는 기사를 봤다. 공수처는 옳고 검찰은 틀린 게 뭐가 있냐”는 댓글들이 달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임 검찰 수사관은 “9급 수사관 초봉이 월 200만원가량인데 이제는 이마저도 수사에 쓰고 있다”며 “조금이라도 수사비를 아끼기 위해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한 재경지검 소속 수사관은 “지방이나 대규모 압수수색에 나설 때는 고속버스를 대절하고, 현장을 벗어날 수 없어 식사도 찬 바닥서 도시락으로 먹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며 “압수수색 대상 기업이 도시락을 제공해준다고 해도, 혐의를 지닌 곳에서 주는 그 어떤 편의도 받아들일 수 없어 항상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 중에도 각자 돈을 걷어서 간단히 김밥으로 식사를 해결하거나, 그마저도 어려우면 굶고 수사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압수수색 한번 나갈 때 검사가 최소 60~70만원의 수사 비용을 사비로 감당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수사를 하려면 검사는 자신의 월급 상당액을 수사비로 사용하며 봉사해야 하는 상황인데, 검사 개인에게 수사기관 운영을 위한 필수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온당한 일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검찰 예산이 논란이 된 이번 기회에 특활비·특경비뿐 아니라 검찰의 전반적인 예산 부족 실태를 공론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서류 검토 및 현장 수사 등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있지만 휴일수당은 물론 시간 외 근무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실제 검사의 경우 초임이라 해도 임관과 동시에 3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5급 이하 직원에게 지급되는 시간외 수당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검사의 보수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아예 시간외 수당이라는 항목 자체가 없다. 수사관은 월 57시간까지만 시간 외 근무수당이 인정되지만, 많게는 월 100시간 이상의 시간 외 근무를 이어가는 업무 현실을 감안할 때 수당 책정 기준에 대한 불만이 이어져 왔다.

“아이 학원비 아껴 수사비로”
“월급 200만원 수사비로 사용”

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서 속도감 있게 실체를 규명해 엄벌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으면 지휘부서도 수사를 독려하거나 사비로 충당해서라도 압수수색을 나가라고 지시하기는 쉽지 않다”며 “돈을 들이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는 증거만 찾는 선에서 소극적으로 수사하게 될 것이고, 월급을 수사비로 사용할 수 없는 검사는 버티지 못하고 반강제로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왜곡된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경비 전액 삭감으로 신종 범죄나 지능범죄에는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소속 한 검사는 “딥러닝 기술의 발전은 과학·문화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딥페이크 성범죄라는 신종 범죄를 만들어냈다”며 “보이스피싱도 딥페이크 음성 기술을 이용해 한층 더 정교하게 발전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몇 년간 급격히 늘어난 마약범죄도 마찬가지”라며 “이제는 학원가서 학생을 대상으로 마약을 탄 음료수가 뿌려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우편으로 마약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사건의 수사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특활비와 특경비인데 특경비는 보안이 필요한 수사에 사용된다”며 “활동할 때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경우 수사 기밀이나 동선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제보자의 신원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본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수사기관에 누가 제보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신종 범죄가 이슈가 되면 이에 대한 법안을 만들고 수사기관엔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면서, 정작 이를 수행할 수사기관의 팔·다리는 잘라내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마약류인 프로포폴을 돈만 내면 무제한으로 불법 투약해 준 A 의원을 적발한 서울중앙지검의 한 수사관은 “‘일대에 그런 병원이 있다’는 첩보를 토대로 의심 가는 의원을 직접 찾아다니고 일주일 넘게 잠복 수사해서 결국 검거했다”며 “비공개로 처리하는 특경비가 없어진 만큼 이런 첩보에 대응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적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는 검찰 관계자들의 불만이 계속 나오지만 특활비와 특경비는 복원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냄에 따라 ‘검찰의 특활비·특경비가 복원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팔과 다리
잘라낸 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특수 수사를 오랜 기간 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때 특활비와 특경비는 필수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수사력이 약화돼 국가적으로 손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일반 국민들이 마약에 중독되고,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면 마약을 투약하지 않은 국민도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마약 수사할 때 특활비가 많이 사용되는데 예산 삭감을 강행할 경우, 수사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며 “법무부서 특활비·특경비 예산 복원을 요구하더라도 야당서 이를 수용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