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 대응?’ 온라인 살인 예고 후일담

“걸리기만 해봐” 으름장 놓더니 솜방망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허용되는 설정의 영화 <더 퍼지>. 지난해 대한민국은 마치 <더 퍼지> 같았다. 연속된 ‘묻지마 범죄’와 난무한 ‘온라인 살인 예고’로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엄정 대응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 법안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난 만큼 새로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살인사건과 서현역 흉기 난동 살인사건이 트리거가 돼 폭주했던 온라인 살인 예고 글에 대한 처벌이 미미하다. 검찰이 법정 최고형이 나올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과 달리 법원은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검찰에 송치된 189명의 온라인 살인 예고 글 게시자 중 32명이 구속 기소됐다. 

대부분
무죄·집유

하지만 이들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무죄나 징역형 집행유예에 그쳤다. 당초 서현역 흉기 살인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게시글이 각종 온라인서 쏟아지자 경찰과 검찰은 엄정 대응을 시사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당시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 엄중 처벌할 것이며 해당 장소에 경찰특공대를 배치해 신속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두 차례 중대강력범죄 엄정대응 긴급회의를 열고 ▲강력범죄 전담부서 및 전담 검사 중심의 대응체계 정비 ▲사건 발생 초기부터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피해 확산 방지 및 신병‧증거 확보 철저 ▲증거관계를 면밀히 살펴, 처벌 규정 적극 적용 ▲원칙적 정식 재판 회부 및 소년범이라도 기소유예 지양을 지시했다.

검찰은 해당 지시에 따라 실제 살인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이 있고, 물리적 실행행위도 있는 경우에는 살인 예비, 경찰관 등이 동원돼 일반 치안활동에 지장을 초래했다면 위계공무집행방해, 생명·신체 등을 위협하는 내용이라면 협박, 반복적으로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용이라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가능한 법령과 처벌 규정을 적극 적용해 피의자들을 기소했다.

적용된 각각의 범죄의 법정 최고형은 살인 예비 징역 10년, 위계공무집행방해 징역 5년 또는 벌금 1000만원, 업무방해 징역 5년 또는 벌금 1500만원, 협박 징역 3년 또는 벌금 500만원이다. 

법무부에서는 경찰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해 살인 예고 글 게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실제로 공항 테러·살인 예고 사건과 프로배구 선수단 칼부림 예고 사건의 범인들은 법무부로부터 각각 3200만원과 12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당했다.

경찰청도 지난해 경찰 공권력이 낭비된 점에 대해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손해배상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경찰청 관계자는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살인 예고 글 게시자에 대한 엄정한 형사처벌과 함께 공권력 낭비로 인해 초래된 국가적 손해 등 상당액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적극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이은 온라인 살인 예고 글 게시로 국민 일상에 미치는 피해는 물론 대규모 경찰력 동원 등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가 극심한 실정” 라며 “개별 사안마다 다를 수 있으나 실제 손해 산정액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등 소송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89명 검찰 송치…32명 구속
처벌 규정 없어 가벼운 형량

