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팔리는’ 대기업 판촉물 정체

공짜 상품이 할인 가격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대기업을 믿고 납품했는데 모르는 업체서 제품을 팔고 있다. 불법 판매처들은 판매 중지 요청 등 대응에도 무응답으로 일관 중이다. 불법 유통으로 인해 제품 시장가는 낮아졌고 브랜드 이미지는 훼손됐다. 

‘대기업 대형 가전의 판촉물로 이용된다’는 고지를 받고 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했다. 대기업을 이용한 홍보 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판촉물로 이용된다던 제품은 일면식도 없는 곳에서 팔리고 있었다.

돌리라고 
줬더니…

<일요시사>는 단독 기사 ‘대기업에 납품했는데…팔리는 사은품?’ 제하의 기사에서 판촉물 계약 이후 온라인 시장서 해당 제품이 팔리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이후 계약 과정과 제조업체의 피해를 재조명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대형 가전 제조업체인 대기업서 판매 도급사(이하 도급사)에 판촉행사를 주차별로 공유한다. 그러면 도급사는 판촉행사에 맞게 판촉물 제작 및 공급업체에 판촉물 발주 요청을 넣고 해당 판촉물을 홈플러스나 이마트 등 대형마트나 양판 가전제품(하이마트, 전자랜드 등) 매장에 보내는 과정을 통해 유통이 이뤄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기업서 지점별 할당 매출목표를 지정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권역별 연 매출과 물품별 월 매출 목표를 설정해준다. 할당된 매출을 달성할 경우, 인센티브나 성과금을 지점과 도급사 팀별로 지급한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할당된 매출을 채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신혼부부 고객이나 이사와 같은 유형의 손님들 외에는 오프라인 매장서 가전제품을 사는 소비자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한 가전제품 매장 관계자는 “매장서 대형 가전을 사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명”이라며 “또 대형 가전의 경우 한번 구매하면 길게는 10년 이상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아 구매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가전의 경우 기본적으로 200~300만원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 20~30대만 팔아도 매출 할당량은 대부분 채울 수 있지만 오프라인 매장만으로는 할당량을 맞추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도급사는 각 지점서 책정한 할인(프로모션)과 대기업 본사에서 책정한 할인을 받아 저렴하게 대형 가전을 들여오면서 판촉물도 함께 들여온다. 이후 도급사는 온라인스토어에 들여온 대형 가전과 판촉물로 나오는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기업에 납품했는데…팔리는 사은품?’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구매를 진행했지만 대형마트 등에서 배송되는 상황은 일련의 과정서 일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할당 매출 맞추기 위해…
한달에 300개 불법 판매

판촉행사 일정이 달마다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달마다 최소 4개 이상의 브랜드의 제품을 판촉물로 납품받은 후 온라인을 통해 재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재판매되는 제품들의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한 예로 소형 가전 브랜드서 생산한 UV 살균 대용량 스텐 가습기의 경우 공식 홈페이지에선 20만원 상당에 판매되고 있지만 온라인쇼핑몰에서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 10만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해당 업체에서는 불법 유통업체가 늘었다며 소비자들에게 공지하기도 했다.

공지사항에는 “최근 제품의 이미지를 도용한 불법 유통업체가 늘어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공식 판매처가 아닌 곳에서 구매하신 영수증은 무상 AS 기간 산정 시 제외된다”며 제품 교환 및 반품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한 권역서 도급사의 재판매로 이 같은 경고성 공지사항을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한 업체는 6곳으로 미로, 휴스톰, 오아, 안방그릴, 카카오프렌즈, 클락이다. 해당 업체서 판촉물로 이용된 제품은 12종으로 가습기, 물걸레 청소기, 전자레인지, 무선 마이크, 전자그릴 등으로 다양했다. 

더 낮은
판매가

가격대는 최소 3만원서 최대 20만원까지 폭이 넓었다. 

한 대형마트 지점으로 한 번에 분배되는 판촉물은 대략 20~30개다. 도급사 한 권역이 가진 지점이 약 10개의 지점을 관리하는 만큼 판촉물로 재판매되는 제품은 300여개에 달하는 셈이다. 

