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새 생명 주고 떠난 천사들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2.26 15:02:27
  • 호수 14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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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갔지만 숨쉬고 있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39명. 올 한 해 동안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숫자다. 한 사람이 장기기증을 해서 최소 3명의 사람을 살렸다고 하면, 올 한 해 장기기증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장기기증으로 선택한 가족은 “어디서든 살아있길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장기이식 대기자는 5만명인 반면, 뇌사 장기 기능자는 405명에 불과했다. 장기이식 대기자는 매년 약 2000명씩 늘고 있는데 기증자는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장기이식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기증자가 없어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고도 설명된다. 장기이식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장기이식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 때문이다. 

해마다 
줄어들어

국내 장기조직 기증 희망등록률은 2021년 4.5%로 미국은 15배인 60%에 달한다. 뇌사 장기기증 제도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10월3일 국립 장기조직 혈액관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이식 대기자는 2019년 4만253명, 2020년 4만3182명, 2021년 4만5843명, 지난해 4만9765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반면 뇌사 기증자 장기이식 수는 2019년 450명, 2020년 478명, 2021년 442명, 지난해 405명이었다. 지난 9월 기준 뇌사 판정 장기 기증자는 380여명으로 집계돼 연말까지 합산하면 지난해보다 다소 증가했지만, 이식 대기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충분한 숫자는 아니다.


국제장기기증이식등록기구(IRODaT)에 따르면 한국 인구 100만명 당 장기기증자 수(pmp)는 ▲2020년 9.22명 ▲2021년 8.56명 ▲지난해 7.88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국과 달리 해외 뇌사 장기 기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뇌사 장기 기증자 pmp는 ▲2019년 36.88명 ▲2020년 38.03명 ▲2021년 41.6명 ▲지난해 44.5명으로 2~3명 꼴로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에 비하면 지난해 8명이 늘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스페인 인구 100만명 당 기증자 수는 46.03명으로 2년 전보다 9명 정도 늘었다(2021년 40.8명, 2020년 37.97명).

프랑스도 지난해 24.70명으로 2년 전(23.15명)보다 1명 늘었으며 영국은 지난해 21.08명으로 역시나 3명이 늘어난 수치였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해 기증자가 100만명 당 7.88명으로 미국의 17%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년 전과 비교하면 1.3명 감소했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장기조직 기증 희망등록률이다. 장기조직 기증 희망등록은 뇌사 상태 또는 사망 이후에 장기 및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고 본인의 의사를 밝히는 행위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희망등록률은 4.5%로 기록됐다. 장기기증 선진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60%에 달하는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장기기증에 대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는 인식 변화가 생겨야 한다. 희망등록을 했다고 무조건 기증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적인 기술은 이미 높아져 있지만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더 개선되지 않아 등록률이 낮고, 사회적 논의가 정체된 상태다. 희망등록률이 저조해지면 법적 기준이나 제도도 마련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천사는 언제나 존재한다. 지난 21일 기준, 올 한 해 장기기증을 하고 천사가 된 사람은 39명이었다. 이들의 연령, 성별, 직업은 다양하지만 많은 생명을 살렸다는 것과 선한 결정을 내린 가족이 옆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기기증 대기자 5만명
지난해 기증자는 405명뿐

올해 첫 번째 장기 기증자는 송세윤(6)군이다. 지난해 12월28일 제주대학교병원서 송군이 뇌사장기 기증으로 심장, 폐장, 신장(좌‧우)을 기증해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짧지만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다. 송군은 태어나자마자 장티푸스 질환으로 수술했다. 그렇다고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술 후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게 건강하게 자랐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1일 송군은 갑작스럽게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회복이 어려운 뇌사 상태였다. 가족은 갑자기 쓰러진 아이를 그대로 떠나보낼 수 없어 어디선가라도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제주서 태어난 송군은 밝고 활동적이며, 자기보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항상 양보하는 성격으로 돈까스와 짜장면을 좋아하는 착한 아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또 자동차를 좋아해 아픈 자동차를 고쳐주는 정비사를 꿈꿨던 것으로 전해졌다.

