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44)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란 격

그는 그때 일이 영 꺼림칙한지 잠깐 굳은 표정을 짓다가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통화를 끝낸 진 사장이 자리에 와서 앉고 대화는 계속되었다.

“식사에 초대되어 음식을 먹고 나서 얘기들을 나누는데 처형이 돈 얘기를 꺼냈습니다. 사업은 해야겠는데 자금이 부족하니 자신들 대신 대출을 받아서 빌려달라고 말입니다. 늦어도 1년 안에는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제 집사람이 난처해하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서가 나서서 구체적으로 요구를 하는 겁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많은 대출을 받아서 금융권에서는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동서는 신용이 좋으니 대출이 가능할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저 역시 신용대출을 받은 것이 있어 더 이상 곤란하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동서는 자신들이 빌라 건축을 위해 구입한 땅은 제1금융권인 은행에만 담보가 제공되어 제1금융권에서는 추가담보제공이 불가능하지만, 제2금융권에서는 후순위로 담보제공이 가능하여 얼마만큼의 대출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저와 같이 대출이 많지 않고 사업을 하여 어느 정도 신용이 있는 자라야만 된다는 겁니다.”

“아하, 그래서 최 사장님이 보증을 서주었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진 사장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겠다는 듯이 말을 가로채며 거들었다. 그러자 최 사장은 멋쩍은 미소를 띠고 진 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닐세, 진 사장. 차라리 보증을 섰다면 그런대로 대응하기가 수월할 지도 몰라. 결국 우리부부는 동서부부에게 대접받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네. 그 대출 요구를 묵살할 수 없어 결국은 내가 승낙했기 때문이지. 다음 날 우리 네 사람은 동서가 미리 정해놓은 새마을 신용금고에서 다시 만났다네. 그곳에서 나는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고 동서가 요구하는 대로 내 명의로 3억원을 대출 받을 수밖에 없었어. 물론 그 동서 자신이 빌라를 짓기 위해 구입해 놓은 땅을 후순위 담보로 제공하긴 했지만…”

보증 딜레마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묻자 최 사장이 일이 꼬인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제 명의로 대출받은 3억원을 그 자리에서 돈 한 푼도 만져보지 못하고 곧바로 동서에게 건네주었지요. 그런데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는 말처럼 동서부부는 대출을 받기 전에는 우리 집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갖은 아양을 떨더니, 대출을 받은 다음 날부터는 발걸음을 끊다시피 하다가 나중에는 연락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사업상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하였지요. 무엇보다 동서가 사업이 잘 되어 대출금만 상환일자에 갚고,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서운한 것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상환약정일자가 지났는데도 상환을 하지 않고 제대로 이자도 불입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자기 언니에게 찾아가 빨리 상환을 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게 되었지요. 더욱이 제가 신용불량에 걸리면 사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통사정도 했습니다. 동서부부는 처음엔 미안하다고 하면서 어떤 경우라도 제가 신용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호언장담했지만…. 그저 말뿐이었고, 결국은 원금은커녕 이자마저 내지 않고 대출금상환일자를 넘기게 되었지요.”


그의 말에 옆에 앉은 진 사장이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에이, 나쁜 놈이네.”
나 역시 이 양반이 참 고약한 일에 걸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까 속으로 궁리를 했다.
진 사장이 흥분하는 모습을 잠깐 쳐다보던 최 사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마 내가 들어주고 진 사장이 흥분하니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

“신용금고에서는 대출금을 상환 하지 못하자 저를 신용불량자로 등재하였다는 통보를 보내왔고요, 그게  집으로 날아오자 저희부부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설마 했던 제가 어리석었지요. 그러자 저보다도 제 집사람이 더 방방 뛰었지요. 언니에게 당했으니 저를 볼 면목이 없고 괘씸하기도 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살까지 하겠다는 걸 도리어 제가 간신히 진정시켰지요. 그 후 저와 집사람이 동서부부를 수차례 찾아가 갖은 방법으로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은 아예 배 째라는 겁니다.”

그는 생각만 해도 배신감이 솟구쳐 오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숨과 함께 들끓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 최 사장의 모습을 옆에서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진 사장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열을 토했다.
“에이 나쁜 사람들! 가족끼리 어떻게 그럴 수가…. 하여간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니까.”
진 사장이 흥분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평소 호탕하고 의협심 강한 그로서는 가까이 지내는 최 사장이 남도 아닌 가족들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속상할 일이었다.

나 역시 어이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진 사장처럼 욕을 하며 감정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나는 냉정을 되찾으며 실마리를 풀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도 일부는 상환했을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신용금고에서 담보권행사를 해서 땅을 경매처분 하여 상환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은혜를 원수로

“그렇게라도 했으면 오죽이나 좋았겠습니까? 저희부부는 동서부부의 말만 믿고 설마하며 기다렸지요. 동서는 처음엔 이자를 몇 번 불입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이자를 한 푼도 불입하지 않았습니다. 원금일부를 상환하고 이자를 밀리지 않게 잘 납부했다면 부족한 부분은 저희부부가 일부라도 책임져 상환해줄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아예 내 배 째라고 하니까 괘씸해서라도 대신 상환해줄 수가 없었어요. 그 많은 돈을 제가 상환할 입장도 못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부부가 새마을신용금고에 찾아가 항의를 했습니다. 내가 비록 차주로써 대출금을 상환할 책임은 면할 수 없지만, 담보 제공된 물건을 경매처분하면 될 텐데 어째서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냐고 따졌지요. 그러자 신용금고 측에서 하는 말이 ‘담당자가 실수를 했는지 모르지만, 지상권설정을 하지 않아 제대로 된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또한 ‘담보물건 대지 위에 이미 빌라가 지어져 세대주들이 입주한 상태’라면서, ‘지상권설정이 없는 대지담보물건 후순위채권자인 신용금고 측에서 대지에 대해 경매를 진행하였으나 선순위채권자들이 경락배당금을 모두 가져가고 자신들은 몇 달분 이자만 겨우 배당받았다’고 합니다.”

최 사장은 마치 기록해둔 자료를 읽는 것처럼 비교적 차분하게 경위를 설명했다. 얘기를 들을수록 갑갑해지는 상황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좋은 일 하고 당하는 꼴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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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