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은 껌?’ 부자 무당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24 14:29:35
  • 호수 14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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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식으로 손님 받는 무속인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어떤 문제든 해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살면서 문제를 풀 수 없어 고통스럽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도 하지만, 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바로 무당을 찾아가 점사를 보거나 굿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론 이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민속신앙사전>에서 무속은 ‘현세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하는 현세 긍정의 종교’라고 정의돼있다. 무당은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불교, 기독교가 죽음 이후(사후 세계)를 신경쓰는 것과 달리, 무속은 현실서 잘사는 방법을 찾는다. 한때 정부 통계에 잡힌 무당 수가 100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잘살고
싶어서”

무당을 찾아가 점을 보거나 상담을 받는 사람은 다양하다. 사업가, 정치인은 큰일을 치르기 전에 무당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일반인도 학업, 연애, 결혼, 이사 등의 이유로 무당을 찾는다. 또 ‘일상생활서 귀신을 본다’ ‘가위에 자주 눌린다’ ‘몸이 아픈데 병원서 이유를 모른다’ 등의 영적인 이유로 무당을 찾기도 한다.

무당이 점을 보러 오는 사람의 과거를 잘 맞히고, 제시한 해결책이 닥친 문제를 없앴다고 소문나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렇게 유명한 무당이 되면 예약이 최소 3개월서 길게는 2년까지 잡힌다. 하지만 국내 무당 수가 100만명인 것을 감안했을 때, 모든 무당이 성공할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인기가 없는 무당은 어떤 방식으로 무당 일을 하는 것일까?


네이버 닉네임 ‘영특영석’(이하 영석)씨는 지난해 6월6일 무속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한 카페를 개설했다. 카페명은 ‘무사귀한 점술킹 :: 사주, 신점, 신굿, 타로, 운세, 점집, 꿈해몽’이다. 영석씨가 해당 카페를 만든 것은 자신이 무당에게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인근 카페서 만난 영석씨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주식 전문가로 1년간 주식투자를 공부하고 전국 주식투자 대회서 5위에 올랐다. 그만큼 자신감도 있었고 많이 벌 때는 한 달에 2억6000만원을 벌기도 했다.

돈은 많이 벌수록 투자 비용을 키웠는데, 담보대출로 15억원을 받기도 했다.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회복했기에 스스로를 ‘오뚜기’라고 생각했고, 큰돈을 벌 때는 천재라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욕심을 키우던 영석씨는 결국 주식으로 망했다. 인생에 회의감마저 들었던 이때 기댄 것이 무당이었다. 애초 영석씨 부모도 무당을 맹신해 10년 동안이나 찾아가 굿도 몇 번씩 했다. 영석씨 부모가 오랜 기간 무당을 찾자, 무당은 영석씨에게 “굿하는 방법 등을 전수해주겠다고”까지 말하던 사이였다. 

영석씨와 영석씨 부모는 주위서 돈을 투자하라고 하는데 괜찮은지 궁금한 마음에 자문을 구하기 위해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신뢰할 수 있는 투자다. 사기꾼 아니고 돈 받을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조언했지만, 이는 틀린 점사였다. 영석씨는 직업 사기꾼에게 8000만원을 잃었다. 주식으로도 한차례 돈을 날린 상황서 재기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주식투자 망해 점집 찾아갔지만…
방송 출연자들은 진짜 영험할까?

영석씨는 “무당을 맹신하는 사람한테 점사가 틀리면 치명적이다. 나도 그랬다. 그때부터 무당을 정말 많이 만났는데, 믿을만한 무당은 극소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무당과 무당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의 정보를 모았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가 말한 ‘믿을 수 없는 무당’은 광고를 많이 하는 무당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유튜브 무당 채널에 출연한 무당은 영험해서 출연하는 게 아니었다.

영석씨는 “무당이 출연해서 점, 굿, 퇴마 행위를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가 있다. 이런 곳은 공통점이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연예인을 섭외해 점을 본다. 무당이 소속사에 돈을 내고 연예인이 출연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즉, 소속사에서 영험한 무당을 찾아 출연 제의를 하는 게 아닌, 무당이 스스로를 홍보하기 위해 무당 채널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다. 