검찰이 해당 범죄를 적용해 구형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5번에 불과하다. 가장 형량이 높게 나온 사례는 공항 폭탄테러 예고다. 지난해 8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주·김해·대구·인천·김포공항 5곳을 대상으로 폭탄테러와 함께 살인하겠다고 글을 게시한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2심서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난해 8월 6일 오후 9시7분부터 이튿날 0시42분까지 약 3시간35분간 6차례에 걸쳐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주·김해·대구·인천·김포국제공항 등 5개 공항에 대한 폭탄테러와 살인 예고를 담은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첫 게시글서 ‘내일 2시에 제주공항 폭탄테러 하러 간다. 이미 제주공항에 폭탄을 설치했고, 공항서 나오는 사람들을 흉기로 찌르겠다’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컴퓨터 관련 전공자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 IP로 우회 접속해 게시물을 남겼으며 범행 후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초기화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범행을 강력히 부인했던 A씨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자 “경찰이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경찰이 추적을 시작할 것 같아 여러 협박 글을 작성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A씨의 글이 게시된 후 당시 해당 공항에는 80여명의 인력이 투입됐고 장갑차와 순찰차, 폭발물 탐지 차량, 소방차, 구급차까지 일제히 배치되는 등 비상이 걸렸다.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 오지애 판사는 지난해 11월23일 “피고인은 비상식적인 범행동기를 갖고 범행을 저지른 데다 이 범행으로 인해 막대한 공권력이 낭비됐다. 또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며 “다만 실제 테러를 실행하지 않고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반복적으로 다중의 안전을 위협하며 커다란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다. 특히 이 사건 범행으로 국내 5개 공항에 경찰 등 대거 인력 투입으로 공권력이 낭비돼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형량을 늘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두 번째로 높은 형량을 선고받은 사례는 프로배구단 살인 예고다. 지난해 8월 스포츠 중계 앱을 통해 ‘프로배구 선수단 숙소서 칼부림하겠다’는 내용을 적은 B씨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B씨는 지난해 8월6일 “구미서 컵대회를 치르고 있는 프로배구 선수단 숙소서 칼부림합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경찰 조사 당시 “스포츠 베팅 사이트서 프로배구팀에 현금 5만원 상당의 포인트를 걸었으나 해당 팀이 경기서 지자 홧김에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큰소리 
치더니…

B씨의 글로 경찰은 18시간 동안 인력 230여명을 동원해 배구단 숙소 인근 지역 순찰 및 숙소 안전 점검에 나서는 등 치안 인력을 낭비했다. 배구단 역시 선수단 훈련 등 계획한 일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흉기 난동 관련 뉴스 동영상에 놀이동산서 일가족 대상으로 칼부림하겠다는 댓글을 여러 차례 작성한 C씨에게는 징역 6개월이 선고됐다. C씨의 글이 SNS에 올라온 당시 경찰관 수십 명이 현장에 출동해 대대적인 순찰과 수색을 벌이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서울숲역에서 기획사 임직원 9명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한 D씨와 모바일 야구 게임 회사에 찾아가서 칼부림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한 E씨는 징역형 1년을 판결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러 차례 살인 예고를 하거나 최소 수십명의 경찰력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해당 5개의 사건은 물론 나머지 온라인 살인 예고 사건 재판 과정서도 모방 범죄 확산의 위험성, 심각한 사회 불안 초래, 공권력 낭비 상황 등 부정적 양형사유를 적극 주장하며 법정 최고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모두 벌금형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7월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이틀 후 인터넷에 “대림역서 특정 지역 출신 사람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려 재판에 넘겨진 F씨도 이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F씨의 글로 인해 당일 현장에는 경찰관 9명이 출동했고, 인근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재판부는 “F씨가 글을 올린 날은 조선(신림동 살인사건 범인)이 신림역서 흉기를 휘둘러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지 이틀 뒤”라며 “성인으로서 자신의 글 내용과 파급력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고 질책하면서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1월8일에는 “신림역서 한녀(한국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작성한 G씨가 서울중앙지법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인천 부평 로데오 거리서 여성만 10명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린 40대 남성이 인천지법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시기 용산역서 흉기 난동을 예고하는 온라인 방송을 진행한 20대에는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으나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적극적으로 
항소해도…

