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불혹 신화’ 김강민 SSG랜더스 외야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1.14 11:27:07
  • 호수 1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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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형님의 대역전 가을 드라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KBO 리그 SSG 랜더스의 외야수 김강민. 그가 지난 1일부터 시작된 SSG와 키움 히어로즈의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했다. 김강민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팬들에게는 감사 표현과 함께 몸이 허락하는 한 뛰겠다는 약속을 했다.

불혹(40세)의 김강민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2022 한국시리즈(KS)는 ‘김강민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강민은 지난 1일 인천 SSG 랜더스 파크에서 개최된 KS 1차전에서 9회 말 대타로 나와 동점 솔로포를 터뜨려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비록 팀은 연장전에서 패했지만 김강민의 홈런은 팬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상상도 못한
막판 대활약 

김강민은 3차전에서 특급 대타로 활약했다. 2-1로 앞선 9회 초 1사 만루 찬스에서 최지훈 대신 타석에 들어갔다. 1차전 동점 홈런을 빼앗은 김재웅을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김강민의 적시타는 기폭제가 돼 9회 초 6득점 빅이닝의 기폭제가 됐다.

5차전서도 김강민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2-4로 뒤진 9회 말, 대타로 나선 김강민은 무사 1, 3루 찬스에서 키움 구원투수 최원태의 144㎞짜리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고 좌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으로 연결시키며 5-4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KS 역사상 최초의 대타 끝내기 홈런이었다. 포스트시즌을 통틀어서도 1996년 플레이오프 1차전 쌍방울 박철우 이후 26년 만이다. 엿새 전 자신이 세운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이 기록은 김강민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강민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우승하면)20대 때는 마냥 좋아서 웃기만 했는데, 40대 때는 눈물이 난다”며 감격했다. 이어 “시리즈 전만 해도 ‘어차피 조커로 기용될 거’라서 그렇게 준비했다. 큰 상은 바라지도 않고 우승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기쁘고 행복한 하루”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 후 추신수와 함께 서로 축하를 했다. 김강민은 “추신수가 한국에 왔을 때 ‘우승하기 위해 왔다’고 했고, 내가 ‘너 반지 꼭 끼자’고 했다.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차올랐고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상대팀인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을 향해서는 “너무 잘해서 저희가 많이 힘들었다. (좋은 경기를 한)키움 선수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통합 우승을 이끈 김원형 감독은 “야구를 하면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말하는 게 처음이다. 이런 영광을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만들어준 팬들과 선수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노력하는 감독이 되겠다”며 “초보 감독인데 선배 선수들이 없었으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감독이 못하는 어려운 역할을 해줘서 팀이 잘 돌아갔다”고 감사를 표했다.

명승부를 펼친 키움에는 “홍원기 감독에게 시리즈 동안 고생 많았다고 전하고 싶다. 매 경기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승부였고 상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저 우승만 하길 원했는데…”
KS 역사 최초 대타 끝내기 홈런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이날 경기장을 방문해 팀을 격려했다. 정 부회장은 “SSG는 KBO 14개 부문 개인상 중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우승 팀이지만, 인천 문학구장 홈 관중 동원 1위를 했다. 팬들 덕분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물론 KS를 제패했다. 여러분의 성원과 선수들의 투혼이 오늘을 이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렇다면 김강민은 MVP 수상을 상상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그의 머리 속에는 최정 기록보다 오늘 하나 더 쳐서 빨리 점수가 많이 나서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

화려한 MVP는 생각도 없었으며, 주인공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의 답변. 동네 형처럼 후배들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고령 선수기 때문에 가지는 부담감도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그의 역할은 후반, 대타였다. LG 트윈스가 올라오면 3차전에 나가야 했고, 요키시에 맞춰 나가야 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애당초 햄스트링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김강민의 햄스트링 문제 때문에 한유섬이 더 경기에 출장해 뛰다가 다치기도 했다. 

한유섬과 경기를 번갈아가며 뛰는 작전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나간 선수는 김강민이지만 그때도 정상적으로 뛸 수는 없었다. 맡은 바 충실히 하려고 노력한 것. 이런 노력이 김강민을 MVP로 이끈 것이다.

그렇다면 김강민의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될까. 김강민은 올 시즌 부상과 최고령 나이로 이미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팀에 보탬이 안 된다면 언제든 은퇴할 것이다.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그라운드에서 뛸 여력이 있는 것 같다. 난 이미 야구를 하고 싶은 만큼 했다”고 말했다.

투수서
외야로

이어 “은퇴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 언제든 팀에서 ‘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하면 미련 없이 은퇴할 생각이다. 팀이 이기는 데 내가 필요한 존재인 이상 뛰고, 후배들이 잘해서 자리가 없어지면 웃으면서 그만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SSG 팬들이 김강민 은퇴를 염려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강민은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내년에도 이 유니폼을 입고 야구한다. 내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야구를 할 것이다. 올해도 후배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좋았고 행복했다”며 “그러면서 우승이라는 목표도 생기고 이렇게 이루기까지 했다. 몸 관리, 시즌 준비 잘해서 내년에도 후배들과 재밌게 한 시즌을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런 김강민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순탄한 야구를 한 것은 아니다. 1982년 대구 출생인 김강민은 대구 본리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외야수지만, 고교 시절 그는 투수였다.

당시 경북고 팀에는 3루수가 없었는데, 투수였던 김강민이 그 포지션에 적합했다. 손경호 감독은 김강민을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시켰다. 어깨와 타격 능력이 좋다는 판단 아래에서다.

