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악랄한 추심 백태

급전 필요한 서민 ‘먹잇감’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불법 사채업자들의 불법 추심이 급증하고 있다. 채무자가 상환기한까지 못 갚을 시 주변인에게 연락하거나 심한 경우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을 SNS에 유포하는 등 악랄한 협박을 일삼고 있다. 불법 대부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정치권에서는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법안을 내놓으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불법 대부업체들의 채권추심 행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협박하는 등 피해자들의 고통이 늘어나고 있다. 불법 사채업자들은 대부업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집한 뒤 소액의 돈을 빌려주고 상환 불능 상황에 부닥친 대출자들에게 연 수천%에 달하는 과도한 연체료를 부과하고 있다.

사채 기승
불법 추심

1·2금융권을 비롯해 서민의 마지막 급전 창구 역할을 하는 3금융권인 대부업마저 신용대출을 조이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불법 계약을 무효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무법지대에 있는 사채꾼들의 협박까지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많다.

이에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며 시작된 최고금리 인하가 도리어 서민들을 벼랑으로 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불법사금융업자·대부업자가 대부 시 이자율은 연 20%를 초과할 수 없다. 빌린 액수와 상관없이 원금의 20%에 해당하는 연 이자만 상환한다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나 불법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이자율을 초과한 이자를 받고 있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려줄 때 채무자의 신분증과 가족·지인의 연락처 등을 대출 담보로 잡는다. 이들은 채무자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받았던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 메신저, SNS 등을 활용해 채무자의 채무 사실을 주변 지인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거나 심한 경우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까지 유포하는 등 협박을 일삼는다.

과거 대부업체는 명함을 돌려 홍보하거나 대면을 통해서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블랙박스나 CCTV 등이 발달하면서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되는 걸 피하고자 비대면이 가능한 SNS로 대부 방법을 옮겨갔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 계정을 만들어 금융기관을 사칭해 마치 정상적인 업체인 것처럼 광고한다. 어려운 경제 불황 시기에 돈이 필요한 나머지, 대부업체가 SNS에 광고한 글을 보고 혹해서 전화를 걸게 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부업체는 연락해 온 사람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 

특정되는 걸 피해 SNS로 옮겨
누구한테서 돈을 빌린지 몰라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될 수 있어 부재중 전화로 남겨둔다. 이후 부재중으로 기록된 전화번호에 대포폰으로 전화한다. 여기서부터가 개인정보가 빠져나가게 되는 시작점이다. 대부업체는 돈을 빌려주기 전, 하나씩 신상정보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고 잠적하는 상황까지 고려해 직업부터 회사, 명함, 연락처, 통장 거래 내역 등을 요구한 뒤 신용 정보를 확인한다. 

이후 채무자로부터 받은 연락처를 통해 주변인들에게 연락해 사실을 확인한다. 이때 대부업체라고 밝히지 않고 채무자에 대한 정보를 물어본 뒤 정확하게 채무자 정보를 인지한 후 돈을 빌려주는 구조다. 


대부업체는 타인 명의의 전화기로 광고를 하거나 타인 명의의 통장으로 돈을 수금해 채무자 대부분은 누구한테서 돈을 빌렸는지 모른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을 경우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셈이다. 채무자가 불법 추심에 견디지 못해 경찰에 신고해도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되지 않아 수사기관서 해결하기 어렵다. 

지난 7월 급전이 필요한 A씨는 불법 대부업체를 통해 100만원을 빌리게 됐다. 대부업체는 일주일 뒤 원금 100만원과 이자 80만원 등 180만원을 상환하는 것으로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A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연체비를 요구했다.

원금과 이자 전액을 한꺼번에 상환하지 못할 시 별도로 하루마다 30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A씨가 연체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대부업체는 불법추심을 시작했다. A씨의 아내와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해 돈을 갚으라고 하거나 아내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SNS 등에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 

A씨의 빚은 두 달 만에 2000만원 가까이 불어났다. 불법추심을 일삼은 대부업체를 더이상 참지 못한 A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불법 사채업자의 연락처도 없고 추적이 쉽지 않은 SNS를 사용했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살인적 이자
악랄한 협박

돈을 갚지 못하자 SNS에 사진과 영상을 게시해 이른바 박제까지 당한 피해자도 있었다. 지난해 B씨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대부업체서 10여차례에 걸쳐 총 300만원을 빌렸다. 신용도가 낮은 B씨는 일반 금융권서 대출이 어려워 대부업체까지 손을 대게 됐다. B씨가 처음 빌린 돈은 20만원이다. 

