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버려진 북파공작원, HID 요원들 비스토리

내란 동원된 대북 살인 병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오혁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와 관련해 HID(북파공작원,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가 언급되고 있다. 국군정보사령부 소속인 HID가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관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일각에선 그림자처럼 살아온 HID 요원들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고 토로했다.

앞서 노상원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 ‘정보사령부 수사2단’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시키면 다 하고, 힘 좀 쓰는 애들”이라는 기준 아래에 HID 요원도 합류시켰다. ‘살인 병기’로 훈련된 HID의 전술적 판단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반면, 정부는 그들의 존재를 무시했고, 보상조차 까다롭게 했다. 오죽하면 스스로 “(정부가) 키워서 잡아먹는 돼지 같다”고 평가했을까?

체포된 윤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령부 고위 간부 출신 제보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이 원스타다.

또, 비밀 조직 특성상 역할이 도드라진 적이 없다. 1980년 12·12 사태 때도 정보사는 주요 가담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 정보사가 계엄에 관여한 것은 이례적이다.

HID는 북한에 침투해 고위층을 암살하고 파괴 공작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다. 국내 민간인을 상대로 HID를 투입했다는 것은 반대 세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적대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지금까지 예우와 보상 문제 해소되지 않아
“다쳐도 병원 못 가”···상이 등급 ‘별 따기’

일각에선 투입 목적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체포나 거짓 민란 기획 등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체를 통해 “(작전에)깊숙이 관여돼있던 인원의 양심 고백을 들었다”며 “선관위 과장 등 핵심 실무자 30명을 무력 제압해 케이블타이로 손·발목을 묶고 복면을 씌워 B-1 벙커로 데려오라는 임무였다”고 말했다.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용현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를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 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용현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상원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상원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권력의
그림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는 HID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부터 휴전 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 지역에 파견돼 활동한 무장첩보원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후방을 교란할 목적으로 양성됐으며 적 생포 및 사살, 적군 진지 주요시설물 파괴, 적지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 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이 주요 임무였다.

HID는 북파공작원의 대명사로 통한다. 과거 북파 작전을 수행했던 부대는 여럿 존재했다. HID의 전신은 1948년 1월 미 군정청 국방총사령부 정보과다. 이후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 안에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공작과가 신설됐는데, 이 부서가 영문자 HID로 표기됐다.

육군첩보부대가 이 같은 명칭을 사용한 기간은 1950년 7월부터 1961년 7월까지다.

이후 HID라는 명칭이 육군정보부대(AIU: Army Intelligence Unit)로 변경됐다. HID는 현재 정보사령부 산하서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육상특임대인 ‘설악개발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과거 정부는 1968년 1·21 사태 이후 응징보복부대로 설악개발단을 비롯한 해군의 UDU 등 특수부대를 여럿 창설했다.

1972년 AIU는 육군정보사령부(AIC: Army Intelligence Command)로 확대됐고, 1990년 11월 육군과 해군 등의 정보부대가 합쳐져 오늘날의 국군정보사령부(DIC: Defence Intelligence Command)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등 화해 분위기를 타고 폐쇄와 통폐합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독한
후유증

HID 요원들은 조선인민군 복장을 위장 착용하고 보급 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서 생식, 칡뿌리 등을 먹어가며 버티기도 했다.


어떤 요원은 “훈련 당시 헬기서 속옷만 입은 채 숲에 던져진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지만, 그때는 살기 위해 죽어라 (훈련)했다”며 “HID 출신들은 대부분 강제 징집된 사람들이다. 나도 1970년대 후반에 특전사에 지원했지만, ‘제대하면 집도 주고 억대 연봉을 주고 특별 대우해주는 부대가 있다’는 말에 따라간 곳이 설악개발단이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HID 훈련 기간은 60개월 이상이었고, 속초에 갇혀 생활했다. 보안상 휴가도, 병원도 보내주지 않았다”며 “임무에는 3인 1조로 투입됐지만, 각각 임무 내용이 다른 적도 있어 사실상 개인적으로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임무 수행 중 다치면 자결이나 자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작전에 투입돼 살아온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북파공작원 보상을 위해 정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951년 HID가 창설된 뒤 1994년까지 양성한 HID는 1만3000명이며, 임무 수행 중 7987명이 사망·실종됐다.

