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기획 부동산 대부 김현재 회장 실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5.13 16:47:32
  • 호수 1479호
  • 댓글 4개

자선사업·땅 사기 ‘야누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과거 기획부동산 사기와 횡령 혐의로 복역한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출소 이후 ‘폰지 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1999년 삼흥그룹의 모체인 삼흥월드를 설립한 그는 5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김 회장이 돈 될 만한 땅을 찍으면 계열사 사장들이 그 땅을 한꺼번에 사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를 다시 쪼개 제3자에게 “주거·상업지역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임야를 용도변경이 가능하다”고 속여 팔다가 사기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김 회장은 토지를 싼 가격에 산 뒤 호재가 있다는 소문을 내고 쪼개 파는 이른바 ‘기획부동산’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거물이다. 2003년 기획부동산 사기로 210억원을 가로채고,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2006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출소한 김 회장은 “나를 기소한 검사들이 사실은 무죄였다고 말했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플랫폼

지난 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케이삼흥 김현재 회장 등 경영진을 수사 중이다. 2021년 설립된 케이삼흥은 정부가 개발할 토지를 미리 매입한 뒤 개발이 확정되면 보상금을 받는 ‘토지 보상 투자’를 권유하며 급성장했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며 전국에 7개 지사를 세우고 투자자를 모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수익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며 피해자들과 신뢰를 쌓았던 김 회장은 지난 3월부터 무더기 수익금 미반환 사태를 일으켰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1000명 이상이며 대부분은 50대 중장년층이었다. 이들 중에는 평생 모아온 자산 대부분을 투자한 이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달에 2%(연 24%) 넘는 배당수익에 현혹된 투자자들은 지난달부터 배당금과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 회장이 일당이 최대 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투자금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있다. 출소한 김 회장이 플랫폼을 활용한 진화된 수법과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케이삼흥 일부 피해자는 김 회장이 20여년 전 비슷한 사기를 벌였다는 점을 뒤늦게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김 회장의 행보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80년대 후반 한 부동산 사무소의 사무장으로 재직한 경험을 토대로 1999년 삼흥그룹의 모체인 삼흥월드를 설립했다. 

삼흥월드 등 5개 계열사 왕회장 
텔레마케터 700여명 “땅 사세요”

삼흥인베스트, 삼흥에스아이, 삼흥피엠, 삼흥센추리, 삼흥에프엠 등 5개 계열사를 거느린 가운데 삼흥센추리는 2000년대 중반 부성윈플러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부성윈플러스(당시 삼흥센추리)는 2003년 충북 제천시와 협약을 맺고 330억원 규모의 펜션단지 개발을 추진했다. 

특이한 점은 부동산 회사인 부성윈플러스가 전화권유판매(텔레마케팅) 사업자로 등록돼있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등기상 대표는 박모씨였는데 부성윈플러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삼흥그룹으로 연결됐다. 삼흥그룹 본사 격인 삼흥건설과 그 계열사 사무실은 강남구 서초동에 있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개인 집무실은 강남구 역삼동에 있었다. 삼흥그룹은 이처럼 사실상 하나의 회사를 삼성동, 역삼동, 서초동으로 나눠 운영했다.

각 회사를 분할 관리한 이유는 혹시 있을 압수수색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김 회장은 부동산 판매에 텔레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는 혁신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부동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삼흥그룹 대부분의 직원이 텔레마케터였다. 600∼750명의 텔레마케터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땅을 사라고 부추겼다.


텔레마케터를 활용해 투자자를 모았던 삼흥그룹이 최근 부동산 투자플랫폼을 운영하는 케이삼흥으로 변신한 것이다.

삼흥그룹의 자금 동원력은 2003년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해 1687억원의 매출을 올린 삼흥그룹은 2004년에도 166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흥그룹이 전후 5년간 올린 매출은 5300여억원에 이르렀다. 삼흥그룹의 성공을 본 많은 부동산 업자들은 김 회장에게 몰려들었다.

“검사들이…
난 무죄였다”

업자들은 삼흥그룹을 ‘기획부동산 사관학교’라고 불렀다. 당시 김 회장은 충북 제천 외에도 경기 이천·용인, 전북 무주 등 4곳에서 212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특히 무주에선 평당 2만5000원에 구입한 땅을 37만원에 되팔아 15배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김현재의 정치권 로비 의혹을 내사하기도 했으나,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다. 2004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사기 등 혐의로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알려진 김 회장은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사회적 신뢰를 쌓고 정치권으로 발을 넓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수형자를 위한 장학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2003년에는 사회복지재단을 만들어 소년 수형자 지원활동에 나섰다. 장학금도 수차례 쾌척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영암향교는 지난해 11월 향교 내 교궁서 김 회장의 공적비를 세우기도 했다. 김 회장은 영암군 시종면 출신으로 지난 2004년 영암향교 경서학원 설립기금 6000만원 기탁을 계기로, 시종면민 장학금 46억원, 청소년 교도소 뮤지컬 공연 4억원, 천안 청소년 교도소 재소자 장학금 7억5000만원을 기탁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광주 지역신문인 <호남매일신문>을 사들여 지방 언론 사주가 됐다. 지방 언론 소유는 그의 정치권 인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달콤한 유혹
투자자 설득

김 회장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부 국정자문위원을 맡았던 그는 열린우리당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김 회장을 비호했다고 의심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2006년 검찰은 김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김현재와 관련한 각종 의혹을 알고 있다. 지금 터뜨리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의논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과 선후배로 지냈던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김상현 전 의원은 검찰의 1호 타깃이 됐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이 16대 국회의원이던 2003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김씨로부터 모두 22차례에 걸쳐 13억7000여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김 회장이 김 전 의원에게 건넨 정치자금 총액을 41억6000만원으로 파악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돈에 대해서는 공소를 포기했다.


2007년 대법원은 김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 판결했다.

해당 수사에 대해 ‘정치적 보복’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서 “평소 나를 도와주는 후배가 청소년문화를 연구하는 (내)재단에 기부한 것이다. 그것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거니 할 말이 없더라”고 말했다.

제 버릇 남 못 주고···과거 재조명
언론과 정치권 아우른 ‘검은 손’

한편, 김 회장의 주된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었다. 당시 법원은 210억원대 토지판매 사기를 저지르고, 법인세 88억원을 탈루했으며, 회삿돈 245억여원을 빼돌린 김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벌금 81억원을 선고했다.

출소 후 동종범죄를 저지르는 범죄 순환에 업계 전문가는 재범을 막을 장치가 미비한 탓에 끊임없는 대규모 사기 피해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출소 후 비슷한 방식의 사기 범죄를 기획했다는 점에 대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피해자의 심리를 이용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지난 2016년부터 6년간 사기범 확정 판결문 2061건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재범인 경우가 65.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범 사기의 경우 약 40%가량이 동일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재차 벌인 사기인 점도 분석됐다. 


반복되는 사기를 막기 위해선 처벌 강화를 비롯해 사기범 출소 후 관리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사기 범죄는 총 34만7597건으로 5년 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올해 발간한 <치안전망 2024>에 따르면 올해는 투자리딩방, 보이스피싱 등 악성 사기 범죄가 5대 강력범죄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일각에선 사기 범죄가 많이 늘어나 유죄 확정판결이 난 경우 신상 공개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언론사 대표
정치권 개입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은 “사기 범죄가 형사 처벌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면 피고인이 재산을 이미 다 빼돌리거나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민사로 가도 구제가 쉽지 않다”며 “사기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신상 공개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질하는 등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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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