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일요대담> ‘산으로 가는 당정을 말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

“무능, 무책임, 무비전…있는 게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거리의 변호사’로 통한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무차장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박 의원은 대한민국이 사회적 참사로 슬픔에 빠져 있을 때도 여의도 안팎을 뛰어다니며 약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이를 대변하듯 그의 옷깃에는 그동안의 행보와도 같은 배지들이 달려 있었다.

최근 원내 지도부에 합류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측근들이 앞다퉈 몸풀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한 표적 수사의 종점은 까마득하다. 박 의원은 이 모든 상황이 기괴하다고 말한다. 2023년 한 해의 끝에서 <일요시사>와 만난 박 의원은 현 정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지난 9월 원내운영수석부대표로 임명됐다.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민주당은 의석수가 많은 것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국민의 평가가 있는 만큼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리 당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쥐고 있는 상임위에서는 핵심 법안을 통과시켜 법사위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십년 동안 정체됐던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정무위서 통과시켰다. 지난 8일 거부권이 행사됐지만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을 표결에 부쳤다.


-해병대 고 채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국정조사를 추진했다.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말해준다면?

▲국정조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법적 절차는 마무리지었다. 국정조사는 10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요구서를 제출하면 본회의에 보고된다. 이후 의장이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쳐 특위를 구성할지 관련된 상임위서 진행할지 결정짓는다. 현재로서는 의장의 판단만 남아 있고, 본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의장님 뵐 때마다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데, 아직 설득은 안 됐다.

-현재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정치 현안은 무엇인가?

▲원내서 일하다 보니 여러 사안이 많지만 우선 예산안이 잘 통과됐으면 한다. 아직 통과하지 못한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개정안도 마무리되길 바란다. 비록 법사위서 막힐지라도 민주당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민주당이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하는구나” 이런 말을 들으면 좋겠다.

-윤석열정부가 내년을 기점으로 3년 차에 접어든다. 그동안 행보를 평가한다면?

▲‘무능’ ‘무책임’ ‘무비전’. 한 마디로 미래가 없다. 여러 국가적인 상황서도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모습만 보여준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떨지 이야기하는 게 있었던가? 국민 대부분이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할 것이다. 정말이지 처음 겪는 정권이다. 적어도 다른 보수정권은 무언가를 하겠다는 목표는 있었다.

-윤정부의 인사 관련해서도 논란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을 대하는 태도는 희귀하고 기괴하다. 문제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모습을 연속적으로 보니 다들 무감각해진 모양이다. 대통령이 당 대표를 두 번이나 내쫓고 그 자리에 자신의 가장 측근을 앉히는 이 모든 과정이 이상하다. 과거 우리나라 정치서 당 대표가 아니라 총재 권한대행이 있던 시절 같다.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네요.” 우스갯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국 순방길에 오르자 공항에 있던 관계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다. ‘권한’은 없고 ‘대행’만 남았다.

-인사 관련 문제의 연장선상서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김홍일 전 권익위원장이 지목됐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

▲김홍일 후보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게 윤 대통령의 친한 형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손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을 앉히겠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인사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인사 검증 시스템이 지금 작동이 되고 있나? 전혀 아니다. 윤정부 인사를 통한 ‘권력기관 장악’이라는 목적 아래에 인사 검증 시스템과 인사 검증 기능은 마비됐다. 최근 강도현 해수부 장관 후보자가 음주운전과 폭력 전과로 논란이 됐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고위직 후보가 자녀의 학교폭력 때문에 줄줄이 낙마한 적도 있다. 이 정부의 검증 시스템은 완전히 고장 났다.

-지난 21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나는 이 상황에 두 가지 의문이 있다. 현재 검찰, 그것도 특수부 출신의 소수 검찰이 인맥을 통해 국가 여러 기관의 수장과 요직을 맡고 있다. 정상적이지 않다고 보는 국민도 많다. 그런 상황서 또다시 검찰 출신이 여당을 장악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나의 첫 번째 의문이다.