대부업체는 B씨에게 20만원을 빌려줄 테니 일주일 뒤 40만원을 갚으라고 했다. 이후 B씨가 상환기한에 맞춰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10분 늦을 때마다 연체료 50만원, 30분 늦으면 100만원을 요구했다. B씨가 요구받은 연체료의 연이율을 계산하면 무려 5000%가 넘는다. B씨가 갚아야 할 액수는 하루하루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사이 대부업체는 B씨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채무 사실을 폭로하거나, 자녀의 학교에 전단지를 뿌리겠다면서 협박했다. 대부업체는 B씨에게 돈을 빌려주기 전 특이한 영상을 찍으라고도 했다. 해당 영상에는 “제가 아버지 OOO, 누나 OOO, 친구 OOO 등 개인정보를 팔아서 이렇게 돈을 빌리게 됐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대부업체서 대본을 작성해 B씨에게 직접 읽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B씨가 제때 돈을 갚지 않자 대부업체는 SNS에 이 영상을 그대로 게시했다. B씨는 살인적인 이자율과 협박에 시달리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심했다.

실제 불법 대부업체의 불법추심에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있다. 지난 9월 초 C씨는 인터넷 광고를 통해 한 대부업체로부터 40만~180만원가량 여러 차례 돈을 빌렸다. C씨가 돈을 빌린 이유는 딸과 생활하는 데 필요해서였다. C씨는 지방서 서울로 올라와 일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웠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에 점차 힘들어진 C씨는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게 됐다. 상환기한을 일주일로 잡고 C씨는 가족관계증명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들의 연락처, 사진 등을 담보로 넘겼다. 짧은 상환기한에 C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상환이 늦을 때마다 1분에 10만원씩 붙이는 등 불법추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그사이 대부업체는 C씨에게 모진 협박을 하며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C씨는 지인들의 개인정보를 팔고, 대부업체서 돈을 빌리고 잠수를 탔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100통 가까이 날아온 지인도 있었다. 이 문자는 C씨의 딸이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교사에게도 갔다. 팔뚝을 문신으로 채운 남자들이 유치원에 찾아가기도 했다. 

대부업체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C씨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편집한 동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동영상 속 C씨가 들고 있는 종이엔 ‘50만원을 빌렸으며, 돈을 갚지 않을 시 가족, 지인, 회사 동료에게 연락해 채무독촉을 해도 무방함’이란 내용이 자필로 적혀 있었다.

해당 SNS 계정에는 다른 피해자들의 동영상도 함께 있었다. 

이후 C씨는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난 연체료와 지속적인 불법추심에 지난 9월 중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C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된 지인 D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해당 계정의 국적이 해외로 설정돼있어 범인을 잡기 어렵고, 해당 SNS 운영자가 외국 회사라 협조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려 수사가 오래 걸린다”고 듣게 됐다.

늘어난 피해
미미한 처벌

현재까지도 C씨를 죽음으로 내몬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유치원에 다니는 딸은 홀로 남았다.


2024년 현재,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약 82만명이 불법대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6784건이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1만913건이 접수된 점을 고려하면 피해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접수 건수는 2019년 5468건, 2020년 8043건, 2021년 9918건 등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불법 사채 범죄에 대한 국내 처벌 수위는 낮다. 미등록 대부업의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에 그친다. 그나마 실형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대법원이 공개한 대부업법 위반 형사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14건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무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게다가 실형이 선고된 것은 3건뿐이었고, 이 중 2건은 항소심서 감형돼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또 지난 2019∼2022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1심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9.1%에 불과했다. 91회에 걸쳐 최고금리 이상의 이자를 받고 채무자들에게 협박을 일삼았던 E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지속적 협박을 통해 연 이자 437%를 받아낸 F씨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각각 선고됐다.

이들은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항소심서 감형됐다.

대부업체 설립 요건이 너무 간단하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업 등록은 최초 1000만원을 보유한 사실과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의 교육 이수증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렇듯 낮은 요건과 쉬운 절차로 인해 대부업 시장에는 최초 등록 시에만 요건을 맞추는 꼼수가 성행한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등록 대부업체수는 총 8597개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금융감독원이 관리·감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 중 5874개(68.3%) 대부업체가 개인사업자다. 또 부실 개인 대부업체가 경영난에 빠져 금융소비자가 불법추심 등의 위협에 노출되는 사례가 매해 잇따른다.