검찰은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적극적으로 항소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항소에도 실형이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살인 예고라는 특이 상황에 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으며 법원이 혐의가 적용되지 않다고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호암의 신민영 변호사는 “현행법상 살인 예고 글 사건에 적용되고 있는 법 조항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다”며 “협박만 해도 대상자가 특정이 안 되는 문제가 있고, 공무집행방해의 경우도 119에 전화한 것이 아닌 단순 장난 글을 올린 거라 애매하다”고 내다봤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항소 기각으로 집행유예가 확정될 확률이 99%”라며 “국민들이 겁을 먹고 잠재적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에 6개월형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이지만 법원의 전반적인 선고 분위기를 봤을 때 실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는 “공중협박죄 처벌 규정이 없어 장난인지, 실제 가해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증거 유무에 따라 처벌 여부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결이 갈리면서 온라인 살인 예고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앞서 검찰서도 법원의 판결과 구형이 계속해서 갈리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살인 등 범죄를 예고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살인 예비, 위계공무집행방해, 협박, 정보통신망법위반 등의 적용을 검토할 수 있으나, 구체적 사안에서는 현행법만으로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대검찰청은 현행법의 한계 때문에 처벌 공백이 발생하면 안 된다며 이를 위해 공중협박행위에 대한 일반적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법무부에 건의했다.

‘장난삼아’ 정상 참작?
단 5명만 실형 선고받아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도 지난해 공중협박법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8월 묻지마 흉악범죄에 입법적으로 대응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과 ‘형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 개정안은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서 논의됐던 ▲범죄자 처벌 강화 ▲범죄 발생 억제 ▲피해자 보호 등의 3가지 방안 중 범죄자 처벌 강화 차원서의 1차적인 후속 입법 성격이나,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의원 입법으로 추진한 것이다.

해당 개정안에는 형법 제118 조의 2를 신설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을 위협하거나 이를 가장해 공중을 협박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공중협박죄’ 규정을 마련했다.

또 정당한 이유 없이 범죄 우려가 있는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경우, 현행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서 벌금형 부분을 3000만원으로 상향하고, 범행 장소가 대중교통이나 공연장 등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일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12월7일이 돼서야 전체회의를 열고 공중협박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과 공공장소 등에서 흉기 노출 및 휴대행위 등에 대한 일반적 처벌 규정을 마련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에 대한 토론 등을 거쳐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로 회부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해당 법안 외에도 국민의힘 김영식·김용판·홍석준 의원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온라인 공간서 흉악범죄를 예고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등 처벌 규정을 명시하며 각각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임위서 단 한 차례도 다뤄지지 않았으며 결국 총선이 다음 달에 예정돼있어 제21대 국회에서는 자동 폐기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신림동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온라인 살인 예고가 난무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높아만 갔는데 여‧야는 급한 민생 관련된 법안을 처리도 하지 않은 채 정쟁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습당했을 때에도 정치권 인사를 겨냥한 살인 예고도 4건이나 있었다. 하지만 총선 전에 개정될 가능성이 적이 해당 글 게시자들도 결국 무죄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으로 보인다.

공중협박죄
신설하나?

