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겁 없는 신인 이한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9.12 10:47:01
  • 호수 14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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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그랬다 “네 얼굴로 뭘 한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이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여성이 성형을 통해 3가지 인생을 살아가며 살인까지 벌이는 극적인 연출이 인상깊다는 평이 많다. 동명의 웹툰을 찢고 나온 듯한 배우 이한별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주인공 김모미로 분한 ‘만찢녀’ 이한별은 더 못생겨질수록 극찬을 받았다.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의 주연을 꿰찬 이한별은 “무명 시절 없는 스타”로 급부상했다. 오디션서 번번히 낙방하던 그는 김모미처럼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했다. “네 얼굴로 가수를 한다고?”라며 엄마의 외면을 받았던 모미처럼 실제 이한별도 쓴웃음으로 견뎌왔다.

못생긴 여자
마스크 벗다

이한별은 고현정 등 대선배들이 함께하기에 “흥행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놀란 눈치다. 공개 2주 차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정상에 오른 이 작품에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외신들은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잇는 대작이라며 사회 비판, 블랙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와 외모지상주의, 사회 비판, 학교폭력을 비롯한 폭넓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매우 일관성 있게 이야기를 전달했다는 평가를 남겼다.

프랑스 매체 <GRAZIA>는 “잘 만들어진 K-드라마의 모든 요소를 내재하며, 보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주제를 다뤘다”며 “아름다움이 요구하는 해악과 개인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사회적 압력에 주목한다”고 보도했다.


이한별은 신인 배우인 자신에 관한 세계적 관심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서 “공개되기 전에 미리 완성본을 봤는데, ‘내가 (연기를)잘한 게 맞나’ ‘대중은 어떻게 볼까’ 생각했다”면서 “연기 당시엔 물론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데도 아쉬운 점이 보여서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한별이 연기하는 20대 후반의 김모미는 외모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연예인의 길을 접고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지만, 대중의 관심을 갈망한다. 퇴근 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BJ 마스크걸로 분해 꿈을 실현한다. 

작품 속에서 화려한 BJ의 모습과 초췌한 회사원 김모미의 이중성을 연기하는 모습도 놀랍다. 이한별은 “민낯에 광대를 부각하는 흑칠을 해가며 수정 작업을 반복했다”며 “촬영 중에는 ‘너무 못 생겨 보이면 어떡하지’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못생겨질수록 웹툰 속 김모미에 가까워졌다.

앞서 <마스크걸>은 3인1역이라는 독특한 기획이 알려지며 공개 전부터 궁금증을 유발했다. 고현정과 나나의 캐스팅 소식이 차례로 전해지며 두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또 한 명의 배우가 누구일지 관심이 쏠렸다. 원작을 접했던 팬들은 “설마 김모미 성형 전 모습이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이냐며 미스 캐스팅을 지적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마스크걸> 전 세계적 인기
제작발표회까지 숨겨왔던 ‘괴물 신인’

숨은 의도였을까? 제작진은 제작발표회 때까지 이한별의 존재를 숨겼다. 베일을 벗은 이한별을 본 팬들은 “어디서 이런 배우를 찾았냐”는 반응이었다. 포털에 프로필도 없었던 신인배우였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공개 후 이한별은 인생 첫 캐릭터로 ‘못생긴 여자’를 맡게 됐지만 “연기할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 우연히 본 연극을 통해 배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소극장서 한 배우가 몇 시간 동안 혼자 걸어 다니며 1인극을 펼쳤는데, 눈이 반짝였고 침을 튀기며 대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열정적이었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소회했다.

연기자의 꿈을 갖게 된 그는 대학 졸업 후 고향인 경북 구미를 떠나 서울로 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단편영화 등에서 연기 경험을 쌓았으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이한별은 “당시엔 작은 성취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는 불안감과 함께 스트레스로 몸이 안 좋아졌고, 금전적인 압박도 느낄 무렵이었는데 그때 <마스크걸> 오디션 기회가 왔다”며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최선을 다하되,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스리며 오디션에 임했다”고 말했다.