HID에 30년 이상 몸담았던 고위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서야 요원을 관리하는 공작팀장을 잘 만나면 훈련 중 다쳐도 조용히 병원에 보내줬지만, 예전엔 신분 노출 우려로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제보자 본인도 훈련 중 발목과 허리를 다쳤지만, 국군병원에 갈 수 없어 2010년까지 약으로 버텼다고 주장했다. 수술을 받고 제대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참아야 했다.

처참히 짓밟히고 무시당한 흑역사
사령관 진급 때문에···불명예 투입

이후 그는 목과 허리디스크에 철심 10여개를 박아 넣는 수술을 받고 2015년경 제대했으나, 상이 등급을 인정받지 못했다. 부상 당시 병원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보훈처에 “북파공작원 특성상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주장했음에도 상이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국가유공자로 전역했다.


통상 척추부상과 관련해 추상적인 용어인 경미한 기능장애 기준을 구체화해 ‘엑스레이 검사 등에서 명백한 기형’이 있거나, ‘추체 높이 10% 이상 30% 미만의 압박골절’로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 7급을 인정하게 된다.

HID 부대원들의 역사와 훈련 과정은 듣기만 해도 일반인이 견디기 힘든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가치와 명예를 믿기 때문이다. 실제 군인들이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 <강철부대3>서 압도적인 기량과 팀워크를 선보이며 우승한 HID 출신 강민호 팀장도 ‘진짜 영광은 현역분들께’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한 HID 요원은 인터뷰서 계엄 동원 및 임무 지시에 대한 수행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자기 군번도 모르고 그냥 훈련만 받다가 나중에 기간이 끝나면 (급여)통장 받고서 집에 가는 시스템”이라며 “계엄 동원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을 것 같다. 거기(HID) 인원들은 사회와 아예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뉴스나 신문을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들은 어떤 정치 이념도 갖지 않고, 하달받은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계급도
명예도

만약 국내 정치인 사살 명령이 있었다면 실행할 수 있었을지 묻는 질문에는 “그냥 저 사람 죽이라면 안 죽이겠죠. 그런데 ‘저 사람이 지금 우리나라서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어떤 간첩 활동을 하고 있어’라고 잘 포장했으면 죽였을 수도 있겠지만, 북파공작원들은 그런 거에 조금의 머뭇거림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선택(명령)을 내린 분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HID는 존재 그 자체로도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 전력으로서 의미가 있는 부대다. 취재진이 만난 HID 출신들은 하나같이 “12·3 내란 사태로 반란과 테러에 동원되는 부대라는 오해는 불명예스럽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짜 간첩과 싸운 ‘김신조 사건’ 재조명

1968년 1월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군부대)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습격을 시도했다.

청와대로부터 300m 떨어져 있는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침투한 31명 중 사살 29명, 미확인 1명, 투항 1명(김신조 소위)의 전과를 올렸으며, 이때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비군과 5분대기조, 그리고 육군 3사관학교가 창설됐다.

을지 연습과 유격훈련이 이 사건을 계기로 생겨났고, 육군 방첩대가 국군보안사령부로 개칭하고 조직을 개편했다.

이 사건의 보복을 위해 창설된 4개 부대가 바로 선갑도부대(육군), 장봉도부대(해군), 684부대(공군, 실미도) 마니산 까치부대(해병대)였다.

첩보조직들도 김신조 일당의 침투 이후 이에 대응하고자 보강했으며 이때부터 특수공작부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전략 목표·전술 목표·훈련 계획 등을 정하고 조직도 개편했는데 설악개발단 창설기획자인 이춘국 예비역 대령에 따르면, 선갑도부대가 803대로 변경됐고, HID 기능을 이어받은 설악개발단이 909대로 확대 편성됐다.

