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

아주 특별한 판다와 너무 아쉬운 작별식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37년 차 베테랑 사육사가 돌보던 판다 곰과 헤어졌다.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의 이야기다. 국내 최초 판다 자연분만 번식에 성공한 강철원 사육사는 1354일 동안 푸바오와 특별한 궁합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관심을 받았다. 게다가 모친상을 당하고도 푸바오의 중국행에 동행하며 누리꾼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강철원 사육사가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보였다. 그는 모친상 중에도 푸바오의 중국행에 동행했다.

지난 2020년 7월20일 에버랜드서 태어난 첫 번째 자이언트 판다가 1354일 만에 중국으로 떠났다. 푸바오는 2016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친선 도모의 상징으로 한국에 보내온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 사이서 2020년 7월20일, 에버랜드서 태어났다. 푸바오는 국내 첫 자연번식 출생 판다로, ‘용인 푸씨’ ‘푸공주’ ‘푸뚠뚠’ 등으로 불리며 국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내 태어난 
첫 번째 판다

에버랜드는 푸바오 팬들을 위해 지난 3일 오전 10시40분부터 20분간 판다월드서 장미원까지 푸바오 배웅 행사를 열었다. 푸바오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6000여명의 인파가 아침부터 몰렸다.

판다월드서부터 출발한 트럭이 에버랜드 장미원 분수대 앞에서 멈춰 섰다. 이날 강 사육사와 송영관 사육사가 판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강 사육사는 “새로운 판생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푸바오를 지금까지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푸바오를 영원히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송영관 사육사는 “팬들의 사랑 덕분에 푸바오가 잘 성장했다. 푸바오와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1354일간 함께해 주셔서 고맙다”고 소회를 전했다.

푸바오 팬들은 사육사에게 “그동안 잘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사육사들이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를 향해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강 사육사는 편지를 통해 “푸바오, 검역을 받는 중에 번식기까지 잘 견뎌낸 네가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 이제 푸바오는 어른 판다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다 해냈구나. 떠나기 전 모든 과정을 이뤄낸 푸바오가 할부지는 대견스럽단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강 사육사는 푸바오와 함께 트럭에 탑승한 채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났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기 전날 갑작스레 모친상을 당했지만,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에버랜드 한 관계자는 “푸바오와 이별을 하루 앞두고 전해진 갑작스러운 소식에 강 사육사도 상심이 매우 큰 상태”라며 “강 사육사에게 모친의 장례를 치르라고 권고했으나 강 사육사가 ‘돌아가신 어머님도 푸바오를 잘 보내주길 원하실 것’이라는 가족들의 격려를 듣고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하기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주한중국대사도 강 사육사의 모친상에 애도를 표하며 깊은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푸바오 환송행사에서 “강 사육사가 오랜 기간 한국에 온 판다 가족에 사랑과 세심한 배려로 한중 우의를 보여줬다”며 “이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수한 날(모친상)임에도 사육사가 푸바오가 중국으로 동행하기로한 데 대해 깊이 감동했다”며 “주한중국대사관을 대표해 숭고한 경의를 표하고 가족에게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37년 차 베테랑 수의사
국내 첫 맹수 인공 포육

강 사육사는 1969년 7월18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산정리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강 사육사의 아버지가 토끼를 잡아 오자 몰래 풀어주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강 사육사는 농업고등학교 축산과를 졸업하고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재직 중이던 선배의 취업설명회를 들은 것을 계기로 1988년 1월 공채에 합격했다. 입사 초기엔 쥐, 고슴도치와 같은 소동물을 담당하며 사육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표범이 수많은 관람객이 보는 앞에서 새끼를 낳았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새끼를 포기했다. 강 사육사는 담당 동물도 아니었지만 살아 있는 동물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인공 포육을 자원했다,

하지만 당시 맹수 인공 포육은 대부분 40일을 넘지 못하고 장염으로 폐사하는 등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강 사육사는 당시에는 인공 포육에 관한 자료가 없어 외국 원서를 찾아보고, 입대 이틀 전까지 밤낮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동물원을 오가며 하루 8번, 3시간 간격으로 수유시켜 국내 최초로 맹수 인공 포육을 성공시켰다.

