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허웅

치고받고 상처만 남는 카톡 폭로전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한국프로농구 부산 KCC 선수 허웅이 공갈과 협박 등 혐의로 전 여자친구 A씨를 고소한 가운데 두 번의 임신중절과 결혼 의사를 둘러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A씨는 해당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에 허웅 측도 재반박에 나서면서 사건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프로농구 선수 허웅(부산 KCC)이 전 여자친구와의 사생활 이슈와 관련한 폭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양측 다 강력하게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는 데다 쌍방을 향한 일부 근거 있는 주장들로 인해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은 흐름이다.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이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증거 수집
문자 격전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 이진호’에는 ‘초음파 사진에 허웅 실제 반응…전 여친이 분노한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 속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를 보면, 지난 2021년 5월쯤 이뤄진 것으로 추측되는 두 번째 임신중절 수술을 앞두고 나눈 메시지가 담겼다.

당시 여자친구 A씨는 허웅에게 “적어도 모두가 축하는 못 해줘도 너만큼은 그런 반응을 보였을 때 내 심정이 어떤지, 하루하루 일분일초가 내 생각은 어떤지 생각해 봤냐”라며 “어떻게 나한테 ‘진정해라’ ‘네 마음대로 하지 마’라고 할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그냥 너 이미지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는 거잖아. 속 보인다”며 “이렇게 말 길어지고 싸움 되는 것도 내가 시비 걸어서, 내가 오락가락해서가 아니라 내가 네 뜻대로 안 하니까 네가 자꾸 짜증 내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허웅은 “일단 엄마랑 얘기 좀 해봐. 마음이 좀 괜찮아지면”이라고 대답했다. 

A씨는 “실컷 했다. 다 했다”고 되받아치자 허웅은 또 “나 일단 골프하잖아”라며 대화를 피하는 듯했다. 

A씨는 “병원 다녀왔어. 아기 집 확인했고 다음 주에는 심장 소리 들으러 가기로 했어”라며 산부인과 이름이 적힌 아기 초음파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허웅은 “병원을 갑자기 왜 다녀왔어?”라고 당황해하면서 “그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서 진단을 받아보자”고 권유했다. 

영상은 허웅이 당시 거주하고 있던 강원도 원주 모처의 산부인과서 A씨의 임신중절 수술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후 두 사람이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가 추가로 공개됐다. 지난 3일 같은 유튜브 채널서 ‘3억 요구 실체 허웅이 전 여친 카톡에 침묵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지난달 26일 허웅 측 법률대리인 김동형 변호사는 서울 강남경찰서를 찾아 A씨를 공갈미수, 협박, 스토킹처벌법 및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공개된 공식 입장문에는 허웅과 A씨가 지난 2018년에 만나 2021년 결별했으며, 3년간의 연애 기간 두 번의 임신과 낙태를 했다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반면 A씨는 금전 요구는 임신중절 문제로 갈등을 겪던 중 홧김에 한 말이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돈을 받을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는 취지다. 또 돈을 주겠다는 말은 허웅이 먼저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진호는 두 사람이 두 번째 임신중절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지난 2021년 5월29~31일까지의 카톡 대화 내역을 재구성해 공개했다. A씨는 허웅에게 “속도 안 좋고 허리도 너무 아프고 몸이 이상해 이렇게 막달까지 몰래 지내진 못할 거 같아”라고 말했다. 

전 여친 낙태 논란 일파만파
아이 책임 약속? 수술 강요?

이에 허웅은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라고 물었고, A씨는 “양측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정말 내 옆에 있고자 했던 마음이 진심이면 그게 순서가 맞아, 웅아”라고 호소했다. 