국회에 법안이 계류돼있는 동안 이미 대부분 살인 예고 글 게시자들은 무죄나 집행유예로 사회에 나왔다. ‘장난삼아’라는 이유로 살인 예고 글을 게시한 만큼 언제든 재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범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면서 “처벌받은 사람에 대한 보호관찰이나 추적관찰을 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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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보기관 불화설 예고된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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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미 정보기관 간 파열음이 심상치 않다.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이 나아진 상태라곤 하지만, 미국은 아직 확실한 관계 개선의 시그널을 보내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에서는 대미 투자 지연과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사례를 비춰 봐도 동맹국 정보기관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된 적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더욱 그렇다. 정보기관은 동맹국들과의 대북 첩보 및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해외 정보를 공유한다. 한·미·일이 북한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실무그룹(trilateral working group)도 같은 의미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각국 고위 관계자 수십명이 한데 모이는 중요한 자리다. 국가정보원은 이 조직에서 지난 6월부터 배제됐다. 문제는 국정원이 아닌 군 정보기관도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 미국이 국정원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갖기 시작한 건 지난 2024년부터다. 당시 한국 정부를 위해 정보 수집 등 활동을 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기소된 수미 테리 전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FARA는 외국 정부 등을 대리해 활동할 경우 법무부 장관에게 반드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연방 검찰은 테리 전 연구원이 “국정원의 자금 직원이 자신의 급여에 직접 기여한다는 점을 인식했고 해당 자금이 국정원 최고위층(the highest levels)에서 나온 자금임을 이해했다”고 봤다. 미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의 근거가 될만한 테리의 진술과 2023년 3월 한 카페에서 국정원 직원과의 만남 등 녹취까지 확보했다. 테리가 만난 관계자 A씨는 국정원 미국 지부장으로 알려졌다. 테리 측은 국정원이 윌슨 센터에 한국 관련 공공정책 프로그램 명목으로 최소 3만7000달러를 지원했다는 증거 등을 재판에서 배제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미 검찰은 지난 2022년 5월(1만1000달러)과 2023년 4월(2만6035달러) 등 두 차례에 걸쳐 주미한국대사관 명의의 수표로 윌슨 센터 기부금 계좌에 입금된 자금을 실제로는 국정원이 지원했다고 판단했다. 미 검찰은 테리의 공소장에서 익명으로만 표기했던 국정원 직원 3명의 실명과 소속, 이들이 썼던 직위를 공개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해외 파트 소속 국정원 직원은 ‘화이트’로 외교관 신분을 가장해 활동하는데 이들의 신분을 미 검찰이 노출한 건 정치적으로 일부러 공개한 것”이라며 “미국도 우리나라 지부가 다 있고 비슷한 행위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나 동맹국이기에 믿고 넘어간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 ‘구성 핵시설’ 발언도 미국의 강경 모드에 한몫했다. 미국의 북한 핵시설 등 위성 정보와 관련한 공유 제한 조치도 6개월 넘게 유지되고 있다. 이재명정부는 정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이 공개 정보에 기반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공유한 기밀 정보가 유출됐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미, 대북 관련 일부 정보 국정원 공유 거부 북한 사이버 위협 대응 회의 참석에도 문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6월 말 워싱턴에서 개최된 5차 북한 사이버 위협 대응 한미일 실무그룹 회의에 국정원 배제를 요청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 회의는 2023년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핵협의그룹(NCG)과 함께 신설됐다. 가상자산 탈취 등 북한의 불법적인 사이버 활동을 감시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자금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범한 3국 협의체다. 같은 해 일본 도쿄에서 1차 회의를 시작으로 긴밀히 유지돼 왔다. 협의체 출범 당시 분기별로 회의를 갖기로 했지만 2024년엔 두 차례, 지난해엔 딱 한 번만 개최됐다.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미국이 국정원만 참여 제한을 통보한 건 이례적이라고 분석한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의 동향 파악은 국정원에게 필수적이다. 휴민트(HUMINT·인간정보)는 우리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신호·위성을 활용해 암호화폐를 추적하는 일은 미국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정보를 실무그룹 회의에서 미국와 일본 등이 파악한 신호 정보와 대조해 맞춰가면서 북한군이나 김정은의 동태를 파악하는 아주 중요한 회의다. 다시금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미 정보기관 간 협력에 먹구름이 지속되면서 통상·안보 현안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정원은 한·미가 현안을 두고 이견이 있을 때마다 물밑에서 풀어가는 ‘조율자’ 역할을 해왔으나 제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다른 부처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한국과의 대미 투자 협상에서 국정원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신을 전달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바 있다. 