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이슬처럼 떠난 김민기

너희가 김민기를 아느냐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가수 김민기가 암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비보에 대중문화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김민기는 ‘아침이슬’ ‘상록수’ 등 민중가요를 통해 민주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 한국 대중음악과 공연예술계에 큰 획을 그으며 큰 업적을 남겼다. 김민기는 학전에서 수많은 후배 예술인을 키워냈고 대중문화 발전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인생을 살다 떠났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이끈 연출가이자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작곡가 김민기가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학전 관계자들은 지난 22일 “김민기가 21일 오후 8시20분쯤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병세 악화
추모 행렬

지인들에 따르면 최근까지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통원하며 항암치료를 받아왔지만,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된 상태라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전 측은 이날 “조의금과 조화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다”며 “빈소 및 발인 등 모든 장례 절차는 취재진에게 비공개로 진행된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고인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마음으로 애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민기의 조카이자 학전 총무팀장인 김성민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가 다음날 오후 8시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이어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지난 24일 오전 8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별도의 영결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발인식이 끝난 후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에 향하기 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꿈밭극장’ 마당을 들렀다.

이곳에는 아르코꿈밭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을 비롯해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이황의, 최덕문, 방은진, 배성우, 가수 박학기, 박승화(유리상자), 유홍준 교수 등 김민기와 추억을 함께한 이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정치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도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 후보,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애도의 뜻을 전했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와 지난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미술을 접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거부감을 드러낸 그는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학전 들리고 떠나
“떠나기 전 고맙다는 말 전해”

이듬해 김민기는 명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관의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열며 그를 대표하는 곡 ‘아침이슬’과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친구’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김민기의 음악 활동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난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당시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김민기의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사전 심의 통과가 어려워 작곡을 해 놓고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974년 10월에는 카투사로 입대해 군복무를 시작했으나 1975년 초 유신 반대 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들이 불렸다는 이유가 문제가 돼 보안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침이슬’은 금지곡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솔로 1집도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보안대 조사가 끝나고 김민기는 영창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됐다.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졌지만, 김민기는 대학 졸업 후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고 익명으로 비밀리에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은 1977년 작곡해 발표한 ‘상록수’에 담겼다. 

틈틈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지만, 박정희정권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1976년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당시에 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는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음악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자 김민기는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10·26 사건으로 맞은 ‘서울의 봄’ 시기에 잠시 음악 활동을 재개했지만,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잡자 다시 낙향했다. 지난 1981년 전두환정부가 관제 예술제인 ‘국풍81’에 참여하도록 김민기를 회유했지만, 농사일을 핑계로 끝까지 참가를 거절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고난의 연속
민주화 상징

1980년대에는 공연윤리심의위원회 등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공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농촌과 탄광촌 등의 현실을 담은 마당극과 노래극 등을 공연하고, 1984년 대학에서 활동하던 노래패들의 노래를 모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음반을 제작했다. 노래패 ‘노찾사’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정부의 방해로 음반은 거의 팔리지 못했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금지곡들이 해제될 때까지 초라한 신세를 겪었다.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선 언제나 ‘아침이슬’이 불렸다. 해당 시기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며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1989년에는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후 1990년 <한겨레신문>의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 참여해 음반 ‘겨레의 노래’를 제작한 뒤 이를 기념해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20년 만에 ‘아침이슬’을 공개한 장소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불렀다. 

김민기가 공연계에 입문한 것은 1970년대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첫 무대 공연 경험을 쌓은 김민기는 이듬해 마당극 <아구>의 대본을 맡았다. <아구>는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상연 금지처분을 당했지만, 김민기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재공연을 강행하며 저항했다. 


