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검경 기싸움 내막

나쁜 놈 vs 더 나쁜 놈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과 경찰이 한 사건을 동시에 수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보 공유와 협력이 원활하면 성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수사기관이기에 ‘더 나쁜 놈’을 잡아야 한다. 이는 곧 조직 간 경쟁의 화근이 된다. 검찰과 경찰이 그렇다. 직접수사권이 어느 정도 회복된 현재의 검찰은 ‘보완수사’라는 명목으로 경찰의 성과를 자신들이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인근서 발생했던 롤스로이스 사건의 불씨가 커졌다. 마약으로 시작해 조직폭력배 집단, 불법에 가담한 병원, 업체까지 수사선상에 올랐다. 현재까지 압수수색한 병원만 10여곳이 넘는다. 사건 핵심 인물인 롤스로이스 운전자는 구속 기소됐지만 예상치 못한 여러 의혹으로 검찰과 경찰까지 달라붙었다.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하던 사건에 검찰과 광역수사단까지 나선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마약서
조폭으로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가 무고한 행인을 쳐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던 신모(28)씨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가 맡았다. 조폭 수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고 평가받는 신준호 부장검사가 수사를 지휘하게 되면서 신씨가 속한 ‘MZ 조폭’ 집단의 실체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중앙지검은 지난 6일 신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위험운전치상,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신씨는 지난달 2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강남의 한 성형외과서 시술을 빙자해 미다졸람, 디아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뒤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서 운전대를 잡았다.

이후 오후 8시10분쯤 신사동 압구정역 4번 출구 인근 도로서 20대 여성을 차로 치고, 구호 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씨는 자신이 방문한 성형외과에 피해자 구조를 요청하러 사고 현장을 잠시 떠났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신씨가 병원 측과 약물 투약과 관련해 말 맞추기를 하려 현장을 떠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신씨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사고 현장 CCTV와 계좌·통화내역 등을 분석해 신씨의 병원 결제내역 조작 시도, 휴대전화 폐기 등 증거인멸 정황을 발견했다.

신씨는 ‘또래 모임’으로 불리는 소위 ‘MZ 조폭’과 연루됐다는 의혹도 받는다. 검찰은 이에 대한 수사도 이어가는 중이다. 신씨 자택서 1억원이 넘는 현금이 나왔고, 그가 20·30대 주축의 조직 폭력 모임서 활동하며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다수의 불법 사업을 한 정황을 파악했다.

신 부장검사는 하얏트호텔서 난동을 부렸던 수노아파 조직원 39명을 무더기로 기소한 인물이다. 지난 6월 수사 결과 브리핑서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파르르 떠는 등 조폭을 향한 분노를 참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문가 신준호 부장검사 ‘MZ 조폭’ 수사 지휘
“선처 없다. 관련자 및 모든 의혹 철저히 수사”

그는 언론 인터뷰서 “몸에 문신하고 지역구 1등이네, 전국구 별이네 이딴 소리 하면서 모여 노는 게 좀 꼴같잖았다. 자기들끼리 과시하는 게 조폭 세계의 저질 문화다. (조폭들 모습이)아니꼬웠다. 비위가 상했다”며 “이제 조폭과의 전쟁이 사실상 선포됐다. 앞으로는 조폭에 연계됐다고 하면 선처는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신씨가 다녀간 병원들도 수사 대상이다. 그가 다녀간 한 병원은 최근 5년간 환자들에게 마약류를 1만개 이상 처방해왔다. 해당 병원은 경찰이 약물 오남용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한 병원 중 한 곳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신씨가 다녀간 강남 논현동 소재의 병원은 2019년부터 올해 6월까지 환자들에게 디아제팜·미다졸람·졸피뎀·케타민·멘터민·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1만281여개 처방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병원이 마약류 처방을 내린 환자는 5년간 총 2300여명이었고, 처방 횟수는 4900회에 달한다. 특히 가장 많은 환자들에게 처방된 마약류는 ‘우유주사’로도 불리는 전신 마취제 프로포폴이었다. 프로포폴은 1200명에게 2300회에 걸쳐 처방돼 6600개가 투약됐다. 또 마취제의 일종인 미다졸람은 해당 병원에서 총 600여명에게 1600회에 걸쳐 1800개가 투약됐다.

경찰에 따르면 신씨에게 약물을 처방한 병원 10곳 이상을 압수수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 목적이라고 해도 필요 이상으로 처방한 것은 아닌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코인 사기를 통해 100억원가량을 빼돌린 혐의도 받는다. 사건 직후 경찰서로 신씨를 면회 온 20대 초·중반의 지인들 전부 수억원대의 슈퍼카를 몰고 온 장면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려졌다. 신씨와 그 지인들은 ‘코인 리딩방’ ‘코인투자 컨설팅’ ‘청담동 라운지 카페’ 운영 등을 통해 초기 자본을 형성해왔다.

성형외과
타깃, 왜?

그와 함께 코인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는 박모(24)씨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수십억원씩 들어 있는 계좌들을 보여주며 ‘돈 자랑’을 하기도 했다. 박씨 등은 해당 영상서 신씨가 몰았던 롤스로이스 SUV 차량과 람보르기니 등도 자랑했다.

