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불혹 신화’ 김강민 SSG랜더스 외야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1.14 11:27:07
  • 호수 1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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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형님의 대역전 가을 드라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KBO 리그 SSG 랜더스의 외야수 김강민. 그가 지난 1일부터 시작된 SSG와 키움 히어로즈의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했다. 김강민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팬들에게는 감사 표현과 함께 몸이 허락하는 한 뛰겠다는 약속을 했다.

불혹(40세)의 김강민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2022 한국시리즈(KS)는 ‘김강민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강민은 지난 1일 인천 SSG 랜더스 파크에서 개최된 KS 1차전에서 9회 말 대타로 나와 동점 솔로포를 터뜨려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비록 팀은 연장전에서 패했지만 김강민의 홈런은 팬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상상도 못한
막판 대활약 

김강민은 3차전에서 특급 대타로 활약했다. 2-1로 앞선 9회 초 1사 만루 찬스에서 최지훈 대신 타석에 들어갔다. 1차전 동점 홈런을 빼앗은 김재웅을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김강민의 적시타는 기폭제가 돼 9회 초 6득점 빅이닝의 기폭제가 됐다.

5차전서도 김강민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2-4로 뒤진 9회 말, 대타로 나선 김강민은 무사 1, 3루 찬스에서 키움 구원투수 최원태의 144㎞짜리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고 좌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으로 연결시키며 5-4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KS 역사상 최초의 대타 끝내기 홈런이었다. 포스트시즌을 통틀어서도 1996년 플레이오프 1차전 쌍방울 박철우 이후 26년 만이다. 엿새 전 자신이 세운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이 기록은 김강민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강민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우승하면)20대 때는 마냥 좋아서 웃기만 했는데, 40대 때는 눈물이 난다”며 감격했다. 이어 “시리즈 전만 해도 ‘어차피 조커로 기용될 거’라서 그렇게 준비했다. 큰 상은 바라지도 않고 우승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기쁘고 행복한 하루”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 후 추신수와 함께 서로 축하를 했다. 김강민은 “추신수가 한국에 왔을 때 ‘우승하기 위해 왔다’고 했고, 내가 ‘너 반지 꼭 끼자’고 했다.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차올랐고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상대팀인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을 향해서는 “너무 잘해서 저희가 많이 힘들었다. (좋은 경기를 한)키움 선수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통합 우승을 이끈 김원형 감독은 “야구를 하면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말하는 게 처음이다. 이런 영광을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만들어준 팬들과 선수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노력하는 감독이 되겠다”며 “초보 감독인데 선배 선수들이 없었으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감독이 못하는 어려운 역할을 해줘서 팀이 잘 돌아갔다”고 감사를 표했다.

명승부를 펼친 키움에는 “홍원기 감독에게 시리즈 동안 고생 많았다고 전하고 싶다. 매 경기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승부였고 상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저 우승만 하길 원했는데…”
KS 역사 최초 대타 끝내기 홈런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이날 경기장을 방문해 팀을 격려했다. 정 부회장은 “SSG는 KBO 14개 부문 개인상 중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우승 팀이지만, 인천 문학구장 홈 관중 동원 1위를 했다. 팬들 덕분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물론 KS를 제패했다. 여러분의 성원과 선수들의 투혼이 오늘을 이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렇다면 김강민은 MVP 수상을 상상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그의 머리 속에는 최정 기록보다 오늘 하나 더 쳐서 빨리 점수가 많이 나서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

화려한 MVP는 생각도 없었으며, 주인공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의 답변. 동네 형처럼 후배들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고령 선수기 때문에 가지는 부담감도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그의 역할은 후반, 대타였다. LG 트윈스가 올라오면 3차전에 나가야 했고, 요키시에 맞춰 나가야 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애당초 햄스트링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김강민의 햄스트링 문제 때문에 한유섬이 더 경기에 출장해 뛰다가 다치기도 했다. 

한유섬과 경기를 번갈아가며 뛰는 작전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나간 선수는 김강민이지만 그때도 정상적으로 뛸 수는 없었다. 맡은 바 충실히 하려고 노력한 것. 이런 노력이 김강민을 MVP로 이끈 것이다.

그렇다면 김강민의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될까. 김강민은 올 시즌 부상과 최고령 나이로 이미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팀에 보탬이 안 된다면 언제든 은퇴할 것이다.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그라운드에서 뛸 여력이 있는 것 같다. 난 이미 야구를 하고 싶은 만큼 했다”고 말했다.

투수서
외야로

이어 “은퇴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 언제든 팀에서 ‘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하면 미련 없이 은퇴할 생각이다. 팀이 이기는 데 내가 필요한 존재인 이상 뛰고, 후배들이 잘해서 자리가 없어지면 웃으면서 그만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SSG 팬들이 김강민 은퇴를 염려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강민은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내년에도 이 유니폼을 입고 야구한다. 내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야구를 할 것이다. 올해도 후배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좋았고 행복했다”며 “그러면서 우승이라는 목표도 생기고 이렇게 이루기까지 했다. 몸 관리, 시즌 준비 잘해서 내년에도 후배들과 재밌게 한 시즌을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런 김강민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순탄한 야구를 한 것은 아니다. 1982년 대구 출생인 김강민은 대구 본리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외야수지만, 고교 시절 그는 투수였다.

당시 경북고 팀에는 3루수가 없었는데, 투수였던 김강민이 그 포지션에 적합했다. 손경호 감독은 김강민을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시켰다. 어깨와 타격 능력이 좋다는 판단 아래에서다.

