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무당 조심하라는 무당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07 17:16:35
  • 호수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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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이 떼돈 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24일 오후 2시 <일요시사>는 경기도 모처에 신당을 차린 무당 이지선(가명, 40세) 보살을 만났다. 이 보살은 “무당은 넘어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 찾아오는 신도 중에서 무당에게 사기당한 사람도 있고 나도 신내림 받기 전에 그랬다. 이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당이 100만명을 넘는 시대다. 무당이 아파트나 빌라에 신당을 차린 경우는 티가 나지 않지만 어떤 지역은 한 집 건너 한 집에 무당집 표식인 깃발이 걸려있다. 한국에 그만큼 무당이 많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당 본인은 무당이 되고 싶었을까? 대부분 무당은 본인이 선택해서 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일, 공부는 물론, 심지어는 가족까지 버리면서 무당의 길을 택한다.

떡잎부터
다르다

그만큼 무당들은 험난한 길을 걷는다. 이들은 자신의 신당, 굿당 등에서 의례를 한다. 기운이 좋다고 알려진 유명한 산에 직접 찾아가 낮이나 밤이나 치성을 드리고 굿을 한다. 신도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만큼, 끊임없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산다. 

마음 놓고 연애나 결혼도 하지 못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한 인생 계획도 이들에겐 사치다. 모든 것은 무당이 모시는 신령에게 물어서 선택한다. 이 보살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이 보살은 “어릴 적부터 예지몽을 많이 꿨고 나도 모르게 점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어서 어릴 때 일요일이면 항상 성경책을 들고 성당에 가 세례도 받았다. 이런 상황이니 부모님께 많이 혼났다”고 말했다.


어린 이 보살의 말을 부모는 부담스럽게 여겼다. 엄마가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에도 특별한 꿈을 꿨다. 이 보살은 운전면허 시험을 치러 가는 엄마를 향해 “엄마, 꿈에서 엄마가 머리에 가위를 가져와서 자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자르진 않았어. 엄마 운전면허 시험 붙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보살은 자신의 꿈에서 엄마가 머리를 잘랐으면 면허에 떨어지지만 머리를 자르지 않았으니 면허에 붙을 거라고 이해했다. 이 보살의 예상대로 엄마는 시험에 붙었다. 시험을 제대로 친 것은 아닌데 시험 감독관이 배려해줘서 붙은 것이다.

8세 때는 농악놀이, 풍물놀이 꿈을 자주 꿨다. 눈을 감으면 상모 돌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냥 꿈이라고 하기엔 싸한 느낌이었다. 이런 말을 부모님에게 하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야단맞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냥 넘기기엔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는 이 보살은 “지금도 어렸을 때 꿨던 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된다. 매일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니고 잊을만하면 꿨다. 그래도 어릴 때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안 했는데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가 많이 생기니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방과 후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놀란 친구가 뛰어와 괜찮냐고 묻자 그는 “내 옆에 할머니가 도와주잖아”라고 괜찮다고 했다.

‘할머니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이 보살은 “그때는 정확하게 할머니가 보인 것은 아니다. 화사한 빛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왕따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친구들은 ‘쟤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예수님, 부처님 모두 있다고 믿어”
무당 아닌데 사기 당해 무당 되기도


이때부터 이 보살은 정확하게 본인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보이는 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지한 것이다.

어쨌든 부모는 이 보살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모르는 척했다. 집안 가세가 기우는 것도 이쯤부터였다. 저렴한 콩나물을 잔뜩 사서 한 달을 버텼다. 집안 형편상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영험함을 알고 있던 주위의 지인들은 “무당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넌지시 제안했지만 이 보살은 무당이 싫었다. 가까운 지인 중 두 명의 무당이 있었는데 모두 다 너무 가난했던 탓이다. 신당은 차렸지만 손님이 없어서 파리만 날리는 수준이었다.

이들의 신 선생은 “굿을 해야 입이 터진다” “특별 기도를 해야 한다”고 종용했으며, 실제로 그에게 쓴 돈만 1억원이 넘을 지경이었다. 

무당이 신당을 차린 후 문을 닫는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초창기엔 호기심에 신도들이 찾아와도 점이 틀리니 재방문은 있을 리가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혼자 기도 다녔고, 우연히 만난 무당이 “점을 잘 보게 해준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이 보살은 “무당이라고 하면 정말 지긋지긋하다. 주위서 신 선생에게 사기당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나도 이상한 일을 많이 겪어서 죽어도 무당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20대 초반부터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가 돈다’는 의미는 일반적인 정신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보살은 평상시에 멀쩡히 생활했다. 그러다가 사람만 보면 뭐가 쓰인 것처럼 점을 보고 싶었고 입을 멈출 수 없었다.

이 보살은 “남들이 보면 그냥 정신병자다. 그때 나도 차라리 그냥 미쳤으면 했다. 그러면 정신병원 가서 고치면 되니까. 집에서는 나를 빙의 환자 취급했다”고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 회상했다.

내 옆에
누군가…

그만큼 웃을 수 없는 사연도 많았다. 친구들과 술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화도 털어놨다. 작은 술집이라 옆 테이블 간 거리가 가까웠는데 이 보살 옆에는 또래 남성 4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이 보살이 갑자기 앉아있던 남성에게 울면서 “야, 내가 너 할머니야”라고 말을 걸었다. 당연히 모두 놀랐고 친구들은 그만 하라며 말렸다. 하지만, 이 보살 입에선 “너, 나 때문에 마음 상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 나 잘갔다. 그러니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들은 남성도 눈물이 터졌다. 알고 보니 그는 부모가 아닌 할머니 아래서 자랐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간 사이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할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에 1년 동안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보살 몸에 할머니가 들어와서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 보살은 “남성 얼굴을 스치듯 보고는 순간 할머니가 그냥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점을 봤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만 보면 점을 보고 싶고 이상한 말이 나왔다. 전혀 통제가 안 됐다”고 말했다.