미스 캐스팅?
말 많았지만…

4개월가량 이어진 오디션 끝에 ‘김모미 A’로 낙점됐다. 김용훈 감독은 지난달 중순 제작발표회서 “이한별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연기하고 싶은 그의 커다란 열망이 김모미가 느끼는 감정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닮아 있었다.

30대에 늦깎이로 첫 작품에 캐스팅된 이한별은 “(딱히)롤모델이 없었는데, 이번 작품을 같이 한 선배님들을 보며 내 안에서 좋은 기준이 세워졌다”고 언급했다. 특히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던 배우 안재홍(주오남 역)에 관해 “현장서 아이디어가 많고, (내가)캐릭터 표현에 있어 헤매고 있으면 옆에서 연기 합을 맞춰주고 조언도 해줬다”고 말했다.

안재홍은 완벽한 드라마 속에서 비호감 캐릭터 역할을 소화하면서 ‘은퇴작이냐’는 논란까지 일으켰다. 그만큼 ‘미친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극 중 안재홍은 김모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직장 동료 주오남 역을 맡았다. 퇴근 후 인터넷방송을 시청하던 주오남은 BJ 마스크걸을 보던 중 그의 정체가 자신의 직장 동료 김모미임을 직감하고 그를 향한 집착과 망상을 키워가는 인물이다.

주오남이 상상 속에서 김모미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최근 SNS상에 떠돌며 화제를 일으켰다. 일명 ‘오타쿠’라고 불리는 주오남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익힌 일본어로 김모미에게 “아이시떼루(사랑한다)”라고 고백한다. 심지어 대본에 없는 대사를 리허설로 만들었다는 후문이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이한별도 <마스크걸> 명장면으로 안재홍의 고백신을 꼽았다.

이한별은 “대본에는 (안재홍이)‘모미씨를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게 끝이었는데 ‘주오남이라면 어떻게 고백할까’ 고민하다가 만들어진 애드리브였다”며 “주오남은 어디선가 자신이 본 만화의 장면과 현실이 혼재돼있는 인물이라 ‘아이시떼루’라고 고백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배들과?
“현실감 없어”


이한별은 “(현장서)주오남이 ‘아이시떼루’ 하는 걸 봤기 때문에 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됐다. 정말 찐으로 놀라서 쳐다보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상대역인 안재홍에 대해 이한별은 “감사한 게 너무 많다. 리딩 때부터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기다려주시면서 해주신 부분도 많다. 대사도 먼저 맞춰주셨다”며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또 다른 김모미 역을 맡았던 고현정, 나나에 대해선 “고현정 선배님과 같은 작품을 넘어,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현실감이 없었다”면서도 “촬영이 가까워지면서 같은 작품을 준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누가 되지 않게 잘해서 시너지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대선배들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

같은 인물을 연기했기에 세 배우가 함께 호흡을 맞출 순 없었지만 제작발표회나 홍보 일정 속에서 고현정과 나나는 이한별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김모미 캐릭터에 관해선 “대본을 보며 모미에게 뭔가 애틋함,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이 있지만 어떤 이유로 그 꿈을 펼치지 못한 인물이고, 그럼에도 그 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배우를 꿈꿨던 자신과 가수를 꿈꿨던 김모미의 열정이 동일시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에 투영된 것이다. 이한별은 극 중 김모미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했지만, 몰입도를 위해 많은 이의 노력이 필요했다.


김 감독은 이한별이 웹툰의 김모미처럼 보일 수 있게 수차례 분장을 고쳤다. 현장 스태프들은 이한별의 광대 부분을 부각하는 메이크업을 통해 초췌한 모습을 만들어갔다. 

외모지상주의 아닌 
인간 양면성 보여줘

“내가 점점 못나질수록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이게 맞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반응을 보니 나까지 동화돼서 신났다”는 이한별은 작품을 위해 운동은 물론, 춤까지 배우며 칼을 갈았다. 주 5회 운동과 춤, 연기 연습에 몰입하며 치열했던 노력을 떠올렸다.

