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안세영발’ 태풍의 눈 김택규

동호인이 프로선수 컨트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의 ‘내부 갑질’ 폭로가 나온 가운데 후원사로부터 셔틀콕 ‘페이백’을 받아 장부에 적지 않고 임의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진상조사에 나선 상황서 협회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곳곳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이하 배드민턴협회)에 복종 강요 규정과 개인 스폰서 제한, 실업 선수들의 불공정 계약 등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이 갑질과 폭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배드민턴협회 운영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들어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김 회장의 독단적 협회 운영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것으로 전망된다. 

독단 운영
내부 폭로

지난 13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의 폭언과 억압적인 태도로 인해 배드민턴협회 직원들이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드민턴협회 전 직원 A씨는 “김 회장은 자기중심적으로 협회를 운영하며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경우 욕하고 소리를 지르는 건 일상이었다”며 “이런 폭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협회 내부에선 아닌 것도 아니라고 말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직원도 있었고, 한 임원은 직원 회식 자리서 ‘새X가 할 줄 아는 게 뭐냐’는 폭언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주말과 휴일에도 직원들을 개인 기사처럼 부리고 과도한 의전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 송파구 소재의 협회 사무실이 아닌 본인의 거처와 회사가 있는 충남 서산까지 협회 직원을 주 1~2회씩 불러 업무를 처리하고, 주말과 휴일에도 직원을 개인 기사처럼 부렸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주말 전라남도서 오전 11시 열리는 생활체육대회 참석하면서 서울 직원을 서산으로 불러 이동했고, 평일·휴일 가리지 않고 개인 기사처럼 부리기도 했다”며 “하루에도 1000㎞를 운전한 것 같다고 토로한 직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갑질 의혹뿐 아니라 협회가 회계 산입 없이 스폰서십의 30%를 추가로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앞서 해당 매체는 지난 14일 문체부가 협회와 김 회장이 스폰서인 요넥스로부터 받은 비용 중 30%의 ‘페이백’을 절차 없이 임의로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배드민턴협회는 지난해 요넥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회에 사용된 셔틀콕의 30%를 추가로 받는 ‘페이백 부속 합의’를 체결했다. 요넥스가 제공한 셔틀콕은 배드민턴 승강제 리그(BK5), 유·청소년 클럽 대회인 아이리그, 여학생 배드민턴 교실 등 국가 공모사업서 사용됐으며, 총 2만타가 사용됐다. 

해당 합의에 따라 배드민턴협회는 6000타를 확보했으며, 대회용 셔틀콕 1타의 가격이 1만7900원이므로 대회서 사용된 셔틀콕의 총 가치는 3억5800만원에 달한다. 협회는 1억740만원어치의 추가 장비를 페이백 받은 것이다.

요넥스서 받은 30%의 페이백은 배드민턴협회 장부에 기록되지 않았으며, 김 회장은 이를 절차 없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 이사회서도 지적된 것으로 보인다. 


배드민턴협회 내부 관계자는 “지난 2월 열린 제90차 이사회서 페이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며 “당시 ‘공장서 남은 철 찌꺼기를 팔아먹어도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된 만큼 이제 투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지만 김 회장은 ‘그동안 문제가 없었는데 이것도 회장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는 페이백이 30%였지만 2022년까지는 40%를 지급한다는 부속 합의가 있었다”며 “국가공모사업서 관례라는 이유만으로 투명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이 이렇게 얻은 물품들을 자신의 측근이나 지역 대회에 배분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배드민턴협회 측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안세영 폭로 후 내부고발 이어져
직원들을 비서·기사처럼 마음대로