영석씨 설명에 따르면, 무당은 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한 시즌에 많게는 7500만원을 내며, 시즌당 10~15편 정도의 방송을 만든다. 출연이 결정되면 무당 소속사는 방송을 외주업체에 맡긴다. 그리고 광고비 때문에 케이블 방송에도 송출한다. 연예인 방송을 할 때는 연예인 인지도에 따라 500만원서 1000만원을 더 낸다.

이런 과정 때문에 무당 소속사가 가져가는 돈은 30% 정도다. 이런 식으로 무당 프로그램에 나온 무당은 그냥 ‘광고를 많이 쓴 무당’이다.

영석씨는 “무당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도 중간에 퇴출당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무당들이 프로그램에 나오면 100억원은 그냥 번다. 100억원은 적게 번 걸 수도 있다. 홍보해서 유명해졌으니까. 그런데 실력은 없으면서, 홍보비로 쓴 비용 때문에 다른 무당보다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돈을 더 많이 받는다”고 지적했다.

기본이
7500만원

무광고로 영험하다고 소문난 무당들은 이렇게 돈 벌 필요가 없다. 무당 프로그램에 나온 A 무당은 다른 무당보다 점사 비용이 10배 비싸다. 일반적으로 무당이 점사를 보면 1시간에 10만원이다. 하지만 그는 점사 비용만 100만원하는 특별 점사를 따로 만들었다.

특별 점사를 받지 않아도 1인당 점사 비용이 10만원이면, 4인 가족의 경우 40만원이 된다. 그렇다고 A 무당이 1시간 동안 점을 보는 것도 아니며 20~30분만 점을 본다.

영석씨는 “A 무당이 직접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하루에 점사를 많이 볼 때는 20명까지 보는데 이 경우 하루에 400만원 버는 것”이라며 “사실 점사는 큰 문제가 안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나 굿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무당은 처음 점사를 볼 때부터 굿을 볼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가려서 점을 본다. 굿을 할만한 사람이면 1시간을 채워서 점을 본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굿을 보라고 해도 흘려들을 수 있지만, 힘든 일을 겪어서 마음이 아픈 사람은 이를 그냥 넘길 수 없다.

영석씨는 “무당들이 굿을 하라고 제안하는 건 빙의, 산소 탈, 조상 천도, 상문 부정, 삼재, 9수, 신내림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를 엮는다. 굿 비용만으로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1억원까지도 제시한다”고 유튜브 광고 무당의 실체를 토로했다.


만약 손님이 무당에게 1000만원에 굿을 한다고 치자. 실제로 굿을 한 뒤에 사업, 대학입시 등에 성공하고, 건강이 회복된다면 하등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 ‘광고를 많이 하는 무당’에게 굿은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다.

영석씨는 이런 과정이 다단계 형태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통 1000만원짜리 굿을 하면 실제로 무당이 가져가는 돈은 200만원 정도로 굿당에 50만원 정도 내고, 굿에 사용되는 용품 구입비, 차비 등의 경비도 많이 나간다. 그러나 비용 중 신 스승에게 바치는 돈이 제일 크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신 스승은 신 부모, 신 선생으로도 불린다. 무당이 될 사람을 도와 신내림굿을 해주는 사람으로, 무당이 되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역할도 한다. 내림굿 후에는 제대로 된 무당을 위한 길잡이가 된다. 제대로 된 신 스승이라면 제자 혼자서 무당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지만, 어떤 무당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제자를 키운다.

정해진
시스템

영석씨에 따르면 제자가 굿을 하면 신 스승과 5:5로 돈을 나누는데 비율은 신 스승 마음대로다. 스승이 8할이나 9할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으며 제자가 10명일 경우, 굿할 때마다 단돈 5만원이라도 제자 10명에게도 돈을 준다.


이 같은 시스템은 굿을 하는 주체가 누군지에 따라 다르다. 신 스승이 굿을 하면 제자와 돈을 나누지 않지만 자신이 번 돈을 신 스승이 많이 가져가도 제자는 항의할 수 없다. 신 스승은 제자에게 “네가 나한테 기술을 배우니 돈을 줘야 한다. 돈 안 주고 기술 안 배울래? 혼자 무당 생활을 할 수 있냐”고 협박을 한다. 

제자가 많은 신 스승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제자들이 무당이 됐어도 생활을 유지하는 데 다시 굿을 하기 때문이다. 무당은 무당이 됐어도 ▲할아버지를 대접해야 한다 ▲굿 안 해서 부정 탔다 ▲잘 불리려면(무당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 굿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끝도 없이 굿을 해 신 스승이 돈을 번다.