북한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공작원의 희생이 있었다. 이들은 비밀스러운 공작의 세계만큼이나 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0년 하반기부터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말로만 듣던 북파공작원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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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 ‘북풍 공작’ 못 건드리는 내막

정보사 ‘북풍 공작’ 못 건드리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헌정사상 처음 개입된 정보사 전·현직 간부들까지 구속 기소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만 남은 상황이다. 검찰은 불법 계엄의 명분으로 꼽히는 ‘북풍 공작’ 의혹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계엄에 처음 개입됐다. ‘북풍 공작’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베일에 싸여야만 하는 업무와 안가 위치까지 언급되고 있다. 검찰은 노상원·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구속 기소했으나 북풍 공작 의혹에 대해선 규명하지 못했다. 수사할 단서가 부족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내용 전무 수사 못해 비상계엄에 관여한 군·경 수뇌부는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남은 건 윤석열 대통령뿐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12·3 계엄 사태 관련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NLL)서 북의 공격 유도’ 등 북풍 공작 의혹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지난달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기소를 시작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문 전 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노 전 사령관 등 군·경 지휘부 9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통해 폭동을 일으켰다고 규정하고,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군·경 수뇌부 공소장서 윤 대통령을 내란 공범이자 우두머리로 규정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에도 조사에 응하지 않았던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서 북의 공격을 유도’ ‘오물 풍선’ 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 내용은 윤석열정부가 북한과의 군사 충돌을 의도적으로 유도해 비상계엄의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이 내용이 김 전 장관을 필두로 한 지휘부서 구체적으로 논의됐다면 외환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근거로 그가 사실상 김 전 장관에 이은 ‘계엄 2인자’라고 봤다. 그러나 검찰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며 들여다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기관서 파악한 근거와 증거만으로는 수첩에 적힌 내용이 군 수뇌부 논의 내용을 적은 것인지 노 전 사령관 혼자만의 생각이나 상상을 적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조사 과정서 관련 내용을 노 전 사령관에게 여러 번 물었으나 진술거부권 행사로 인해 진척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련 물적 증거 부족…노, 진술거부권까지 행사 계엄 당시 상황만 수두룩 “추가 수사 필요하다” 그러나 검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이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입증을 위한 ‘스모킹건(결정적 직접 증거)’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노 전 사령관은 당시 김 전 장관에게 인사를 건의하고, 계엄 준비 과정서도 문 전 사령관 등에게 적극적으로 지시하는 등의 정황이 조사 과정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을 재판에 넘기긴 했으나 수첩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수사가 가능한 부분”이라며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아직 규명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규명하지 못한다면 야권서 재발의한 ‘내란 특별검사법’도 또 하나의 규명 카드가 될 수 있다. 북풍 공작이 있었다는 의혹의 전모를 밝혀내자는 게 특검법 취지지만, 외환죄 적용이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외환죄 역시 내란죄처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이 발의한 ‘윤석열정부의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해외 분쟁지역 파병 ▲대북 확성기 가동 ▲대북전단 살포 대폭 확대 ▲무인기 평양 침투 ▲북한의 오물 풍선 원점 타격 ▲북방한계선서의 북한의 공격 유도 등을 통해 ‘전쟁 또는 무력 충돌을 유도하거나 야기하려고 한 혐의’가 수사 범위로 명시됐다. 야권에선 외환죄 중 이번 사안에 적용 가능한 혐의로 형법 제92조(외환유치죄) 또는 제99조(일반이적죄)를 꼽고 있다. 외국과 통모해 전투 행위를 개시하거나 항적한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게 외환유치죄다. 일반이적죄는 우리나라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한다. 이를 준비하거나 음모하는 단계에 그쳐도 처벌 대상이다. 왜 빠졌나 문제는 외환죄 적용 여부를 둘러싼 쟁점이 다양한 데다 실제로 처벌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북한 공격을 유도하려 했다면 ‘군사상 이익을 해하는 행위’를 모의한 것으로 보고 일반이적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북한을 외국 또는 적국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의 검찰 공소장을 보면 지난달 3일 오후 11시59분 윤승영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은 조 청장에게 “국군방첩사령부서 한동훈 체포조 5명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는 내용 등을 보고했다. 