이 보살은 정신병원에 가자는 말을 듣기 싫어 핸드폰에 만세력 앱도 설치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을 때는 만세력으로 사주를 봐주는 척하며 점을 봐줬다. 사주를 볼 줄 모르지만 그래도 미친 사람 소리를 듣진 않았다.

이 보살은 “계속 이런 식으로 살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하다가 목이 너무 뜨거워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었다. 계속 말을 토해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신내림을 받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증상을 멈추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부모와 함께 무당을 찾았는데, 이 보살이 빙의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무당이 빙의됐다고 굿하는 데 끌려가서 눕혀놓고 무구(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로 때렸다. 그래도 소용없었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니 신내림은 이젠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신 선생을 선택하느냐였다. 당시 무당 지인들은 모두 망해 그만둔 상태였다. 지인들이 만난 신 선생은 모두 사기만 쳤지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었다.

신 선생에 
빚진 제자


그때 방송에 출연했던 한 무당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신내림을 받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이 보살은 고통을 받았다.

유명하니까 믿었다고 해야 할까? 해당 무당은 스스로 신내림, 퇴송 전문이라고 광고했다. 워낙 유명하고 인지도 있는 무당이라 사기를 당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이 보살보다 나이가 어렸다. 이 보살 외에 다른 제자도 있었는데 일정 기간이 되면 제자를 모았다.

그러나 신내림을 받은 뒤에도 이 보살을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신 선생을 만나러 가는데 왜 안 오느냐”며 무당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정도로 연락이 없었던 만큼 그는 열흘에 한 번씩 연락했다. 원래는 무당에게 점치는 법이나 굿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었다.

이 보살에게 굿을 하고 싶어하는 신도가 있어 도와달라고 무당에게 연락했지만, 그를 쏙 빼고 신도와 굿을 했다. 이런 일이 있어도 제자 중 한 명이 알려주기 전까진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났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차분히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무당은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는 20대 초반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제자들에게 “너는 부모와 연이 좋지 않다” “부모와 계속 연락하면 점을 잘 볼 수 없다”면서 부모와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말 그대로 ‘신적’인 존재였다. 어린 제자들은 그에게 내쳐질까 무서워서 반발하지 못했고 대부분은 2~3년 동안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제자의 신용카드로 마음대로 쇼핑을 하기도 했다. 물론 돈이 많았던 제자도 아니었다. 그는 백화점 명품관서 물건을 샀는데, 카드값만 3000만원이 나왔다. 결국 이 결제 금액은 제자의 부친이 대신 갚았다.

2000만원 정도 돈을 빌리는 건 예사였고 한 제자에겐 1억5000만원의 빚까지 졌다. 이런 상황에도 제자들은 오랜 시간 무당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반발하지 못했다. 1억5000만원 빚이 생긴 제자는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말도 안 될 정도 비싼 점사비 요구
갑자기 굿 하자고 하면 믿지 마라
유튜브 광고해도 안 믿는 게 좋다”

결국 제자들은 그의 곁을 모두 떠났다. 20대 초반에 신내림을 받은 이들은 빚쟁이가 돼 흩어졌다. 결국 무당은 제자들의 돈을 마음대로 쓰기 위해 부모와의 연까지 끊었던 것이다.

이 보살은 “나도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신내림을 받을 때 이상하게 신 선생의 무구가 계속 망가졌다. 방울을 들고 흔들면 방울이 떨어졌고 칼을 들고 뛰면 부러졌다. 그때 이상한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첫 번째 신 선생은 제대로 된 무당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를 만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이 보살이 신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 제자들이 고통받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보살은 무당이 일반인들에게 사기 치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보살의 신도도 한 무당에게 사기를 당했다. 해당 신도가 무당에게 점을 보러 갔는데 “당장 굿을 해야 한다”고 재촉하는가 하면 “바로 굿을 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결국 신도는 돈을 끌어모아서 급하게 굿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기당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당은 “내가 굿을 해서 네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사 예정인 두 집을 두고 고민하다가 무당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신도 중 한 명은 두 집 모두 마음에 들어 어디를 선택해야 좋은지 물었다. 신도는 무당이 선택해준 집으로 이사했는데, 전세 사기를 당했다. 무당의 공수가 잘못된 것인데 결국 신도는 전 재산을 다 잃고 말았다.

무당에게 사기당하는 모습을 경험했던 이 보살은 자신은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항상 다짐한다. 그래서 ‘인건비만 받는 무당’으로 소개받기도 한다. 큰돈을 들여서 차리는 제사상보다 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이 보살은 108배를 한다. 이것이 신 선생에게 사기당했을 때 잘 이겨낸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이 보살은 “나는 우리 종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예수님도 계실 거다. 결국 부처님, 예수님처럼 신 선생이 자신을 신격화해서 제자를 가스라이팅하고 돈을 착취한 것이다. 나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있으면 나보다 더한 사람이 많이 온다”고 허탈해했다. 

스스로 신격화
가스라이팅도

이어 “내 지인도 무당에게 사기당해서 쓴 돈만 1억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이상한 무당을 피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힘들다. 무당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점사비를 요구하거나 갑자기 굿을 보자고 하면 믿지 마라. 특히 유튜브서 광고하는 무당도 안 믿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지인 무당은 점 보는 걸 그만뒀는데 같은 제자였던 무당 중에는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 선생을 찾는다면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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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