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쥐구멍 찾는 구영배 큐텐 대표

수천억 재산 다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티몬·위메프의 판매자 정산 및 소비자 환불 지연 사태의 ‘키맨’으로 꼽히는 큐텐 구영배 대표가 책임론에 휩싸였다.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구 대표가 사재를 얼마나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정확한 재산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때 수천억원 부자로 소문이 났다.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린 지 사흘 만에 구 대표의 자택과 티몬 본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 압수수색 영장에는 수천억원대 사기 혐의와 400억원 횡령·배임 혐의를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지급 불능 사태를 촉발한 티몬·위메프의 싱가포르 모기업 큐텐과 핵심 계열사 큐익스프레스의 재무 상태가 열악한 처지라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태에 큐텐 구영배 대표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미 모기업의 재무 상황이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계열사들의 자금난을 돕기는커녕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과욕 참사
늑장 대응

티몬·위메프 인수와 경영 전반에 구 대표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만큼 사태 수습을 위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구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출석을 요청하기 전까지 끝내 소비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구체적인 보상 시점 역시 확답하지 않았다. 

구 대표는 지난달 29일, 티몬·위메프 사태에 첫 입장을 내고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고객들과 모든 파트너사, 국민께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며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대처로 사태 확산을 막는 것을 집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양사가 파악한 고객 피해 규모는 여행상품을 중심으로 합계 500억원 내외로 추산한다”며 “우선 양사가 현장 피해 접수 및 환불 조치를 했고, 지속해서 피해 접수와 환불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큐텐은 양사에 대한 피해 회복용 자금 지원을 위해 긴급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큐텐 보유 해외 자금의 유입과 큐텐 자산 및 지분의 처분이나 담보를 통한 신규 자금 유입도 추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파트너사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변수 요인으로 인해 정확한 추산이 어렵지만, 양사가 파트너사들과의 기존 정산 지원 시스템을 신속히 복원하지 못하면 판매자 피해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며 “파트너사에 대한 지연이자 지급과 판매수수료 감면 등의 셀러 보상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파트너사 및 금융권 등 관계 기관과의 소통 및 협조 요청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개인 재산도 내놓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구 대표는 “큐텐은 현재 그룹 차원서 펀딩과 M&A(인수합병)를 추진하고 있다”며 “제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금번 사태 수습에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큐텐과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한 경영상 책임을 통감하며, 그룹 차원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제 개인 재산도 활용해서 티몬과 위메프 양사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구 대표가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법원에 기업 회생을 신청해 또 다른 논란이 됐다. 대표의 사재 출연까지 언급했다가 불과 몇 시간 만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앞뒤가 안 맞단 비판도 잇따랐다. 

지난달 30일 구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서 열린 전체회의 현안 질의에 출석해 “티몬·위메프 사태 해결을 위해 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800억원이지만, 바로 정산자금으로 쓸 수 없다”고 밝혔다. 


몰락한 이커머스 신화 ‘티메프 사태’ 
1조대 사기·횡령 혐의…수사 급물살

그는 또 판매자금은 누적된 손실과 이커머스 경쟁 격화에 따른 프로모션 비용에 써서 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달 8일 위메프서 시작된 정산 지연 사태 발생 이후 무려 22일 만이었다. 

이날 정무위원들은 티몬·위메프 사태의 1차 책임자는 구 대표라며 피해자 구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구 대표는 이날 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과 사재가 얼마인지 묻는 질의에 “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800억원”이라면서도 “이 부분을 다 투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피해자 피해 금액 규모는 정확히 추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거듭된 질문에 “최대 800억원이라 말씀드렸으나 그 돈도 바로 정산자금으로 쓸 수 없다”는 그는 “지금 회사의 자본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확한 것은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힘들지만, 기본적으로 티몬을 인수했을 때부터 구조적으로(적자가) 누적돼 왔다”고 주장했다. 

또 판매대금이 어디로 흘러갔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돈은 전용이 아니라 가격경쟁을 하다 보니까 프로모션으로 썼다”고 말했다. 

‘남은 현금이 있느냐’는 다른 위원들의 질문에도 “없다,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답하며 결제 대금 행방에 대해선 “대부분은 누적된 손실이다” “프로모션 비용은…”이라고도 말했다. 

구 대표는 “전자상거래서 가격경쟁이 중요 쟁점이 됐고, 알리·테무로 경쟁이 격화됐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구조적 방법은 글로벌 확장이며 15년간 모든 것을 걸고 비즈니스를 키우려 했다” “한 푼도 사익을 위해 횡령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자금 운용과 관련해서는 “이 문제는 어떤 사기나 의도를 가지고 했다기보다 계속 이뤄졌다” “십수년간 누적된 행태였다”며 “경쟁 환경이 격화되고 공격적으로 마케팅한 건 있다”고 주장했다. 정무위원들은 이와 관련해 “1조원을 프로모션 비용으로 다 썼다는 말이냐”라고 질책했다. 

