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게’ 몸값 올리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막전막후

“조직, 중도, 보수 다 잡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최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몸값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른바 돈 버는 도지사로 적극 투자를 유치하며 경제, 민생에 방점을 찍은 행보로 분석된다. 적과 손잡으며,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한 모습이 엿보인다. 

차기 대권주자로 불리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던 김 지사는 대권에 도전하기도 했었다. 대권 도전 당시만 해도 김 자시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새로운물결 창당 후 제3지대 대선주자로 나섰다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단일화 선언 후 그의 대권 도전은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49.06%의 득표율로 민주당 텃밭을 지켜냈다. 김 지사가 경기도민들에게 낙점된 요인은 인물 때문이다. 국회의원 출신이 아니라는 점, 흙수저 출신이라는 점 등이 부각됐다. 

돈 버는
도지사

당시 경기도 선거 상황은 민주당에 불리했다. 경기도가 민주당 텃밭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 열기가 높았던 탓이다. 실제로 김 지사는 불과 0.14%p 득표율 차이로 당선됐다. 막판에 국민의힘 후보였던 김은혜 홍보수석을 제치고 역전에 성공했다. 99% 개표가 될 때까지도 피 말리는 접전 양상이었다.

그는 수도권서 홀로 생존해 몸값이 더욱 치솟았다. 간신히 경기도지사 선거서 신승한 이후 김 지사는 여의도 정치에 의견을 보태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교적 여의도 정치서 한발 물러난 양상이다. 도지사로 취임 당시 그는 도민들에게 임기 내 투자 유치 100조원 달성을 내걸었다. 그런 만큼 최근 김 지사는 국내를 비롯, 해외 방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도내 투자 유치를 동분서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2월 맺었던 투자협약을 7개월 만에 이행시키며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앞서 김 지사는 임기 시작 1년 만에 10조원의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세계 1~4위 반도체 장비 기업의 미래기술 연구소와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위한 유수 기업들을 유치했다.

전략회의를 개최하면서 글로벌 기업 유치, 연구개발 및 클러스터 유치 등을 통해 124조원 이상의 투자 목표를 설정하기도 했다.

또 투자 유치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 글로벌 기업과 외국 기업 유치 중심이던 방향서 국내 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했으며, 혁신 산업 전 과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며 기조를 수정했다. 방식도 기존의 교류, 경제 담당 부서에 한정됐던 투자 유치 업무를 모든 실·국과 공공기관 주요 업무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 지사의 대선 출마 배경에는 당시의 화두가 ‘경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특히 수출이 급감하면서 기업 실적이 악화됐고, 경기 둔화와 자산시장마저 침체기를 맞으면서 세수도 급감해버렸다. 

경제 전문가로 순탄한 행보
경기도지사 징크스 끊어낼까

이런 상황서 그가 경기도지사로서 경기도정을 잘 이끌어만 간다면 차기 대권주자로 더욱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쥘 수도 있다.


염태영 경기도부지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김 지사는)경제부총리를 역임한 경제통이다. 특히 거시경제, 미시경제를 다 다룬다. 경기도가 대한민국 성장 동력이라는 생각으로 투자 유치, 기업 애로사항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지사는 민생 행보를 더욱 늘렸다. 소외계층을 찾아가는가 하면, 정책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공백 없는 돌봄사업도 약속했다. 중증 발달장애인 중 타해, 자해, 의사소통 곤란 정도 등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여러 예산 편성에 큰 그림을 그렸다. 지난달 경기도 추경 예산안은 33조8104억원에서 1432억원이 늘어난 33조9536억원이다. 취약계층 지원에 초점을 맞춰 확장 추경이라는 명칭도 붙었다. 관료로 근무하던 지난날의 경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김 지사는 대권주자 선호도서 밀리는 편이지만, 민심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히 보수층서도 그를 긍정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있으며, 중도층서도 소구력 있는 편이다. 자신의 성향이 중도라고 대답한 경기도민의 절반이 김 지사의 도정 운영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취임 이후 김 지사를 향한 긍정적 평가는 줄곧 상승해왔다. 한 여론조사 결과 선거 당시 득표율보다 지지율이 높은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뽑혔다. 최장기 1위를 기록 중이다. 

김 지사는 SNS를 통해 중도, 청년세대마저 겨냥하고 있다. 청년층이 좋아할만한 말투로 호감을 사 한동안 이목을 끌기도 했다. 젊은 방식의 소통을 시도하고, 도민의 애환도 직접 듣고 민원을 해결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또 아예 반말을 사용하면서 한층 더 호감도를 끌어올렸다.

잠재적
대권주자

경기도지사를 역임할 경우, 차기 대권주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역대 경기도지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동미재) 상임고문을 비롯해, 김문수 경사노위위원회 위원장,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이 대선에 도전했던 바 있다. 

물론 김 지사의 경기도지사직 수행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서 경기도는 민주당 텃밭이라는 별명과 다르게 비교적 험지로 분류됐다. 전체 시·군 기초단체장 31곳 중 국민의힘은 22곳, 민주당은 9곳서 승리했다.