그렇다고 김강민이 야수로 완벽하게 전향한 것은 아니었다. 경북고에 이어 김강민은 SSG의 전신 SK 와이번스가 쌍방울 선수단을 인수해 재창단한 뒤 2000년 6월 처음 신인 선수를 뽑을 때 입단했다. 고교 시절까지 투수와 내야수를 겸업하던 김강민은 SK 입단 후에도 투수와 내야수, 양쪽에서 가능성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야수의 길로 선택하는 듯 보였다.

2002년 전업
찐 선수 인생


그가 투수로서 경력을 포기하게 된 것은 심각한 제구 불안 때문이다. 김강민은 2002년 외야수로 전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김강민의 야구 인생이 시작됐다.

2002년 1군에 처음 오른 김강민은 총 49경기를 소화했지만 큰 활약을 하진 못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6년부터다. 투수였으나 외야수로 전향했던 채종범을 밀어내고 주전 외야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채종범의 병역 비리 사건도 한몫했다.

외야수 전향 후 조금씩 입지를 넓혀가던 김강민은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본격적으로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경기에 100경기 이상(124 경기) 출전했다. 빠른 발에 강한 어깨가 본격적으로 빛을 본 것이다.

2009년에는 2할대 타율, 12홈런, 42타점을, 2010년에는 3할대 타율, 127안타, 72타점을 기록했다. 이때의 성적으로 소속팀에서 주전 자리와 동시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외야수로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아시안게임에서 김강민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3차전 파키스탄전에 출전해 5회 초 적시타 외에는 출전 기회도 적었다. 

김강민은 대표팀에 승선한 다른 외야수인 이용규, 이종욱, 추신수, 김현수 중 유일한 우투우타였다. 다른 팀에 좌완이 없어 출전 기회가 적었지만 백업으로 자리를 지켰다. 결국 한국이 우승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시즌에는 3할대 타율, 130안타, 82타점으로 데뷔 후 최다 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에 FA 자격을 얻었고 4년 총액 56억원에 잔류했다. 그러나 FA 후 첫 시즌이었던 2015년에 부상과 부진이 겹쳐 2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전체적으로 부진했다. 일각에선 그런 그를 두고 ‘먹튀’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2016년에는 조동화에 이어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됐다. 이때 김강민은 KIA 김기태 감독과 LG 최태원 코치 등을 롤모델로 삼았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힘들었던 훈련
“같은 유니폼 입고 내년에도 뛴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정해놓고 가면 같이 가는 선수들도 힘들다. 나 또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예전에는 정말 ‘20(홈런)-20(도루)’가 하고 싶어서 그려놓고 시즌을 들어간 적 있다. 그런데 반밖에 못한 적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더라”며 팀을 꾸려나갈 각오를 하기도 했다.

2019년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해 1+1년 총액 10억원에 잔류했다.

당시 SK 구단은 “김강민은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다. 베테랑으로서 헌신하는 모습이 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계약 소식을 알렸다. 김강민은 “FA 계약을 마무리해 홀가분하다. SK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구단에 감사하다. 일찍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늦어져서 팬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구단을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 같은 과정을 겪으며 김강민의 평가는 단단해졌다.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 강한 어깨와 주자를 속일 수 있는 테크닉까지 외야수로서 수비면에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가 김강민이었다. 현역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한국 최고의 외야 수비수’로 뽑히기도 했다.

불혹(40세)을 넘겨서도 외야 수비에서 틈을 보이지 않았고,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를 보여주기에 타격이 저조하지도 않아 쓰임새가 좋다는 평가다.

김강민 수비를 두고 “나성범 어깨에 이종욱 수비 범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김강민은 ‘짐승 강민’ ‘짐강민’ ‘김짐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인간을 넘어선 짐승처럼 게임을 한다는 의미다. 

강한 어깨
빠른 판단

이번 한국시리즈를 본 김성근 전 SK 감독은 “(웃으며)김강민도 많이 늙었더라. 살도 많이 쪘더라. 김강민이 한국 나이로 41세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선수도 모자란데 우리나라도 그런 선수를 많이 남겨놔야 한다. 자꾸 바꾸니까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감독은 “지도자로 기분 좋은 순간이 별로 없었지만 가르쳤던 선수가 좋아지고, 성장했을 때 기분이 좋다. 어제 김강민의 홈런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 홈런은 쌩쌩할 때도 못 치던 홈런이다. 어제는 깔끔하게 잘 쳤다”고 흐뭇한 마음을 표현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19 전으로 회복한 야구 열기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 곳곳에 큰 타격을 줬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꼽히는 프로야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일부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 국가대표팀 부진 등이 겹치며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다. 

우려와 기대 속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린 가을야구. 관중은 3년 전 수준으로 회복했고 시청률은 오히려 더 높게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8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자료를 보면 지난달 24일 잠실에서 열린 키움과 LG의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10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이날 인천 SSG 랜더스 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올해 포스트시즌 16경기 누적 관중은 27만5883명이다.

이 같은 관중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포스트시즌을 뛰어넘는다.

2019년 포스트시즌은 총 12경기가 열렸고 누적 관중은 23만4799명이었다.

공교롭게도 2019년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키움이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해였다.

한 경기만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제외하면 가을야구를 치른 팀은 두산(2019년)과 KT(2022년)만 다르고 나머지 팀은 같다.

KT보다 두산이 더 많은 관중을 보유한 팀이지만, 올해는 2019년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TV 중계도 예년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 7일까지 지상파로 중계한 12경기 평균 시청률은 5.07%였다. 지난해(10경기) 4.82%, 2019년(11경기) 4.89%보다 높은 수치다.

당초 관중 동원에서 10개 팀 중 하위권에 속하는 키움과 KT가 가을야구에 진출해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키움과 KT는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벌였고, ‘언더 도그’ 키움은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업셋하며 야구를 넘어 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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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