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한 장?’ 탐정과 흥신소 모호한 경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4.02 09:35:44
  • 호수 1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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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캐는데 뭐가 달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람을 찾고 싶다. 이름과 학교만 알고 다른 정보는 모른다. 이런 경우도 사람을 찾을 수 있나?” <일요시사>는 한 탐정사무소에 가상의 사람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최소한의 정보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선불로 돈을 지급해야 하는 데다 해당 업체가 사기인지 아닌지도 알 길이 없다.

흥신업은 1961년 9월23일 제정돼 1977년 12월30일까지 시행된 ‘흥신업단속법’으로 규정됐다. 이 법률에서는 ‘타인의 상거래·자산·금융 기타 경제상의 신용에 관한 사항을 조사해 의뢰자에게 알려 주는 업’을 흥신업이라고 정의했다.

법명으로부터 드러나는 것처럼 국내서 흥신업이 법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다. 물론 흥신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고 해서 범죄는 아니지만, ‘흥신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업무에는 불법적인 일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탐정업법
입법 공백

2020년 2월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같은 해 8월부터 흥신소는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흥신소는 ‘탐정’과 ‘탐정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합법의 영역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입법 공백은 존재한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40조 제1항에는 ‘변호사법 및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서 탐정업무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탐정업무서 위법 소지가 있는 업무는 ▲수사·재판 중인 사건에 관한 증거 수집 ▲사기 사건서 상대방의 기만행위 등 범행을 입증할 자료의 수집 ▲교통사고 사건서 인근 CCTV 확인 등 사고 원인을 규명할 자료 수집 ▲이혼소송서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자료 수집 등이 있다.


또 도피한 불법행위자나 가출 성인의 소재를 확인하는 것도 불법이다.

예를 들어 ▲잠적한 채무자나 범죄 가해자의 은신처를 파악하거나 소재를 확인하는 행위 ▲가출한 배우자나 성인인 자녀의 거주지를 확인하는 행위가 해당된다.

처리 가능한 업무는 ▲탐정 명칭을 상호·직함으로 사용하는 영리활동 ▲가출한 아동·청소년이나 실종자의 소재 탐색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있어 대상자 동의가 없어도, 정보 주체의 생명·신체·재산상 이익을 위한 일 등이다.

이 밖에도 ▲부동산등기부등본 열람 및 요약하는 등 공개된 정보의 대리 수집 ▲채용 대상이나 거래 상대의 동의를 전제로 이력서·계약서 기재 사실의 진위 확인 ▲도난·분실·은닉자산의 소재를 확인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탐정업무가 합법화되면서 ‘민간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 단체도 생겼다. 경찰청은 탐정 민간자격증을 발급하는 단체를 관리·감독하고, 심부름센터 및 흥신소에 대한 관리·감독을 시행한다. 국가공인자격증은 없고 전부 민간자격증으로 운영된다.

이름·생년월일만 알면
유명인 개인신상도 제공

<일요시사>는 한 탐정사무소에 직접 연락해, 불법에 해당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고 있는지 확인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대부분의 탐정사무소들은 흥신소 간판을 달고 운영하고 있었고 전부 ‘탐정사무소’를 자칭했다. 


기자는 “사람을 찾고 싶은데, 이유는 알려줄 수 없다”며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문의했다. 업체 관계자 A씨는 “사람을 찾아주거나 법적 증거가 필요할 때 도움을 준다”고 답했다. 해당 업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40억원 사기 피의자를 검거했다거나, 외도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는 등의 사업 내용 및 실적을 홍보하고 있었다.

업체에 따르면 외도, 폭행, 특정 인물의 행방, 개인·기업 문제, 채권 채무 등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해결해주고 있다.

“찾고 싶은 사람의 신상 정보를 알고 있느냐?”는 A씨의 질문에 기자가 “현재 연락이 안되는 사람이고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이름과 출신 학교 정도만 알고 있다”고 답하자 어떤 관계인지 물어 친구였다고 답했다.

A씨는 “그 정도 정보로는 주소, 전화번호까지 알려줄 수 있다. 학교 정보를 알 수 있으면 생년월일도 알 수 있지 않나?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도 있고. 사람을 찾으려면 기본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한다.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는 데만 5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보마다 돈을 받는데, 기본적으로 주민등록번호, 핸드폰 번호, 집 주소, 회사나 학교 정보는 각각 50만원이다. 집이나 핸드폰 번호는 본인이 선택하면 된다”며 “그나마 학교 정보라도 있으니 주민등록번호를 아는 게 싼 것이다. 생년월일을 알 수 있으니까”라고 부연했다.

“이 정도의 제한된 정보로 어떻게 사람을 찾을 수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A씨는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결제는 무조건 선불이고 현금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찾기로 마음먹게 되면 직원을 보낼 테니 현금을 준비해달라고 귀띔했다.

합법 위장
불법은 불법

A씨는 사무실 위치를 알려주면 찾아가겠다고 하자, 사무실 주소도 비밀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름과 생년월일만 알면 전화번호 등 그밖의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셈이다. 개인정보는 일반인은 물론, 유명인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기자가 “유명인의 정보도 알 수 있느냐”고 묻자 A씨는 “직업이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다만 더 비싸질 순 있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업무가 불법이 아니냐는 물음엔 “불법이라면 불법이고 아니라면 아닌데, 아무래도 개인이 모르게 하는 일이니까…”라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맡겼다가 2차 피해를 입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한 네이버 카페에는 다단계 피해를 탐정사무소를 통해 해결했다는 홍보글이 난무하고 있는 것. 한 회원은 자신을 탐정이라고 소개하며 “다단계 사기 피해도 환불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그는 “지인 4명이 동시에 의뢰했다. 피해 금액은 6억원이었고, 대면 상담으로 진행했다. 아쉽게도 피해 금액은 6억원이지만 5억원만 받았다. 의뢰인이 합의해서 어쩔 수 없었다. 수수료는 피해 금액의 10%였다”고 설명했다.


