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직장갑질119’ 정현철 사무국장

금지법 5년 “그래도 여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직장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직장 내 괴롭힘을 별 대수롭지 않게 보는 사람들의 말이다. 하지만 직장갑질119의 활동가들은 누구보다 피해자들에게 공감했고 그들이 권리를 회복하도록 진심을 다하고 있다. 각자의 일이 있음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 그들 중 한 명을 <일요시사>가 만났다.

지난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전부터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흔한 일, 그저 참고 넘겨야 하는 일, 대수롭지 않은 일로만 여겨졌던 ‘은밀한 괴롭힘’에 대한 목소리를 내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직장갑질119’의 활동가들이다.

직장갑질119는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서 겪는 갑질을 상담하고 공론화해 제도를 개선하며, 직장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민간공익단체다. 점차 입소문이 퍼져 현재 누적 상담 건수는 11만8000여건에 달한다.

<일요시사>는 2002년부터 사무금융업종의 노동조합 활동가로 일하다 2019년부터 직장갑질119서 활동 중인 정현철 사무국장을 만났다. 다음은 정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

-‘직장갑질119’에 대해서 소개 부탁한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투쟁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과정서 광장의 민주주의를 일터의 민주주의로 확대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고민을 나누던 사람들이 모여서 반 년이 넘는 토론과 준비를 통해 직장갑질(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최초로 전면에 내세우며 2017년 11월1일 직장갑질119를 출범했다.


현재 직장갑질119는 대표 1명, 상근활동가 4명, 노무사, 변호사, 노동운동가 등 자원활동가 150여 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사단법인 형태의 비영리 공익단체다.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동운동 한계”
“절반가량이던 피해 경험 30%로 줄어”

-노조서 활동하다가 직장갑질119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2002년부터 17여년간 노조서 활동하면서 이른바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조합운동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노동조합 밖 사각지대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장갑질119의 목표가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지난 2019년 시행됐다. 법 시행 이후 바뀐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괴롭힘 경험률이 낮아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직장갑질119가 법 시행 이후인 2019년 3분기부터 분기별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있는데, 설문 문항 중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에 대한 질문에 2019년 3분기는 44.5%가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가장 최근인 2024년 2분기에는 32%로 조사됐다.

여전히 10명 중 3명은 괴롭힘 경험이 있다고 답하고 있지만 최초 조사와 비교하면 경험률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고 이것은 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한 인식변화를 알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상담 에피소드가 있다면?

▲2017년 11월1일 단체 출범과 동시에 시작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한 실시간 온라인 노동상담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이 상담을 통해 한림대성심병원 간호사 장기자랑 강요가 폭로됐고,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한국 직장 조직문화의 반인권성과 비윤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법 시행 이후 후퇴 꾀해”
“노동자 곁서 권리 회복 도울 것”

그리고 이런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들이 모여서 노동조합 결성까지 이르게 됐는데, 이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제도의 변화나 입법 등 준비 중인 사안이 있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정확하게는 근로기준법 76조의2, 76조의3)이 2019년 7월 16일 시행됐고 이어 2021년 10월 개정 시행됐지만,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또 최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정부나 자본에서는 이른바 ‘허위신고’ ‘을질’ ‘괴롭힘 지속/반복성’이라는 용어를 부각하며 어렵게 만들어진 법 제도의 후퇴를 꾀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시도에 맞서 제도의 후퇴가 아니라 본 취지를 살리는 제도의 보완과 강화, 여전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계속 활동하고자 한다.

-직장갑질119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 직장갑질119는 직장인이 일터서 겪는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한 모든 노동문제에 대해 상담하고 대응책을 알려주며 나아가 노동자들이 스스로 뭉쳐서 권리를 회복하고 향상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 이메일 상담을 의뢰한 노동자가 ‘답장을 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은 것 같다’는 감사 답변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것이 우리가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직장갑질119는 앞으로도 노동자 곁에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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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