신씨의 코인 사기 의혹을 수사 중인 강남경찰서는 코인 투자업체를 운영하는 A씨와 B 코인의 판매 대행 계약을 맺고 B 코인 3억4000만개를 넘겨받아 이를 코인 시장서 판 뒤 판매 대금을 해외거래소 계정으로 빼돌린 정황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A씨와 이들의 계약서에는 코인 판매 금액의 50%를 A씨에게 주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신씨와 박씨는 코인을 다 팔고도 수익을 A씨에게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코인 판매대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꾼 뒤 암호화폐 해외거래소인 바이낸스 계정에 빼돌려 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A씨에게서 넘겨받은 B 코인은 전체 유통 물량(당시 5억개)의 60~70%에 달했다. 신씨와 박씨가 판매할 당시 B 코인 가격은 30원을 오르내렸는데, 넘겨받은 물량을 한꺼번에 팔아버리면서 현재는 코인 가격이 1원을 오갈 정도로 떨어진 상태다.

이들은 판매할 코인을 넘겨받아 A씨에게 코인 판매를 원활하게 하려면 매수벽을 세워야 한다며 현금 24억원을 조달하게 했다. A씨는 판매 당일 24억원의 자금으로 매수 호가 주문을 넣어 매수벽을 세웠고, 신씨 등은 그러는 사이 A씨에게서 넘겨받은 코인 전량을 판매했다. A씨에게 ‘매수벽에 사용된 원금을 보전하겠다’는 말은 결국 거짓말이었다.

A씨는 이들에게 속아 자금으로 사용한 24억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고소까지 당한 상태다. 강남경찰서는 신씨 등이 ‘코인 먹튀’ 목적으로 A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고 ‘사기’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신씨는 롤스로이스 사건이 나기 이전부터 강남서에 ‘코인 사기’ 혐의로 입건된 상태였다.

경찰은 신씨 등이 A씨 외에도 다른 코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코인 먹튀가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피해자 수는 적지만 금액 규모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사고
가해자 지인?


경찰은 올해 초 신씨와 박씨가 A씨의 B 코인 거래 때 사용한 코인지갑 3개를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해당 코인지갑은 제3자의 것이었다. 신씨 일당과 A씨간 계약서에는 양자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제3자에게 코인을 전송할 수 없다고 돼있지만, 이들은 계약 당시부터 이미 차명 ‘코인 지갑’으로 거래했다.

신씨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또 터졌다. 서울 강남구서 주차 시비가 붙은 상대방을 흉기로 위협하고 자신의 람보르기니 차량을 타고 달아난 30대 남성 홍모씨는 또한 그의 지인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강남경찰서 수사 결과 홍씨는 마약 간이검사서 필로폰·엑스터시·케타민 등 3종 양성 반응이 나왔다.

사건 당시 홍씨는 자신의 차 안에서 윗옷을 들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며 위협했다고 한다. 다친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흉기를 목격한 시민들의 신고로 홍씨는 이날 저녁 7시40분께 신사동 한 음식점 앞에서 체포됐다.

목격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체포 당시 홍씨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등 약에 취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관련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마약 운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미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남 방지3법’을 대표 발의했다.


그간 마약류 등을 오·남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범죄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약물운전 처벌은 음주운전과 유사하거나 더 낮은 수준으로 규정돼있었다.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업무 외의 목적으로 처방한 사람에 관한 처벌 수위도 낮아서 실효성 있는 처벌을 위해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지속돼왔다.

강남서, 불법 투약 병원·코인사기 정황 포착
기관 간 갈등 “실적으로 보여줘야” 성과 경쟁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약물운전에 따른 처벌 수준을 현행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해 약물운전에 경각심을 높이고 교통안전이 확보될 수 있도록 했다.

또 특별범죄 가중처벌 등의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음주운전과 약물운전을 분리하고, 약물운전으로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5년 이상 또는 무기의 징역’에 처하도록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했다.

마지막으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마약류취급의료업자가 업무 외의 목적 등으로 마약류 등의 처방전을 발급한 경우에 처벌을 강화하도록 규정해 무분별한 처방이 방지될 수 있도록 했다.

롤스로이스 사건을 두고 검찰은 주로 조폭 수사, 경찰은 마약 불법 투약과 관련한 성형외과와 코인 사기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방향은 다르지만 수사 과정서 타 기관에 도움이 될 유의미한 정황을 포착하면 협력도 가능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한 경찰 간부는 “현재 롤스로이스 사건을 두고 검찰과 경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어떻게든 검찰보다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간부가 많다”고 주장했다.

두 기관 간 갈등은 오늘내일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수사준칙 개정안을 두고 비슷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논쟁은 입법예고가 끝나는 다음달 11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경찰이 보완수사를 전담한다’는 원칙을 지우고 검찰과 경찰이 사건의 특성에 따라 분담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검찰서 사건 수리 후에 한 달이 지난 사건, 상당한 수사가 이뤄진 사건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하도록 했다.

수사 지연을 막기 위해 검찰은 한 달 안에 보완수사 요구 여부를 결정하고, 경찰은 3개월 안에 이를 이행하도록 했으며,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했을 때 경찰은 3개월 안에 수사해야 한다.

검경 갈등
재연되나

경찰이 검찰의 재수사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검찰이 사건을 받아서 마무리할 수 있다. 경찰의 고소·고발 반려 제도를 폐지하고 수사기관이 고소·고발장을 의무적으로 접수토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번 개정안으로 외형상 검찰 수사권한이 넓어진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경찰은 이번 수사준칙 개정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서울청 간부는 “경찰이 좋아할 내용이 아니지 않느냐”며 “우리의 목소리가 강해지려면 그만큼 좋은 성과를 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검찰과 방향이 달라도 같은 사건을 수사할 경우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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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