제자가 스스로 신 스승을 벗어나지 않는 한 이 일은 무한 반복된다. 제자가 잘 불리면 굿을 더 많이 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신 스승만 좋은 구조다.

영석씨는 제자가 많은 무당은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당 중에 제자가 10명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내림굿을 몇 명에게 권했을까? 내가 볼 때는 최소한 200명에게 권했을 것이다. 아무나 다 신내림받으라고 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무당을 찾는 사람들 중 ‘행복해서’ ‘하는 일이 잘돼서’ ‘몸이 건강해서’ 찾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무당이 “네가 신내림을 받아야 문제가 풀린다”고 말하면, 이를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손님이 무당에게 “내가 이상한 꿈을 꾼다” “계속 건강이 안 좋다” “가족이 아프다”고 말하면 무당은 “네가 신내림을 받아야 인생이 풀린다”고 말하는 식이다.

무당들은 “내가 내림굿 해서 네 말문 틔워줄게” “너 먹고 살도록 만들어줄게” “너 무당 만들어줄게”라고 제안한다. 은근슬쩍 무당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림굿을 받아도 말문이 트이지 않거나 살림살이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제자가 굿 따오면 
스승과 나눠 가져

실제로 굿내림을 받은 한 무당 제자가 신 스승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어 징역을 살도록 한 사례도 있다. 

신 스승과 제자가 서로 욕하면서 싸우기도 하며, 여성 제자를 만들어서 성관계하는 것으로 유명한 B 무당도 있다. B는 이미 이혼도 여러 번 한 상태다.

B에게 신내림을 받으러 간 20대 여성은 고아로 자라, 그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B는 제자에게 “나를 가지면 큰 무당이 될 수 있다”고 꼬드겼다. 다행히 20대 여성은 그날부로 B에게서 도망쳤지만, 이런 식으로 당한 신 제자가 많다. 지금 B는 성매매 업소를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B가 신도나 신 제자에게 돈을 갈취하진 않는다. 그는 심신미약자 신도를 상대로 여러 번 굿을 했다. 당시 신도는 교통사고를 낸 상황이었다. 이 틈을 타 B는 “네가 죄를 지었으니 굿을 해야 한다”고 죄책감을 건드렸다.

이처럼 한 명의 신도에게 여러 번 굿을 하도록 하는 방식은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결국 10억원 이상 배상하라는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성매매 알선, 근로기준법 위반, 공무집행방해 등의 판결을 받은 무당들도 있다. 이들은 여성 신도가 찾아오면, 신이 들어와 빙의된 것처럼 말한다. “할머니가 지금부터 얘기해줄 테니 편하게 들어”라며 신도에게 술집 아가씨로 일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원래 술집 마담 출신으로, 신도들에게 은근슬쩍 술집서 일하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 귀띔한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신도는 이런 상황서 술집에 나가게 됐다.

이외에도 “지금 굿을 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가 죽는다” “네가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자식한테 내려간다” “네가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집안이 망한다” 등으로 신도들을 협박하는 유명 무당이 많다.

지난 8월에는 한 무당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영석씨는 “이 무당은 방송으로 유명해졌는데 사람들에게 돈 받고 굿 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일이 쌓였다”며 “이런 일이 소문이 나면서 인터넷 카페서 욕을 많이 들었다.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가지 일이 겹쳤던 것 같다”고 전했다.

무당이 영험하다면 광고가 필요 없다. 실력 있는 무당이 소문나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 사이서 쉽게 소문이 퍼진다. 전부는 아니지만 광고하지 않는 무당이 영험하다는 것이다. 광고를 하는 무당 중에는 아동을 살해한 무당도 있어 점 보러가기 전 확인해야 한다. 신도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무당 역시 멀리하는 것이 좋다.

문제 많은
신내림

영석씨는 “신내림이 특히 문제가 많다. 신내림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도 받은 경우가 너무 많다. 국내 무당 중 제대로 된 무당은 극히 드물다.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귀신을 보거나, 자기도 모르게 점을 본다”며 “이런 경우가 아니면 신내림을 받으면 안 된다. 또 제대로 된 무당은 상식적인 선에서 요구하고, 굿을 한다고 인생이 한 번에 풀리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무당은 평생 제자를 1~2명만 키운다”고 조언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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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