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군대 보내지 않는 엄마들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6.11 08:47:27
  • 호수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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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죽음 당할 바엔 한국 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군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이 비상이다. 끊이지 않는 군 내 사망사고로 ‘어떻게 하면 아들을 군에 보내지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물론 편법으로 병역의 의무를 회피해선 안 되겠지만, 일찌감치 해외 이민으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마련해주자는 의도다. 어쨌든 ‘죽을 수도 있는’ 군대에 가는 것보단 낫다는 것이다.

최근 군부대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21일부터 27일까지는 군인 4명이 숨졌다. 지난달 27일에는 경기도 모 공군 부대 간부가 영외 독신자 숙소서 숨진 채 발견됐고, 같은 날에는 강원도 육군 21사단 위관급 장교가 자신의 차량 안에서 사망했다.

사병에
장교까지

지난달 23일에는 육군 12사단 훈련병 1명이 군기훈련 중 쓰러져 민간 병원으로 응급 후송돼 치료받았으나 이틀 만에 사망했다. 지난달 21일에는 육군 32사단 신병교육대서 수류탄 폭발 사고로 훈련병 1명이 숨졌다.

특히 지난달 23일에 있었던 훈련병 사망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이날 오후 제12보병사단서 훈련병 6명이 ROTC 출신 여군 중대장의 명령으로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 뜀걸음, 팔굽혀펴기, 선착순 달리기 등의 군기훈련을 받았다. 해당 훈련병이 전날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였다.

이때 훈련병 1명이 이상 징후를 보였다. 같이 군기훈련을 받던 동료 훈련병이 이를 파악해 간부에게 보고했으나, 간부는 꾀병 취급해 계속 군기훈련을 진행했다.


결국 해당 훈련병은 군기훈련 시작 후 40분 만에 쓰러져 방치되다가 발견돼 신병교육대대 의무실로 이송 후 군의관 지시로 수액을 맞았다. 이후 오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를 통해 군 병원이 아닌 민간 병원인 속초의료원으로 응급 후송됐지만, 속초의료원 후송 당시 호흡수가 분당 50회에 체온은 40.5도로 고열 상태였다.

나이와 이름을 묻는 질문에도 정상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속초의료원은 해당 훈련병이 지나친 체온 상승과 무리한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근육 손상으로 횡문근융해증이라고 진단했다. 2~3시간가량 치료에도 불구하고 훈련병의 몸은 40도 이상 고열이 유지됐고 치료 도중 신부전 등의 증세가 나타났다.

속초의료원은 강릉아산병원으로의 전원을 결정했다. 신장 투석이 긴급히 필요해질 정도로 증세가 악화됐고, 영동지방서 신장투석기를 보유한 병원이 상급종합병원급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훈련병은 의식이 없는 채로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송 이후 근육이 녹아내리는 상황서 신장 투석을 진행했지만, 치료 도중 상태가 나빠진 끝에 패혈성 쇼크로 끝내 사망했다.

군기훈련 받다가 쓰러져서…
일주일 새 군인 4명이나 사망

현행 육군 규정상 완전군장 상태의 군기훈련은 훈련병은 걷기만 가능하고, 걷더라도 1회당 1㎞ 이내만 지시할 수 있다. 팔굽혀펴기도 훈련병 기준 20회까지 최대 4세트로 맨몸인 상태서만 시킬 수 있다.


반면 숨진 훈련병은 당시 여러번 건강 이상 신호가 있었으며, 같이 군기훈련을 받던 동기 훈련병이 해당 훈련병의 안색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현장 간부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중대장은 이를 무시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계속 군기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병영생활 규정은 군기훈련 대상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해 실시해야 하고, 시행 전 신체 상태에 대해 문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날의 인제군 기온은 27.4도로 더운 날씨였다. 이날 훈련병은 완전군장을 한 채로 연병장 2바퀴를 보행하고, 지시에 따라 군장 상태서 뛰다가 쓰러졌다. 군당국은 당시 보행 및 구보의 총거리는 1.5㎞ 정도로 파악했다.

군 관계자는 “통상 20㎏ 이상인 군장을 한 채 팔굽혀펴기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육군 12사단 훈련병, 32사단 훈련병, 21사단 장교, 공군 초급 간부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최민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서 “일주일 새 4명의 군인이 세상을 떠났다. 군 장병들을 소모품쯤으로 취급하는 윤정부와 정치 군인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방과 안보가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연이은 군인 사망 사태는 대통령 취임 행사에 군인을 동원하는 등 장병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해 온 윤정부의 책임이 크다. 특히 해병대원 사망 사건과 수사외압 의혹은 윤정부가 장병들의 인권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알게 한다”고 지적했다.

