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남은 재판 막전막후

벌써 12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대두된 지 12년이 지났다. 정부도 가해 기업도 피해구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제야 법원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참고해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이번 판결로 피해자 구제 범위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3단계 피해자에 관한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보고서가 사실상 증거로 인정된 것이다. 차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김모씨가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와 납품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서 “원고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997년 출시
2011년 중단

김씨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와 한빛화학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New) 가습기당번’을 사용하고 2013년 5월 분당서울대병원서 원인불명의 간질성 폐질환을 확진받았다.

질병관리청(당시 질병관리본부)은 당시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신고 및 조사 요청을 받아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습기살균제와의 관련성이 드러났다. 질병관리청은 폐 손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질병관리청은 2013년 9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영향 가능성을 4단계로 나눠 판정했다. 판정 결과는 ‘가능성 거의 확실함(1단계)’ ‘가능성 높음(2단계)’ ‘가능성 거의 없음(3단계)’ ‘판단 불가능(4단계)’였다. 

질병관리청은 2014년 3월 김씨에 관해 “거주환경에 대한 환경노출평가와 김씨가 제출한 임상자료 판독에 따르면 김씨의 질병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의 폐질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3단계로 판정했다. 당시 3단계 피해자는 1, 2단계와 달리 정부 지원금 지급 대상서 제외됐다.  

김씨는 2015년 법원에 3000만원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1심서 패소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공동대리인단의 도움을 받아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2019년 “옥시와 한빛화학이 김씨의 질병이 가습기살균제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를 비롯한 사용자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제품상 표시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옥시는 3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에 관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병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책임을 부정하고 상고했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며 피해자의 증명 책임을 완화한 2심 판단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의 3단계 판정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말단기관지 부위 중심 폐질환 가능성을 판정한 것일 뿐”이라며 “손해배상소송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그로 인한 질환의 발생·악화에 관한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구체적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옥시 500만원 배상 판결
제조사 책임 최초 인정

한국 기업의 발명품이었던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최초 출시된 이후 2011년 판매 중단되기 전까지 연간 60만개가 팔렸다. 시장 규모는 20억원에 달했다. 

가습기살균제에는 유독물질인 폴리헥사메탈렌구아니딘(PHMG)와 메틸클로로이소티아졸리논(CMIT·MIT) 성분이 포함됐다. 염화벤잘코늄(BKC), 에틸알코올, 이염화이소시아뉴산나트륨(NaDCC),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의 제품도 있었다.

이 중 화학물질 원료의 흡입독성을 확인하고 제품의 위해성 평가를 한 뒤 출시된 제품은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은 제품에 원료와 성분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았으며 일부 제품에는 ‘인체에 무해’ 같은 문구를 표시하기도 했다. 정부는 화학물질과 공산품의 안전관리 체계에 있던 혼선과 허점을 인지하고도 개선하지 않았다.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 속에서 참사의 피해자들은 소외됐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업이 소비자에게 배상해야 하는 문제로 봤고 기업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법적 책임 추궁 없이 자발적 책임을 끌어내지 못한 셈이다.

참사 초기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환경보건법상 환경성질환’으로 인정됐지만 피해자에 관한 지원은 축소되고 기업의 부담은 경감됐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기업들은 배·보상을 진행했다. 가습기살균제의 영향력이 높다고 판단된 1, 2단계 피해자들에 관한 기업의 배·보상은 이뤄졌지만 3, 4단계의 피해자에 관한 피해구제는 지지부진했다.

대법 첫 판단
국가 책임은?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공식적으로 인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176명이며 3, 4단계로 판정받아 큰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2020년 4월 기준 5083명에 달한다.