지난 14일 <CBS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 측은 “2022년 승강제 리그 사업 공모에 선정돼 대회를 치르기 위해 셔틀콕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협회 공식 후원사인 요넥스에 간곡히 요청해 정상가보다 낮은 원가에 공급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일종의 보너스 개념인 페이백 사용에 대해 “생활체육이 어려운 상황서 지원을 요넥스에 요청해 받은 것”이라며 “김 회장이 이를 착복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승강제 등 대회를 치르는 각 시도협회에 배분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배드민턴협회의 한 관계자는 “추가 셔틀콕 사용에 대해서는 변호사 자문을 통해 문제가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며 “페이백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장부 산입 등 절차를 어겼다는 주장은 맞지 않고, 각 시도협회에 배분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요넥스도 난감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넥스 관계자는 “사실 막대한 금액을 후원하는 만큼 협회 사업에는 정당한 가격으로 계약해 합리적으로 이익을 보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맞다”면서도 “그러나 생활체육의 열악한 상황과 종목 발전을 위해 대승적으로 원가에 계약했고, 추가로 용품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1년 제31대 배드민턴협회장으로 취임했던 김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5년까지다. ‘생활체육 동호인’ 출신인 김 회장은 당초 협회의 엘리트 스포츠 분야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엘리트 쪽도 관여하기 시작했고 결국 전권을 잡으면서 강압적으로 변했다는 후문이다.

권력의 돌변
드러난 민낯

협회 창립 이래 처음 경선으로 진행된 회장 선거서 당선된 김 회장은 당선 당시 공약으로 ▲배드민턴 동호인 저변 확대 및 회원관리 체계화 ▲투명한 국가대표 선발 및 발전적 운영 방안 강구 ▲유소년 배드민턴 육성 정책 강화 ▲해외 및 북한과의 경기 훈련 교류 모색 등을 내세운 바 있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작심 발언에 따른 논란이 거세지면서 배드민턴협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배드민턴협회가 선수촌 안팎서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라거나 선수들 연봉과 후원 계약도 하나하나 제한한 점들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지난 1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이 배드민턴협회로부터 제공받은 ‘국가대표 운영 지침’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에게 선수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임무를 부과하고 있다. 

배드민턴협회는 운영지침 제6조 제2항의 1호서 ‘촌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도록 했고, 2호서 ‘국가대표 담당 지도자의 허가 없이는 훈련에 불참하거나 훈련장 이탈 불가’라고 규정했다. 

강 의원은 “생활과 훈련 중이라는 조건이 있으나 조건을 만족한다면 지도자의 어떠한 부당한 지시라도 따라야 하도록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인의 명령 복종 의무도 ‘상관의 직무상 명령’이라고 한정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배드민턴협회가 국가대표 선수에게 부과한 의무가 다른 종목이나 군인에 비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과도하다는 지적”이라며 “배드민턴협회도 안세영 선수와 진실 공방으로 다툴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조항을 개정해 우수한 선수를 양성한다는 협회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개인 스폰서 제한 문제도 불거졌다. 해외 선수들은 스폰서와 광고 등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지만, 국내 선수는 규정상 개인 후원이 모두 금지됐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지난 11일 <연합뉴스> 인터뷰서 “(선수들이)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도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많이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서 부상 관리에 대한 부분과 선수단 운영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선수들에게 차별이 아니라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며 “모든 선수를 다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안세영이 지적한 부분은 현재 국가대표 선수의 개인 후원 및 실업 선수의 연봉·계약금 관련 규정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배드민턴협회의 국가대표 운영지침에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훈련 및 대회 참가 시 협회가 지정한 경기복 및 경기 용품을 사용하고 협회 요청 시 홍보에 적극 협조한다’고 명시돼있다. 

김 협회장
그는 누구?

개인 후원 계약에 대해선 ‘그 위치는 우측 카라(넥)로 지정하며 수량은 1개로 지정한다. 단 배드민턴 용품사 및 본 협회 후원사와 동종업종에 대한 개인 후원 계약은 제한된다’고 적혀 있다. 

또 ‘개인 후원 계약기간에 올림픽 및 아시아경기대회 등 대한체육회서 주관해 파견하는 종합 경기대회에 참가할 경우 대한체육회의 홍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돼있다. 