국민의힘 78석, 민주당 78석으로 동률인 경기도의회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정치 이력이 짧은 김 지사 입장에선 이 같은 도의회 내 갈등도 해결해야 하는 등 협치가 필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지사의 경기도의회 소통이 매끄럽지 못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일까? 김 지사는 기획재정위원회를 시작으로 도의회 상임위별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해당 자리서 그는 “도의회 도정 질의에 성의껏 답변드리려고 애쓰고 있다.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도의회는 협치 강화 차원서 내각 참여까지 주장하고 있는 데 반해 김 지사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김 지사는 행정가지만, 이제는 지자체 단체장으로서 경기도 내에서 나름의 정치력도 발휘해야 하는 셈이다. 또 김 지사의 역량에 따라 차기 총선 판도도 뒤바뀔 수 있다. 


지방선거서 신승을 거두긴 했지만, 전임 도지사가 이 대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현재 경기도의회 의석수는 59석으로 이 중 50석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경기도 탈환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서 민주당은 도지사를 제외하고 사실상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29곳서 이겼으나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10곳도 수성하지 못했다. 

비판하며
협조 추구

이대로라면 민주당도 안심할 수 없다. 김 지사도 “민주당에 수도권 위기론이 올 수 있다”고 동의했다. 국민의힘 수도권 위기론에 대해 “민주당도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김 지사는 오히려 이를 이용하려는 듯, 윤석열정부와는 대립각을 세운다. 잼버리 사태 당시에도 정부를 맹렬히 비판하면서도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해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조건 반대가 아닌,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유권자들에게도 좋은 모습으로 비쳤다. 이런 점에서 김 지사의 확장성이 발휘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대선 출마 당시에도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 분야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당시 논란은 다주택자 양도세 결정 과정서 불거졌다. 청와대 핵심 인사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관련 양도 차액 100% 과세를 주장했다고 밝히면서다.

김 지사가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시절 부동산 공급 확대를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또 소득주도성장 역시 비판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름부터 잘못됐다. 소득은 주도로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공급 측면서 혁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김 지사는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기 신도시 특별법이 통과될 필요가 있다. 

해당 법안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부천시 중동·성남시 분당·안양시 평촌·군포시 산본 등 1기 신도시 중 노후 계획도시의 도시정비사업을 진행하기에 기존 도시정비법, 도시재생법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으로 발의된 특별법이다.

도의회와 협치하는 모습 필요
당내 기반, 영향력 확보 숙제

노후한 신도시를 정부, 지자체와 같은 국가 주도로 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안전진단 면제 혹은 완호, 용적률 혜택을 주는 게 골자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3월,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서울-양평고속도로 문제, 철근 누락 이슈로 진행 상황이 지지부진했다. 

최근 국회서 계류 중이던 1기 신도시 특별법 국회 논의가 재개되면서 경기도 주민들도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해당 특별법은 이르면 올해 국정감사 이후 본회의 통과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주도이긴 하지만, 법안 통과 시 김 지사의 존재감과 당내 영향력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김 지사의 단점은 바로 존재감(인지도)과 영향력이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그는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이 대표의 단식 현장을 찾았던 바 있다. 이 대표는 김 지사의 가능성을 본 뒤, 지방선거서 그를 전폭 지원했다. 경기도지사는 잠정 대권주자로 분류되긴 하지만, 당내서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역대 경기도지사 출신 중 대선에 도전했던 인사들은 모두 한결같이 고배를 들이켰다. 김 지사가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다른 문법을 펼치고는 있지만, 결국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정통 관료 출신인 김 지사는 정치 이력이 없으며, 당내 기반도 거의 없다.

추후 김 지사가 경기도서 충분한 영향력을 펼친다면 당내에 김동연계 인물을 진출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 대표 역시 경기도지사 시절, 자신의 계파라고 불리는 이들이 총선 출마를 위해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바 있다. 

다만 현재까진 김동연계 인물들의 존재감이 크지 않은 상황서 이를 끌어올리는 것 역시 그에게 남은 숙제다. 

존재감
영향력

한 정계 관계자는 “김 지사의 인물론은 유권자에게 어느 정도 먹혀 들었다. 민주당 차기 대권주자로 불리는 인물로서 이제는 민주당 내에서도 역할론이 제기될 수 있다”며 “이제 막 민주당에 몸담은 지 1년이 넘어 앞으로 기반을 다져야 존재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동연 ‘또 다른 숙제’ 경기북부특별자치도는?

돈버는 도지사로 불리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라는 숙제가 생겼다.

김 지사는 그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던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에 대해 “게임체인저로 지역내총생산(GRDP)이 1년 1.2%서 3.3% 성장으로 올라간다”며 “연간 일자리가 6만여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와 주민투표를 위해 합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미 경기도는 1년이 넘게 연구용역, 숙의 토론을 거쳐 법령 검토를 마친 뒤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김 지사가 경기도의회 도정질문서 언급한 주민투표 역시 계획을 본격화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계획대로라면 늦어도 내년 2월9일까지는 주민 투표가 마감돼야 한다.

이후 21대 국회서 차기 총선 전에 관련 특별법을 통과시킨다는 의지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특별법은 내년 총선 전에 본회를 통과해야 김 지사의 임기가 끝나기 전 출범할 수 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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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