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안세영발’ 태풍의 눈 김택규

동호인이 프로선수 컨트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의 ‘내부 갑질’ 폭로가 나온 가운데 후원사로부터 셔틀콕 ‘페이백’을 받아 장부에 적지 않고 임의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진상조사에 나선 상황서 협회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곳곳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이하 배드민턴협회)에 복종 강요 규정과 개인 스폰서 제한, 실업 선수들의 불공정 계약 등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이 갑질과 폭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배드민턴협회 운영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들어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김 회장의 독단적 협회 운영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것으로 전망된다. 

독단 운영
내부 폭로

지난 13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의 폭언과 억압적인 태도로 인해 배드민턴협회 직원들이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드민턴협회 전 직원 A씨는 “김 회장은 자기중심적으로 협회를 운영하며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경우 욕하고 소리를 지르는 건 일상이었다”며 “이런 폭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협회 내부에선 아닌 것도 아니라고 말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직원도 있었고, 한 임원은 직원 회식 자리서 ‘새X가 할 줄 아는 게 뭐냐’는 폭언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주말과 휴일에도 직원들을 개인 기사처럼 부리고 과도한 의전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 송파구 소재의 협회 사무실이 아닌 본인의 거처와 회사가 있는 충남 서산까지 협회 직원을 주 1~2회씩 불러 업무를 처리하고, 주말과 휴일에도 직원을 개인 기사처럼 부렸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주말 전라남도서 오전 11시 열리는 생활체육대회 참석하면서 서울 직원을 서산으로 불러 이동했고, 평일·휴일 가리지 않고 개인 기사처럼 부리기도 했다”며 “하루에도 1000㎞를 운전한 것 같다고 토로한 직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갑질 의혹뿐 아니라 협회가 회계 산입 없이 스폰서십의 30%를 추가로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앞서 해당 매체는 지난 14일 문체부가 협회와 김 회장이 스폰서인 요넥스로부터 받은 비용 중 30%의 ‘페이백’을 절차 없이 임의로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배드민턴협회는 지난해 요넥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회에 사용된 셔틀콕의 30%를 추가로 받는 ‘페이백 부속 합의’를 체결했다. 요넥스가 제공한 셔틀콕은 배드민턴 승강제 리그(BK5), 유·청소년 클럽 대회인 아이리그, 여학생 배드민턴 교실 등 국가 공모사업서 사용됐으며, 총 2만타가 사용됐다. 

해당 합의에 따라 배드민턴협회는 6000타를 확보했으며, 대회용 셔틀콕 1타의 가격이 1만7900원이므로 대회서 사용된 셔틀콕의 총 가치는 3억5800만원에 달한다. 협회는 1억740만원어치의 추가 장비를 페이백 받은 것이다.

요넥스서 받은 30%의 페이백은 배드민턴협회 장부에 기록되지 않았으며, 김 회장은 이를 절차 없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 이사회서도 지적된 것으로 보인다. 


배드민턴협회 내부 관계자는 “지난 2월 열린 제90차 이사회서 페이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며 “당시 ‘공장서 남은 철 찌꺼기를 팔아먹어도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된 만큼 이제 투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지만 김 회장은 ‘그동안 문제가 없었는데 이것도 회장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는 페이백이 30%였지만 2022년까지는 40%를 지급한다는 부속 합의가 있었다”며 “국가공모사업서 관례라는 이유만으로 투명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이 이렇게 얻은 물품들을 자신의 측근이나 지역 대회에 배분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배드민턴협회 측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안세영 폭로 후 내부고발 이어져
직원들을 비서·기사처럼 마음대로

