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이후···4인 파워게임> 고비 넘긴 이재명

‘공룡 야당’ 목줄을 쥐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2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민주당 공천이 ‘비명 학살’서 ‘과반 압승’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정치 행보에 마침내 파란불이 켜졌다.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도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후 6시 정각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과 동시에 화면에는 지상파 3사(KBS·MBC·SBS)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그동안 민주당이 바라던 151석을 훌쩍 넘은 숫자였다.

당과 지역구
모두 승리로

화면을 바라보던 이 대표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피었다. 개표 방송을 참관하던 지지자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했다. 곧이어 인천 계양을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를 꺾으며 당선이 확실시됐다. 연이은 호재에 회의실은 또 한 번 지지자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 이튿날인 11일, 22대 국회의원 선거 최종 개표 결과 민주당은 175석(지역구 161+비례 14), 국민의힘은 108석(지역구 90+비례 18)으로 집계됐다. 국민이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 사이서 전자를 택한 것이다. 이로써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다시 한번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게 됐다.

이 대표의 득표율은 54.12%로 45.45%를 얻은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원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계양 주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그동안 저와 함께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이 대표는 지역구 승리에 대해 “유권자 여러분의 요구대로 이 나라 국정의 퇴행을 멈추고 다시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겠다”며 “저에 대한 여러분의 선택은 윤석열정권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지만, 민생을 책임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책임을 부과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번 선거서 당과 지역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정치권은 민주당의 심판론이 제대로 먹혔다고 봤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이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수를 가지고 그동안 대체 뭘 했냐”는 여론이 들끓었는데, 이를 뒤집을 만큼 민심이 크게 일렁였다는 분석이다.

이로써 제1당을 지켜낸 민주당은 막강한 입법 권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범야권을 합하면 192석까지 가능한 만큼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으로 법안을 강행할 수 있고 반대 측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하는 권한도 생긴다. 국무총리나 대법관 등 임명동의안은 물론 국회의장도 당에서 배출할 수 있다.

계양·민주당 둘 다 지켰다
리더십 회복에 대권도 탄력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22대 국회에 들어섬과 동시에 범야권과 힘을 합쳐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사수할 것으로 예측했다. 법사위원장은 법안 처리를 비롯한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지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의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었는데 당시 쟁점 법안을 두고 여야가 강하게 부딪히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초반부터 법안·예산 처리의 주도권을 잡아 22대 국회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선거 이튿날 이 대표는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서 “이제 선거는 끝났다. 여야 정치권 모두가 민생 경제 위기 해소를 위해서 온 힘을 함께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당면한 민생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며 “대한민국을 살리는 민생 정치로 국민의 기대와 성원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이번에는 처음부터 당이 단결해서 꼭 필요한 개혁 과제를 단호하게 추진해나가는 의지와 기개를 잘 보여야 한다”며 당선인에게 사명감을 갖고 활동할 것을 당부했다.

김부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도 “무능과 불통의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견제함과 동시에 민생을 최우선시해 내일을 탄탄히 준비해 나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제1야당의 이재명 대표를 만나서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고 국가적 과제 해결 방안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지난 국회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시행한 각종 법안을 다시 띄우면서 용산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종섭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22대 국회 들어서기 전부터 정부여당을 몰아세우는 이들도 있었다.

숨 가쁜
법안 릴레이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을 시작으로 총 9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중에는 노란봉투법, 방송3법, 간호법, 이태원참사특별법 등이 포함됐다.

특히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별검사법을 다루는 일명 ‘쌍특검’을 강하게 재추진하겠단 입장이다. 쌍특검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지 55일 만에 재표결에 부쳐졌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결국 최종 폐기됐다.

이를 기점으로 민주당은 ‘민심을 거부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심판론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9일 법원에 들어서기 전까지 윤정부의 실점을 강조했다. 이날 이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서 예정돼있던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재판 참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11분간 말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잡으라는 물가는 못 잡고 정적과 반대 세력만 때려잡는다”며 “총선을 겨냥해 사기성 정책을 남발해 분명한 불법 관권선거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 도중 이태원 참사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오직 은폐에만 혈안이 된,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정권”이라며 “‘입틀막’ ‘칼틀막’도 모자라서 ‘파틀막’까지 일삼는 바람에 독재화가 진행된 국가라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어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최일선에서 이념전쟁을 벌이고 폭압적인 검찰통치가 이어지면서 대화·타협·공존은 사라지고 법치주의·삼권분립·헌정질서는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국민을 완전히 능멸하는 정권”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다른 때와 달리 날이 서 있다는 평을 받았다. 총선이 하루 남긴 시점이었던 만큼 자신을 향한 정치 수사의 부당함과 윤정부 심판론을 동시에 부각시킨 것이다.