산업통상부는 러트닉 장관의 발언 전달 사실을 부인했고, 국정원도 다른 부처에서 관련 내용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례적인 배제 조치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국이 정보·방첩 분야에서 오랜 동맹의 기준을 준수하기를 기대한다는 다소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은 지난 11일 한·미 정보 협력이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이 현재 북한 미사일 관련 정보만 제공한다는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북한의 재래식 전력과 동향, 국제관계, 사이버·방첩 분야에서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정 정보의 공유가 제한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정보 제공 총량은 줄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주미대사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각) 강경화 대사의 국정감사 발언과 관련해 “기존 한·미 간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주미대사관은 이날 강 대사의 전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감 언급 관련 보도 참고자료에서 “관련 언급은 백악관 고위 인사와의 소통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되고 있지 않은 바, 더 긴밀하고 더 자주 있었으면 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주미대사관은 “한·미 간 소통에 대한 대사 스스로의 의욕이 높은 만큼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취지였다”고 부연했다. 구체적인 전날 발언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강 대사가 “백악관에 대한 소통에는 한계가 있음을 시인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해명으로 보인다. 정말로 문제 없나 강 대사는 국민의힘 김건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 측근 인사 중 한미동맹을 앞장서 지원하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후 “국가안보회의(NSC) 또는 백악관 주요 인사들과 면담을 저도 자주 하고 싶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만큼 고위급 협의는 저도 좀 답답한 정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적을 받아들여 더욱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미대사관은 “한미동맹은 외교안보의 축으로서 정부는 이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고도해 나간다는 입장”이라면서 “오늘 대통령이 말했듯이, 국가간에는 각자 국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 이를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통해 조율하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주미대사관은 전날 강 대사가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폭발 사건에 대해 “불의의 사고는 분명히 아니”라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기존에 밝힌 특정 표현이 맞는지에 대한 취지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해당 사건을 ‘불의의 사고’라고 표현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아직 지뢰 공격으로 특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강 대사가 다른 평가를 내놓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는데 이를 부인한 모습이다. 주미대사관은 “우리 정부가 기존에 밝힌 특정 표현의 의미는 크게 다친 부상 장병과 가족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고, 주미대사도 그런 차원에서 우리군이 피해를 본 데 대해서는 국민의 일원이자 대사로서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며 “우리 정부는 북한 정전협정 위반과 장병 피해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묻되, 한반도 긴장 완화 및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병행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부연했다. 군 정보기관 장성들, 지난 1월 미 정보부대 협력 행사 다수 불참 “미 국방부, 적절한 조치 고민…첩보 협력 제자리로 돌아가는 중” 한·미 정보기관 간 불협화음은 군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제 진영승 합참의장은 지난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북핵 관련 핵심 정보 공유 여부에 대해 “일부는 제한되지만, 우리가 대비 태세에 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이 상황은 빨리 해소가 되는 게 최선”이라고 밝혔다. 우리 군에는 제한되지만 국정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777사령부와 국군정보사령부가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뿐만 아니라 한·미 간 군 정보기관 협력에도 탈이 날 뻔했던 적이 존재했다. 지난 1월 미군 정보부대 초청의 리셉션 당시 국방정보본부, 정보사, 777사령부가 행사 참여에 어려워지자 한·미연합사 소속 정보장교들만 참석하고 있었다. 이 행사는 미 국방정보국(DIA)과 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가 한국 군 정보기관과의 교류 협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보고 준비했던 것이다.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행사 장소를 본래 평택에서 진행하려 했던 걸 용산으로 옮겼고 정보 장군들의 모임으로 501정보여단장, 미8군 사령관, 미 육군 정보보안사령관이 참석해 행사를 격상시키고 대령급 이상의 한국군 고위 장성들을 일제히 초청하려 했는데 한국 군 장성 진급 발표로 인해서 차질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국방정보본부장 및 정보부장 등이 불참했고 행사 참석을 거부한 장성도 있다. 정보사와 777에서 대령급 몇 명만 가면서 미군 측의 불만이 그나마 사그라 들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에도 빨간불? 다른 군 관계자는 “미 국방부가 이 사건으로 격노해 한국군과의 협력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적절한 조치를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게 대북 정보 협력 일부가 단절되는 사태로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현재 한·미 간 군 정보기관 간 정보 협력은 국정원처럼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려 노력 중이다. 일부 제한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