지난 14일 <CBS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 측은 “2022년 승강제 리그 사업 공모에 선정돼 대회를 치르기 위해 셔틀콕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협회 공식 후원사인 요넥스에 간곡히 요청해 정상가보다 낮은 원가에 공급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일종의 보너스 개념인 페이백 사용에 대해 “생활체육이 어려운 상황서 지원을 요넥스에 요청해 받은 것”이라며 “김 회장이 이를 착복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승강제 등 대회를 치르는 각 시도협회에 배분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배드민턴협회의 한 관계자는 “추가 셔틀콕 사용에 대해서는 변호사 자문을 통해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며 “페이백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장부 산입 등 절차를 어겼다는 주장은 맞지 않고, 각 시도협회에 배분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요넥스도 난감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넥스 관계자는 “사실 막대한 금액을 후원하는 만큼 협회 사업에는 정당한 가격으로 계약해 합리적으로 이익을 보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맞다”면서도 “그러나 생활체육의 열악한 상황과 종목 발전을 위해 대승적으로 원가에 계약했고, 추가로 용품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1년 제31대 배드민턴협회장으로 취임했던 김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5년까지다. ‘생활체육 동호인’ 출신인 김 회장은 당초 협회의 엘리트 스포츠 분야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엘리트 쪽도 관여하기 시작했고 결국 전권을 잡으면서 강압적으로 변했다는 후문이다.

권력의 돌변
드러난 민낯

협회 창립 이래 처음 경선으로 진행된 회장 선거서 당선된 김 회장은 당선 당시 공약으로 ▲배드민턴 동호인 저변 확대 및 회원관리 체계화 ▲투명한 국가대표 선발 및 발전적 운영 방안 강구 ▲유소년 배드민턴 육성 정책 강화 ▲해외 및 북한과의 경기 훈련 교류 모색 등을 내세운 바 있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작심 발언에 따른 논란이 거세지면서 배드민턴협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배드민턴협회가 선수촌 안팎서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라거나 선수들 연봉과 후원 계약도 하나하나 제한한 점들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지난 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이 배드민턴협회로부터 제공받은 ‘국가대표 운영 지침’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에게 선수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임무를 부과하고 있다. 

배드민턴협회는 운영지침 제6조 제2항의 1호서 ‘촌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도록 했고, 2호서 ‘국가대표 담당 지도자의 허가 없이는 훈련에 불참하거나 훈련장 이탈 불가’라고 규정했다. 

강 의원은 “생활과 훈련 중이라는 조건이 있으나 조건을 만족한다면 지도자의 어떠한 부당한 지시라도 따라야 하도록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인의 명령 복종 의무도 ‘상관의 직무상 명령’이라고 한정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배드민턴협회가 국가대표 선수에게 부과한 의무가 다른 종목이나 군인에 비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과도하다는 지적”이라며 “배드민턴협회도 안세영 선수와 진실 공방으로 다툴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조항을 개정해 우수한 선수를 양성한다는 협회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개인 스폰서 제한 문제도 불거졌다. 해외 선수들은 스폰서와 광고 등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지만, 국내 선수는 규정상 개인 후원이 모두 금지됐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지난 11일 <연합뉴스> 인터뷰서 “(선수들이)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도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많이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서 부상 관리에 대한 부분과 선수단 운영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선수들에게 차별이 아니라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며 “모든 선수를 다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안세영이 지적한 부분은 현재 국가대표 선수의 개인 후원 및 실업 선수의 연봉·계약금 관련 규정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배드민턴협회의 국가대표 운영지침에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훈련 및 대회 참가 시 협회가 지정한 경기복 및 경기 용품을 사용하고 협회 요청 시 홍보에 적극 협조한다’고 명시돼있다. 

김 협회장
그는 누구?

개인 후원 계약에 대해선 ‘그 위치는 우측 카라(넥)로 지정하며 수량은 1개로 지정한다. 단 배드민턴 용품사 및 본 협회 후원사와 동종업종에 대한 개인 후원 계약은 제한된다’고 적혀 있다. 

또 ‘개인 후원 계약기간에 올림픽 및 아시아경기대회 등 대한체육회서 주관해 파견하는 종합 경기대회에 참가할 경우 대한체육회의 홍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돼있다. 