계파 갈등
정면 돌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이 대표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대선 패배의 쓰린 상처를 뒤로하고 자신의 얼굴로 치른 선거서 압승을 거두면서 대권주자로서 또 한 번 입지를 다졌다.

그동안 이 대표는 크고 작은 풍파를 겪었다. 2022년 3월 대선서 패했지만 곧바로 당권을 잡으면서 계파 갈등의 시작점을 알렸다. 이후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충돌하면서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도 생겼다.

지난 1월부터 친명과 친문(친 문재인)이 크게 부딪혔다. 공천 파동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면서 민주당이 이대로 총선에서 패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이 대표는 계파 갈등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지지율을 깎으면서까지 친명 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줄 탈당이 이어지고 당적을 옮기는 이들이 생겼지만 이 대표는 노선을 틀지 않았다.

이 과정서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내기 위한 ‘방탕 정당’이라는 비판도 적잖게 나왔다. 지난해 9월 자신의 불체포특권 가결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점에서다.


당시 국회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부친 결과 재석 295명 가운데 찬성 149표, 반대 136표로 국회를 통과됐다. 국민의힘 111명과 정의당 6명 등 가결표를 던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120명을 제외하고도 최소 29명의 이탈표가 민주당서 나온 셈이다.

경선이 거듭되고 공천이 마무리될 때 즈음 더 이상 당내서 날선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 대표를 구심점으로 한 친명계가 당을 장악한 것이었다.

‘공천 학살’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 대표는 혁신 공천을 강조했다. 결국 이번 총선서 민주당이 승기를 거머쥐면서 이 대표의 선택이 옳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 대표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불체포특권도 지켜냈다.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던 방탄 프레임의 덫에 또다시 놓일 수 있는 상황이다.

공천 학살, 경선 후폭풍…
큰 그림 마지막 목표는?

방탄 논란은 여당은 물론 비명계 인사들이 여러 차례 지적했던 부분이다. 현재 민주당이 친명 일색으로 꾸려졌다지만 또다시 갈등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건은 오는 8월에 열리는 전당대회다. 친명 지도부가 들어선다면 대선을 치르기 전 남은 3년 동안 이 대표의 정치 행보가 평탄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자취와도 닮았다. 문 전 대통령도 2016년 총선을 석 달 앞두고 김종인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에게 권한을 넘긴 뒤 사퇴했다. 자신이 영입한 인물에게 모든 걸 맡긴 상태서 안정적으로 대권을 준비한 것이다. 이처럼 이 대표가 자신의 세력을 당 곳곳에 심고 떠날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당 대표를 추려내기도 했다. 경력이 많은 거물급 인사를 비롯해 ‘강경 친명’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하나둘 이름을 올렸다.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당선돼 4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정치 9단’ 박지원 당선인도 그중 하나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자신의 지역구는 물론 다른 민주당 후보를 찾아 선거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더 많은 지지자에게 자신을 알리는 등 차기 당 대표를 염두에 둔 ‘셀프 홍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 정청래·박찬대·우원식 등 굵직한 친명 의원 또한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거론된다.

현재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설’에 대해 강하게 선을 긋고 있다. 그는 지난달 기자회견서 전당대회와 관련한 질문에 “당 대표는 정말 3D 중에서도 3D”라며 “누가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일각에서는 친명으로 뭉친 민주당이 오히려 이 대표의 약점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권주자로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중도층 표심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폭넓은 확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서 컷오프된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경선서 탈락한 비명계 박용진 의원을 차기 당 대표로 거론했다.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비 이재명계는 죽고 친 이재명계는 산다)’ 공천으로 논란이 됐던 인사를 지도부로 내세우면서 중도층에게 단합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다.

지금의 민주당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한몸이 된 민주당은 21대 민주당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정치 호황기’를 맞은 이 대표의 두 손에 민주당의 생명이 달렸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화영 15년 구형, 이재명 재판 영향은?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8일 검찰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다.

