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새 생명 주고 떠난 천사들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2.26 15:02:27
  • 호수 14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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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갔지만 숨쉬고 있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39명. 올 한 해 동안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숫자다. 한 사람이 장기기증을 해서 최소 3명의 사람을 살렸다고 하면, 올 한 해 장기기증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장기기증으로 선택한 가족은 “어디서든 살아있길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장기이식 대기자는 5만명인 반면, 뇌사 장기 기능자는 405명에 불과했다. 장기이식 대기자는 매년 약 2000명씩 늘고 있는데 기증자는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장기이식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기증자가 없어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고도 설명된다. 장기이식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장기이식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 때문이다. 

해마다 
줄어들어

국내 장기조직 기증 희망등록률은 2021년 4.5%로 미국은 15배인 60%에 달한다. 뇌사 장기기증 제도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10월3일 국립 장기조직 혈액관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이식 대기자는 2019년 4만253명, 2020년 4만3182명, 2021년 4만5843명, 지난해 4만9765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반면 뇌사 기증자 장기이식 수는 2019년 450명, 2020년 478명, 2021년 442명, 지난해 405명이었다. 지난 9월 기준 뇌사 판정 장기 기증자는 380여명으로 집계돼 연말까지 합산하면 지난해보다 다소 증가했지만, 이식 대기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충분한 숫자는 아니다.


국제장기기증이식등록기구(IRODaT)에 따르면 한국 인구 100만명 당 장기기증자 수(pmp)는 ▲2020년 9.22명 ▲2021년 8.56명 ▲지난해 7.88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국과 달리 해외 뇌사 장기 기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뇌사 장기 기증자 pmp는 ▲2019년 36.88명 ▲2020년 38.03명 ▲2021년 41.6명 ▲지난해 44.5명으로 2~3명 꼴로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에 비하면 지난해 8명이 늘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스페인 인구 100만명 당 기증자 수는 46.03명으로 2년 전보다 9명 정도 늘었다(2021년 40.8명, 2020년 37.97명).

프랑스도 지난해 24.70명으로 2년 전(23.15명)보다 1명 늘었으며 영국은 지난해 21.08명으로 역시나 3명이 늘어난 수치였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해 기증자가 100만명 당 7.88명으로 미국의 17%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년 전과 비교하면 1.3명 감소했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장기조직 기증 희망등록률이다. 장기조직 기증 희망등록은 뇌사 상태 또는 사망 이후에 장기 및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고 본인의 의사를 밝히는 행위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희망등록률은 4.5%로 기록됐다. 장기기증 선진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60%에 달하는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장기기증에 대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는 인식 변화가 생겨야 한다. 희망등록을 했다고 무조건 기증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적인 기술은 이미 높아져 있지만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더 개선되지 않아 등록률이 낮고, 사회적 논의가 정체된 상태다. 희망등록률이 저조해지면 법적 기준이나 제도도 마련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천사는 언제나 존재한다. 지난 21일 기준, 올 한 해 장기기증을 하고 천사가 된 사람은 39명이었다. 이들의 연령, 성별, 직업은 다양하지만 많은 생명을 살렸다는 것과 선한 결정을 내린 가족이 옆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기기증 대기자 5만명
지난해 기증자는 405명뿐

올해 첫 번째 장기 기증자는 송세윤(6)군이다. 지난해 12월28일 제주대학교병원서 송군이 뇌사장기 기증으로 심장, 폐장, 신장(좌‧우)을 기증해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짧지만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다. 송군은 태어나자마자 장티푸스 질환으로 수술했다. 그렇다고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술 후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게 건강하게 자랐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1일 송군은 갑작스럽게 구토와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회복이 어려운 뇌사 상태였다. 가족은 갑자기 쓰러진 아이를 그대로 떠나보낼 수 없어 어디선가라도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제주서 태어난 송군은 밝고 활동적이며, 자기보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항상 양보하는 성격으로 돈까스와 짜장면을 좋아하는 착한 아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또 자동차를 좋아해 아픈 자동차를 고쳐주는 정비사를 꿈꿨던 것으로 전해졌다.

송군의 어머니 송승아씨는 “세상 엄마 중에 저처럼 아이가 아파서 힘들어하는 엄마들도 있을 텐데, 세윤이의 몸 일부가 어디선가 살아서 숨을 쉬고 기증받은 아이와 그 가족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세윤아. 엄마야. 이제 엄마 걱정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아. 매일 사탕, 초콜릿 먹지 말라고 잔소리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해. 세윤아. 엄마가 사랑해. 늘 엄마가 생각할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지난 4월14일에는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던 A(11)군이 장기기증을 통해 3명의 생명을 살렸다. A군은 간장과 신장(좌‧우)을 3명에게 기증했다. 경남 창원서 외아들로 태어난 A군은 24주 만에 출생해 100일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다.

태어날 때 힘든 고생을 한 소중한 아이라 가족 모두 사랑으로 키웠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친절하고 다정한 아이였다고 한다.  A군은 지난 4월3일, 등교를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시내버스에 치여 쓰러진 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39명…
선한 결정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라고 두려웠을 A군이 사고 순간, 바로 떠나지 않고 기다려준 것은 주변에 사랑을 주고 가려고 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증을 결심했다.

가족들은 11년의 세월을 열심히 살아온 아들이 짧게라도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길 원했다.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길 아이도 원했을 것 같다고 전했다.

