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 - 억울한 사람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8.22 00:00:00
  • 호수 1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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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는데 없어진 CCTV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일요시사>는 ‘일요신문고’ 지면을 통해 억울한 사람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번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한 직장인의 사연입니다.

폭언과 따돌림 등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지난 한 해에만 1만 건이 넘게 접수됐다. 지난 4월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모두 1만28건이다. 하루 평균 27.5건 꼴로, 전년보다 12% 늘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2019년 7월16일 시행된 후부터 근로자들의 피해 신고는 계속 늘고 있다. 2019년 7~12월 2130건서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으로 증가했다.

승진하고…

도입 첫해 반년간의 신고 건수를 1년으로 단순 환산해 비교해 보면 5년 사이 신고가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 신고 유형별로는 폭언이 32.8%로 가장 많고, 부당인사가 13.8%, 따돌림·험담이 10.8% 등이다.

지난해 1028건의 신고 가운데 9672건의 처리가 완료됐고, 356건이 아직 처리 중이다. 처리 완료 사건 중 6445건은 조사 결과 ‘법 위반 없음’으로 나타났거나,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 아닌 경우, 동일 민원이 중복 신고된 경우 등이었다.

신고인이 취하한 사건은 2197건이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객관적 조사나 피해자 보호 등 사용자 조치 의무 위반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이다. 작년의 경우 신고 사건의 3.4%만 과태료 또는 검찰 송치로 이어져,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A씨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A씨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부터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고 고등학생 이후에는 전공을 미용으로 정하면서 미용실서 오랫동안 일하기도 했다. 힘들어도 열심히 했고 그만큼의 보상도 받았다. 직장 상사로부터 일을 잘한다는 칭찬도 종종 들었다.

사회생활에는 자신이 있었던 그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A씨는 오랜 시간 미용실서 일했지만 곧 한계를 느꼈다. 고등학교만 졸업했고 현장 관리직이라 현실적으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서였다. 

능력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다…
무급 근무에 욕설·폭언까지

그는 미용실을 그만두면서 바로 이직을 준비했다. 경력 향상과 성장에 초점을 뒀는데, 운이 좋게 중견기업에 합격했다. 고졸 직원을 뽑는 공채도 아니었는데 모든 채용 절차를 거쳐 합격한 것이다.

A씨는 그렇게 중견기업으로의 이직에 성공했으나 계열사로 발령을 받았다. A씨는 팀 내에서 막내였지만 성실히 일해 성과를 많이 냈고, 결국 계열사에서 자회사로 인사이동 발령을 받고 승진까지 했다. 주위 동료들은 “당연한 결과”라며 A씨의 승진을 축하해줬다.

그는 승진한 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A씨의 부서 팀장이 퇴사해 팀내 공백이 생겼다. 어수선한 환경에 다른 직원들까지 줄줄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A씨 혼자 부서에 남게 됐고 팀장 직책을 맡게 됐다. 이후 팀원을 꾸린 A씨 부서는 성과를 꾸준히 내면서 회사에서 최고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후 A씨에게 고졸 출신이라는 말이 붙지도 않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A씨의 회사 생활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무렵부터였다. 회사 매출이 심각한 수준으로 내려갔고 결국엔 마이너스가 됐다.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인원 감축도 피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A씨는 회사에 남을 수 있었는데, 그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직원을 감축하면서 업무는 A씨에게 과중됐고, 매출 향상과 성과에 과중한 부담을 안겼던 탓이다.

A씨는 10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주 7일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근무했고, 매번 매출 증대를 위해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덕분에 A씨의 업무는 너무 잘 풀렸는데 이로 인해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매출이 향상된 것도 아니었다.

이때부터 회사 대표와 부장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됐다. 이유는 ‘평균 매출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회사 CCTV를 통해 감시하면서 A씨가 조금이라도 쉬는 모습이 보이면 본인들의 사적 업무를 시키곤 했다. 담배나 과자 심부름 등이었는데, 당시에도 A씨는 주 7일을 근무하고 있었다.

“신고하면 회사가 알 텐데요”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업무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끊이지 않았고, 일한 만큼의 보상은 받길 원했던 A씨는 대표에게 10개월간의 휴일근로 수당 지급 및 사적인 심부름 자제를 건의했다. 이때 A씨에게 돌아온 것은 폭언과 욕설, 그리고 무시였다.

대표는 “고졸 주제에…” “네가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 등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폭언을 했다. 결국 A씨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휴일근로 수당 미지급’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로부터 “심한 건 맞다. 휴일근로 수당은 조사해봐야겠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처벌이 어렵다. 내용은 회사로 통보될 텐데 괜찮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용노동부 신고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사과나 반성은 없었고 폭언과 욕설은 계속됐다. “감히 나를” “못된 놈이었다” “잘못 배웠다” 등의 욕설과 폭언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이후 고용노동부로부터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은 업무상 적정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일부 행위만 인정됐고, 휴일근로 수당 미지급 문제도 개인 성과급으로 지급했다며 종결 처리됐다.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A씨는 이때부터 근무시간에 녹음기를 켰다. 한 가지 바뀐 부분은 휴일이 생겼다는 것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직장 내 괴롭힘은 심해졌고, 결국 A씨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퇴사 말고는 답이 없어 보였다. A씨는 퇴사를 결심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사직서를 제출한 뒤 바로 산재 신청을 했다. 바로 사직서를 처리한 회사에선 산재 신청을 낸 것을 인지한 후 ▲사직 처리 철회 후 무급 휴직으로 변경 ▲실업급여를 받게 해줄 테니 사직 사유를 변경 ▲인사이동(해당 행위자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조치 분리) ▲휴일근로 수당을 모두 줄 테니 산재 철회 및 사직 사유 변경 후 퇴사 등의 요구를 해왔다.

대표·부장이…


A씨는 회사 측의 이 같은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이 기간 A씨는 회사에 형사소송을 걸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객관적 증거자료가 없고 관련 참고인들이 증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CCTV 자료는 고장으로 교체했다고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증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회사와 싸우고 있는 A씨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A씨는 “회사에 있으면서 죽는 것까지 생각했다. 이제는 다른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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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