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격차> “죽음에는 격차가 있습니까?” 삶과 죽음에 담긴 격차에 대하여 | 일요시사

[기사 전문]

김윤신 교수(조선대학교 법의학교실): 70세쯤 된 노인이 장애가 있는 자녀랑... 딸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노인도 여성이었어요. 같이 사시는데 이분이 술을 많이 드셔요.

동네에서는 소문난 알코올중독자 정도 되는, 술 취하면 길바닥에 쓰러져 주무시기도 하는 그런 전력이 있는 분이신데, 어느 날 아침에 이웃 주민이 가서 보니까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고, 경찰에 신고가 됐어요. 근데 같이 자녀는 장애가 있어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전혀 판단을 못하는 그런 사정이 있었죠.

시체가 부검실에 왔고 외표 검사를 하는데 뭔가 치골 부위와 골반 부위가 언밸런스, 뭔가 정상에서 벗어나 있는 모양을 보고 ‘이상하다, 이게 왜 이러지?’라고 절개했더니 골반골 골절이 나왔어요.

사건을 의뢰한 담당 수사관에게 “골반골이 부러질 정도라면 교통사고가 1번이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대답하시는 말씀이 “돌아가신 분이 사시는 그 동네는 이면도로 골목길 안쪽이라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어디서 교통사고가 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곳”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교통사고가 아니라면 추락 정도가 돼야 하는데, 그러면 추락은 어떤가” 했더니 옛날 주택들이 많아서 이층집도 없대요. 추락할 곳이 없는 거죠.

“그럴 수는 없다. 그러면 왜 골반골이 부러진 것이냐. 그러면 내가 옷을 보고 싶다” 돌아가신 분의 상의와 바지를 이렇게 맞춰 놓고 보니까 치골 부위에 흙먼지가 다리미질한 것처럼 쫙 발린 게 보였습니다. ‘이거는 타이어의 흔적일 것이다’ ‘교통사고를 다시 고민해야 된다’

하루 이틀 지나서 다시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통사고가 맞답니다.

이 노인이 그날도 술 드시고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었는데, 그 마을에 부모님을 뵈러 왔던 서울 사는 자녀가 골목에서 주차된 차를 후진하던 중에 덜커덕. 내려서 보니 이 노인이 신음하고 있더랍니다. 술 취해 가지고. 그래서 “괜찮냐?”고 하니 괜찮다고 해 부축해서 집에다 모셔다 드렸죠. 그리고 다음날 가서 걱정돼서 확인하러 갔더니 사망한 채 발견됐던 거죠.

이게 일본 저자가 쓴 그 사건하고 사실은 똑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거죠.

진행자: 2019년 3월 한 권의 도서가 발간됐습니다. <죽음의 격차>, 해당 도서의 저자 니시오 하지메는 지난 20년 동안 약 3000여구의 시신을 부검한 일본의 법의학자입니다.

앞서 보신 영상은 죽음의 격차 들어가는 글 ‘여성의 주검을 둘러싼 의문’의 에피소드이자, 국내 한 법의학자의 부검 사례입니다. 어쩌면 의문사가 될 수 있었던 여성의 죽음을 밝혀낸 건 다름 아닌 법의학자였습니다.

니시오 하지메 교수(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저희가 주로 부검을 실시하며 만나는 대상분들이 뭐랄까... 쉽게 말하자면 평범하게 돌아가지 않으신 분들, 평온한 죽음을 맞지 못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지금 사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그런 사회적인 문제가 원인으로 해서 돌아가신 분들이나 불행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주로 부검하게 됩니다. 크게 보자면 경제적 문제라든지 건강 문제 같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행자: 저희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도 죽음의 격차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격차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추상적인 물음의 실체적 해답을 찾기 위해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들’인 국내 법의학자들을 만났습니다.

양경무(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 (격차가)있습니다.

신분이 있고, 또 경제력도 있고, 이런 분의 극단적 선택도 있죠. 다음에 경제적으로 곤란한 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부검 자체가 가난한 분들의 부검률이 더 높습니다.

김장한 회장(대한법의학회): 다 고독사고, 극단적 선택도 많고... 살아있는 사람 간의 격차뿐만 아니라 죽음도 좀 달랐다.

격차는 그거죠. 한쪽은 아마 부검률 자체가 다를 거예요.

왜냐면 이쪽은 병사로 병원에 가서 진단을 제대로 다 받고 죽기 때문에 (부검)할 필요가 없이 그냥 장례식 하고, 여기는 병원 안 가고 고독사하고 혼자 앓다 죽잖아요. 그럼 다 부검인 거지. 사인불명이니까. 거기서부터 차이가 나는 거죠.