연이은 금지곡 지정으로 음악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1978년에는 개신교 계열 시민단체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다.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에 의해 좌절하는 노동자들의 고투를 담은 작품으로 지난 1979년 2월 제일교회에서 상연됐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농사를 짓던 1981년에는 전북 지역의 연극패, 노래패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제작했다. 이 극은 1983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작품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김민기가 익명으로 연출을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성기 시작
대배우 배출

김민기가 공연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지난 1991년 김민기는 극단 학전을 세우며, 30년간 문화예술계에 큰 공을 세웠다. 

학전은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배우가 성장하면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심고 키웠다. 그는 4장의 앨범으로 구성한 <김민기 전집>을 발매하며 받은 선불금으로 180석 규모의 학전을 열었다. 

지난 1994년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가 각본을 쓰고 비르거 하이만이 작곡한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맡아 학전에서 올렸다.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아 있다.


2001년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 공연을 했고,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였다. 이 공연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김민기는 30년 넘게 학전을 운영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다양한 예술 장르 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의 역할을 해왔다.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밴드를 도입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저항가요와 민주화의 상징으로 각인됐지만, 김민기는 ‘백구’ ‘인형’ ‘식구 생각’ ‘꽃 피우는 아이’ 등의 동요를 쓰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는 학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학전에서 어린이 청소년극에 관심을 이어가며 주류 공연계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도 마음을 뒀다. 

김민기가 이끈 학전은 한국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수많은 스타를 발굴하고 육성한 곳이었다. 라이브 공연으로 팬들과 만난 고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의 음악인이다. 김광석을 비롯해 윤도현, 나윤선, 정재일 등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도 배출했다. 

학전은 한국 문화예술의 산실이며, 대학로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었다. 김민기는 무대 앞에 서는 배우를 ‘앞것’, 무대 뒤에 있는 스태프인 자기를 ‘뒷것’이라고 불렀다. 

특히 학전은 배우들과 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을 하는 극단이었다. 총 수입을 배우들에게 다 공개하면서 투명한 정산으로 더욱 신뢰받은 극단이었다. 

김민기는 척박해진 대학로에서도 추수를 내다보는 못자리로서 자리를 지켰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금지곡 80년대 중반서야 해금 
“현실적인 한계에 아쉬움 남아”

그러나 다른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학전은 지난 3월15일 폐관했다. 폐관에 앞서 이곳을 거쳐간 50여명의 배우, 가수, 예술인이 모여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열기도 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11월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전은 지난 17일 건물을 리모델링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재개관했다. 김민기는 학전의 정체성 훼손을 걱정한 듯 학전이란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지켜온 학전은 뮤지컬 <의형제> <개똥이>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로 굳건히 버텨왔다. 개관 33주년을 맞으며 문을 닫는 학전에서 김민기가 연출한 마지막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였다.

그는 학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민기의 별세를 추모하기 위해 SBS는 지난 24일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재편성했다. 

지난 4월21일부터 5월5일까지 총 3부작에 걸쳐 방영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 학전과 철저히 무대 뒤의 삶을 지향하며 방송 출연을 자제해온 학전 대표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또 학전 운영을 통해 후배 예술인을 양성하는 등 우리나라 대중문화 발전과 문화적 저변 확대에 공헌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뒷것 김민기의 숨겨진 활동을 사실적이고 감명 깊게 전달했다.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가수 송창식·조영남, 김창남(노찾사/성공회대 교수), 임진택(연극연출가) 등 김민기의 오랜 지인들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장필순·강산에·윤도현, 배우 설경구·황정민·장현성·이정은·안내상·이종혁·김대명·이선빈 등 학전이 배출한 아티스트들은 물론, 학전 스태프였던 강신일(총무부장), 정재일(음악감독) 등 유명인사 100여명이 김민기와 학전을 돌아본 유일무이한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숨겨진 헌신
마지막 인사

김민기는 우리 문화예술계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20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제30회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을 받았다.

또 생전에 백상예술대상 음악상, 한국평론가협회 음악극 부문 연극상, 서울연극제 극본상 및 특별상,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은관 등을 수상하는 등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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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