해당 홍보글에는 B 은행 어플로 돈을 받은 내역과 해당 은행 지급정지 사실 통지서도 첨부돼있었다. 자신들이 대포 계좌를 막아 환불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명함까지 함께 올렸다.

이어 “이런 다단계 사기는 경찰이나 변호사 사무실서 돈을 찾아주지 않는다. 현재 돈을 찾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통장 지급정지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다단계 회사는 돈세탁을 진행하고 있다. 더 이상 다단계 회사에 돈을 보내지 말라. 일하는 것은 무료가 아니지만 상담은 무료니 언제든 연락 달라”고 마무리했다.

금액으로
비교하니…

하지만 해당 글은 다단계나 사기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또 다른 사기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천지일보>에 따르면 해당 탐정사무소는 워너비그룹뿐만 아니라 독도·세이브볼튼 로또, 비스타7, 코인파크, 유튜브 구독 아르바이트 사기, 리더스·데일리·세이브 복권 등 다양한 사기 의혹을 받는 업체에 대한 설명과 함께 대포통장 구매를 통한 피해 복구 구제 글을 여럿 올렸다.

해당 업체는 사기 의혹을 받는 업체마다 투자 수법 등을 자세히 사명하고 있어 실제 피해자와 쉽게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당 글이 제시한 B 은행의 지급정지 사실 통지서와 거래내역조회 계좌는 해당 은행이 쓰는 양식이 아니었다. 즉 허위 문서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애당초 해당 다단계 업체는 대포통장으로 사기를 치는 곳도 아니었다.

해당 글이 사기인지 궁금해 물어보는 누리꾼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유튜브 구독 아르바이트 사기를 당했다. 3000만원 중 일부라도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에 탐정사무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얼굴을 보고 직접 계약한다고 하는데, 2차 피해를 입기 싫어 자문을 구한다”며 탐정사무실 블로그 캡처 사진을 게시했다.

그러자 댓글에는 “하지 마시라. 돈을 찾아 준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2차 사기꾼이다. 사기를 허위신고하게끔 유도해서 돈을 찾게 한 다음 수수료를 떼가는 방식으로 영업한다” “착수금이 너무 비싸다” “사기 치는 사람보다 다시 뒤통수치는 사람이 더 나쁘다” “2차 사기가 맞다. 다단계 사기 피해자들에게 보이스피싱 사기에나 가능한 계좌 지급정지를 해 준다며 접근하는 것이다. 제시한 서류도 위조된 것”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사기 피해자에 2차 사기 시도
“탐정업 제도적 장치 보완해야”

탐정사무소서 2차 가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위 사례와 비슷하게 급하게 돈이나 사람을 찾겠다고 선불로 입금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식이다.

10년 이상 해당 업계서 몸담았다는 C씨에 따르면, 국내 탐정사무소는 대부분 무허가에 사무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탐정사무소는 일주일 비용이 기본 200만원서 300만원으로, 선불 받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연장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일을 하지도 않는다”며 “증거가 다 수집됐어도 의뢰인에게 알려주지 않고 기간을 연장해 추가 비용을 받는다. 탐정사무실은 보통 위치추적기만 달아놓고 파악하다가 수상한 지역에 도달했을 때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탐정사무실은 경찰 출신이 있다고 광고하지만, 이는 모두 허위 정보다. 진짜 경찰 출신이 탐정사무실서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사기 피해자가 연락하거나, 배우자의 외도로 증거를 찾기 위해 연락하는 경우 2차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C씨는 “탐정사무소에 일을 의뢰할 때는 계약서 작성 및 신분증 확인 후 휴대폰으로 찍어놔야 한다. 계약서를 쓰지 않는 곳도 많다. 통화할 때는 무조건 통화 녹음을 해야 한다”며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선불이라고 하면 무조건 기간이 연장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불제로 해야 하고, 의뢰 후엔 일을 실시간으로 보고해 달라고 하라. 통화로 계약할 땐 탐정사무소 직원의 차량번호와 신분증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을 지키지 않으면 2차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일반인이 흥신소와 탐정사무소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흥신소도 자격증을 갖고 영업한다. 사업자등록번호가 없거나 흥신소 자격증이 없다고 하면 불법 사업장인지 의심해봐야 한다”면서 “사업주와 입금자명이 다른 것도 사기일 수 있다. ‘무조건 된다’ ‘찾을 수 있다’고 하는 곳도 피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구분하기
쉽지 않아

업계에선 이 같은 현실 때문에 합법적인 탐정 활동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탐정협회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사설이 아닌, 국가공인자격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 있는 탐정업 관련 공식 민간협회는 PDA와 한국공인탐정협회 두 곳으로 확인된다.

한 탐정업 관계자는 “미국서 사설탐정산업은 합법이다. 공인탐정법이 있어 민간탐정사업이 가능하지만, 아직 국내는 탐정법 자체가 확립되지 않아 업무적 제약이 있다. 불법이 아닌 선에서 정보를 찾는 것은 가능해졌지만, 이제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 불법 흥신소를 잡고 윤리적 탐정을 배출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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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