(사)한국사이버보안협회 김현결 대표는 “사금융에 대한 제한 조치나 제재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며 “고금리 같은 규제가 많이 풀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불법대부업체로부터 피해가 발생하면 증거물을 수집해 놓는 게 좋다”며 “데이터가 쌓이면 증거물이 되고 단서가 명확해져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부업체에 당한 피해가 기존에 있던 협박에 금융을 붙인 사이버 피싱에 가깝다”며 “금융 범죄 쪽에서는 피해 형태가 같아 소재만 바뀐 것뿐”이라고 말했다.

불법 사금융 제한·제재 필요
“대포폰·대포통장 근절이 먼저”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모든 금융 범죄의 착발신으로 사용되는 대포폰이나 인출 도구로 사용되는 대포통장이 근절되지 않고는 막을 수 없다”며 “이를 개통한 사람이나 만들어준 사람을 특정할 수 없어 수사기관에서는 범인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사금융은 개인정보를 받아놓고 돈을 편취하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같은 형태라고 볼 수 있다”며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을 숨기기 때문에 계획적인 범죄”라고 지적했다. 

불법 대부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정치권서도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법안을 잇따라 내놨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대부업자로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자본 요건을 현행 1000만원서 3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자기자본 요건이 너무 낮아 대부업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없는 곳도 대부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금융 소비자의 피해 우려가 크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도 미등록 대부업의 경우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 전부를 무효화하고 지급된 원금과 이자에 대해 반환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5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있는 대부업법 처벌 규정을 5억원 이하로 상향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불법 대부업체와 등록 대부업체 간 명의를 사고 파는 문제를 막자는 취지의 법안도 발의됐다. 현재 대부업자 등록을 위한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 불법 대부업체들이 등록 대부업체 명의를 돈을 주고 거래한 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소비자들은 등록 대부업체라고 믿고 방문했다가 불법 대부업체에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쉽게 명의를 사고팔지 못하도록 자기자본 요건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에선 정부가 불법 사금융 처단에 강력한 의지를 밝힌 만큼 이번 국회서 해당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20%로 묶여 있는 법정 최고금리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권 시동
대부업 척결

금융위원회도 여야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금융위는 지난 9월 관계부처와 합동해 대부업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영세 대부업의 난립과 불법영업 등에 따른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 대부업자에 대한 등록요건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지자체 대부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개인 사업자는 기존 1000만원서 1억원으로, 법인 사업자는 5000만원서 3억원으로 대폭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이미 금융위 등록 대부업자는 총자산을 자기자본의 10배 이내로 제한 중이지만,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규제 형평성 제고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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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조국호 답 없는 딜레마