이날 이 부지사는 최후 변론서 “검찰 조사 내내 저는 이재명 대표를 구속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구나 생각했다”며 “변호인도 ‘검찰이 사건을 이렇게 만들어가는구나’라고 표현할 정도로 검찰이 정치적 도구가 돼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고 거짓 증언과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민주당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죽이기’ 공작 수사를 해놓고 군사 독재 연상케 하는 정치검찰의 잔인한 구형”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부지사가 검찰 수사 과정서 대북송금 의혹에 이 대표가 연루돼있다는 진술을 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게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현재 이 대표 또한 대북송금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만큼 이 전 부지사의 형량이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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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이 자랑이라고···노소영 카드에 국민들 화났다

비자금이 자랑이라고···노소영 카드에 국민들 화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전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노태우정권의 비자금 논란으로 번졌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조사해 과세해달라’고 강민수 국세청장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수십년간 숨겨온 노씨 일가의 ‘안방 비자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노소영 전 나비 관장은 ‘노태우 비자금이 SK그룹을 성장시켰고, 늘어난 자산의 상당 부분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은 재판부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300억원이 SK에 유입된 것으로 인정했다. 문제는 300억원의 출처와 성격이다. 자기 돈도 아니면서··· 노 전 관장 측은 항소심서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의 아내 김옥숙 여사가 1998~1999년 사이 작성한 비자금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해당 메모에는 ‘선경(SK 전신) 300억원’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노 전 관장 측은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현 전 선경 회장에게 비자금 300억원을 주고받은 것이라며, 지난 1991년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에 대한 사진 등도 제출했다.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의 ‘폭력적 불법 비자금’이 노 전 관장에 의해 소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재계 인사는 “불법 비자금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조차 없이 자랑스럽게 노태우 비자금을 언급하는 노 전 관장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인식되기에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퇴임할 때도 ‘재산이 5억’이라며 ‘그 정도면 족하다’고 먼저 얘기했던 사람이다. 실제론 임기 동안 선경에게 불법 비자금을 거둬들이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으니 비판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도 같은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먼저 노태우정부 시절 경제수석 등을 지낸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지난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선경건설이 당시 발행한 50억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에선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이혼소송 과정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각선 “죽은 아버지 부관참시 꼴” 지적 국민들은 “그 아버지에 그 딸” 비웃음도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과 정혁진 변호사도 지난달 9일 방송된 <어벤저스 전략회의>서 김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이나 ‘비자금’이 SK의 성장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결했다. 노 전 관장 측 역시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노 전 관장 측의 기여도가 크다고 보고, 최 회장이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에 즉각 반발했고, 최근 상고심 시작에 앞서 500여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다양한 쟁점 가운데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후광 등은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오히려 손해가 됐다는 주장이다. 즉, SK가 국내 재계 2위까지 발돋움할 수 있던 배경에 노 전 관장 측의 큰 도움이 없어 재산분할 금액이 축소돼야 한다는 얘기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자금이 당시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 등에 쓰였다고 판단했으나,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은 반박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다 손 명예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관장 측의 “300억원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 등으로 쓰여 SK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전면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 과정서 SK 측은 300억원을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고, 퇴임 후 그에 상당하는 돈을 노 전 대통령에게 주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관장 측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은 은닉재산마저 들춰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조성했다가 추징된 2628억원과 별도로 부인 김 여사가 관리해 온 드러나지 않은 돈이 있다는 ‘안방 비자금’ 의혹이다. 이혼소송서 제출한 904억원의 내역이 적힌 ‘김옥숙 메모’ 외에 노 전 대통령 일가서 또 다른 자금흐름이 포착된 것이다.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원장(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김 여사 명의로 출연금 147억원이 입금됐다. 김 여사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각각 현금 10억원, 2018년 예적금 12억원, 2020년 예적금 95억원, 2021년 예적금 20억원을 출연했다. 