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불안으로 빚어진 원·달러 환율 1450원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대외 구매력이 추락하는 우리나라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가난한 나라가 된다. 계엄 내란 사태와 불안한 경제 환경이 나라를 뒤덮었고 정치는 완전히 실종됐다.
지금 같은 상황이 조금만 더 이어진다면 환율 1500원이 아니라 2000이 되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많은 국민이 1990년대 IMF 외환위기 악몽을 떠올리는 이유다.
실시간 노출되는 환율을 보면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다. 다뤄야 할 칼럼의 주제는 넘치는데도 강력한 환율 경보음에 발이 묶여 서둘러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시장과 부동산시장, 수출 전망, 내수경제, 부채 문제 같은 많은 부분에서도 보이지 않는 비상등이 켜져 있을지 모른다.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정부의 모습은 더 걱정스럽다.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달러화 강세 영향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보다 경제가 낙후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원화 환율이 가파르게 오른다.
정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둘러대면서도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를 통해 환율 방어에 나선다. 그러나 허약해진 경제 체력과 상처 입은 대외 신인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응은 될 수 없다.
이례적인 일이지만 최근 금융통화위원회가 두 번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정부가 시장 개입을 통해 금리를 끌어내리면서 동시에 환율도 방어하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정작 목숨이라도 바쳐 막아야 할 계엄 내란 사태는 구경만 했던 경제부총리가 유독 국민연금의 시장 안정 역할을 강조하고 나선다.
국민연금도 외환 위험 회피에 돈을 더 쓰겠다고 호응한다.
환율이든 금리든, 시장에 개입하려면 돈이 들고 당연히 세금을 탕진하는 일이다. 하지만 국민 노후 자금을 털어 채권시장에 개입하고 달러를 내다 파는 짓은 차원이 다른 심각한 일이다. 만일 그러고도 금리와 환율 방어에 실패한다면 시장과 경제에 미칠 충격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시중 금리가 반드시 내린다는 보장은 없다. 자금 수급이 꼬이면 시중 금리는 오히려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개입해서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제한하려는 것은 마치 대통령이 국회의 권한 행사를 원천 봉쇄하려고 계엄령을 선포한 것과 비슷하다.
돈을 풀어서 시장을 틀어막는 개입 방식은 유별나게 자유를 목 놓아 외치던 대통령과 정부가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국민을 억압하고 시장과 싸우려 드는 정부는 오만을 넘어 어리석다.
1990년대의 외환위기 때도 그랬듯 지금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아마도 계엄 내란 사태 이후로는 더 급격히 감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외환 4000억달러는 27년 전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고 금융위기라도 맞는다면 전혀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그때는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꿈이라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경제 후퇴 위기감만 보인다.
국가가 국민 노후 자금을 슬쩍 가져다 쓰는 건 어떤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해도 대국민 절도 행위와 다름없다. 무엇을 위해 얼마나 어떻게 사용할 건지 소상히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고 갚을 계획을 밝힌다면 국민은 기꺼이 국가에 돈을 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실패했다고 해도 약간의 국민 신뢰는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내란 획책은 국민을 협박하는 범죄다. 국민을 상대로 한 절도와 협박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큰 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느 쪽이든 피해는 국민 몫이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는데도 안개는 전혀 걷히지 않았고 미래 불확실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계엄 내란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입은 상처를 빨리 극복하지 못한다면, 내년뿐만 아니라 그 이후 경제도 낙관할 수 없다.
국가 내란 사태와 흔들리는 정치와 경제, 지금은 위기 상황이다. 가장 무서운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무능한 정부보다 무서운 건 정부의 거짓말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라면 국민들이 편을 나누고 서로 반목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당연히 정치도, 경제도 발전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후퇴하고 있고 불확실성의 시대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실패한 정권을 심판하고 교체하는 선택은 언제나 국민의 권리다. 윤석열정권 퇴진과 무너진 정치 질서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올해엔 회복과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조용래는?]
▲ 전 홍콩 CFSG 파생상품 운용역
▲ <또 하나의 가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