도급사와 온라인 불법 유통판매처는 이렇게 얻은 판촉물을 빨리 팔아야 하는 입장이라 가격을 큰 폭으로 낮춰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경우, 제조업체가 정한 시장가격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해 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재판매가 이뤄진 제품은 자사의 핵심 제품”이라며 “대형 가전을 구매하면 주는 사은품으로 사용된다는 말만 믿고 계약을 진행하자 온라인서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자사몰서 구매했던 소비자가 ‘왜 본사 쇼핑몰서 더 비싸게 파느냐’는 내용의 환불 요청도 계속 들어오고 있으며 이미 공식 판매처나 자사 쇼핑몰의 해당 제품 매출은 약 40%가량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제품 시장가격과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업체들은 온라인 불법 유통판매처에 내용증명을 보내고 판매 중지를 요청하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소용없었다. 온라인판매처서 무응답으로 일관하면서도 판촉물로 납품받은 제품 개수만큼 판매를 진행하고 판매글을 삭제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탓이다.

피해 업체 중 한 곳인 오아 관계자는 “오아는 많은 제품 가짓수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판매 루트를 갖고 있다. 온라인판매처서 판매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업체도 당연히 많다”며 “사실 불법 유통판매처만 계속 확인하고 있을 인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대량 발주된 제품 수량 그대로 다른 업체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과정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제품 출처가 어딘지 밝히는 것도 힘든 작업”이라고 말했다.

무너진
유통 질서

낮아진 시장가격뿐만 아니라 기업 IP를 이용해서 판매하는 만큼 브랜드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쇼핑서 브랜드 이름과 제품명을 검색하더라도 공식 판매처와 불법 유통판매처와 다른 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조업체에서는 해당 제품 설명란을 만들기 위해 외주를 맡기고 타사 제품과 차별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불법 유통판매처의 낮은 가격에 본사나 공식 판매처서 제품이 팔리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카카오프렌즈의 경우는 더 큰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입고 있다. 카카오프렌즈는 생활가전제품에 사용된 카카오 캐릭터의 IP만 갖고 있을 뿐, IP를 이용한 제품 제조는 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카카오프렌즈 제품 제조사인 더블유아이는 불법 유통판매처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내용증명에는 온라인판매는 더블유아이의 승인을 받은 업체에 한해 가능하며 온라인 상세 페이지 및 사진/이미지 등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로 이미지 및 자료에 대해 무단복제 및 전재/재배포는 저작권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사전경고 없이 형사고발 조치됨을 알려드린다고 적시돼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카카오프렌즈와 더블유아이는 IP 계약은 맺었지만 판촉물 사용은 허가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내용증명에도 조치 없어
“비매품 판매해선 안 돼”

카카오프렌즈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정식으로 제작 계약을 맺은 업체가 해당 제품을 판촉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본사의 허가가 필요하다”며 “라이센스 제품이 판촉물로 이용되는 것도 온라인서 재판매되는 것도 공유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입는 것은 불법 유통판매처도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더블유아이도 아닌 카카오프렌즈인 것이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공식 판매처 여부와 상관없이 제품을 구매한 후 제품에 이상이 있으면 본사에 AS나 추후 처리를 요청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공식 판매처가 아닌 곳에서 산 제품의 경우 AS를 하지 않는다고 공지하고 있지만 사실 제품 구입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서 무턱대고 AS를 안 해 줄 수도 없다”고 곤란해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유통 질서가 무너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에 문제가 되는 것은 ▲계약위반 ▲비매품의 판매 행위라고 볼 수 있다”며 “판촉물로 이용하겠다는 계약을 어긴 것과 비매품으로 상행위를 한 것은 전체적인 유통 질서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온라인 매장서 가격을 상정하는 것은 판매자의 마음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했다고 보긴 힘들어 피해를 입은 업체서도 판매 중지 등을 요청하는 내용증명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타격
추가 대응은?

법조계에서는 횡령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피해 업체가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서초동 소재의 한 변호사는 “유통 과정서 도급사에서는 해당 판촉물에 대한 지불을 완료하고 제품을 가져와 온라인서 재판매했다면 횡령이라고 보긴 힘들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계약위반이나 관리 소홀 등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는 점에서 민사를 통한 손해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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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