길 잃은 조국호 답 없는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쇄빙선을 자처하던 조국혁신당이 난파 위기에 처했다. 출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받아들였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딜레마에 모두가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성 비위 2건과 직장 내 괴롭힘 1건이 접수됐다. 첫 번째 성 비위 사건은 혁신당 상급자 A씨에 의해 약 10개월간 이뤄졌으며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의 유죄 선고가 있던 지난해 12월12일 ‘노래방 회식’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이 이에 포함된다. 질질 끌더니… 결국 터진 폭탄 두 번째 성 비위 건은 지난 4월 혁신당 당직자 B씨가 당직자 면접을 보던 도중 발생했다. 직장 내 괴롭힘 역시 지난 1월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당 성 비위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이다. 지난 5월6일, 사건이 보도되자 당시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당의 제도와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강도 높게 혁신해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 대책부터 당내 조직 문화 개선, 그리고 당원들과 국민의 신뢰 회복 방안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와 진상조사 등 후속 조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당에서도 유감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재원 의원은 “오늘(5월9일)까지도 피해자가 요구한 외부 조사기관 지정과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재발 방지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즉각적 분리 조치, 진상조사 기구를 통한 전수조사를 강력히 요청했지만 중앙당은 성 비위 건의 경우 윤리위원회, 괴롭힘 건은 인사위원회를 통해 조치하겠다고만 했다”고 비판했다. 최근까지도 당의 대처는 미온적이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성추행 및 괴롭힘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당을 떠났고 관련해 당의 쇄신을 외쳤던 비대위원장은 제명됐다. 함께 목소리를 내던 운영위원 3명도 징계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지난 4일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침묵을 끊겠다”며 기자회견을 열고 당의 이면을 폭로했다. 강 전 대변인은 “동지라고 믿었던 이들의 성희롱과 성추행, 괴롭힘을 마주했다. 그러나 당은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했다”며 “폭넓은 2차 가해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강 전 대변인에 따르면 당 윤리위와 인사위원회는 가해자와 가까운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고 외부 조사 기구 설치 요구는 한 달이 넘도록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 해결 과정서 피해자에겐 “너 하나 때문에 열 명이 힘들다” “우리가 네 눈치를 왜 봐야 하느냐”는 등 발언을 해 2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울러 당무위원과 고위 당직자 일부는 SNS에서 피해자와 조력자들을 향해 “당을 흔드는 것들” “배은망덕한 것들” “종파주의자” 등 조롱 섞인 글을 게시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성 비위 폭로…눈물의 기자회견 2차 가해 논란 풍비박산 혁신당 강 전 대변인은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귀한 조 비대위원장을 겨냥하며 “사면 이후 당이 제자리를 찾고 바로잡힐 날을 기다렸지만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회견 직후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서 “조 비대위원장이 수감된 기간 동안 당원들께서 편지로 (성 비위 사건) 소식을 전했고 나온 후에도 피켓과 문서로 해당 사실을 자세하게 전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당도 입장에 변화가 없었고 조 원장한테서도 여태 다른 입장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 안팎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발생한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혁신당 이규원 사무부총장은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최강욱 전 교육연수원장은 “조국을 감옥에 넣어 놓고 그 사소한 문제로 치고받고 싸운다” “혁신당에서 성 비위가 어떻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아는 분이 몇 분이나 될까”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자회견 이후 당의 대처가 문제를 키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조 비대위원장의 태도가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조 비대위원장은 강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연 당일 저녁, 자신의 SNS를 통해 “큰 상처를 받으신 피해자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피해자 대리인을 통해 저의 공식 일정을 마치는 대로 고통받은 강 전 대변인을 만나 위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제가 좀 더 서둘렀어야 한다는 후회를 한다”고 적었다. 이어 “수감 중 수많은 서신을 받았다. 피해자 대리인이 보내준 자료도 있었다”면서도 “그렇지만 당에서 조사 후 가해자를 제명 조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돌고 돌아 조국 매서운 후폭풍 문제가 된 대목은 “당시 당적 박탈로 비당원 신분이었던 저로서는 당의 공식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비당원인 제가 이 절차에 개입하는 것이 공당의 체계와 절차를 무너뜨린다고 판단했다”는 부분이다. 당무에 관여할 수 없던 상황이라지만 혁신당의 정체성은 조 비대위원장인 만큼 “권한이 없었다”는 그의 말은 변명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성 비위 사건의 피해자들이 수감 중이던 조 비대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사면 이후 일언반구 없이 자기 정치에만 몰두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조 비대위원장은 ‘경향TV’ 유튜브에 출연해서는 “성 비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후로 저는 옥중에 있었지 않나. 일체의 당무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처지였다”며 비슷한 논조로 말했다. 이어 “석방되고 난 뒤에 바로 여러 일정이 잡혔고, 그 과정에서 저라도 조금 빨리 이분을 만나 소통했으면 어땠을까”라며 “잡힌 일정을 마치면 연락드리고 봬야겠다고 했었는데, 만남이 있기 전에 이런 일이 터져 참 안타깝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자신이 비당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혁신당은 조국의 이름을 걸고 만든 1인 정당에 가깝다”며 “당원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을 꾸린 한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옥중에서도 언론과 인터뷰하는 등 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성 비위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은 건 비판받아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진보의 위선’이라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면서 혁신당 성 비위 사건은 정치권 전체로 빠르게 번졌고 지도부는 사건에 대해 책임지겠다며 총사퇴했다. 