특히 아들 재헌씨가 원장으로 취임한 지난 2020년 출연금 규모(95억원)가 두드러진다. 재헌씨는 2019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부친을 대신해 사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병세로 재헌씨가 대외 활동에 나선 시점과 자금 출연 시점이 맞물린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지난 2012년 설립된 한중문화센터서 시작된 재단으로 동아시아국가 상호 간 전략문화 협력과 청년 교류를 주요 사업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론 북방정책 평가사업 등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정책 기념사업이 대부분인 사실상의 노씨 일가 재단에 불과하다. 또 다른 ‘안방 비자금’ 포착 김옥숙 여사 ‘돈세탁’ 의혹 법인결산 공시서 지난 2021년 기준 총 사업비용 3억5000만원 중 공익목적 사업비로 분류한 2억6000여만원의 쓰임새도 눈길을 끈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치적으로 평가받는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과 정치적 기반이었던 대구지역 학생 장학금 등 ‘노태우 기념’ 용도로 쓰였다. 센터 자산도 대부분 김 여사의 출연금으로 이뤄졌다. 지난 2021년 기준 총 자산가액 153억원 가운데 그의 출연금(147억원)이 96%에 달한다. 재단이 지출하는 연간 사업비용은 김 여사 기부금의 이자 수준인 1~2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지난해 기준 연간 총사업비용은 1억9000만원이고 이 중 공익목적 사업은 5000여만원이다. 2022년도에는 총 2억4700만원 중의 사업수행 비용 중 공익목적은 1억3000만원이다. 사무실 주소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았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건물이다. 이 건물은 노 전 대통령 별세 이후 부인인 김 여사가 상속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김 여사가 5차례에 걸쳐 출연한 거액의 자금 출처를 두고 의혹이 나온다. 김 여사가 출처 불문의 거액과 노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조성한 비자금을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 여사는 280여억원을 미납 중이던 2010년, 모교인 경북여고에 5000만원을 기부해 사회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김 여사가 만약 비자금으로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기부했다면 정당성과 절차 모두 문제될 여지가 있다. 특히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연자 명세서에 이사장인 노재헌 원장과 기부자인 김 여사의 관계에는 모자지간임에도 ‘해당없음’으로 기재됐다. 뻔뻔히 꺼내다 이는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여사가 영부인이던 시절 청와대서 대기업 총수 부인이나 여성 기업인들과 수시로 면담하면서 현금을 받았다는 의혹은 전두환·노태우정부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1995년에도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 비자금 진상조사위원장이었던 고 강창성 의원은 국회서 “김옥숙 여사 친·인척이 관리하는 것은 전혀 노출되지 않는데 이 문제까지 이번에 조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씨 일가는 46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서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3년 이를 완납했으며, 이 과정서 추징금 낼 돈이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동생인 노재우씨와 아들 재헌씨의 처가인 신동방 측과도 소송전을 벌였다. 법조계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2013년 추징금을 완납하는 과정서 돈이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와 아들 재헌씨의 장인이었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과 재산 환수 소송까지 벌였던 것을 되짚어보면 재단 출연금의 출처가 더 석연치 않다”며 “연간 사업비가 2억~3억원 수준인 재단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한 것 자체가 출처가 불명확한 자금을 편법 증여해 세탁하는 용도로 활용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연자 명세서에 ‘이사장(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해당없음’이라고 적시한 것을 두고도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남 노재헌에 흘러간 수백억원? 정치권 “철저히 조사해 환수해야” 노씨 일가의 은닉재산 논란에 대한 국세청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국회서도 잇따른다. 국세청은 상속세 등을 부과할 수 있는지 등을 두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지난달 27일 기재위 전체회의서 노 전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해달라는 내용의 탈세 제보서를 강민수 국세청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과정서 김 여사가 작성한 비자금 메모가 증거로 인용됐다는 점을 토대로 비자금에 대해 과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김 의원은 “김 여사의 메모에 기록된 904억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은 노 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은닉하다가 가족들에게 사전 증여했거나, 사망 후 상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이혼소송서 쟁점이 된 300억원은 그 일부로, 상속세 부과 제척 기간이 남아 있어 과세에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이혼소송서 드러난 300억원뿐 아니라 메모 속 기록된 채권, 금고 등에 숨겨둔 904억원의 은닉재산을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서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김 여사가 만약 부정 축적한 ‘안방 비자금’을 숨겨왔다가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한 것이라면 과세 여부 문제를 넘어 법적 정당성과 안정성 측면서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재산분할과 위자료 등을 포함해 ‘1조3803억원과 20억원을 노 전 관장에게 주라’고 판결한 것을 두고 법무법인 평안 이상원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노태우정권서 황태자로 불렸고 노태우 대통령 부인인 김 여사의 이종사촌 동생인 박철언 전 장관의 사위다. 히든카드가 국회 이슈로 박 전 장관은 노태우정권 당시 정무 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냈다. 이상원 변호사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변호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로 재판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변호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노 전 관장이 불법 비자금임을 알면서도 당당히 300억 카드를 꺼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