송군의 어머니 송승아씨는 “세상 엄마 중에 저처럼 아이가 아파서 힘들어하는 엄마들도 있을 텐데, 세윤이의 몸 일부가 어디선가 살아서 숨을 쉬고 기증받은 아이와 그 가족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세윤아. 엄마야. 이제 엄마 걱정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아. 매일 사탕, 초콜릿 먹지 말라고 잔소리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해. 세윤아. 엄마가 사랑해. 늘 엄마가 생각할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지난 4월14일에는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던 A(11)군이 장기기증을 통해 3명의 생명을 살렸다. A군은 간장과 신장(좌‧우)을 3명에게 기증했다. 경남 창원서 외아들로 태어난 A군은 24주 만에 출생해 100일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다.

태어날 때 힘든 고생을 한 소중한 아이라 가족 모두 사랑으로 키웠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친절하고 다정한 아이였다고 한다.  A군은 지난 4월3일, 등교를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시내버스에 치여 쓰러진 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39명…
선한 결정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라고 두려웠을 A군이 사고 순간, 바로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 것은 주변에 사랑을 주고 가려고 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증을 결심했다.

가족들은 11년의 세월을 열심히 살아온 아들이 짧게라도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길 원했다.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길 아이도 원했을 것 같다고 전했다.

A군의 어머니는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가 끝까지 지켜준다고 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다음 생에는 네가 원하는 최고의 몸으로 태어나서 이번 생애에 못다 이룬 꿈을 꼭 이루길 엄마가 기도할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내 아들. 사랑해”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김미경(43)씨는 어린이날을 일주일 남짓 남겨두고 뇌사 상태에 빠져 3명에게 장기를 기증해 새 삶을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씨는 지난 4월26일 중앙대병원서 심장, 간장, 신장을 기증해 3명의 생명을 살리고 숨졌다. 김씨는 지난 4월15일 자택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뇌사 상태가 됐다.

가족들은 김씨가 하루라도 더 살아 숨쉬길 바라며 안타까워했지만, 김씨 몸의 일부라도 이 세상에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기증을 결심했다.


경기도 광명서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난 김씨는 활발하고 남의 어려운 일을 보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착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어린이집 교사로 20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는 어린이집 교사 일을 하면서도 바쁜 남동생 내외를 위해 어린 조카 2명을 돌보고, 바쁜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는 든든한 딸이었다.

김씨의 어머니 김순임씨는 “엄마가 우리 딸 고생만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고, 늘 가슴속에 품고 살게. 천국에 가 있으면 따라갈 테니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며 눈물을 훔쳤다.

30대 아빠인 김민규(38)씨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뇌사 상태가 돼 4명의 생명을 살린 후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지난 4월7일 이대 서울병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과 신장(좌·우), 폐를 기증했다. 평소 건강했던 김씨가 뇌출혈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3월28일이었다. 두통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비보를 듣게 됐다.

“그곳에선 
아프지 마”

바로 병원서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됐고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 남은 가족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8살배기 어린 딸에게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팠던 가족은 딸이 아빠를 ‘아픈 사람들을 살리고 하늘나라에 간 멋지고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 기증을 결심했다. 김씨는 밝고 활발한 성격이었고 딸과 잘 놀아주던 자상한 아빠였다. 주위에선 ‘딸바보’라고 불렸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지나가지 못하고 돕고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유족은 전했다.

김씨의 아내 정민정씨는 떠난 남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항상 웃으면서 지내길 기원한다. 딸 지아에게는 아빠의 심장이 누군가의 몸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지아와 언제나 함께 있는 거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도 뇌사 장기기증을 했다. 지난 6월27일 서울 아산병원서 이주용(24)씨가 뇌사장기기증을 통해 6명의 생명을 살리고 별이 돼 떠났다. 이씨는 4학년 1학기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족과 식사 후 방으로 들어가던 중 쓰러졌다.