그렇다고 김강민이 야수로 완벽하게 전향한 것은 아니었다. 경북고에 이어 김강민은 SSG의 전신 SK 와이번스가 쌍방울 선수단을 인수해 재창단한 뒤 2000년 6월 처음 신인 선수를 뽑을 때 입단했다. 고교 시절까지 투수와 내야수를 겸업하던 김강민은 SK 입단 후에도 투수와 내야수, 양쪽에서 가능성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야수의 길로 선택하는 듯 보였다.

2002년 전업
찐 선수 인생


그가 투수로서 경력을 포기하게 된 것은 심각한 제구 불안 때문이다. 김강민은 2002년 외야수로 전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김강민의 야구 인생이 시작됐다.

2002년 1군에 처음 오른 김강민은 총 49경기를 소화했지만 큰 활약을 하진 못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6년부터다. 투수였으나 외야수로 전향했던 채종범을 밀어내고 주전 외야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채종범의 병역 비리 사건도 한몫했다.

외야수 전향 후 조금씩 입지를 넓혀가던 김강민은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본격적으로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경기에 100경기 이상(124 경기) 출전했다. 빠른 발에 강한 어깨가 본격적으로 빛을 본 것이다.

2009년에는 2할대 타율, 12홈런, 42타점을, 2010년에는 3할대 타율, 127안타, 72타점을 기록했다. 이때의 성적으로 소속팀에서 주전 자리와 동시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외야수로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아시안게임에서 김강민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3차전 파키스탄전에 출전해 5회 초 적시타 외에는 출전 기회도 적었다. 

김강민은 대표팀에 승선한 다른 외야수인 이용규, 이종욱, 추신수, 김현수 중 유일한 우투우타였다. 다른 팀에 좌완이 없어 출전 기회가 적었지만 백업으로 자리를 지켰다. 결국 한국이 우승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시즌에는 3할대 타율, 130안타, 82타점으로 데뷔 후 최다 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에 FA 자격을 얻었고 4년 총액 56억원에 잔류했다. 그러나 FA 후 첫 시즌이었던 2015년에 부상과 부진이 겹쳐 2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전체적으로 부진했다. 일각에선 그런 그를 두고 ‘먹튀’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2016년에는 조동화에 이어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됐다. 이때 김강민은 KIA 김기태 감독과 LG 최태원 코치 등을 롤모델로 삼았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힘들었던 훈련
“같은 유니폼 입고 내년에도 뛴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정해놓고 가면 같이 가는 선수들도 힘들다. 나 또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예전에는 정말 ‘20(홈런)-20(도루)’가 하고 싶어서 그려놓고 시즌을 들어간 적 있다. 그런데 반밖에 못한 적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더라”며 팀을 꾸려나갈 각오를 하기도 했다.

2019년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해 1+1년 총액 10억원에 잔류했다.

당시 SK 구단은 “김강민은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다. 베테랑으로서 헌신하는 모습이 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계약 소식을 알렸다. 김강민은 “FA 계약을 마무리해 홀가분하다. SK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구단에 감사하다. 일찍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늦어져서 팬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구단을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 같은 과정을 겪으며 김강민의 평가는 단단해졌다.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 강한 어깨와 주자를 속일 수 있는 테크닉까지 외야수로서 수비면에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가 김강민이었다. 현역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한국 최고의 외야 수비수’로 뽑히기도 했다.

불혹(40세)을 넘겨서도 외야 수비에서 틈을 보이지 않았고,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를 보여주기에 타격이 저조하지도 않아 쓰임새가 좋다는 평가다.

김강민 수비를 두고 “나성범 어깨에 이종욱 수비 범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김강민은 ‘짐승 강민’ ‘짐강민’ ‘김짐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인간을 넘어선 짐승처럼 게임을 한다는 의미다. 

강한 어깨
빠른 판단

이번 한국시리즈를 본 김성근 전 SK 감독은 “(웃으며)김강민도 많이 늙었더라. 살도 많이 쪘더라. 김강민이 한국 나이로 41세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선수도 모자란데 우리나라도 그런 선수를 많이 남겨놔야 한다. 자꾸 바꾸니까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감독은 “지도자로 기분 좋은 순간이 별로 없었지만 가르쳤던 선수가 좋아지고, 성장했을 때 기분이 좋다. 어제 김강민의 홈런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 홈런은 쌩쌩할 때도 못 치던 홈런이다. 어제는 깔끔하게 잘 쳤다”고 흐뭇한 마음을 표현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19 전으로 회복한 야구 열기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 곳곳에 큰 타격을 줬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꼽히는 프로야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일부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 국가대표팀 부진 등이 겹치며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다. 

우려와 기대 속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린 가을야구. 관중은 3년 전 수준으로 회복했고 시청률은 오히려 더 높게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8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자료를 보면 지난달 24일 잠실에서 열린 키움과 LG의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10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이날 인천 SSG 랜더스 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올해 포스트시즌 16경기 누적 관중은 27만5883명이다.

이 같은 관중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포스트시즌을 뛰어넘는다.

2019년 포스트시즌은 총 12경기가 열렸고 누적 관중은 23만4799명이었다.

공교롭게도 2019년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키움이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해였다.

한 경기만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제외하면 가을야구를 치른 팀은 두산(2019년)과 KT(2022년)만 다르고 나머지 팀은 같다.

KT보다 두산이 더 많은 관중을 보유한 팀이지만, 올해는 2019년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TV 중계도 예년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 7일까지 지상파로 중계한 12경기 평균 시청률은 5.07%였다. 지난해(10경기) 4.82%, 2019년(11경기) 4.89%보다 높은 수치다.

당초 관중 동원에서 10개 팀 중 하위권에 속하는 키움과 KT가 가을야구에 진출해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키움과 KT는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벌였고, ‘언더 도그’ 키움은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업셋하며 야구를 넘어 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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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