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하)

“한 기업이 정치적으로 희생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지금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국가서 만든 대형 증권사가 망하던 날, 피해자들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피폐해진 삶은 지금도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투성이다. 멀쩡한 회사 산업증권은 도대체 왜 망했을까?

“산업증권은 정치적인 이유로 없어졌습니다.” <일요시사>가 만난 산업증권 피해자들은 이같이 이구동성 했다. 증권 순위는 높지 않았지만, 국가서 만든 증권사라 모두 망할 일이 없다고 믿었다. 산업증권은 산업은행이 초기 투자금 1500억원을 들여 만든 회사로, 직원 수가 한때 8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도 컸다. 도청 소재지 도시에 점포가 대략 10군데 정도 있었다. 당시 국제업무에 특화돼있어 해외서 자금조달이 상당히 유리했던 증권사다. 

빵빵했는데
하루아침에…

피해자들에 따르면 산업증권은 망할 회사가 전혀 아니었다. 국가서 만들어 내놓은 회사인 덕에 위세가 말 그대로 대단했다.

<일요시사>는 직접 산업증권 피해자 중 한 명인 김영수(가명)씨를 만났다. 지난 9일, 김씨를 잠실 소재의 한 카페서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김씨는 산업증권이 정말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삼성 직원이 거절당한다는 미국 비자를 산업증권은 단번에 받았다. 과거엔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대사관에 가서 면접을 보는 게 필수였고, 그나마 1년짜리가 나올까 말까 했다. 나는 당시 신혼여행을 위해 미국 비자를 발급받았는데, 재직증명서 하나로 면접도 없이 10년짜리 비자가 단 3일 만에 발급됐다”고 말했다. 


1997년 11월 IMF가 터지면서 산업증권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가진 못했다. 첫 구조조정을 통해 약 400명 정도 인원이 정리해고됐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잘 굴러갔다.

하지만, 이듬해 7월25일 갑작스레 파산 발표가 나오면서 내부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산업증권의 파산은 증권시장의 침체와 대기업의 연쇄 부도, 과거 부실 요인의 노출 등으로 인한 경영난 봉착 때문이었다. 실제로 부채가 240억여원을 초과하면서 이를 변제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산업증권 파산 사건은 알려져 있는 배경과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다수의 관계자들이 사망했다. 이 중 의문이 드는 갑작스러운 사망도 포함됐다. 

2008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공성진 의원실서 파산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주도했으나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고, 누구 한 명 처벌받지도 않았다. 

모두가 부러워하던 회사가 갑자기 한순간에 공중분해 됐다. 근로자들은 한순간에 삶이 무너무너졌고, 여전히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다. 산업증권서 영업직을 담당하던 김씨는 회사가 사라지던 날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김씨는 명예퇴직을 하지 않고 버텼다. 지방서 근무하던 그는 자신의 근무지가 정리돼 서울로 발령받아 본사에서 일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사망자 다수 발생 
시장에 충격 주기 위한 케이스?

1차 구조조정 이후 괜찮아졌다고 안심하던 차에 일이 터졌다.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에 명찰을 단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김씨는 “점심시간이 끝난 뒤 회사로 돌아왔는데, 사무실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보안시스템도 전부 다 바꿔놨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산업증권은 오늘부터 없어지는 회사가 됐으니 책상으로부터 손을 떼라’고 했다”며 “금고를 비롯해 모든 걸 다 봉인하고 직원들은 밖으로 쫓아내 실랑이도 벌였는데, 경찰까지 출동했다. 그날이 회사 출근 마지막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입사 3년차 직원이었던 그는 서울로 발령받아 친구의 원룸에 얹혀 살았다. 신혼이었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산업증권의 폐쇄가 결정됐다.

대구 집은 정리했고, 전세자금 대출 빚이 막막했던 김씨는 당장 돈이 없어 임신 중이던 아내는 처갓집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김씨가 산업증권을 퇴직하면서 받았던 돈은 위로금 및 3개월치 봉급인 800만원이었는데, 퇴직금은 없었다. 당시 대기업만큼 연봉이 높았지만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가장인 김씨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새로 창업한 회사에 들어갔다. 

그 회사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벤처기업 특성상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아 정리하게 됐고, 알음알음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아등바등 살았다. 여전히 김씨는 전세살이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주변 도움을 받아 살아왔지만 한계가 있었다. 주변 사람을 만나면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아이의 학원, 과외 이야기를 한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아이가 학원을 가고 싶다고 하면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기가 참 비참했다. 배우자는 우스갯소리로 새 차를 타본 지가 몇 십년은 됐다고 하는데, 지금도 차가 퍼질 때까지 조이고, 기름을 쳐서 탄다”고 말했다. 

옛 직원들
찾아가니…

또 다른 피해자의 유족인 최금숙(가명)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씨의 집은 허름했고, 조만간 재개발이 시작돼 현재 거주 중인 곳을 떠나야 한다. 임플란트도 해야 하는데, 주머니 사정상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근근이 보험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다리도 아파서 오래 걷기도 힘들다는 그는 여전히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묵묵한 아들이었지만, 늘 가족을 챙기던 장남이라고 기억했다. 


최씨는 “산업증권 초기에 입사했던 아들이 거기서 결혼했으며, 생활비를 꾸준히 주는 등 평범한 가장으로 가정에 충실했다. 그러다 급작스레 회사가 사라졌다. 아들은 성격상 티를 잘 내지 않았는데 상당히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당시 남편이 사업하다가 부도도 났다. 집도 함께 무너졌다”고 황망해했다. 

