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하)

“한 기업이 정치적으로 희생됐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지금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국가서 만든 대형 증권사가 망하던 날, 피해자들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피폐해진 삶은 지금도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투성이다. 멀쩡한 회사 산업증권은 도대체 왜 망했을까?

“산업증권은 정치적인 이유로 없어졌습니다.” <일요시사>가 만난 산업증권 피해자들은 이같이 이구동성 했다. 증권 순위는 높지 않았지만, 국가서 만든 증권사라 모두 망할 일이 없다고 믿었다. 산업증권은 산업은행이 초기 투자금 1500억원을 들여 만든 회사로, 직원 수가 한때 8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도 컸다. 도청 소재지 도시에 점포가 대략 10군데 정도 있었다. 당시 국제업무에 특화돼있어 해외서 자금조달이 상당히 유리했던 증권사다. 

빵빵했는데
하루아침에…

피해자들에 따르면 산업증권은 망할 회사가 전혀 아니었다. 국가서 만들어 내놓은 회사인 덕에 위세가 말 그대로 대단했다.

<일요시사>는 직접 산업증권 피해자 중 한 명인 김영수(가명)씨를 만났다. 지난 9일, 김씨를 잠실 소재의 한 카페서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김씨는 산업증권이 정말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삼성 직원이 거절당한다는 미국 비자를 산업증권은 단번에 받았다. 과거엔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대사관에 가서 면접을 보는 게 필수였고, 그나마 1년짜리가 나올까 말까 했다. 나는 당시 신혼여행을 위해 미국 비자를 발급받았는데, 재직증명서 하나로 면접도 없이 10년짜리 비자가 단 3일 만에 발급됐다”고 말했다. 


1997년 11월 IMF가 터지면서 산업증권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가진 못했다. 첫 구조조정을 통해 약 400명 정도 인원이 정리해고됐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잘 굴러갔다.

하지만, 이듬해 7월25일 갑작스레 파산 발표가 나오면서 내부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산업증권의 파산은 증권시장의 침체와 대기업의 연쇄 부도, 과거 부실 요인의 노출 등으로 인한 경영난 봉착 때문이었다. 실제로 부채가 240억여원을 초과하면서 이를 변제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산업증권 파산 사건은 알려져 있는 배경과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다수의 관계자들이 사망했다. 이 중 의문이 드는 갑작스러운 사망도 포함됐다. 

2008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공성진 의원실서 파산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주도했으나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고, 누구 한 명 처벌받지도 않았다. 

모두가 부러워하던 회사가 갑자기 한순간에 공중분해 됐다. 근로자들은 한순간에 삶이 무너무너졌고, 여전히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다. 산업증권서 영업직을 담당하던 김씨는 회사가 사라지던 날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김씨는 명예퇴직을 하지 않고 버텼다. 지방서 근무하던 그는 자신의 근무지가 정리돼 서울로 발령받아 본사에서 일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사망자 다수 발생 
시장에 충격 주기 위한 케이스?

1차 구조조정 이후 괜찮아졌다고 안심하던 차에 일이 터졌다.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에 명찰을 단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김씨는 “점심시간이 끝난 뒤 회사로 돌아왔는데, 사무실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보안시스템도 전부 다 바꿔놨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산업증권은 오늘부터 없어지는 회사가 됐으니 책상으로부터 손을 떼라’고 했다”며 “금고를 비롯해 모든 걸 다 봉인하고 직원들은 밖으로 쫓아내 실랑이도 벌였는데, 경찰까지 출동했다. 그날이 회사 출근 마지막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입사 3년차 직원이었던 그는 서울로 발령받아 친구의 원룸에 얹혀 살았다. 신혼이었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산업증권의 폐쇄가 결정됐다.

대구 집은 정리했고, 전세자금 대출 빚이 막막했던 김씨는 당장 돈이 없어 임신 중이던 아내는 처갓집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김씨가 산업증권을 퇴직하면서 받았던 돈은 위로금 및 3개월치 봉급인 800만원이었는데, 퇴직금은 없었다. 당시 대기업만큼 연봉이 높았지만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가장인 김씨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새로 창업한 회사에 들어갔다. 

그 회사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벤처기업 특성상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아 정리하게 됐고, 알음알음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아등바등 살았다. 여전히 김씨는 전세살이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주변 도움을 받아 살아왔지만 한계가 있었다. 주변 사람을 만나면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아이의 학원, 과외 이야기를 한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아이가 학원을 가고 싶다고 하면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기가 참 비참했다. 배우자는 우스갯소리로 새 차를 타본 지가 몇 십년은 됐다고 하는데, 지금도 차가 퍼질 때까지 조이고, 기름을 쳐서 탄다”고 말했다. 

옛 직원들
찾아가니…

또 다른 피해자의 유족인 최금숙(가명)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씨의 집은 허름했고, 조만간 재개발이 시작돼 현재 거주 중인 곳을 떠나야 한다. 임플란트도 해야 하는데, 주머니 사정상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근근이 보험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다리도 아파서 오래 걷기도 힘들다는 그는 여전히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묵묵한 아들이었지만, 늘 가족을 챙기던 장남이라고 기억했다. 


최씨는 “산업증권 초기에 입사했던 아들이 거기서 결혼했으며, 생활비를 꾸준히 주는 등 평범한 가장으로 가정에 충실했다. 그러다 급작스레 회사가 사라졌다. 아들은 성격상 티를 잘 내지 않았는데 상당히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당시 남편이 사업하다가 부도도 났다. 집도 함께 무너졌다”고 황망해했다. 