줄줄이 용산 꿰차는 대통령발 낙하산 인사
윤정부 3년 차 “마비된 검증 시스템 여전”

두 번째는 대통령이 당에 개입하는 행위다. 윤정부가 들어서고 당 대표가 두 번이나 물러났다. 국민조차도 내막에 대통령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당 대표가 두 번이나 물러났고, 배후에 더 큰 권력이 있다고 의심받는 상황서 대통령의 최측근이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언론은 ‘한동훈’이라는 인물만 놓고 평가를 한다. 앞서 말한 김홍일 후보도 비슷하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자리를 꿰차는 이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당이 20~30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이외에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이 물망에 올랐었는데…


▲거듭 말하지만 인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을 봐줬으면 한다. 당 대표를 두 번이나 내친 사람이 대통령이다. 한 위원장, 인 위원장 그 누가 뽑혀도 결국 ‘대통령 아바타’ 역할일 뿐이다.

-특정 인물이 아닌 인선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과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나?

▲정말 말도 안 되는 이 인사의 끝은 국가기관에 대한 장악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12월 말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국회 최대 쟁점이다. 만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역풍은 불가피한데, 어떤 선택을 내릴 거라고 보는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건에 문제가 없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다. 사건 특성상 일부 공범자의 입만 단속시키면 진상 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잘 덮을 수 있는’ 사건이다. 특검법을 받는다면 정부는 다른 방향으로 방어에 나설 것이다.

-김 여사의 디올백 논란이 또 다른 리스크다.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지만 ‘금지’만 규정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반대로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금품을 준 공여자는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법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조항 자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법의 구조가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어떤 경로로 수수가 이뤄졌는지가 관건이다. 보수 언론이나 여당 중심으로 ‘함정 취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김 여사가 물건을 받은 게 핵심이다. 논란에 대해 여러 가지 밝혀질 필요가 있다.

-민주당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데 이 수사가 끝나는 시점이 언제가 될 것으로 보는지?

▲나도 언제 끝날지 궁금하다. 지금 검찰은 이미 했던 수사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얼마 전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도대체 언제까지 압수수색할 거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조차 ‘정치보복’ 프레임에 갇히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이만큼 했으면 그만하는 게 맞다”고 할 정도다.

“디올백은 덮어두고 애먼 사람만 때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두 가지 의문 제기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수사를 진행했는데 또 수사한다는 건 검찰의 무능함을 자백하는 거다. 이제 수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럴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의 한계점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수사를 위해 많은 인원과 강제수사 수단을 동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명백하게 드러난 증거가 없다. 혐의점이 나올 때까지, 무언가 걸릴 때까지 목표를 정해두고 수사하는 느낌이 든다.

-선거제 개편을 둘러싸고 당내 갈등이 빚어진 듯하다. 지도부 차원서 어느 정도 논의됐는지 궁금한데.

▲논의는 계속 하고 있다. 지도부 차원서도 얘기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은 못 내린 상황이다.

-지도부 결단이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필요한 시간을 거치고 있다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물론 빠르면 더 좋겠지만 지난 21대 총선을 위한 선거제도는 그해 2월에 결정됐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당내에도 여러 의견이 있는 만큼 지도부가 ‘뚝딱’ 결정할 수 없다.

-민주당 내에서 병립형 회귀를 반대하는 의원과 어떻게 이견을 조율해 나갈 계획인가?

▲병립형으로 결정됐으면 그분들을 설득해야 하는 거고, 연동형으로 결정됐으면 병립형을 주장하는 분들을 설득해야 한다. 아직은 의원들이 다양한 각도서 토론하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국민이 원하는 민주당은 어떤 모습인가?

▲정부와 여당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고 믿고 기댈 수 있는 당을 기대하신다고 생각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그런 의견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지?

▲현재 민주당은 다양한 분야서 민생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몇 십년 동안 막혀 있던 과제들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그래도 국민이 보시기엔 부족할 것이다. 더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다.

-2023년 한 해도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원내 지도부로서 다가오는 2024년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면?

▲과거의 연속선상이다. 지금 국민은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다. 가계부채나 경제 등 여러 이유로 자산과 소득이 줄어들었다. 민주당이 다시 한번 국민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게 됐으면 한다. 출산율 등만 봤을 때도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에 봉착했다. 획기적인 변화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민주당이 되겠다.

-끝으로 국민에게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지?

▲‘국민을 위해 성과를 냈던 의원’으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나는 죽기 전에 역사의 수레바퀴를 단 1㎜라도 굴리고 싶다. 사회와 역사가 긍정적으로, 또 진보적으로 나가는 데 기여한 사람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hypak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