가장의 무게를 많이 느꼈던 아들은 남편 입장에서도 아무 일이라도 당장 구해야 했다. 가구점, 대리운전, 막노동, 노점상까지 닥치지 않고 일을 했다. 

아들의 얼굴은 항상 어두웠고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며, 가족과 부인을 챙기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다. 최씨는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던 현실이 개탄스러웠다고 한다. 그 사이 아들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왔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던 아들에게는 생기가 없었다. 그나마 낚시가 마음을 위로해주던 유일한 취미였다. 10년 동안 힘든 삶을 살아오던 아들은 낚시를 하러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최씨는 “(아들이)어렸을 때부터 낚시를 좋아했다. 종종 낚시를 갔는데 큰 돈이 안 들고 속상한 것도 털어버리려고 다녀오곤 했다. 어느 날 며느리에게 ‘발을 헛디뎌 사고를 당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날따라 날씨가 좋지 않았다. 아들에게 느낌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그렇게 사고를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너무 억울
풀어주세요”


이때부터 그는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떠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먹먹하다. 마음의 병은 깊어졌고, 몸도 쇠약해졌다. 몇 년 전에는 대장암을 진단받아 건강도 좋지 않다. 

최씨는 이 모든 원인이 산업증권이 갑자기 사라진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겠다고 마음먹은 부부는 함께 아들을 대신해 싸웠다. 직접 집회에 참가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며 거리로 나섰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몇 년 전 사망한 남편도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함께 싸웠으나 끝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아들이 힘들어했을 때 낚시 대신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등 많은 후회가 든다고 했다.

 그는 아들의 마음을 대변한 글을 한 자 한 자 담아 꾸깃꾸깃한 달력에 적어 <일요시사>에 건넸다. 

달력에는 “강제퇴직 이후 스트레스가 죽음의 원인이 됐습니다. 원통한 마음이 한이 됩니다. 나도 암수술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죽지 못해 삶을 영위할 정도입니다. 당시 나는 미쳤습니다.(중략) 산업증권이 해체되고 나니 아들은 너무 고통스러워 살아갈 의지를 잃었습니다.(중략) 지금도 억지로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제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아들이 하늘나라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날 이후…막노동부터 대리까지 
“지금이라도 정부가 살펴봤으면”

최씨와 김씨는 산업증권이 사라진 이유에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이고 시장논리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정치 논리와 정권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여러 증권회사들이 존재했으며, 많이 어려웠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수의 증권사가 인수합병을 당하거나 매각되기도 했고, 자본잠식 상태에 처하기도 했다. 문제는 산업증권이 결코 자본금이 작은 회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태생 자체가 산금채(금융채의 일종으로 기간산업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한국산업은행서 발행하는 채권)로 유통되는 업체였다. 

김씨는 “산업증권은 IMF 이후에도 32개 증권사 중 25위 안쪽을 오가던 회사로, 메이저 회사를 제치고 생산능력이 8위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문제는 금융기관들이 증권사를 포기하기 싫어했다는 점이다. IMF가 터지면서 구조조정도 필요하고, 다른 것도 해야 하는데 대기업은 대부분 증권사를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기업이 금융사를 놓지 못하니까 맛보기로 산업증권을 없앤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며 “시장에 충격을 주기 위한 시범 케이스였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희생됐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다른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 및 매각의 기조가 뚜렷했다. 김씨의 말을 빌리면 ‘개길 수 있으면 개겨봐라’는 신호였다.

IMF로 온 나라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시장에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내보낼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정치적인 이유 외에도 단순히 ‘노조’가 꼴보기 싫어 고용 승계를 하지 않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산업증권 폐쇄를 반대하기 위한 집회를 노조서 단행했는데, 산업은행이 이를 상당히 불편해 했다는 것. 노조서 폐쇄 반대를 주장했지만 경영진에선 할 만큼 했으며 아쉬울 것도 없다는 이유로 쓸어버리라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해당 사안으로 26년간 싸워온 국민의힘 이충현 강서구의원은 답답한 마음이다. 산업은행서 산업증권으로 옮겨 채권팀서 근무하며 산업증권의 시작부터 끝을 지켜봤던 이 의원은 피해자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웠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모은 자료를 토대로 민원을 넣었다. 

회사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자료들을 하나하나 모았다. 보따리 속에는 그동안 이 의원이 모아온 자료가 가득 들어 있었다. 긴 싸움을 이어오는 동안 이 의원은 다수의 협박도 받아 휴대전화 번호를 5번이나 바꿨다.

그는 자료를 토대로 어렵게 사는 피해자를 하나둘 모아 소송까지 진행했다. 이들에게 소송은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으나 산업증권의 파산이 정당했다고 판결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 역시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폐쇄 아닌 
매각했어야”

이 의원은 “폐쇄가 아니라 매각 시도가 먼저 이뤄졌어야 했다.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폐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사태와 관련해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피해는 오롯이 근무했던 이들이 떠안았는데, 어떤 식으로든 보상 절차가 있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침묵 속에 사는 게 늘 마음에 걸려 (여기에)인생을 바쳤다. 늦었지만 정부서 관심을 갖고 다시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너무 많은 사람이 고통의 시간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ckcjfdo@ilyso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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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