A군의 어머니는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가 끝까지 지켜준다고 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다음 생에는 네가 원하는 최고의 몸으로 태어나서 이번 생애에 못다 이룬 꿈을 꼭 이루길 엄마가 기도할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내 아들. 사랑해”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김미경(43)씨는 어린이날을 일주일 남짓 남겨두고 뇌사 상태에 빠져 3명에게 장기를 기증해 새 삶을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씨는 지난 4월26일 중앙대병원서 심장, 간장, 신장을 기증해 3명의 생명을 살리고 숨졌다. 김씨는 지난 4월15일 자택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뇌사 상태가 됐다.

가족들은 김씨가 하루라도 더 살아 숨쉬길 바라며 안타까워했지만, 김씨 몸의 일부라도 이 세상에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기증을 결심했다.


경기도 광명서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난 김씨는 활발하고 남의 어려운 일을 보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착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어린이집 교사로 20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는 어린이집 교사 일을 하면서도 바쁜 남동생 내외를 위해 어린 조카 2명을 돌보고, 바쁜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는 든든한 딸이었다.

김씨의 어머니 김순임씨는 “엄마가 우리 딸 고생만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고, 늘 가슴속에 품고 살게. 천국에 가 있으면 따라갈 테니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며 눈물을 훔쳤다.

30대 아빠인 김민규(38)씨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뇌사 상태가 돼 4명의 생명을 살린 후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지난 4월7일 이대 서울병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과 신장(좌·우), 폐를 기증했다. 평소 건강했던 김씨가 뇌출혈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3월28일이었다. 두통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비보를 듣게 됐다.

“그곳에선 
아프지 마”

바로 병원서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됐고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 남은 가족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8살배기 어린 딸에게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팠던 가족은 딸이 아빠를 ‘아픈 사람들을 살리고 하늘나라에 간 멋지고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 기증을 결심했다. 김씨는 밝고 활발한 성격이었고 딸과 잘 놀아주던 자상한 아빠였다. 주위에선 ‘딸바보’라고 불렸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지나가지 못하고 돕고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유족은 전했다.

김씨의 아내 정민정씨는 떠난 남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항상 웃으면서 지내길 기원한다. 딸 지아에게는 아빠의 심장이 누군가의 몸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지아와 언제나 함께 있는 거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도 뇌사 장기기증을 했다. 지난 6월27일 서울 아산병원서 이주용(24)씨가 뇌사장기기증을 통해 6명의 생명을 살리고 별이 돼 떠났다. 이씨는 4학년 1학기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족과 식사 후 방으로 들어가던 중 쓰러졌다.

이를 발견한 동생이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가 됐다. 이씨의 가족은 이씨가 다시는 깨어날 수 없다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 젊고 건강한 이들이 어디선가라도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

이씨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좌·우), 췌장, 안구(좌·우)를 기증해 6명의 생명을 살렸다.

가족들은 이씨가 쓰러진 날, 몇 차례나 위기가 있었는데 기증하는 순간까지 견뎌준 것이 존경스럽고 고마운 일이라고 감사해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대로 떠나갔다면 견디지 못했을 텐데 이별의 준비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어디선가 살아 숨쉰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게 하느님이 지켜준 것 같았다고도 했다. 

이씨의 외할머니가 오랜 기간 신장 투석을 받고 있어서, 병마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기증받은 사람과 가족이 행복하길”
“사랑과 생명이 잘 전달될 수 있길”

서울서 2남 중 첫째로 태어난 이씨는 밝고 재밌는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인기가 많았던 데다, 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울리며 함께하는 것을 좋아해 가족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씨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는데 활자 중독일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고, 조깅과 자전거를 즐겨하며 꾸준한 운동을 해왔다. 또, 구리시 구립시립청소년 교향악단과 고려대 관악부서 플루트를 연주하며 음악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이씨의 어머니는 “주용아, 정말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 매일 아침 주용이의 방을 보면 아직 잠들어 있을 거 같고, 함께 있는 것 같아. 엄마가 못 지켜준 거 미안하고, 떠나는 순간은 네가 원하는 대로 된 거라고 생각해”라며 “우리 주용이 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주용이가 엄마 우는 거 싫어하는지 아는데, 조금만 울 테니 이해해 줘. 사랑해 주용아”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씨의 기증 과정을 담당한 조아름 코디네이터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주용님이 깊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사랑이 새 삶을 살게 되는 수혜자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숭고한 생명나눔이 잘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일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여성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을 살리고 떠나기도 했다.

지난달 1일 뇌사 상태였던 박세진(59)씨가 단국대병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좌·우)을 5명에게 기증하고 숨졌다.

박씨는 지난 10월27일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준비하던 중 쓰러졌다. 뇌출혈로 인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뇌사 상태가 됐다. 가족들은 박씨가 다시 일어날 수 있길 기도했지만, 의료진으로부터 적극적인 치료와 수술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족들은 평소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던 박씨가 삶의 끝에서 좋은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증을 결심했다. 가족들은 박씨의 신체 일부분이라도 누군가의 몸 속에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큰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천안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박씨는 쾌활했고, 어려운 시절을 지내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보면 늘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박씨의 배우자 김영도씨에 따르면 박씨는 한국전력서 환경미화 근로자로 17년간 일을 하면서 어디 한 번 놀러 가지도 못했다. 또 10년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89세가 되도록 모시면서 힘들다는 불평 한 번 없었던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남의 일?
나의 일!

김씨는 “나 만나서 고생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다음에 더 좋은 세상서 호강시켜 줄 테니, 그때까지 하늘서 잘 지내고 있어 달라. 사랑한다”고 전했다.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올 한 해 숭고한 생명나눔을 실천해주신 기증자와 기증자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면서 “주신 사랑과 생명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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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