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슬처럼 떠난 김민기

너희가 김민기를 아느냐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가수 김민기가 암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비보에 대중문화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김민기는 ‘아침이슬’ ‘상록수’ 등 민중가요를 통해 민주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 한국 대중음악과 공연예술계에 큰 획을 그으며 큰 업적을 남겼다. 김민기는 학전에서 수많은 후배 예술인을 키워냈고 대중문화 발전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인생을 살다 떠났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연출가이자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작곡가 김민기가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학전 관계자들은 지난 22일 “김민기가 21일 오후 8시20분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병세 악화
추모 행렬

지인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통원하며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된 상태라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전 측은 이날 “조의금과 조화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다”며 “빈소 및 발인 등 모든 장례 절차는 취재진에게 비공개로 진행된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고인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마음으로 애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민기의 조카이자 학전 총무팀장인 김성민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가 다음날 오후 8시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어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지난 24일 오전 8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별도의 영결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발인식이 끝난 후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에 향하기 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꿈밭극장’ 마당을 들렀다.

이곳에는 아르코꿈밭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을 비롯해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이황의, 최덕문, 방은진, 배성우, 가수 박학기, 박승화(유리상자), 유홍준 교수 등 김민기와 추억을 함께한 이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정치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도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애도의 뜻을 전했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와 지난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미술을 접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거부감을 드러낸 그는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학전 들리고 떠나
“떠나기 전 고맙다는 말 전해”

이듬해 김민기는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관의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열며 그를 대표하는 곡 ‘아침이슬’과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친구’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김민기의 음악 활동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난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당시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김민기의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사전 심의 통과가 어려워 작곡을 해 놓고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974년 10월에는 카투사로 입대해 군복무를 시작했으나 1975년 초 유신 반대 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들이 불렸다는 이유가 문제가 돼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침이슬’은 금지곡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솔로 1집도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보안대 조사가 끝나고 김민기는 영창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됐다.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졌지만, 김민기는 대학 졸업 후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고 익명으로 비밀리에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은 1977년 작곡해 발표한 ‘상록수’에 담겼다. 

틈틈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지만, 박정희정권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1976년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당시에 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는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음악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자 김민기는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10·26 사건으로 맞은 ‘서울의 봄’ 시기에 잠시 음악 활동을 재개했지만,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잡자 다시 낙향했다. 지난 1981년 전두환정부가 관제 예술제인 ‘국풍81’에 참여하도록 김민기를 회유했지만, 농사일을 핑계로 끝까지 참가를 거절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고난의 연속
민주화 상징

1980년대에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 등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공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농촌과 탄광촌 등의 현실을 담은 마당극과 노래극 등을 공연하고, 1984년 대학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제작했다. 노래패 ‘노찾사’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정부의 방해로 음반은 거의 팔리지 못했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금지곡들이 해제될 때까지 초라한 신세를 겪었다.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선 언제나 ‘아침이슬’이 불렸다. 해당 시기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며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1989년에는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후 1990년 <한겨레신문>의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 참여해 음반 ‘겨레의 노래’를 제작한 뒤 이를 기념해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20년 만에 ‘아침이슬’을 공개한 장소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김민기가 공연계에 입문한 것은 1970년대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첫 무대 공연 경험을 쌓은 김민기는 이듬해 마당극 <아구>의 대본을 맡았다. <아구>는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상연 금지처분을 당했지만, 김민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재공연을 강행하며 저항했다. 


연이은 금지곡 지정으로 음악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1978년에는 개신교 계열 시민단체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에 의해 좌절하는 노동자들의 고투를 담은 작품으로 지난 1979년 2월 제일교회에서 상연됐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농사를 짓던 1981년에는 전북 지역의 연극패, 노래패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제작했다. 이 극은 1983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김민기가 익명으로 연출을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성기 시작
대배우 배출

김민기가 공연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지난 1991년 김민기는 극단 학전을 세우며, 30년간 문화예술계에 큰 공을 세웠다. 

학전은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배우가 성장하면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심고 키웠다. 그는 4장의 앨범으로 구성한 <김민기 전집>을 발매하며 받은 선불금으로 180석 규모의 학전을 열었다. 

지난 1994년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가 각본을 쓰고 비르거 하이만이 작곡한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맡아 학전에서 올렸다.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아 있다.


2001년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 공연을 했고,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였다. 이 공연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김민기는 30년 넘게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다양한 예술 장르 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의 역할을 해왔다.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밴드를 도입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저항가요와 민주화의 상징으로 각인됐지만, 김민기는 ‘백구’ ‘인형’ ‘식구 생각’ ‘꽃 피우는 아이’ 등의 동요를 쓰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는 학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학전에서 어린이 청소년극에 관심을 이어가며 주류 공연계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도 마음을 뒀다. 

김민기가 이끈 학전은 한국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수많은 스타를 발굴하고 육성한 곳이었다. 라이브 공연으로 팬들과 만난 고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의 음악인이다. 김광석을 비롯해 윤도현, 나윤선, 정재일 등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도 배출했다. 

학전은 한국 문화예술의 산실이며, 대학로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었다. 김민기는 무대 앞에 서는 배우를 ‘앞것’, 무대 뒤에 있는 스태프인 자기를 ‘뒷것’이라고 불렀다. 

특히 학전은 배우들과 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을 하는 극단이었다. 총 수입을 배우들에게 다 공개하면서 투명한 정산으로 더욱 신뢰받은 극단이었다. 

김민기는 척박해진 대학로에서도 추수를 내다보는 못자리로서 자리를 지켰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금지곡 80년대 중반서야 해금 
“현실적인 한계에 아쉬움 남아”

그러나 다른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학전은 지난 3월15일 폐관했다. 폐관에 앞서 이곳을 거쳐간 50여명의 배우, 가수, 예술인이 모여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열기도 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11월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전은 지난 17일 건물을 리모델링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했다. 김민기는 학전의 정체성 훼손을 걱정한 듯 학전이란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지켜온 학전은 뮤지컬 <의형제> <개똥이>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로 굳건히 버텨왔다. 개관 33주년을 맞으며 문을 닫는 학전에서 김민기가 연출한 마지막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였다.

그는 학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민기의 별세를 추모하기 위해 SBS는 지난 24일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재편성했다. 

지난 4월21일부터 5월5일까지 총 3부작에 걸쳐 방영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 학전과 철저히 무대 뒤의 삶을 지향하며 방송 출연을 자제해온 학전 대표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또 학전 운영을 통해 후배 예술인을 양성하는 등 우리나라 대중문화 발전과 문화적 저변 확대에 공헌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김민기의 숨겨진 활동을 사실적이고 감명 깊게 전달했다.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가수 송창식·조영남, 김창남(노찾사/성공회대 교수), 임진택(연극연출가) 등 김민기의 오랜 지인들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장필순·강산에·윤도현, 배우 설경구·황정민·장현성·이정은·안내상·이종혁·김대명·이선빈 등 학전이 배출한 아티스트들은 물론, 학전 스태프였던 강신일(총무부장), 정재일(음악감독) 등 유명인사 100여명이 김민기와 학전을 돌아본 유일무이한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숨겨진 헌신
마지막 인사

김민기는 우리 문화예술계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20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제30회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을 받았다.

또 생전에 백상예술대상 음악상, 한국평론가협회 음악극 부문 연극상, 서울연극제 극본상 및 특별상,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은관 등을 수상하는 등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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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