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넥스지 VS 어울림’ 끝나지 않은 저작권 전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28 14:24:31
  • 호수 14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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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뒤치락’ 10년 진흙탕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솔넥스지(현 넥스지)와 어울림정보기술(어울림)의 ‘저작권 분쟁’이 재점화됐다. 최근 어울림 측에 유리한 근거가 제시되면서다. 최근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어울림 측의 시큐웍스V4.0 저작권 등록 과정서 필수 자료가 누락된 사실을 인정했다. 양사는 방화벽 운영체제인 시큐웍스V4.0의 소유권을 놓고 10년째 공방 중이다.

통상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을 등록할 때는 저작권법에 따라 소스코드와 실행파일이 필수로 첨부돼야 한다. 소스코드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설계도를 의미한다. 시큐웍스V4.0이 최초 등록된 건 2011년 9월.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저작권위원회(이하 저작위)는 홍보 브로셔만 검토하고 저작권을 내줬다. 넥스지가 매수한 저작권은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껍데기 
사갔다?

넥스지는 2001년 설립된 국내 VPN(가상사설망) 시장 1위 업체다. 2013년 9월 한솔그룹의 정보시스템업체인 ‘한솔인티큐브’ 등에 인수됐다. 합병을 통해 한솔넥스지가 출범했다. 그해 11월 어울림서 퇴사한 개발자 20여명은 다넷정보기술이라는 업체를 설립했다. 2013년 10월 한솔넥스지는 다넷정보기술을 인수했다.

한솔넥스지는 당시 어울림 소유의 시큐웍스V4.0 저작권을 경매로 매수해 “차세대방화벽 시장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선포했다.

어울림이 개발한 시큐웍스V4.0 시리즈는 관공서 등에 납품한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으로 등급과 용도에 따라 R2·R3·R4로 나뉘어 있다. 


2013년 말 한솔넥스지는 “시큐웍스V4.0의 저작권이 시큐웍스V4.0 R2·R3·R4를 포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큐어웍스V4.0을 사용 중인 고객사 800여곳 중 500여곳에 관한 유지보수로 연간 60억원을 벌었다. 고객사들은 어울림이 기존에 납품한 거래처였다.

1997년 설립된 어울림정보기술은 어울림그룹 산하 기업이다. 주로 방화벽, VPN 등을 개발한 정보보안 기업이다.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 등을 생산한 어울림모터스의 모회사기도 하다.

넥스지와 어울림의 분쟁은 박동혁 어울림 대표가 2013년 공금횡령 등으로 구속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어울림 측은 “한솔넥스지가 ‘핵심 인력’과 ‘기술’을 빼돌려 불법 영업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끝까지 싸웠다.

‘시큐웍스V4.0’ 등록 과정 필수자료 누락
홍보자료만 받고?…위원회 “말도 안 돼”

어울림의 분열 기미가 포착된 건 2012년 3월 주주총회부터다. 앞서 직원 200여명은 회사 지분 20%가량을 확보했다. 이후 주총에 나타나 이사 선임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이들은 집단 퇴사하면서 퇴직금 지급소송을 냈다. 어울림의 통장 계좌, 시큐웍스V4.0 저작권에 관한 압류 신청을 이어갔다. 박 대표가 발목을 잡힌 시기였다. 그는 퇴직금 지급을 위해 압류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대표는 시큐웍스V4.0의 저작권 유무를 압류되기 전까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어울림 내에 시큐웍스V4.0이라는 단일 제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시큐웍스V4.0 R2·R3·R4 등의 시리즈를 통칭하기 위해 시큐웍스V4.0이라는 단어를 썼을 뿐이다. 


저작위에 확인한 결과, 시큐웍스V4.0은 2011년 9월에 등록됐다. 법인 공인인증서를 통해 누군가 저작권을 등록했다는 의미다.

박 대표는 법인 공인인증서 관리를 맡았던 총무팀 직원 김모씨로부터 정황을 듣게 된다. 김씨는 “2011년 9월8일 최모 부장이 찾아와 ‘급히 처리할 것이 있으니 컴퓨터를 쓰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어 자리를 내줬다”고 진술했다. 이날은 시큐웍스V4.0의 저작권이 최초 등록된 날이다.