불똥 튄
정치권 

최 대변인은 “철 지난 색깔론을 들이밀며 정권의 이념 전사로 만드는 데만 혈안이었지, 윤정부가 장병의 인권과 안전을 위해서 지금까지 한 게 무엇이냐? 신원식 전 장관과 같은 막장 인사가 국방부 장관이 되고 정치 군인이 활개치며, 애꿎은 장병들만 억울하게 희생되는 것이 지금의 군의 현실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아울러 “윤정부는 장병을 도구 취급하고 이들의 인권과 생명을 짓밟으며 군을 무너뜨리는 행태를 멈춰라. 지금 대한민국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군을 안에서부터 무너트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임을 뼈아프게 반성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이 병역기피를 부추기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받은 ‘2018~2022년 병역의무 기피자 정보공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발생한 병역기피자는 총 1397명이었다. 

국외 여행 허가를 받고 출국했다가 귀국을 미루고 불법체류한 사례가 698명으로 가장 많았고 현역 입영 기피자가 466명으로 뒤를 이었다. 사회복무요원 소집 기피자는 126명, 병역판정검사 기피는 107명이었다. 이들 1397명 가운데 병무청의 경고를 받고 뒤늦게라도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은 20.3%(283명)에 그쳤다.


특히 국외 불법체류자 698명 중에서는 단 1.6%(11명)만 병역을 다했다.

특히 어린 아들을 둔 엄마들이 비상이다. 아들이 3세라는 A씨는 아들의 군 문제 때문에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군대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지만 군 사망 뉴스를 계속 접하면서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이민을 선택한 이유에는 좋은 교육환경도 있지만 남자아이를 키우는 처지서 합법적인 군 면제를 받게 하고 싶은 것이 크다. 처음엔 본인이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군대서 계속 사람이 죽는데 당연히 보내고 싶지 않은 게 부모 마음 아니냐”고 말했다.

군 면제
방법 공유

이어 “이런 말 하면 당연히 욕먹는 거 알지만 한국서 살면 대학교 1~2학년 때 군 입대하는 게 보통인데, 그 전에 선택하겠지만 그 전에 선택할 수 있도록 영주권이라도 따게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영주권자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군 면제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영주권자는 한국인이라도병역법 제3조에 따라 ‘대한민국 남성은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법률상 영주권을 가져도 병역을 이행할 의무를 갖고 있는 셈이다. 또 병역법 제60조에 따르면 ‘국외에 체재·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병역판정검사 등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같은 법 70조는 ‘병역의무자로서 25세 이상 병역준비역 등은 국외 여행 시 병무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해외 거주 중인 영주권자들은 37세까지 병역 연기가 가능하지만 이를 넘기면 병역의무가 자동 소멸된다. 영주권 으로 군대 연기를 하려면 24세가 되는 해에 국외 여행 기간연장 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늦어도 25세가 되는 해의 1월15일까지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결국 한국 체류나 방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민권을 취득해야 군 면제가 된다.

A씨는 “군대에 다녀와야 철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군대서 과연 좋은 것만 보고 느끼겠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좋은 것보다는 나쁜 조직의 습성을 몸에 익히고 폭력에 관대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해외 영주권자인 B씨는 아들이 해외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당연히 B씨 아들도 영주권자인데, 축구 경기 도중 전방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면서 군에 입대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어릴 때 이미 이민 준비”
“차라리 영창 가는 게 낫다”

B씨는 “아들이 신검을 받을 겸 한국행 비행기를 예매해놓은 상황이었다. 아이가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 시합을 나갔다가 부상을 입었다. 아이가 다쳐 마음이 아팠지만, 군대를 면제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사건 사고를 보면서 더 안심했다”고 전했다.

B씨 아들은 한국서 다리 수술 후 결국 면제를 받았다. 수술받기 전부터 군에 입대하고 싶다고 의사와 많은 상담을 했지만, 부상 정도가 심해서 면제받은 것이다. 이렇게 군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들은 입대하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B씨는 “최근 터진 군 사망사고 뉴스를 보여주면서 군대에 가면 안 된다고 말렸다. 이렇게 면제까지 받게 된 상황에, 군대 가면 안 된다. 남들은 군대에 안 가려고 편법까지 쓰는 상황 아니냐?”며 “군대서 반항하면 영창가지 않느냐? 그나마 영창에 가는 게 낫지, 그러면 개죽음은 안 당하지 않느냐? 국가서 아들 살인을 지켜볼 수는 없다”고 분개했다.

미국 등 출생 국가서 한국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선천적 복수 국적 남성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려면 국적법 제12조에 따라 18세가 되는 해 3월31일 이전까지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 거주하는 C씨 가족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해 국적이탈 시기를 놓쳤다. C씨 아들은 미국서 대학교에 다니는데, 한국 입국 시 군대에 가야 해 입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선천적 복수 국적 남성이 국적이탈 시기를 넘겨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경우, 병역의무 해소 2년 이내에 국적이탈 신고가 가능하다. 따라서 C씨 아들은 당장은 국적이탈이 불가하고, 한국서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아 병역 이행을 미뤄야 한다.

“가족들이
모두 말린다”

C씨는 “아들이 군대에 가면 쉽게 해결되지만, 가족들 모두가 말리고 있다. 유학 목적으로 국외 여행 허가를 받고 시민권을 취득하면 자연스럽게 병역의무가 상실된다”며 “군대 가서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건강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게 문제다.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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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