조 비대위원장이 복귀한 지 3주 만에 당이 비대위 체제로 들어서면서 벼랑 끝에 놓인 혁신당을 누가 이끌지 관심이 쏠렸다. 단단히 꼬였다 당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혁신당 의원들은 지난 7일과 8일 연달아 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구성을 논의했으나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음 날인 9일 다시 의총을 열고 의원 다수의 의견에 따라 비대위원장으로 조 원장을 당무위원회에 추천하기로 결론이 났다. 당초 조 비대위원장의 정계 복귀는 오는 11월 전당대회를 통해 이뤄질 전망이었다. 그러나 지도부가 사퇴하면서 그 시기가 두 달가량 앞당겨졌고 조 비대위원장의 조기 등판을 놓고 당에서조차 엇갈린 목소리가 나왔다. 피해자 측에서 조 비대위원장의 등판을 반대했던 만큼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이었지만 물리적 시간의 제약 등으로 차선책인 조 비대위원장을 추대한 것이다. 이후 혁신당은 언론 공지를 통해 “반대 의견 중에 피해자 신뢰 문제로 조 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조국 1극 체제’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조 비대위원장을 향한 비판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우선 조 비대위원장이 예상보다 이르게 정계에 복귀했지만 그를 쇄신의 지표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재등장한 시점도 명분도 무엇 하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반대로 그가 비대위원장 자리를 거부했을 경우 “쇄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비당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말이 도화선이 된 것처럼 출소 이후 정치 생명을 회복한 뒤 피해를 수습해야 하지 않겠냐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결국 ‘조국 책임론’에 발목이 잡혔다. 수많은 딜레마 속에서 조 비대위원장은 당의 키를 쥐었고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나서도 문제, 뒷짐도 문제 대권의 꿈 이렇게 무너지나 국민의힘은 “혁신당의 자진 해산 선언이다. 후안무치한 정당에 내일은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조 비대위원장은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도 피해자와 조력자들의 요청을 묵살했던 인물”이라며 “강 전 대변인 등 피해자 측에서는 조국 비대위 체제에 대해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명했지만 피해자보다 ‘조국 수호’에 혈안인 혁신당에 이런 의견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비꼬았다. 이재명정부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박 대변인은 “광복절 특사로 조 위원장을 불러낸 순간부터 이미 ‘조국 복귀 시나리오’는 짜여 있었던 것 아닌가”라며 “국민 앞에 반성은커녕 특사로 면죄부를 주고, 이제는 비대위 등판으로 마무리하려는 이 뻔뻔함을 국민이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막상 키를 잡은 조 비대위원장이 이번 사태를 매듭지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초반에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지금의 사태가 된 만큼 이제야 진상조사에 나서는 건 무의미하단 지적이다. 조 비대위원장이 정치 1선으로 나오면서 “당이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다 써버렸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악과 차악이라는 선택지만 남은 지금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조 비대위원장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다음 지방선거, 더 나아가 차기 대권에서 사용할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의 원인이었던 조 비대위원장이 또다 른 짐을 짊어지면서 그의 대권 가도가 점점 좁아질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가뜩이나 가능성이 작았던 더불어민주당-혁신당 간의 합당 논의가 끊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조 비대위원장이 대권 주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큰 당에 합류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줄줄이 리스크를 안은 상태에서는 민주당도 선뜻 받아주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뒷전인 채 조 비대위원장의 안위만 걱정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대위가 들어서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이를 직시하고 반성하기보다 성 비위 사태로 인한 후폭풍과 조 비대위원장의 위상만 걱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분도 타이밍도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 비대위원장은 옥중에서라도 입장 표명을 해야 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조 비대위원장이) 현재 어떤 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정치권 전면에 나섰든 원장직을 유지하고 물밑에서 수습하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번 성 비위 사건은 당에 치명타로 이어졌다. 당 전면에 나선 조 비대위원장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뿔뿔이 흩어지는 혁신당 성비위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창립 멤버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사퇴를 하거나 당을 떠났다. 먼저 지난 7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핵심 인사로 꼽히던 황현선 사무총장이 사퇴했다. 황 사무총장은 “당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에 대해 당원들과 국민께 사과드린다”면서도 당 지도부의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이미 밝혔듯이 당 지도부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조사 과정과 조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린다”며 “저에 대한 모든 비판과 비난을 모두 감내하겠다”고 밝혔다. 혁신당 창당 당시 공동 창당준비비대위원장을 지내며 조국 비대위원장을 도왔던 은우근 상임고문도 지난 10일 탈당 소식을 알렸다. 은 상임고문은 “혁신당이 이 위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에 대한 철저하고 근원적인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 비위 사건 피해자와 피해자 대리인에 대해 매우 부당한 공격이 시작됐다.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을 위해서나 어떤 누군가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멈춰 달라”며 “당의 사무처에서도 신속하게 대처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