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그룹 때리고 달래는’ 공정위 이상한 이중잣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2.29 10:12:14
  • 호수 14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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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뒤집기 ‘병 주고 약 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내부거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해욱 DL(옛 대림)그룹 회장이 지난 8월31일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앞서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라고 보고 이 회장과 관련 회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다. 이 와중에 DL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의 CP 등급평가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CP(Compliance Program)는 기업들이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제정·운영하는 내부준법시스템을 말한다. 공정위는 CP 등급평가를 신청한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1회 이상 CP 운영실적 등을 평가해 총 6단계 등급을 산정한다. 지난 14일 공정위는 2단계에 해당하는 AA등급(우수기업) 평가증을 DL그룹에 수여했다.

CP 등급 평가
2단계 AA등급

DL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대림과 지주사인 DL㈜은 올해 공정위 CP 등급평가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그룹 측은 “이해욱 회장이 강조하고 꾸준히 추진해온 그룹의 ESG 경영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자축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은 기업이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ESG가 자본시장의 미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는 만큼, 걸맞은 자격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ESG 경영과 거리감이 존재한다고 봤다.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기소돼 2억원의 벌금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31일 대법원(주심 이동관 대법관)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의 상고심서 그에게 2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DL법인에게 벌금 5000만원, 글래드호텔앤리조트에게 벌금 3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도 함께 확정했다.

공정위 사정권에 들었던 DL그룹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올해에 우수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던 배경에는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 운영 및 유인 부여 등에 관한 규정’이 있다.

규정에 따르면 CP 등급 평가 대상은 “최근 2년간 공정거래 관련 법규 위반이 있는 기업은 CP 등급평가 최종 결정 시, 평가 등급을 과태료·과징금의 경우 1단계, 고발의 경우 2단계 하향해 이를 최종 등급으로 한다”고 적혀있다.

“회장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기업을 우수기업으로 선정할 수 있냐”는 질문에 공정위 경쟁정책과 관계자는 “DL그룹 고발건은 2년도 지난 일이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가능하다”며 “CP 등급평가를 신청한 기업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다만, 공정위의 허술한 평가 대상 기준을 만족시킨 DL그룹은 도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회장 사익편취 논란에도 우수기업 선정
내부거래 고발 “2년 지났으니 괜찮다”

앞서 이 회장은 DL그룹 차원서 가족이 운영하는 개인회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지난 2019년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DL그룹은 2014년 여의도 사옥을 ‘여의도 글래드호텔’로 개발하면서 자회사인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에 운영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라관광은 이 회장과 그의 아들 이동훈이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 에이플러스디(APD)의 호텔 브랜드 ‘글래드(GLAD)’와 브랜드 사용계약을 맺고 매달 수수료를 지급하기도 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총수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양보한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DL그룹은 자체 개발한 브랜드를 APD 명의로 출원 등록하게 한 뒤, 글래드 호텔이 2016∼2018년 사이 총 31억원을 APD에 지급토록 했다. 검찰은 이를 통해 부자간의 부당이익이 오간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DL그룹 측은 APD가 글래드의 브랜드 사업을 영위한 건 특수관계인의 사익을 편취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글래드 브랜드 사업 수행은 사업기회 제공 행위가 아니며 이 회장의 지시와 관여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심은 DL그룹과 APD 사이 거래가 통상적인 경우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봤다. 또, 이 회장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다고 판단, 이를 대기업집단이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 사익을 편취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회장과 검찰 측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은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림(DL그룹)에 이익이 될 것을 APD에 제공했다는 것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부당한 이익 범위를 산정하는 데 있어 APD가 마케팅을 시작하기 전까지 포함되는지 등을 유리하게 본다 해도 전부 부당한 이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일각에선 “31억원의 부당이득을 편취한 것에 반해 3억원의 벌금형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이러니 상황
자격 두고 뒷말

이 회장의 ‘개인회사 부당 지원’ 논란은 공정위로부터 시작됐다. 공정위는 오라관광이 APD에 지급한 수수료가 지나치게 많아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라고 보고 지난 2019년 5월 이 회장과 관련 회사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대림산업과 오라관광, APD에 과징금 13억원도 부과했다.

당시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한 것은 최초였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거래단계서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만 제재했다.

공정위는 “이 회장 아들이 소유한 APD가 호텔 브랜드만 보유하고 있을 뿐 호텔 운영 경험이 없다”고 설명했다. 수수료 협의 과정도 거래당사자인 APD가 아닌 대림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이례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호텔 시공·운영과정 등 실제 운영의 상당 부분을 오라관광이 대신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라관광은 스스로 구축한 이 기준을 APD에 제공해 이를 영업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APD는 오라관광에 아무런 브랜드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분담금을 받았다. APD는 2026년 계약 종료까지 약 253억원에 달하는 브랜드 수수료를 받을 예정이었다.