이를 발견한 동생이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가 됐다. 이씨의 가족은 이씨가 다시는 깨어날 수 없다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 젊고 건강한 이들이 어디선가라도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

이씨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좌·우), 췌장, 안구(좌·우)를 기증해 6명의 생명을 살렸다.

가족들은 이씨가 쓰러진 날, 몇 차례나 위기가 있었는데 기증하는 순간까지 견뎌준 것이 존경스럽고 고마운 일이라고 감사해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대로 떠나갔다면 견디지 못했을 텐데 이별의 준비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어디선가 살아 숨쉰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게 하느님이 지켜준 것 같았다고도 했다. 

이씨의 외할머니가 오랜 기간 신장 투석을 받고 있어서, 병마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기증받은 사람과 가족이 행복하길”
“사랑과 생명이 잘 전달될 수 있길”

서울서 2남 중 첫째로 태어난 이씨는 밝고 재밌는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인기가 많았던 데다, 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울리며 함께하는 것을 좋아해 가족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씨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는데 활자 중독일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고, 조깅과 자전거를 즐겨하며 꾸준한 운동을 해왔다. 또, 구리시 구립시립청소년 교향악단과 고려대 관악부서 플루트를 연주하며 음악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씨의 어머니는 “주용아, 정말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 매일 아침 주용이의 방을 보면 아직 잠들어 있을 거 같고, 함께 있는 것 같아. 엄마가 못 지켜준 거 미안하고, 떠나는 순간은 네가 원하는 대로 된 거라고 생각해”라며 “우리 주용이 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주용이가 엄마 우는 거 싫어하는지 아는데, 조금만 울 테니 이해해 줘. 사랑해 주용아”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씨의 기증 과정을 담당한 조아름 코디네이터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주용님이 깊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사랑이 새 삶을 살게 되는 수혜자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숭고한 생명나눔이 잘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여성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을 살리고 떠나기도 했다.

지난달 1일 뇌사 상태였던 박세진(59)씨가 단국대병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좌·우)을 5명에게 기증하고 숨졌다.

박씨는 지난 10월27일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하던 중 쓰러졌다. 뇌출혈로 인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뇌사 상태가 됐다. 가족들은 박씨가 다시 일어날 수 있길 기도했지만, 의료진으로부터 적극적인 치료와 수술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족들은 평소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던 박씨가 삶의 끝에서 좋은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증을 결심했다. 가족들은 박씨의 신체 일부분이라도 누군가의 몸 속에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천안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박씨는 쾌활했고, 어려운 시절을 지내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보면 늘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박씨의 배우자 김영도씨에 따르면 박씨는 한국전력서 환경미화 근로자로 17년간 일을 하면서 어디 한 번 놀러 가지도 못했다. 또 10년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89세가 되도록 모시면서 힘들다는 불평 한 번 없었던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남의 일?
나의 일!

김씨는 “나 만나서 고생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다음에 더 좋은 세상서 호강시켜 줄 테니, 그때까지 하늘서 잘 지내고 있어 달라. 사랑한다”고 전했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올 한 해 숭고한 생명나눔을 실천해주신 기증자와 기증자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면서 “주신 사랑과 생명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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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1500호 특집기획> 한눈에 보는 김건희 8가지 의혹 총정리 ①어떻게 살아왔나