선수가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개인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고, 반대로 협회나 대한체육회 차원의 후원사에 종속되는 셈이다. 이에 안세영은 선수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한 유연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과거 안세영은 대표팀 후원사 신발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후원사에서 미끄럼 방지 양말을 맞춤형으로 제작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안세영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서 허빙자오(중국)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뒤 “제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조금 크게 실망했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작심 발언했다.

이어 “제가 부상을 겪는 상황서 대표팀에 대해 너무 크게 실망했다” “처음에 오진이 났던 순간부터 계속 참으면서 경기했는데 작년 말 다시 검진해 보니 많이 안 좋더라” “꿋꿋이 참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김 회장은 배드민턴협회와 안세영 측의 갈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난 7일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조기 귀국한 김 회장은 취재진 앞에서 “나와 선수, 협회와 선수는 갈등이 없었다”며 “(안세영은)제대로 다 선수 생활을 했고 오진이 났던 부분에 관해서만 파악해서 보도자료로 배포하겠다”고 말했다. 

‘안세영의 발언에 관해 회장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는 “심적으로는 가슴이 아프다”며 “사실 협회서 무슨 잘못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데 보도자료를 보면 이해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안세영이 “대표팀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도 확인하겠다”며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당초 안세영 등 대표팀 선수단과 이날 오후 4시에 귀국하려 했지만 안세영의 작심 발언 후 일부 배드민턴협회 임원들은 항공편을 변경해 조기 귀국길에 올랐다.

제왕적 협회 운영 도마에
부실한 선수 관리도 논란

김 회장은 “보도자료를 오늘 중으로 배포하기 위해서였다”며 “(원래대로 오면)도착 시간이 오후 4시인데, 그때 만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안세영은 지난 6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대한체육회 코리아하우스 기자회견 불참과 관련해 “(협회가)저한테는 다 기다리라고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도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그런 적 없다” “나도 (안세영이)안 나온 게 좀 의아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문체부는 지난 12일, 배드민턴협회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안세영의 인터뷰로 논란이 된 미흡한 부상 관리, 복식 위주 훈련, 대회 출전 강요 의혹 등에 대한 경위 파악뿐만 아니라 그동안 논란이 됐던 제도 관련 문제, 협회의 보조금 집행 및 운영 실태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가대표 선발 과정의 공정성 및 훈련과 대회출전 지원의 효율성 ▲협회의 후원 계약 방식이 ‘협회와 선수 사이에서 균형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 ▲배드민턴 종목에 있는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제도의 합리성 ▲선수의 연봉 체계에 불합리한 점이 없는지를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문체부는 “이번 조사가 단순히 ‘협회가 선수 관리를 적절히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현안에 관해 의견을 수렴하게 될 것”이라며 “배드민턴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 발전에도 파급될 수 있는 미래지향적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올해 기준 배드민턴협회에 71억2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문체부는 “협회와 대표팀 등 관계자 의견을 청취하고 현장조사와 전문가 자문회의 등 다각적인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12일 조사를 시작해 다음 달 중 결과 발표를 목표로 뒀다”며 “국민적 의혹이 남지 않도록 엄정하고, 어느 한쪽에 편향됨 없이 공정함을 원칙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소속팀 삼성생명을 통해 안세영은 이달 출전 예정이었던 두 국제대회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대한배드민턴협회에 전달했다. 그의 무릎과 발목 부상이 원인이었다.

안세영이 불참하는 대회는 이달 20~25일에 열리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750 일본오픈과 이달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열리는 슈퍼 500 코리아오픈이다. 안세영은 두 대회 모두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뛸 예정이었다. 

작심 발언
거센 비판

안세영은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전서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고, 이번 파리올림픽 사전캠프서 발목 힘줄을 다쳤다. 그럼에도 여자 단식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세영의 이달 대회 불참은 최근 작심 발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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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