구 대표는 지난 2월 인수한 북미·유럽 기반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위시’ 인수 자금에 대해 “기본적으로 위시가 가진 자금과 밸류(가치)를 상계해 실질적으로 지급한 돈은 2500만(달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수 자금을 어디에서 동원했느냐는 질의에 “현금으로 들어간 돈은 4500만(달러)였는데, 일시적으로 티몬과 위메프 자금까지 동원했다”면서 “다만 이는 한 달 내에 바로 상환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정산 지연 사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직 사임
꼬리 자르기

그는 다만 “싱가포르 기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불가피하게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구 대표는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판매자와 파트너, 국민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겠다”면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회사에 투입했다. 회사 지분 가치가 잘나갔을 때는 5000억원까지 밸류를 받았지만, 이 사태 일어나고는 지분 담보를….”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큐텐 지분 38%를 갖고 있고, 100%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며 “모든 비판과 책임추궁, 처벌을 당연히 받겠다. 뒤로 도망가고 숨을 수 없는 거를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 비즈니스가 중단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며 “약간만 도와주면 다시 정상화해 해결하고, 반드시 피해복구를 완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가 큐텐의 다른 자회사인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구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이 “AK몰 내부 직원의 전언에 따르면 AK몰도 정산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구 대표가 티몬·위메프 사태 해결을 위해 사재를 내놓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보유 자산 규모에도 관심이 쏠렸다. 그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재산 규모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오픈마켓 선구자인 구 대표는 수천억원대 부자로 소문났었다. 하지만 이날 구 대표는 현재 남은 재산이 큐텐 비상장 주식과 아내와 공동 보유한 시가 70억원 상당 서울 반포자이 아파트, 통장에 든 10∼20억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두 차례 엑시트(투자금 회수)로 큰 이익을 거뒀다. 지난 2009년 이베이는 당시 G마켓 지분 34.21%를 4억1300만달러(당시 5500억원)에 인수했다. 이베이가 나머지 지분을 공개 매수할 때 구 대표도 보유 지분을 팔아 700억원대 현금을 벌었다. 

지난 2018년 큐텐 재팬도 이베이에 매각했다. 다만 이때 받은 매각 대금은 이베이가 갖고 있던 큐텐 지분을 사들이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큐텐은 구 대표와 이베이가 51대 49로 합작해 설립됐다가 이후 이베이 지분은 정리됐다. 구 대표는 이날 정무위서 “G마켓을 매각하고 700억원을 받았는데 큐텐에 다 투입했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큐텐의 최대주주고, 나스닥 상장을 추진해 온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지분도 29.4%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큐텐그룹 전체가 경영난을 겪고 있어 구 대표 보유지분 가치는 담보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현재로선 티몬·위메프에 처분할 자산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판매자와 고객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서 영업을 재개해 돈을 벌어 빚을 갚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평가된다. 

구 대표는 지난 2009년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하면서 한국서 10년간 겸업 금지를 약속했다. 지난 2010년 싱가포르에 큐텐을 설립하고 동남아와 중국, 인도 등에 이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했던 배경이다.

구 대표는 겸업 금지 기간 10년이 지난 뒤 한국시장으로 다시 눈을 돌려 이커머스 기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2년 9월 티몬 인수를 시작으로 지난해 3월 인터파크 쇼핑 부분, 4월 위메프, 올해 3월 AK몰을 차례로 인수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월에는 북미와 유럽 기반의 글로벌 쇼핑 플랫폼인 위시까지 5개 기업을 사들였다. 

문제는 구 대표가 인수한 이커머스 업체들은 하나같이 심각한 적자 상황이었다. 티몬은 유동자산 1309억원에 유동부채가 무려 7193억원에 달했고, 위메프도 유동자산 617억원에 유동부채 3098억원으로 티몬과 비슷한 처지였다.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하는 시점은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구 대표는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해 큰돈을 벌었던 성공 경험으로 큐익스프레스만 상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큐텐의 몸집을 빠르게 키우는 데 집중한 이유다. 

법원에 기습적 기업회생 신청
“800억원 있지만 당장은 못써”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 시기는 6월이 목표였다. 그러나 나스닥 상장이 지연되며 큐텐·티몬·위메프 등이 급속히 자금난에 빠져들었다. 나스닥 상장을 통해 큐텐 그룹 계열사들의 자금난을 해결하려던 구상이 물거품이 되면서 지금과 같은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검찰은 지난 1일, 티몬·위메프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와 관련해 구 대표의 자택과 티몬·위메프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400억원대 횡령 배임, 수천억원대 사기 혐의를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전담수사팀을 꾸린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이준동)는 이날 오전 8시쯤부터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구 대표의 자택과 강남구 티몬 본사 등에 대한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티몬·위메프 판매 대금 정산 지연 사태와 관련해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소속 검사 7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이 해당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고 구 대표와 목주영 큐텐코리아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이사,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이사 등 4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구 대표 등은 자금 경색으로 판매 대금을 제때 지급하기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입주업체들과 계약을 유지하면서 물품을 판매한 사기 혐의를 받는다. 

앞서 검찰은 금감원의 수사 의뢰에 따라 내부적으로 법리 검토를 벌이며 두 기업의 자구책 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티몬·위메프가 지난달 29일 법원에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하자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 

정부가 추산한 티몬·위메프의 판매자 미정산 대금은 2100억원 규모다. 정산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가 1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무부는 구 대표 등 경영진에 대한 검찰의 출국금지 요청을 받아들여 이들의 출국을 금지했다. 

한때 수천억
부자로 소문

한편, 지난달 27일 싱가포르 기반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는 구 대표가 최고경영자(CEO)직에서 사임했다고 밝혔다. 큐익스프레스는 전날 이사회서 구 대표가 회사 CEO직서 물러났다고 내부적으로 발표했다. 큐익스프레스는 티몬·위메프의 모회사인 큐텐의 물류 자회사다. 업계에서는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 CEO직을 내려놓는 데 대해 티몬·위메프 사태가 큐텐 그룹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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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