박대균 교수(순천향대학교 해부학교실): 우리나라가 자꾸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사회가 되다 보니, 서로서로 좀 사회적 관계가 멀어진다고 봐야 될 것 같아요. 이분들이 실종되거나 사회적 활동이 없을 때 이를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양경무(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 그 환경 자체가 주변에 출입한 흔적에 대한 CCTV가 없고, 뭔가 수사상 미흡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발견되고 하는 그분들의 환경. 그러면 “이게 혹시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 거 아니야?”

극단적 선택이지만 약간 환경이 좀 안 좋으면 “혹여나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라고 볼 수밖에 없고, 그런 경우에는 부검을 더 할 수밖에 없죠.

김장한 회장(대한법의학회): 고독사 현장에 들어가 보면, 엄청나게 더러워요. 환경 자체가. 부패뿐만 아니라 쓰레기가 엄청나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다가 가신다고 보면 돼요.

박대균 교수(순천향대학교 해부학교실): 백골화된 시신인데 아무도 찾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도 이분에 대해서 실종 신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진행자: 법의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에는 분명 격차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소득의 격차였다’고 말이죠.

국과수 서울연구소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강서, 양천, 구로, 그리고 2018년부터 부천까지 확대해 네 개 지역에 대해 현장검안을 진행했습니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보도한 ‘2223일, 1만 279건의 기록. 소수의 법의학자들’이 24시간 근무체제를 갖춰 하루 평균 5건의 현장을 출동했다고 합니다.

양경무(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장): ‘한국 시스템을 한 번 갖춰보자’ 그리고 ‘현실을 파악하자' 그래서 법의관이 현장을 찾아가는 검안을 했거든요.

부패돼서 발견되는 시신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여자들은요, 그래도 딸이 챙기거나 어디서 여자분들끼리 살거나 어쨌든 상당히 위생적으로 살고 계시고요. 대부분의 혼자 살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남자들이 많더라고요.

또 한국의 자살률은 너무너무 높다. 제가 그때 갔던 특정 지역은요, 한 아파트 단지에서 하루가 멀다고 떨어져 돌아가세요. 극단적 선택이죠. 경제적 곤궁, 궁핍, 관계적인 궁핍도 있고요. 그런 분들이 목을 매거나 추락하거나 하는 그 극단적 선택 신고가 너무나 많은 거예요. 그 지역 내에서.

진행자: <일요시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의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죽음의 격차에 대해 물었습니다.

먼저 ‘죽음에 격차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57.6%가 ‘격차가 존재한다’고 답했고, 26.3%가 ‘존재하지 않는다’, 16%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격차가 존재한다’고 답한 비율은 전 연령이 과반을 넘었습니다.

해당 설문의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 시민들도 분명 격차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과연 이곳에서도 ‘죽음의 격차’는 존재할까요? 미국 시카고 쿡 카운티 MEO에서 어시스턴트 법의관으로 재직 중인 송혜정 법의관은 말합니다.

송혜정 법의관(시카고 쿡카운티 MEO): 인종 문제가 심하니까 결국 소득 격차로 나타나거든요. 미국에서는...

사망 진단서를 쓸 때 그 사람의 배경은 대부분 가족들이 채워와요. 초안을 보면 이 사람 진짜 살기 힘들었겠다는 게 그 자체로, 이 사람 스토리 아무것도 몰라도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어요.

전형적으로는 ‘21세 흑인 남자, 교육 수준 중졸, 직업 노가다, 아빠는 밝혀지지 않음(불상), 엄마는 이름이 있고, 시신 확인하러 온 사람은 삼촌’ ‘아빠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젊은 흑인 아이가 중학교 다니다 말고 노가다 해서 총 맞고 죽었다’ 그러면 ‘아, 고생하셨다’ 이런 느낌이 들죠.

진행자: 죽음의 격차로 드러나는 소득의 격차. 이 격차는 실제 설문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전국 성인남녀 1016명 중 ‘죽음을 생각하는 편인가’에 대한 질문에 72.9%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언장이나 상속 등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단 27.9%만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과 소득이 높을수록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비율도 높았습니다. 즉, 소득의 격차가 애도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2022년 10월 21일, <일요시사> 취재팀은 고양시 소재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았습니다. 이날 이곳에서 무연고 사망자가 된 고인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이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합니다. 이들은 어떻게 무연고 사망자가 됐을까요?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장사등에관한법률 제2조 16호에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 범위가 나와 있어요. 배우자부터 시작해서 직계비존속으로... 배우자, 자녀, 할머니 할아버지, 이런 식으로 내려오다가 마지막에 형제자매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조카, 이모, 삼촌, 며느리, 사위 이런 사람들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이 아닌 거죠.