가장의 무게를 많이 느꼈던 아들은 남편 입장에서도 아무 일이라도 당장 구해야 했다. 가구점, 대리운전, 막노동, 노점상까지 닥치지 않고 일을 했다. 

아들의 얼굴은 항상 어두웠고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며, 가족과 부인을 챙기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다. 최씨는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던 현실이 개탄스러웠다고 한다. 그 사이 아들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왔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던 아들에게는 생기가 없었다. 그나마 낚시가 마음을 위로해주던 유일한 취미였다. 10년 동안 힘든 삶을 살아오던 아들은 낚시를 하러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최씨는 “(아들이)어렸을 때부터 낚시를 좋아했다. 종종 낚시를 갔는데 큰 돈이 안 들고 속상한 것도 털어버리려고 다녀오곤 했다. 어느 날 며느리에게 ‘발을 헛디뎌 사고를 당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날따라 날씨가 좋지 않았다. 아들에게 느낌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그렇게 사고를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너무 억울
풀어주세요”


이때부터 그는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떠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먹먹하다. 마음의 병은 깊어졌고, 몸도 쇠약해졌다. 몇 년 전에는 대장암을 진단받아 건강도 좋지 않다. 

최씨는 이 모든 원인이 산업증권이 갑자기 사라진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겠다고 마음먹은 부부는 함께 아들을 대신해 싸웠다. 직접 집회에 참가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며 거리로 나섰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몇 년 전 사망한 남편도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함께 싸웠으나 끝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아들이 힘들어했을 때 낚시 대신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등 많은 후회가 든다고 했다.

 그는 아들의 마음을 대변한 글을 한 자 한 자 담아 꾸깃꾸깃한 달력에 적어 <일요시사>에 건넸다. 

달력에는 “강제퇴직 이후 스트레스가 죽음의 원인이 됐습니다. 원통한 마음이 한이 됩니다. 나도 암수술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죽지 못해 삶을 영위할 정도입니다. 당시 나는 미쳤습니다.(중략) 산업증권이 해체되고 나니 아들은 너무 고통스러워 살아갈 의지를 잃었습니다.(중략) 지금도 억지로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제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아들이 하늘나라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날 이후…막노동부터 대리까지 
“지금이라도 정부가 살펴봤으면”

최씨와 김씨는 산업증권이 사라진 이유에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이고 시장논리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정치 논리와 정권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여러 증권회사들이 존재했으며, 많이 어려웠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수의 증권사가 인수합병을 당하거나 매각되기도 했고, 자본잠식 상태에 처하기도 했다. 문제는 산업증권이 결코 자본금이 작은 회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태생 자체가 산금채(금융채의 일종으로 기간산업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한국산업은행서 발행하는 채권)로 유통되는 업체였다. 

김씨는 “산업증권은 IMF 이후에도 32개 증권사 중 25위 안쪽을 오가던 회사로, 메이저 회사를 제치고 생산능력이 8위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문제는 금융기관들이 증권사를 포기하기 싫어했다는 점이다. IMF가 터지면서 구조조정도 필요하고, 다른 것도 해야 하는데 대기업은 대부분 증권사를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기업이 금융사를 놓지 못하니까 맛보기로 산업증권을 없앤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며 “시장에 충격을 주기 위한 시범 케이스였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희생됐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다른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 및 매각의 기조가 뚜렷했다. 김씨의 말을 빌리면 ‘개길 수 있으면 개겨봐라’는 신호였다.

IMF로 온 나라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시장에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내보낼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 정치적인 이유 외에도 단순히 ‘노조’가 꼴보기 싫어 고용 승계를 하지 않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산업증권 폐쇄를 반대하기 위한 집회를 노조서 단행했는데, 산업은행이 이를 상당히 불편해 했다는 것. 노조서 폐쇄 반대를 주장했지만 경영진에선 할 만큼 했으며 아쉬울 것도 없다는 이유로 쓸어버리라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해당 사안으로 26년간 싸워온 국민의힘 이충현 강서구의원은 답답한 마음이다. 산업은행서 산업증권으로 옮겨 채권팀서 근무하며 산업증권의 시작부터 끝을 지켜봤던 이 의원은 피해자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웠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모은 자료를 토대로 민원을 넣었다. 

회사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자료들을 하나하나 모았다. 보따리 속에는 그동안 이 의원이 모아온 자료가 가득 들어 있었다. 긴 싸움을 이어오는 동안 이 의원은 다수의 협박도 받아 휴대전화 번호를 5번이나 바꿨다.

그는 자료를 토대로 어렵게 사는 피해자를 하나둘 모아 소송까지 진행했다. 이들에게 소송은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으나 산업증권의 파산이 정당했다고 판결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 역시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폐쇄 아닌 
매각했어야”

이 의원은 “폐쇄가 아니라 매각 시도가 먼저 이뤄졌어야 했다.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폐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사태와 관련해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피해는 오롯이 근무했던 이들이 떠안았는데, 어떤 식으로든 보상 절차가 있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침묵 속에 사는 게 늘 마음에 걸려 (여기에)인생을 바쳤다. 늦었지만 정부서 관심을 갖고 다시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너무 많은 사람이 고통의 시간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ckcjfdo@ilyso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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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