[지령 1500호 특집기획] 한눈에 보는 김건희 8가지 의혹 총정리 ①어떻게 살아왔나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어릴 적부터 예술에 재능을 보이며, 화려한 경력을 쌓은 김건희는 무려 10살 차이를 극복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현재 영부인의 자리까지 올랐다. 개명하기 전 이름인 김명신의 과거 행적 의혹이 제기됐지만,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녹취록 공개 파장에 무속 논란으로 후폭풍을 맞기도 했다. 의혹이 빗발치자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으나 이를 까먹은 듯 광폭 행보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김건희는 지난 1972년 9월2일 경기도 양평군서 아버지 고 김광섭, 어머니 최은순 사이서 셋째로 태어났다. 서울 남동부로 이주해 지금의 송파구에 살며 잠동초등학교, 잠실중학교를 졸업하고 강동구로 이사한 후 명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이름은 김명신이다. 예술 두각 숱한 경력 김건희가 15세 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 최은순이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 부친 김광섭은 양평군청 공무원으로 지낸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1987년 작고했다. 김건희는 어린 시절 오래된 골동품이나 예술품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연스레 그림과 예술에 관심이 커진 김건희는 향후 문화예술 사업에 뛰어든다.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기대학교 예체능대학 회화과(서양화 전공)서 학사학위를 취득했던 그는 이 시기부터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다. 지난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서 입선을 차지하는 등 주목받는 작품을 선보였다. 대학 졸업 후 다양한 교육과 업무 경험을 쌓으며 전문가로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지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서 미술교육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교육 분야서 전문성을 증명했다. 이후 2001년 영락여자상업고등학교서 미술 강사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고, 한림성심대서도 강단에 섰다. 서일대학교와 서울정보기능대학교서도 강의를 맡으며 디자인과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 전문 지식을 공유했다.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는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인문학 과정(AFP)과 글로벌 리더 과정(GLA)을 이수하며 지식을 넓혔다. 지난 2007년 해외 유명 소장품과 미술품을 전시하는 회사인 ‘코바나컨텐츠’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창의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국내서 보기 힘든 유명 작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전시를 다수 기획했다. 2015년 ‘마코 로스코 전시’ 2016년 ‘르 코르뷔지에 서울특별전’ 2018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결혼 후엔 안양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등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문화 콘텐츠와 색채,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서 학문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또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예술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하고, 테크노디자인대학원서 강의를 통해 학문적 기여를 이어갔다. 김건희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 1과장 시절이던 지난 2012년 3월 결혼했다. 결혼 당시 윤 대통령의 나이는 52세로, 40세였던 김건희와 12살 띠동갑의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그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서 윤 대통령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알고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줬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에 유흥주점 근무” 주장 “쥴리 하고 싶어도 못해” 반박 윤 대통령 주변 인사는 “김건희를 처음 만난 자리서 마음에 들었지만, 나이 차가 많고 여건상 이뤄지기 어렵다는 생각에 김건희의 명함을 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후 윤 대통령은 명함에 적혀있던 김건희의 이메일 주소를 기억해 메일을 보내 마음을 표현했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만났다고 한다. 지난 2017년 남편인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그의 직업적 성취와 함께 김건희는 사회적으로도 주목받았다. 이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승진하면서 더 큰 관심을 받게 됐으며, 지난 2019년 청와대서 검찰총장 임명장을 수여받는 자리에도 함께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재산은 대부분 김건희 명의로 밝혀졌다. 그는 결혼 당시 윤 대통령의 재산이 불과 2000만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후보 시절 윤 대통령이 신고한 재산은 약 77억4500만원이다. 신고액 중 68억9900여만원이 김건희의 재산이다. 