그러다 보니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 치를 이유가 없는 분들이 공영장례로 오시는 경우들이 생기는 거예요.

진행자: 많은 조문객이 방문하는 시끌벅적한 장례와 달리 비교적 수수하게 진행되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사뭇 대조적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장례 모습만큼이나 장례 금액에도 큰 차이가 있었는데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장제급여는 80만원, 반면 지자체의 장례대행업체가 요구하는 최소금액인 160만원과 2015년 기준 평균 장례비용이 138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요. 제도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되고, 두 번째는 경제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해요. 시장에서 요구하는.

그 두 가지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이 무연고 사망자가 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죽음 이후에 격차가 분명히 존재하는 거죠.

김새별(유품정리사): 저는 장례지도사를 오래 했잖아요. 그때도 많이 느꼈어요. 가난하신 분들은 대체적으로... 관계가 좀 소홀했던 분들, 그런 분들은 빈소를 차리지 않죠. 손님을 안 받아요. 돌아가신 분이 좀 여유가 있으셨던 분들은 자식들도 여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손님이 굉장히 많죠. 줄 서서...

조윤환 대표(고아권익연대): 저는 원래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장례, 죽음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익숙하지 않아요. 우리는 장례를 치르지 않으니까. (보통)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등 장례식을 보잖아요. 근데 우리는 못 봐요. 우리는 누구도 장례를 치를 게 없고, 장례문화도 잘 몰라요.

이번에 고아권익연대 하면서 알게 됐는데, 제가 잠깐 느끼는 바는 ‘위로 받고 가느냐’ 아니면 ‘쓸쓸히 가느냐’(인 것 같아요).

장례가 화려하냐 화려하지 않느냐 차이는 고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요. 고인이 볼 때 화려한 장례보다도 위로받는 장례' 원할 것 같아요. 근데 특별히 고아는 그런 정서적인 애도가, 갈 때도 너무 차이가 나요. 죽을 때도 선택할 수 없죠.

진행자: <일요시사>는 그동안의 취재를 바탕으로 죽음 너머에 분명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건, 이것이 생의 격차인지 죽음의 격차인지를 정의하기에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격차들은 ‘고독, 무연고, 고립’이라는 단어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감정은 아니었을까요?

김민석 팀장(나눔과나눔): 아마 (사망자)대부분이 어떤 관계라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걸 우리가 죽은 이후에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연고 사망자라고 낙인찍는 거니까.

무연고 사망자를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 ‘불쌍한 사람’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돌아가신 고인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강현욱 교수(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 얘기는 삶이라는 얘깁니다. 과정이니까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어떤 과정에서의 격차는 존재한다.

윤창륙 교수(조선대학교 법치의학과): 근데 이 격차는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제3자인 우리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살아 있을 때 여러 가지를 풍성하게 가진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도 그만큼 대우를 받는다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죽음의 격차가 아니라 생전의 격차다.

김윤신 교수(조선대학교 법의학교실): 사람의 삶이 다 다른 것처럼 죽음의 모습이 다른 것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다.

강현욱 교수(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삶 자체에서의 격차는 있을지언정 죽음 자체는 그 죽음만을 보자면 격차가 없다. 그게 공정하게 격차가 없기 때문에 삶의 의미가 똑같이 부여되는 거죠.

김윤신 교수(조선대학교 법의학교실): 다만 그 죽음이라는 결과를 그 차이가 차별로 비치도록 만드는 일은 만들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해봤습니다.

진행자: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것. 누군가의 평범한 죽음을 격차로 만드는 건 어쩌면 살아있는 우리들이 아니었을까요? 끝으로 도서 <죽음의 격차>의 저자 니시오 하지메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니시오 하지메 교수(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법의학이란 것은 일반인들과는 크게 접점이 없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법의학자와 관련이 되는 것 자체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므로 가급적 제 책을 재밌게 읽는 정도로 즐겨 주시고, 법의학자와 그다지 관련성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행자: 죽음, 과연 그 자체에 격차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청자 여러분께도 묻습니다. 죽음에는 격차가 있습니까?
 

취재팀: 장지선
사진팀: 고성준/박성원
영상팀: 배승환/김희구/강운지/김미나
프로젝트: 죽음의 격차 (죽어서도 차별받는 사람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