민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공동대리인단 소속인 이정일 변호사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건강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에 관해 다른 원인이 있었음을 가해 기업이 증명하지 못한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이번 대법 논리를 다른 피해자에도 적용하면 구제 범위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재판서 기업들의 유무죄는 성분에 따라 갈렸다. 가습기살균제에 PHMG를 담은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관계자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옥시와 롯데마트·홈플러스가 판매한 가습기살균제에 담긴 PHMG가 피해자들의 건강상 피해에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제조사가 안전성 검토를 미흡하게 했거나 위험성을 알고도 개선하지 않은 ‘주의의무 위반’ 또한 재판서 받아들여졌다.

일부 피고인들은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 ‘아이에게도 안심’ 등의 문구를 사용해 판매한 혐의(표시광고법 위반)도 인정됐다. 신현우 전 옥시 대표(징역 6년), 김원회 전 홈플러스 본부장(징역 4년), 노병용 전 롯데마트 본부장(금고 3년) 등은 2018년 1월 대법원서 형이 확정됐다.

반면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제작사인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전직 임원들은 1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흡입 독성물질과 이용자들의 건강상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업들이 안전성 검토를 충분히 했는지 위험성을 알고도 판매했는지 등도 판단하지 않았다.

흡입 독성물질과 건강 피해 사이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혐의 적용의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은 상황서 기업들의 주의의무 위반까지 따져볼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다. 

성분 따라
처벌 달라

법원의 판단에 학계 전문가들은 과학적 방법론에 무지한 재판부가 지엽적인 연구 결과만 보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전형배 강원대 로스쿨 교수, 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등 7명은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시한 주요 논거 3가지를 반증하는 논문을 환경보건학회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검찰은 해당 논문을 참고해 지난달 26일,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모 이마트 상품본부장에게 원심 구형과 마찬가지로 각각 금고 5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모 SK케미칼 팀장 등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금고 3~5년 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수십건의 민사소송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기준 옥시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340명이며 소송 건수로는 105건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각각 249명, 565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마트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인원도 305명에 달한다. 다만 핵심 관계자에 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 현재 소송이 일시 정지된 기일 추정 상태다.

이정일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가해 기업들에 대한 소송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옥시 제품을 썼든 애경 제품을 썼든 제조사가 피해자들의 건강상 피해에는 흡연이든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옥시뿐만 아니라 다수의 가습기 피해자가 발생한 애경, SK케미칼 등에도 역시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단계 피해자에 위자료
피해자 90% 3·4 단계

국가의 책임 여부도 여전히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세퓨’라는 업체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 1~2세의 자녀들이 숨지거나 가족이 위중한 폐질환을 얻게 된 이들은 2014년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세퓨 가습기살균제 성분 PGH의 유해성 심사 과정서 환경부가 흡입독성 자료는 요구하지 않아 이 성분을 유해 물질로 지정하지 않은 점, 보존제로 허가를 받은 뒤 다른 용도로 판매됐음에도 규제가 없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국가가 손해배상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를 유해 물질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은 것에 관해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고 유해성을 확인해야 할 의무나 이를 확인할 제도적 수단이 없었다”고 판시했다. 피해자들은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환경부는 당시 법령에 따라 유해성 심사를 했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사참위가 내놓은 바 있다”면서 “지난 9일 열린 변론서 재판부가 사참위 보고서를 인용하며 ‘환경부가 충분히 반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측에서도 공제 주장 금액을 특정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공제 금액 특정 역시 인용을 전제로 하는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세퓨 국가배상소송은 오는 12월21일 최종변론을 마치고 내년에 선고될 예정이다. 세퓨 외에 다른 업체의 피해자들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지만, 아직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정부의 책임회피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국무조정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참위가 권고한 내용 26건 중 9건에 대해 정부 부처들은 “해당 사항 없음”이라며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모킹건 된
사참위 보고서

구체적으로 대통령실은 참사 관련 공식 사과 권고안에 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8일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한 것을 언급하면서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 관리체계의 개선을 권고한 내용에 관해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기업실사의무화법 제정 권고에 대해 “해당 사항 없음”이라며 권고안 수용을 거부했다.

이밖에 중대시민재해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기 위해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에 관해서는 법무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도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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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