2차 감정
90% 동일

최 부장이 어울림 법인 공인인증서를 사용해 저작권을 등록한 것이다. 당시 최 부장은 한솔넥스지로 이직했다가 현재는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시큐웍스V4.0 R2·R3·R4의 저작권을 2005년에 등록했다. 2011년 9월 등록된 시큐웍스V4.0과 다른 저작권이다. 당시 최 부장은 시큐웍스V4.0을 등록할 때 홍보 브로셔 이미지만 등록했다. 기술적 근거자료 없이 단순 설명서로만 저작권을 받은 셈이다.

박 대표는 “어떻게 홍보 브로셔만 받고 저작권을 내주냐”며 저작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저작위는 사실을 인정하며 경정을 요청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저작위 공문에 따르면 “(시큐웍스V4.0)등록 신청 당시 등록명세서 기재에 부합하는 프로그램 소스파일을 제출하지 않고 브로셔를 제출했으므로 저작권법 시행령 제29조 제1항에 따라 이를 경정해 제출할 것을 요청한다”고 적혀 있다.

박 대표는 어울림서 납품한 시큐웍스V4.0 R2·R3·R4와 무관한 소스코드를 저작위에 넘겼다. 최근 법원이 저작위에 요청한 2차 감정서도 시큐웍스V4.0 R2·R3·R4와 시큐웍스V4.0의 저작권 등록 내용은 다르게 나타났다.

다만, 시큐웍스V4.0의 저작권은 압류된 상태라 회수할 수 없었다. 경정이 완료되자, 2013년 말 한솔넥스지는 시큐웍스V4.0의 저작권을 매수한다.

한솔넥스지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소스코드가 없다고 해서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2014년 한솔이 시큐웍스V4.0 저작권을 정당하게 인수했고, 이를 인정해준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고 일축했다.

어울림 출신
모두 나갔다

박 대표는 “어울림이 2005년 저작권을 취득한 시큐웍스V4.0 R2·R3·R4를 한솔넥스지가 무단 판매했다”며 “자신들이 경락받은 시큐웍스V4.0 저작권과 전혀 다른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저작위는 허술한 저작권 등록 과정에 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저작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프로그램 저작권을 신청할 때 소스코드나 실행파일을 등록하지 않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며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말도 안 된다”고 단언했다.

쟁점은 시큐웍스V4.0과 시큐웍스V4.0 R2·R3·R4의 관련성이다. 시큐웍스V4.0 R2·R3·R4 저작권은 현재까지 어울림의 소유다.

반면, 한솔넥스지 측은 “시큐웍스V4.0이 시큐웍스V4.0 R2·R3·R4 등을 총칭하는 제품명”이라고 주장했다.

어울림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첫 번째 근거는 저작권에 등록된 파일의 용량이다. 먼저, 어울림의 시큐웍스V4.0 R2·R3·R4는 저작권 등록 당시 각각 실행파일과 소스파일이 첨부됐다. 한솔넥스지의 주장대로라면 시큐웍스V4.0의 저작권 내용물이 시큐웍스V4.0 R2·R3·R4을 포함한 파일의 크기여야 한다.

저작권 프로그램 등록부를 살펴보면 시큐웍스V4.0 R2·R3·R4의 용량은 2982만1579바이트다. 이에 비해 시큐웍스V4.0의 소스파일 용량은 1102만6988바이트다. 결론은 두 저작권의 내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500억 이상 손해배상액?
“승소했는데 뭐가 문제냐”


특히, 시큐웍스V4.0의 프로그램 등록 설명에는 “고성능 Multi-Core CPU를 사용한 경계선 방어형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으로 Firewall, VPN, IPS, QoS, Anti-Virus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시큐웍스V4.0 R2·R3·R4의 경우 ‘전용 서버 하드웨어에 설치되어 내부 네트워크 자원에 대한 보안과 사용자들의 접근제어를 수행하고 암호화된 가상의 사설망을 제공하는 시스템 프로그램’이다.