윤 기획관은 이현일 수사기획계장에게 “경찰청장에게 보고가 됐으니 방첩사에 (체포조)명단을 보내주라”고 지시했고,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에게도 전화해 조치 내용을 보고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앞서 오후 11시32분 이 계장은 구인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으로부터 2차례 “방첩사 5명, 경찰 5명, 군사경찰 5명이 한 팀으로 체포조를 편성해야 한다. 경찰관을 국회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계장이 “도대체 누구를 체포하는 겁니까”라고 묻자 구 과장은 “이재명, 한동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전창훈 수사기획담당관은 이 계장의 보고를 받고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에게 전화해 “군과 합동수사본부를 차려야 하는데 국수본 자체적으로 인원이 안 되니 서울청 차원서 수사관 100명, 차량 20대를 지원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체포 대상이 된 인원들을 납치한 후 사살하려 한 이른바 ‘백령도 작전’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 수첩에는 비상계엄과 관련해 ‘국회 봉쇄’라는 표현과 민주당 이성윤 의원 등 일부 대상자의 실명을 나열하고 정치인 등을 ‘수거 대상’이라고 적었다. 민주당 한 국방위원은 “계엄 계획 단계서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 6여단이나 서해 NLL을 맡은 평택 해군 2함대와의 협조 요청 문건 등이 발견되면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수사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령도 작전 의혹 보니… 군은 NLL 일대서 재개된 포사격 훈련이 대남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최근 정례 브리핑서 “서해상의 대규모 훈련은 9·19 합의 효력정지 이후 계획된 정례적 훈련을 실시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상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올해는 서해 NLL이 가장 안정적으로 관리됐던 해”라고 강조했다. 김명수 합참의장도 지난 14일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북풍이나 외환유치라는 말을 하는데 군은 그렇게 준비하거나 계획한 게 절대 없다는 것을 제 직을 걸고 말한다”면서 “외환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군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양 무인기 의혹과 관련해 김 의장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비밀을 유지한 상태서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선택을 제한해 혼란을 주고, 그래서 이익을 얻는 전략”이라며 “누군가가 제가 카드를 뭘 들고 있는지 상대에게 알려주거나 수사해서 정확하게 보겠다고 하면 이 게임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도 북풍 공작과 관련한 수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부승찬 의원에 따르면 공수처는 최근 드론작전사령부(이하 드론사) 사정을 잘 아는 군 관계자로부터 ‘드론사 예하 101드론대대와 드론교육연구센터가 지난달 중순부터 활용 가능한 문서세단기를 모두 동원해 자료를 삭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에는 드론교육연구센터가 최근 모든 컴퓨터를 포맷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드론사는 국군의 드론(무인기) 작전을 전담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다. 101드론대대는 김포와 백령도 지역의 드론 작전을 총괄한다. 드론교육연구센터는 드론 전문 인력 양성과 드론 전술 개발 등을 위해 드론사 산하에 설치한 교육기관이다. 검, 관련자 기소 후 보완 수사 중…특검 필요성도 군, 평양 무인기·드론사 은폐 의혹 확인 안 해줘 공수처는 드론사의 대규모 자료 파기 의혹 제보가 최근 불거진 평양 무인기 의혹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1일 북한 외무성은 남한서 보낸 무인기가 같은 달 3일과 9일, 10일 밤 평양에 침투해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은 무인기가 백령도서 출발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백령도 지역을 관할하는 드론 부대는 101드론대대다. 공수처가 파악한 내용과 101드론대대의 대규모 문서 파기가 사실이라면 평양 무인기 사건과 연관됐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합동참모본부와 드론사는 관련 사실 일체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김 전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북한에 무인기를 침투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최근에는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 윤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다는 군 내부 증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드론사 등의 문서 폐기 정황은 공수처가 수사 중인 윤 대통령의 외환 혐의 관련 증거 은폐 의혹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공수처가 가장 우선적으로 조사하는 건 비상계엄 실행 과정서 윤 대통령의 역할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경고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계엄에 가담한 군·경 수뇌부 다수는 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체포 등을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공수처도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곽 전 사령관은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국회 내에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국회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엔 이 전 사령관에게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전 장관이 여 전 방첩사령관에게 민주당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 10여명에 대한 체포·구금을 지시했고 실제로 체포조가 운영된 사실도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