무서우니 부모님께 말하고 혼인신고하자는 A씨의 말에 허웅은 “갑자기 혼인신고는 무슨 말이야? 아무리 무서워도 그건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에 A씨가 “그럼 그냥 애 낳아서 키워? 왜 그건 아니야? 결혼 안 해 그럼?”이라고 묻자 허웅은 “뭐든지 순서가 있는데”라며 결혼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이진호는 허웅의 이 같은 태도가 계속되자 A씨가 허웅에게 “3억이면 싸게 먹히네” “네 앞에서 죽어버리고 싶어” “더 이상 너에게 자비는 없어. 네 모든 카톡 공개할 거야” 등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가 허웅에게 보낸 협박 메시지는 허웅 측 공식 입장문에 함께 공개한 바 있다. 그러면서 A씨가 허웅을 3년간 지속적으로 협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5월31일 이후에는 금전 요구를 하지 않았고, 허웅의 요구로 만남을 이어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지난해 11월 허웅에게 “지워진 우리의 아이들이 떠올라서 밤마다 너무 괴로워” “내 손목에 생긴 흉터는 아직도 선명한데 너에게 치료비조차 못 받았다” “너는 날 노리개로만 생각했니? 이제 죗값을 받을 때가 온 것 같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또 언론사 채널을 추가해 함께 보내기도 했다.

이에 허웅은 “치료비를 달라는 거구나?”라며 “제정신 상태로 내일 연락해”라고 답했다. 

이진호는 허웅 측이 A씨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완성본의 자료들을 모두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허웅은 현재 자신에 대한 의혹을 해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가졌지만 여론전을 자제하고, 수사 결과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된 A씨와 허웅은 3년간 교제했지만 결국 입장 차이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2021년 12월 결별했다. 

허웅과 연애 기간 중 A씨는 두 번의 임신을 하게 됐다.


책임 회피
죗값 받자

허웅 측은 “첫 번째 임신 당시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허웅은 A씨에게 아이와 함께 평생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면서도 “하지만 혼전 임신 및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A씨가 이를 거절해 본인 스스로 낙태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난 2021년 5월 A씨가 두 번째 임신을 했을 당시 “출산을 위해 결혼하자”고 허웅에게 제의했는데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자 A씨가 돌연 3억을 요구하며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허웅의 사생활을 언론, 인스타, 유튜브, 고소인 소속 구단, 농구 갤러리 등에 통해 폭로하겠다고 협박과 공갈을 지속했다는 것이 허웅 측의 주장이다. 

또 허웅 측은 A씨의 마약 투여 혐의 역시 제기했다. A씨가 강남의 유흥업소서 마약류를 투여했고 그로 인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허웅 측은 “A씨가 케타민을 코에 묻힌 상태서 허웅을 찾아와서 자신이 케타민을 투약한 사실을 자백하기도 했다”며 “허웅이 소속된 에스팀 엔터테인먼트에 낙태와 자신의 자해 상처, 정신질환, 불임 가능성 등이 모두 허웅으로 인한 것이라는 허위 사실을 메시지로 보내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허웅 측 법률대리인은 “전 여자친구의 지속된 협박과 공갈이 선수 생활에도 지장을 미쳤다”며 “제2의 이선균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고소인이 유명 스포츠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허웅은 개인 SNS에 “우선 팬분들께 이런 소식으로 심려 끼쳐 드려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다” “그동안 저를 응원해 주신 팬분들께서 얼마나 놀라셨을지 알기 때문에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허웅에 따르면, 전 여자친구와 결별한 이후 3년간 지속적인 금전 요구 및 협박에 시달렸다. 오랜 시간 고통받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전 여자친구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 고소를 결정하게 됐다. 

그는 “사법 절차를 통해 가해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경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라면서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죄송하다” “믿고 기다려 주시면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성관계 강제
무너진 억장

이에 맞서 A씨는 “두 차례의 임신중절 수술 모두 허웅의 강요로 이뤄진 것”이라며 폭로를 쏟아냈다.

지난달 28일 <스포츠경향>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지인의 소개로 허웅을 처음 만났다. 당시 허웅은 제대를 앞둔 군인이었고 처음 만났을 때도 허웅은 술에 취해 스킨십을 시도하려 했다. 그는 “이날 집으로 도망간 기억이 난다”며 몇 달 뒤 사과하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고 이후 만남을 가지면서 교제가 시작됐다.