선수가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개인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고, 반대로 협회나 대한체육회 차원의 후원사에 종속되는 셈이다. 이에 안세영은 선수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한 유연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과거 안세영은 대표팀 후원사 신발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후원사에서 미끄럼 방지 양말을 맞춤형으로 제작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안세영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서 허빙자오(중국)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뒤 “제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조금 크게 실망했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작심 발언했다.

이어 “제가 부상을 겪는 상황서 대표팀에 대해 너무 크게 실망했다” “처음에 오진이 났던 순간부터 계속 참으면서 경기했는데 작년 말 다시 검진해 보니 많이 안 좋더라” “꿋꿋이 참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김 회장은 배드민턴협회와 안세영 측의 갈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난 7일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조기 귀국한 김 회장은 취재진 앞에서 “나와 선수, 협회와 선수는 갈등이 없었다”며 “(안세영은)제대로 다 선수 생활을 했고 오진이 났던 부분에 관해서만 파악해서 보도자료로 배포하겠다”고 말했다. 

‘안세영의 발언에 관해 회장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는 질문에는 “심적으로는 가슴이 아프다”며 “사실 협회서 무슨 잘못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데 보도자료를 보면 이해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안세영이 “대표팀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도 확인하겠다”며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당초 안세영 등 대표팀 선수단과 이날 오후 4시에 귀국하려 했지만 안세영의 작심 발언 후 일부 배드민턴협회 임원들은 항공편을 변경해 조기 귀국길에 올랐다.

제왕적 협회 운영 도마에
부실한 선수 관리도 논란

김 회장은 “보도자료를 오늘 중으로 배포하기 위해서였다”며 “(원래대로 오면)도착 시간이 오후 4시인데, 그때 만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안세영은 지난 6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대한체육회 코리아하우스 기자회견 불참과 관련해 “(협회가)저한테는 다 기다리라고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도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그런 적 없다” “나도 (안세영이)안 나온 게 좀 의아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문체부는 지난 12일, 배드민턴협회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안세영의 인터뷰로 논란이 된 미흡한 부상 관리, 복식 위주 훈련, 대회 출전 강요 의혹 등에 대한 경위 파악뿐만 아니라 그동안 논란이 됐던 제도 관련 문제, 협회의 보조금 집행 및 운영 실태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가대표 선발 과정의 공정성 및 훈련과 대회출전 지원의 효율성 ▲협회의 후원 계약 방식이 ‘협회와 선수 사이에서 균형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 ▲배드민턴 종목에 있는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제도의 합리성 ▲선수의 연봉 체계에 불합리한 점이 없는지를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문체부는 “이번 조사가 단순히 ‘협회가 선수 관리를 적절히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제기됐던 여러 현안에 관해 의견을 수렴하게 될 것”이라며 “배드민턴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 발전에도 파급될 수 있는 미래지향적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올해 기준 배드민턴협회에 71억2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문체부는 “협회와 대표팀 등 관계자 의견을 청취하고 현장조사와 전문가 자문회의 등 다각적인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12일 조사를 시작해 다음 달 중 결과 발표를 목표로 뒀다”며 “국민적 의혹이 남지 않도록 엄정하고, 어느 한쪽에 편향됨 없이 공정함을 원칙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소속팀 삼성생명을 통해 안세영은 이달 출전 예정이었던 두 국제대회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대한배드민턴협회에 전달했다. 그의 무릎과 발목 부상이 원인이었다.

안세영이 불참하는 대회는 이달 20~25일에 열리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750 일본오픈과 이달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열리는 슈퍼 500 코리아오픈이다. 안세영은 두 대회 모두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뛸 예정이었다. 

작심 발언
거센 비판

안세영은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전서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고, 이번 파리올림픽 사전캠프서 발목 힘줄을 다쳤다. 그럼에도 여자 단식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세영의 이달 대회 불참은 최근 작심 발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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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