대림 총수 일가는 2018년 7월 APD 지분 전부를 오라관광에 무상 양도했다. 공정위는 조사에 착수하자 대림이 무상 양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당시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와 부당 지원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2006년부터 CP를 도입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운영 실태와 성과에 따라 매년 등급을 평가하고 있다. 평가는 CP 운영 방침 수립, 최고경영자(CEO) 지원, 자율준수편람 등의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실시한다. 등급은 총 6개(AAA, AA, A, B, C, D)로 나뉜다.

A등급 이상을 받은 기업에게는 직권조사 면제, 공표명령 감면 등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최근에는 ESG 경영의 지표로 자리 잡았다.

DL그룹은 ESG 경영 지표인 CP 평가를 받기 위해 지주사인 DL㈜의 주도로 올해 1월 ‘DL그룹 CP운영 TF팀’을 발족해 주요 계열사의 공정거래자율준수 프로그램을 활성화했다. 다만, DL그룹이 CP 평가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은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라는 오명을 씻기 위함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들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 DL그룹이 공정위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것에 관해 공정위 측은 “공정거래법상 문제는 없지 않느냐”고 일축했다. 법률적이진 않지만, ESG 경영의 일부인 사회적 책임 분야서도 ‘산업재해예방’은 중요한 항목이다. 공정위 CP 기준을 폭넓게 평가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DL그룹 건설 현장에 연일 사고가 터지면서 이 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한 건 불과 2주 전이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DL그룹에서는 1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핵심 계열사 DL이앤씨에서만 지난해 4차례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사망했다. 올해 8월에도 부산 연제구 아파트 건설 현장 추락사고 등 3건의 사고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총 8명이 사망해 ‘단일 기업 최대치’라는 오명을 썼다.

부산 현장 노동자 추락 사망사고와 관련해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 유가족의 보상, 사업장의 산재 예방대책 등을 누차 지적해왔다. 사건 발생 100일 지나서야 DL그룹의 공식 사과와 함께 유족 측과 손해배상, 장례 절차, 민사상 손해배상금 등에 관한 합의에 이르렀다.

지난 10월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이 회장은 해외 출장을 핑계로 출석하지 않았다. 환노위 관련 법률에 따라 이들을 고발하려다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야당 주장에 따라 청문회 개최를 의결했고 이 회장은 결국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문회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년 반 동안 7건의 사고로 8명이 사망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나”라고 질문하자 이 회장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이 회장은 앞으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안전 비용을 29% 증액했고, 내년에도 20% 늘릴 계획이다. 가장 안전한 현장을 운영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고개 숙인 회장님
중대재해 최다 오명

근로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DL이앤씨에서는 전문적인 최고안전책임자(CSO) 없이 최고경영자(CEO)가 이를 겸직하는 등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CSO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주요 기업이 줄줄이 도입한 직책이다.

노웅래 의원실이 국내 주요 건설사 6곳(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GS건설, DL이앤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CSO와 CEO를 별도로 분리하지 않은 기업은 DL이앤씨가 유일했다. DL이앤씨를 제외한 대부분 건설사는 CSO와 CEO를 별도로 분리했고, 독립기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DL이앤씨는 조직도상 주택, 토목, 플랜트 부문별 CSO를 두면서도, 주택 부문에서는 마창민 DL이앤씨 대표가 CSO를 겸직해왔다. “공정을 잘 이해해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만큼 마창민 대표가 주택 부문 CSO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DL이앤씨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경영-안전 책임자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노 의원은 “경영 효율화를 책임지는 CEO가 CSO를 겸직하면 안전보건을 위한 내부 견제 기능이 무용지물이 된다. DL이앤씨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음에도 형식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운용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마창민 대표는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문제가 안 생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개선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전 책임 의무가 있는 원청 DL이앤씨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7월4일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e편한세상 신곡파크프라임’ 현장에선 콘크리트 타설 장비를 올리던 중 작업대가 낙하해 장비 운전원 1명이 사망했다. 

DL이앤씨는 “관리자가 부재한 점심시간에 임의 작업이 이뤄졌고 그 와중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8월 11일 부산 레이카운티 현장 사고와 관련해서는 “신고되지 않은 임의 작업을 하다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사망 사고뿐 아니라 DL이앤씨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1년 260건이었던 DL이앤씨 산재 승인 건수는 지난해 302건으로 16% 뛰었다. 올해 들어서도 10월 누적 322건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

“문제 없다”
개선의지 실종

논란이 커지자 DL그룹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DL이앤씨는 지난 9월부터 약 2개월간 고용노동부 지정 안전관리 전문 컨설팅 기관인 산업안전진단협회와 함께 본사, 현장의 안전보건체계 점검을 실시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최근 실시한 산업안전진단협회 점검 결과도 면밀히 분석해 개선 방안이 있다면 본사와 전 현장에 전파해 유사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설업계는 DL이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라는 오명서 벗어나지 못하면 ‘e편한세상’ ‘아크로’ 등 주택 브랜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바라봤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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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