다시 말해 한솔넥스지는 시큐웍스V4.0 저작권을 인수해놓고 이와 무관한 시큐웍스V4.0 R2·R3·R4를 무단으로 판매한 것이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서 저작위에 의뢰한 2차 감정 결과도 마찬가지다. 한솔넥스지가 판매한 제품이 어울림 소유의 시큐웍스V4.0 R2·R3·R4 소스코드와 90% 일치한 것으로 나왔다.

2015년 어울림은 한솔넥스지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오히려 저작권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당했다. 

한솔넥스지는 “프로그램 업데이트 권한과 유지보수 권한 등 시큐웍스V4.0이라는 이름을 쓰는 모든 제품에 대한 저작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인수했다”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무단으로 제품 판매 및 유지보수 활동을 해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박 대표는 “(한솔은)어울림 출신 퇴직자들이 설립한 회사를 인수하고, 시큐웍스V4.0 R2·R3·R4와 별개인 시큐웍스V4.0 저작권을 인수해 우리 제품을 판매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솔넥스지는 2017년 한솔그룹과 분리되면서 넥스지로 사명을 바꿨다. 현재 어울림은 넥스지를 상대로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어울림 측 변호사에 따르면 약 500억원 이상의 손해배상액이 나올 전망이다. 한솔넥스지는 어울림이 납품한 시큐웍스V4.0 R2·R3·R4의 유지보수로만 500억원 이상을 벌었다.

공방전
재점화

시큐웍스V4.0을 매수한 2014년 기준, 유지보수비로 발생한 연평균 매출은 약 60억원이다. 하드웨어까지 포함한 매출은 150억원 이상이다.

넥스지 측은 “어울림 출신 직원은 모두 퇴사했다”며 “한솔넥스지가 승소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박 대표의 입장을 반박할 어울림 출신 직원들은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술 복제 코오롱베니트

소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한 대기업이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코오롱그룹 계열사 IT서비스 전문업체인 ㈜코오롱베니트(대표 강이구)는 개인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베꼈다가 지난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형사4단독 이용제 판사는 저작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코오롱베니트 법인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고 지난해 2월10일 밝혔다. 

코오롱베니트 측 책임자 이모씨와 프로그램 복제 등을 수행한 외부 업체 책임자 김모씨에게도 각각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면서 “다만 초범이라 벌금형에 처한다”고 밝혔다. 코오롱베니트 측은 항소할 뜻을 밝혔다.

앞서 2017년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고모(전 솔컴 인포컴스 대표)씨가 개발한 TP모니터 계열의 미들웨어 프로그램을 코오롱베니트가 복제해 ‘수출용 증권시장 감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미들웨어(Middleware)는 컴퓨터 제작 회사가 사용자의 특정한 요구대로 만들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운영체제와 응용 소프트웨어의 중간서 조정과 중개의 역할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다. 

코오롱베니트는 해당 프로그램을 한국거래소(KRX)에 납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프로그램 개발 업무를 담당한 이씨와 관련 용역에 참여한 김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특히, KRX는 이 시스템을 우즈베키스탄·베트남 등에 수백억원대에 판매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서울신문> 보도 후 검찰 수사가 본격화돼 재판에 넘겨졌으나, 수십년간 보류돼왔다.

지난해 10월 민사소송서 법원이 코오롱베니트의 기술 침해를 인정해 배상금 2000만원 지급을 명령하면서 속개됐다.

고모씨는 2016년 11월 “코오롱베니트가 2년 전부터 ‘심포니 넷트’ 베이스 라이브러리(소스 프로그램)를 몰래 사용하고 개발자를 비밀리에 고용해 역공학(복제)하는 방법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고씨의 미들웨어 프로그램은 은행의 뱅킹 업무 및 철도 승차권 예약과 같이 동시 사용자가 폭주할 경우 업무 처리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감시·제어하는 기능을 한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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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