대부분 김건희가 소유한 땅과 건물, 예금이다.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난 1990년대 IT붐이 일었을 당시 주식으로 번 돈이 밑천이 돼 사업체를 키웠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부부는 역대 대통령 배우자 중 유일하게 자녀가 없다. 한 번 임신한 적이 있었는데, 스트레스로 유산한 후 다시는 임신하지 못했다. 김건희는 지난 2021년 12월 허위 경력 의혹으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당시 “결혼 후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남편의 직장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 아이를 잃었다”며 “예쁜 아이를 낳으면 업고 출근하겠다던 남편의 간절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게 됐다”고 유산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들 가운데 비숑 프리제 종 2마리를 제외한 반려견 2마리와 반려묘 3마리는 모두 유기동물을 입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대선 기간 중 각종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 유흥업소서 일했다는 의혹과 경력 관련 논란은 진위 여부를 떠나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정천수 열린공감TV 대표와 안해욱 전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등은 김건희가 과거 서울 강남구에 위치했던 라마다르네상스호텔 지하 1층 모 나이트클럽서 ‘쥴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고 수차례에 걸쳐 언급해 왔다. 나이트클럽서 접대부로 활동했던 김건희를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 개인 접대 공간(호텔 6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봤다고 말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김건희는 지난 2021년 6월 <뉴스버스>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의혹에 해명했다. 먼저 ‘강남 유흥주점의 접객원 쥴리로 검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의혹을 두고 김건희는 “누가 소설을 쓴 것”이라며 “기가 막힌다”고 억울해했다. 각종 소문들 숨겨진 과거 이어 “제가 원래 좀 남자 같고 털털한 스타일이고 오히려 일 중독”이라며 “석사학위 두 개에 박사학위까지 받고, 대학 강의 나가고 사업하느라 정말 쥴리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도 “김건희가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것을 싫어한다”며 “이런 사람이 술집 가서 이상한 짓 했다는 얘기가 상식적으로 안 맞다”고 반박했다. 이어 “집사람은 새벽 2~3시까지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만큼 쉴 틈 없이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며 “고교 교사와 대학 초빙 겸임교수도 했고, 석사학위도 2개나 받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이트클럽 운영자들 역시 정천수 대표와 안해욱 전 회장의 주장을 모두 부인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한성진 부장판사)는 지난달 1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천수 전 대표와 안해욱 전 회장의 6차 공판을 진행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나이트클럽 공동대표였던 조모씨와 배모씨는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쥴리에 대해 전혀 듣도 보도 못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조씨는 “삼부토건 회장을 비롯해 이른바 VIP들이 따로 사용하는 공간은 없었다”며 “또 호텔 건물로 직결되는 엘리베이터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비중 있는 손님들과 친교를 가진 여성이 있었느냐’는 검사의 질문엔 “한번도 들은 적 없고, 전혀 없다”며 “종업원 외에 다른 여자는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르네상스 지하 또는 1층에 그림을 전시했던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조남욱 회장이 특정 여성을 동석시키거나 같이 다녔냐는 물음에 “본 적 없다”고 일축했다. 배씨 역시 비슷한 증언을 내놨다. 호텔 6층까지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었냐는 취지로 검사가 묻자 “구조상, 상식적으로 안 맞는 것 같다”며 “건물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건 미친 사람 아니면 그걸 왜 하나 싶다”고 말했다. 배씨는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이 특정 여성이랑 있거나 다른 사람을 초대한 것을 본 적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못 봤다”고 답했다. ‘김 교수’라는 여성의 호칭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경력 논란도 김건희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김건희는 지난 2008년 개명한 이후 전시 관련 일을 하며 사업을 확장했지만, 업계에서는 김건희를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는 뒷말이 나왔다. 또 거물급 대형 전시회를 가져왔는지 의문이라고 할 정도라고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김건희는 페이스북에 서울대 대학원 졸업이라고 개재하며 SNS로도 본인을 홍보하는 데 힘썼다. YG 빅뱅 멤버들이 홍보도 해줄 정도로 정관계, 연예계와도 친분을 쌓았다. 이때 전시회에 LG전자, GS칼텍스, 우리은행 등 12~16곳이 넘는 협찬을 끌어오는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발표될 무렵 일주일 사이에 협찬사가 무려 12곳이나 불어났다. 