이후 말, 낙타 등을 돌보다 1990년대 들어 맹수 사육을 맡기 시작했으며 1994년에는 사파리서 곰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한중수교 2주년 기념으로 도입된 판다 밍밍과 리리를 맡으면서 판다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당시 사파리 근무 중이었는데 사파리 일이 너무 재미있고 본인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단칼에 부서 이동을 고사했으나 다음 날 근무지가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중국과 한국이나 둘 다 동물 사육이나 판다 연구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어 문제가 많았다. 

당시 한국서 사육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물 밥 주고 똥 치워주는 사람’의 이미지가 강했고, 중국은 대약진운동 및 문화대혁명이 불러온 빈곤 때문에, 판다 자체는 보호받았으나 번식 및 습성 연구는 거의 되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됐으나, 중국서도 사육사는 밥 주고 똥 치우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1354일간
함께하다

그런 이유로 당시 중국이나 한국서 판다 사육사라고 해봐야 비슷한 종류의 동물(주로 곰)을 오래 다뤄본 이들을 차출해 급하게 판다의 습성, 생태계 같은 간단한 노하우를 연수시킨 후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판다들을 위해 열어준 파티의 상차림이 백설기, 생크림 케이크 같은 사람이 먹는 음식들이라 화난 판다가 밥상 뒤집기를 시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판다 종주국인 중국도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성별도 구분하지 못해 한국에는 암컷 판다로 한 쌍을, 소련에는 수컷 판다로 한 쌍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동물원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국가 경제 자체가 벼랑 끝에 몰린 마당에 외국에 거액의 판다 임대료를 지급해야 하냐는 범국민적 여론이 조성됐고, 설상가상으로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그룹도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1998년 판다 밍밍과 리리를 중국에 다시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도 강 사육사 본인이 직접 판다 밍밍과 리리를 김포공항으로 배웅했다.

이후 본래 담당 부서인 맹수 종류로 돌아가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백호 번식을 성공시켰고, 2005년 몽키밸리(현 알버트 스페이스 센터)로 이임해 1년10개월간 오픈 준비를 맡아 2007년 몽키밸리를 오픈시켰다. 2009년에는 오랑우탄을 번식시키는 등 국내 번식이 어려웠던 동물들을 연달아 번식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2017년에는 어미에게 버림받은 황금머리사자타마린 찬이의 인공 포육과 재활을 성공시키며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그러던 중 강 사육사가 다시 판다를 담당하게 됐다. 지난 2014년 중국 시진핑 주석이 방한했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회담서 판다 재도입이 논의되면서다.

강 사육사는 논의 당시 판다 사육 경험이 있는 본인이 담당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고 제의가 왔을 때 몽키밸리에서 함께 일했던 송 사육사, 이세현 사육사를 합류시키는 조건으로 판다월드를 맡기로 했다.

그는 판다 재도입 이전인 2016년 1월13일부터 3월3일까지 2개월간 중국 쓰촨성 두장옌 판다 기지에 머무르며 연수를 받았다. 연수 당시 자신이 담당했던 리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더니 늙은 판다 한 마리가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고 한다.


대나무 찾아
매일 출장길

강 사육사가 자연농원 시절에 불렀던 것처럼 “리리~ 리리~” 하고 부르자 갑자기 돌아보며 뚜벅뚜벅 걸어와 쳐다보며 아는 체를 해줬다고 한다. 이때 동행한 중국 당국 관계자들이 “리리가 평소에는 저렇지 않으며 당신은 판다 아버지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치켜세우며 ‘슝마오빠바(판다 아빠)’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판다 할아버지로 불린 시초인 셈이다.

