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 인터넷 떠도는 무고죄 가이드 펴보니…

함정 파놓고 합의금 뜯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범죄가 하나 있다. 바로 ‘성범죄’다. 성범죄에선 피해자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무고한 피해자들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무고죄로 처벌받지 않는 법’ ‘성범죄 무고죄 가이드’ 등의 글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합의에 따라 성관계한 남성을 무고하는 이른바 ‘무고죄 가이드’가 인터넷 커뮤니티서 나왔다. 해당 글은 높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받고 있으며 법조계에서는 사법절차를 농락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가해자 땐…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회원수 약 80만명에 이르는 여성 인터넷 커뮤니티엔 성범죄 고소 후 무고 안 당하는 가이드 다수가 돌아다니고 있다. 특히 가장 인기가 많은 글은 지난 2022년에 작성된 ‘한남 ㅈㄱㄱ(준강간) 고소 요령’이라는 글로 해당 글의 구독 건은 약 14만건 이상에 달한다.

“합의하에 했거나 어떤 경우라도 문제가 안 되는 성범죄 고소 요령을 알려주겠다”는 것이 해당 글의 요지다.

작성자는 글을 시작하며 “우선 나는 한 사람을 준강간이라는 죄명으로 고소한 상태다. 이 글을 읽는 회원들은 고소 관련 정보가 필요할 것”이라며 “집행유예만 떠도 한남 인생에 빨간 줄을 그을 수 있고, 다니는 직장서 잘리게도 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성범죄 사건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가해자의 사과라며 “증거가 없어도 괜찮다. 합의하에 (성관계를)했어도 사과 증거가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구슬려서 직접 사과하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작성자는 고소인 조사에 앞서 ▲중간중간 옷이 내려가는 느낌, 몸을 쓰다듬거나 만지는 느낌,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만취 상태라 저항하지 못했다 ▲성폭행 사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 눈을 뜬 곳은 처음 보는 모텔이었고, 내 옆에는 가해자가 자고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모텔을 빠져나와 인터넷을 통해 내가 준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366(여성긴급전화 서울센터)에 상담을 받고 말을 맞추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무고 가이드 글에서는 “모텔비를 내가 내도, 성관계 후에 만나서 데이트를 해도, 모텔 CCTV를 가져와도 100% 유죄가 나오는 방법이 있다”며 “중간 중간 디테일이 있는데 이는 변호사에게 돈 주고 배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양한 성범죄 지침서 인기 몰이
무고 통해 용돈벌이 후기도 다수

해당 커뮤니티서 활동한 적 있다는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나 “해당 커뮤니티에서는 ‘강제추행 고소 가이드’ ‘스토킹 고소 가이드’ ‘통매음 고소 가이드’ ‘성매매 고소 가이드’ 등 여러 성범죄에 대한 고소 가이드가 다수 존재한다”며 “게다가 해당 가이드로 합의금을 얻어냈다는 성공 사례도 다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행위들을 단지 ‘용돈벌이’라고 취급하기도 한다”며 “후기글에 따르면 고소 후 무죄가 나와 무고죄로 인정되더라도 실형보단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가 많아 겁 없이 이런 가이드를 따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해당 가이드에 따르기만 해도 사실상 무고죄로 역고소당할 일은 적어 보인다”며 “특히 준강간의 경우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빠진 사람과 간음하는 경우를 말해 음주 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을 뒤집을 증거가 필요한데 이를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범죄와 관련된 무고죄를 특정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무고죄 발생 건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무고죄 발생 건수는 지난 2017년 3690건서 2022년 4976건으로 6년 만에 약 35% 증가했다. 연도별 발생 건수를 살펴보면 ▲2018년 4212건 ▲2019년 4159건 ▲2020년 4685건 ▲2021년 4133건으로 매년 4000건대를 웃돌았다.

검찰에 무고죄로 접수된 사건은 더 많다.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무고죄 접수는 이전보다 절반가량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5500건을 넘어섰다. 구체적으로 ▲2017년 1만1590건 ▲2018년 1만2352건 ▲2019년 1만2874건 ▲2020년 1만2870건 ▲2021년 6737건 ▲2022년 5570건이다.

이 중 기소되는 사건은 6년간 평균 11.6%에 불과하다. 반면 불기소되는 사건은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63%를 넘어섰으며 2021년에 32%, 2022년에는 43%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허위 사실 적극적 증명 어려워”
“사법부 강한 기조 있어야 변화”

법조계에서는 이런 비율이 무고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해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경우 성립한다. 여기서 무고죄 구성요건의 핵심은 바로 ‘허위 사실’을 신고하는 것이다. 

정한벼리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는 “보통 신고된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 불기소 처분,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 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자신의 결백함이 밝혀짐과 동시에 고소 내용이 허위임이 밝혀졌다고 봐 고소인에게 무고죄가 성립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법원은 허위 사실이라는 요건은 적극적인 증명이 있어야 하며 신고 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 그 신고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 사실이라고 단정해 무고죄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고 사실 핵심 또는 중요 내용이 객관적 진실에 명백히 반한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증거가 부족해 혐의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유만으로 무혐의 또는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라면 이는 소극적 증명에 불과하므로 무고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무고죄의 적극적인 증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즉 무죄나 불기소 처분만으로 무고죄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무고죄의 증명이 어렵고 낮은 처벌 때문에 이 같은 가이드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가벼운 처벌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재판서 무고죄가 소극적으로 판단되는 경향이 있어 실질적인 피해가 없거나 초범이라면 처벌이 약하다”며 “무고가 상대방의 인생을 파탄 낼 수도 있는 중범죄인 만큼 사법부가 강한 처벌 기조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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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