무속인 연결 녹취록 공개 수사에 들어가 확인해 본 결과 김건희의 코바나컨텐츠 협찬사였던 GS칼텍스는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고, 협찬에 나선 한 유명 게임업체 대표는 개인 비리로 수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들은 행사를 주최한 <국민일보> <연합뉴스> 등 언론사에 협찬한 거라고 해명해 왔지만, 수사팀은 협찬금이 언론사를 거쳐 그대로 코바나컨텐츠 측에 전달된 사실도 확인했다. 김건희의 무속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윤 대통령 부부가 스님·법사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과 교류가 잦았고 중요한 국면서 이들로부터 조언을 받았다는 의혹이 대선 경선 과정서부터 이어졌다. 김건희와 인터넷 매체 기자와의 7시간 통화 녹취록에도 윤 대통령과 역술인의 오랜 인연이 등장한다. 당시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2022년 1월18일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네트워크본부를 이 시간부로 해산한다”며 “네트워크본부를 둘러싸고 후보와 관련해서 불필요한 악의적인 오해가 확산하는 부분에 대해 단호하게 차단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건진 법사’로 불리는 무속인 전씨가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아예 조직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전씨는 지난 2022년 1월1일 윤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네트워크본부 사무실을 방문하자 윤 대통령을 사무실 안쪽으로 이끌며 직원들을 소개했다. 국민의힘은 전씨를 “대한불교종정협의회 기획실장”이라고 소개했다. 전씨의 존재가 알려진 건 이번 언론 보도가 처음이 아니었다. 유튜브 방송 <열린공감TV>는 지난 2021년 10월 충북 충주 일광사의 혜우 스님을 만나 ‘건진 법사에게 윤 대통령을 지키라고 했고, 그가 윤석열 캠프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충주 일광사는 조계종과 관련 없는 일광조계종의 본산이며 혜우 스님은 건진 법사의 스승이라고 한다. 혜우 스님은 김건희에게 초청 받아 코바나컨텐츠서 주관한 전시회에 3차례 참석해 축원을 해줬다고도 밝혔다. 건진 법사도 김건희를 통해 윤 대통령과 연결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언이었다. 건진·천공과 인연은? “도사들과 대화 좋아해” 유튜버 ‘천공 스승’과 윤 대통령의 인연도 논란을 낳았다. 천공 스승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서 사퇴했던 지난 2021년 3월4일 <최보식의 언론>과 인터뷰서 “윤 총장은 내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자기 자리서 일을 잘하도록 돕는 것이다” “열흘에 한번쯤 만난다”고 주장했고 “윤 총장이 대선에 나온다”고 단언해 ‘윤석열 멘토’로 불렸다. 논란이 되자 천공 스승은 같은 해 10월 <YTN> 인터뷰서 “멘토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김건희에게서)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윤 전 총장이 남편이니까 같이 왔다”며 검찰총장 사퇴 문제를 조언해 줬다고 했다. 김건희가 천공 스승과 윤 대통령을 연결했다는 얘기다. 김건희와 <서울의 소리> 이 기자 통화 녹취록서도 윤 대통령 부부가 미래를 보는 역술인에게 의존하고 교류하는 내용이 확인된다. 같은 해 7월20일 전화 통화에서 김건희는 ‘무정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무정 스님은 이미 검찰 주변서 윤 대통령의 대선 당시 멘토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건희는 이 기자에게 무정 스님이 “진짜 스님은 아니다”라면서도 윤 대통령이 20대 시절에 그와 만났고 “(남편이)사법고시서 떨어지니까 한국은행에 취직하려고 했는데 ‘너는 3년 더해야 한다’고 해서 3년 했는데 정말 붙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자신에게는 “너는 석열이하고 맞는다”며 결혼을 권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놨다. 하지만 “(무정 스님이)문재인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갑자기 남편 앞에서 ‘문재인은 망한다’고 했다”며 “우리 남편 망한다는 말밖에 더 돼냐” “그때부터 인연을 끊었다”고 전했다. 김건희는 “내가 되게 영적인 사람이라 차라리 도사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삶은 무엇인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세간에 내가 무당을 많이 만난다고 돼있는데, 전혀 아니고 무당을 원래 싫어한다”며 “제가 더(점괘 등을) 잘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에게 얼굴·손금 사진을 보내라고 한 뒤 그걸 토대로 “이직을 하라”며 “국정원, 정보 일이 맞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드러난 사실과 제기된 의혹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 부부는 무속인·역술인과 깊은 교분을 유지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받아왔던 것으로 해석된다. 아내 역할만 충실한다더니… 김건희는 대선 과정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이 제기되자 지난 2021년 12월 기자회견서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이른바 ‘조용한 내조’를 약속한 바 있다. 취임 초반에는 패션 등이 시선을 끌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구설과 논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김건희가 남편인 윤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조용한 내조 대신 ‘광폭 행보’라는 논란이 이어졌다. <yuncastle@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