이어 A씨는 “두 차례 수술 모두 허웅의 강요로 인해 이뤄졌다”며 “수술 당일 동의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같이 동행한 것은 맞으나 이후 치료나 관리는 모두 혼자 감당했다” “수술비는 허웅이 지출했으나 이후 모든 진료비는 나 홀로 지출했고 모든 것은 자료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당시 허웅이 원주DB 소속으로 활동할 때였다”는 A씨는 “수술은 허웅의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 그의 숙소가 원주에 있었고 그가 모 병원을 특정해 데려갔다”고 설명했다. 

또 “허웅은 나와의 연애 초창기에는 나의 이니셜을 운동화에 새기고 경기를 뛸 정도로 공개 열애를 본인이 원했고 농구팬들은 나를 이미 알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며 “하지만 그가 방송 및 유튜브 촬영 등 방송계서 활동하면서 180도로 심하게 변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허웅은 임신 중, 그리고 임신중절 수술 직후에도 성관계를 요구했다”며 “수술을 받은 뒤 담당 의사는 나와 허웅에게도 수술 직후 성관계를 하면 임신 재발 가능성이 높아지니 자제하라는 말을 했으나 허웅은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고 강조했다. 

첫 수술은 임신 22주 차에 진행됐다고 밝힌 그는 “신체의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컸다”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라며 “허웅은 임신중절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겠다고 했고 수술 직후에도 강제적으로 관계를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허웅은 결혼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으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첫 수술 이후 허웅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고, 다른 남성과 교제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을 안 허웅은 자살을 암시하고 A씨 주거침입 등 스토킹 행위를 지속했다.

두 번째 임신은 허웅과 잠시 이별한 상태서 원치 않은 성관계가 강제적으로 이뤄지면서 재차 임신이 된 것이었으며, 충격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임신 얘기에 “나 골프하잖아”
결혼 고민하자 돌연 3억원 요구

A씨는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계와 두 차례의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다”며 “오래된 팬들이 나를 알 정도로 허웅과 나는 진실된 연애를 했지만 그와 그의 가족들은 나를 공갈미수범, 마약사범으로까지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허웅과 그의 가족들은 임신중절 수술이라는 개인적인 고통을 언론에 알려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허웅은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마저 어기고 거짓으로 고통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MBN 뉴스>는 허웅 측이 제공한 A씨와의 통화 녹취록 일부를 공개했다. 지난달 19일 이뤄진 통화서 A씨는 “야 네가 XX 나한테 손목 치료비 한번 준 적 있어? XXX야. 네가 나 때렸잖아. ○○호텔서”라고 소리 질렀다. 

이어 “웅아, 너 지금 중요하다며(중요한 시즌이라며). 똑바로 말해, 안 들린다”고 따졌다. 그러자 허웅은 당황한 목소리로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라고 말했고, A씨는 “우리 사건 있었잖아. 인정할 거 인정하고, 네가 사과하면 내가 사건 안 만든다고 했는데 네가 X 깠잖아”라며 “네가 ○○호텔서 나 때려서 치아 부러졌다”고 재차 주장했다. 

허웅은 “내가? 언제?”라며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A씨는 “네가 네 이미지 생각한다고 병원도 한 번 안 데리고 갔고, 네가 네 발목 잡지 말라고 낙태시켰잖아. 아니야? 너 진짜 끝이다”라고 분노했다. 

허웅은 다시 한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네가 왜...”라고 말하면서 녹취록이 끝났다. 

다만 해당 녹취록은 허웅 측이 제공한 것으로, 윽박지르며 분노를 터뜨린 A씨와 달리 허웅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작위적인 반응을 보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A씨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최근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노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성은 욕망의 배설구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잔인한 일을 저지르고 먼저 옛 연인을 고소하는 남성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케타민을 코로 흡입한 적이 없고, 사생활 안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본인의 치부를 면피하기 위해 2차 가해하고 있다”며 “시시비비를 명명백백히 밝힐 것이고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를 지속적으로 가하는 허웅 측과 일부 언론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치열한 공방
나락의 기로

한편 1993년생인 허웅은 농구 대통령으로 불린 허재 남자농구 국가대표 전 감독의 큰아들로 지난 2014년 원주 DB로 데뷔한 뒤 2022년부터 부산 KCC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고 있다. 지난 2023~2024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서 우승을 차지했고, KBL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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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