강 사육사는 판다와의 벽을 허물기 위해 판다 우리 옆에 야전침대를 놓고 자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지난 2019년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중국 연수 당시 두 달간 교감을 위한 시간을 가졌는데 러바오는 철이 없어 보이는 만큼 쉽게 친해졌지만 아이바오는 낯선 사람을 두려워해 친해지는 데 2~3주 걸렸다”고 말했다.

강 사육사는 식성이 예민한 판다들을 위해 매일 경상남도 하동군서 당일 채취한 대나무를 가지러 매일 출장을 다니기도 했다.

그는 “동물원의 사육사로 있으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서 “판다를 번식시켜서 국내 최초로 아기 판다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꿈이다. 올해에는 아기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다. 판다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게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판다의 임신과 출산은 1년에 약 3~4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가임기 탓에 시도 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판다의 기질 탓에 번식기에 잠깐 만나 짝짓기에 성공할 확률 역시 매우 낮은 편이다. 강 사육사도 2018년부터 판다 번식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번은 러바오가 갑자기 성호르몬이 급상승하면서 아이바오와 짝짓기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 아이바오가 외출한 사이에 러바오를 아이바오 사육장에 들여보냈고 러바오의 체취를 남겼다. 그러나 아이바오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인지 들어오자마자 다른 판다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마구 화를 내기도 했다.

중국서도 판다 아빠로 인정
모친상에도 귀환 동행 감동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관람객이 줄자 아이바오와 러바오 모두 스트레스가 해소됐는지 합사 후 임신에 성공했다. 

2020년에는 국내 최초로 판다의 자연분만 번식에 성공하며 푸바오를 얻었다. 당시 강 사육사는 “한국에서는 판다 번식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며 “처음 겪는 과정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통상 판다가 출산하면 중국서 판다 전문가를 파견한다. 그러나 당시엔 코로나로 국제이동이 막혀 중국 전문가 1명만 국내로 파견됐고, 나머지는 CCTV를 통해 아이바오의 출산을 지켜봤다. 

대중은 푸바오와 사육사들의 교감을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영상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를 각각 ‘강바오·할부지’ ‘송바오·작은 할부지’로 부르고 있다. 마치 사육사들이 ‘진짜’ 판다 가족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별명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난해 7월7일 암컷 판다 쌍둥이를 다시 자연분만 번식으로 얻으며 판다 할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더욱 견고히 했다.

판다 외교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깜짝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 정부가 미국에 판다 2마리를 선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판다는 ‘죽의 장막(Bamboo curtain)’으로 불리던 중국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은 판다를 자원확보와 무역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우라늄 공급계약체결 후 캐나다·프랑스·호주에 판다를 보냈고,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에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보답으로 판다를 선물했다.

해외로 임대된 판다들은 ‘어느 대사보다 유능한 외교관’으로 불리며 교류와 우호의 상징이 됐다. 문제는 각국서 사랑받던 판다들이 푸바오처럼 4세가 되기 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미국서 태어난 판다는 반환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됐을 정도로 비판 여론이 거셌다.

중국 정부는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판다를 다시 보내기로 결정하는 등 판다 외교 재개에 나섰지만, 세계 곳곳 동물원서 ‘눈물의 작별식’이 이어진다면 판다 외교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3일 늦은 오후 중국 청두국제공항에 도착한 푸바오는 케이지 가림막 없이 소음과 카메라 플래시에 노출돼 긴장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거기서도
행복하렴”

한 관계자가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푸바오를 찌르는 모습과 푸바오가 낯선 손길에 움츠러드는 모습도 고스란히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면서 누리꾼들은 ‘저럴 줄 알았다’ ‘다시 한국으로 보내달라’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구센터 측은 “이들은 센터의 전문 수의사들로 손가락 터치는 푸바오의 컨디션 확인을 위해 필수적인 검사였다”면서 “푸바오는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라고 밝혔다. 함께 중국에 간 강사육사도 “푸바오가 조금 긴장해서 예민했지만 이건 정상”이라면서 “중국 사육사들이 사육 방법을 잘 알고 높은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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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