그는 “사실 알바를 병행하기가 힘들다고 생각돼 그만두고 ‘일단 한 번 해보자’ 하고 오디션에 매진했다”며 “특히, BJ 마스크걸이 추는 춤을 소화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주제곡처럼 나오는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을 완벽히 소화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연습은 촬영 준비 과정서도, 촬영 중에도 계속해서 했다. ‘리듬 속의 그 춤을’과 손담비씨의 ‘토요일밤에’는 계속 듣고 다녔다”며 “어릴 때는 무용을, 커서는 발레를 취미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걸>로 데뷔해 스타덤에 오른 이한별의 다음 행보도 궁금해진다. 이한별은 “<마스크걸>이 강한 이미지를 남기는 작품이어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려면 잘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저 또한 기대가 된다.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마스크걸>은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 감독은 “인간의 양면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매체와의 인터뷰서 “인간의 이중성과 양면성이 <마스크걸>의 진짜 이야기 아닌가 싶다”며 “(김모미가)‘가면을 쓴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 이런 양면성, 이중성을 하나의 시점이 아닌 다중 시점으로 다룬 것”이라고 밝혔다.

외모로 받는 차별적인 사회 시선 때문에 김모미가 변해가고,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마스크걸>은 이 과정을 이한별, 나나, 고현정이 김모미로 변신해 보여준다. 

다음 행보
모두 주목

김 감독은 김모미가 삶을 통해 맞이하는 변화들이 단순히 외모지상주의 때문이라고 보지 않았다. <마스크걸>은 자식을 잃은 사람이 타인의 자식을 해하는 부조리함과 외모로 차별받은 사람이 타인의 외모적 약점으로 성적 이득을 취하려 하는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 감독은 “외모지상주의보다 조금 더 들어간 그 안에는 인간의 양면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드라마 보고 원작 찾는다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마스크걸>과 <무빙>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원작을 다시 찾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드라마로 처음 접한 팬들이 원작을 찾는 ‘흥행 선순환’은 여러 작품서 엿볼 수 있다.

네이버 웹툰에 따르면 <마스크걸>은 넷플릭스 드라마로 방영되기 한 달 전인 지난 7월 9~18일에 비해 방영 이후인 지난달 19~28일 국내 조회수가 121배, 거래액은 166배 늘었다.

일본서 <마스크걸> 웹툰을 서비스하는 ‘라인망가’서도 방영 한 달 전에 비해 방영 이후 10일간 합산거래액이 112배 늘었다.

조인성, 한효주, 류승룡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흥행 중인 <무빙>은 방영 전에 비해 방영 이후인 지난달 9~29일 일평균 매출이 카카오페이지서 12배, 카카오웹툰서 8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조회수는 카카오페이지 22배, 카카오웹툰 9배 증가했다.

강풀 작가가 2015년 완결한 작품임을 고려하면, 드라마에서 얻은 인기가 웹툰으로 되돌아왔다고 해석된다.

최근 넷플릭스서 시즌2를 공개한 <D.P 개의날>은 방영 한 달 전 10일간에 비해 방영 직후 10일간 조회수가 78배, 거래액이 60배 늘었다. 

웹툰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에 기존 웹툰 플랫폼을 이용하던 독자들과 다른 ‘신규 유입층’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웹툰 드라마화로 흥행을 맛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웹툰 등 주 플랫폼들은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의 영상화 작업에 나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웹툰 원작의 스토리와 특징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직접 영상콘텐츠를 기획·제작하기도 한다.

지난해 선보인 드라마 <사내맞선>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

업계 관계자는 “웹툰 IP로 영상을 만들면 원작으로 확보된 팬덤이 영상의 인기를 보장하고, 또 영상을 본 뒤 다시 웹툰으로 유입되는 시너지를 낸다”며 “웹툰 독자층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팬덤이 형성되고, 원작 IP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흥행하는 사례는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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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