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⑬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르포

국가가 일생을 정리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스님의 거침없는 독경과 달리 제단으로 향하는 이들의 걸음은 주춤거렸다. 국화꽃을 놓고 물 한 잔을 올리는 손길도 조심스러웠다. 재배를 올리고 돌아서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제단을 바라보는 눈시울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라는 청아한 소리 너머로 나비가 날아들었다.

죽다, 숨지다, 사망하다, 운명하다, 별세하다, 서거하다, 타계하다, 작고하다, 그리고 처리되다. 무연고 사망자는 처리의 대상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12조는 ‘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연고 시신 등을 처리한 때에는’ ‘처리 방법 등에 관해’ ‘처리하는 경우’ 등의 표현이 눈에 띈다. 

늘어나는
무연고자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애도할 권리와 애도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한다. 공영장례는 사체의 안치부터 염습·입관, 화장 후 봉안까지의 절차뿐 아니라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유족과 지인 등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공공이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의식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2018년 3월22일 서울시에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를 공포하면서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무연고 사망자와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저소득 시민을 위한 공영장례 지원은 서울시가 전국 최초다. 이전까지 무연고 사망자는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이동하는 무빈소 직장 형태의 장례를 치러왔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사체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3603명으로 2020년(2947명)과 비교해 656명 늘었다. 2018년 2447명, 2019년 2656명 등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 중 70%는 연고자가 사체 인수를 거부한 이른바 ‘만들어진’ 무연고 사망자다. 


나눔과나눔은 올해 1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243일 동안 722명의 무연고 사망자를 위해 354번의 공영장례를 지원했다. 175명의 공영장례에서 무연고 사망자 가족, 친구, 이웃이 함께 했고 112명의 영정 사진을 올렸다.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76.2%(550명)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확인됐다.

10월17일은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이날 오후 1시부터 경기 파주의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추모의집에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이하 사노위)의 진행으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가 열렸다.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함을 모아놓은 무연고추모의집은 1년에 딱 한 번 추모제 날에만 개방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무연고 추모의집
추모객 찾아 유골함 보고 인사 올려

지난달 17일은 평균기온이 4도 이상 떨어져 쌀쌀한 날씨였다. 3호선 구파발역 버스정류장에는 두툼한 코트를 입은 두 여성이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용미리 묘지 입구’ 정류장으로 가는 간선버스 774번에 두 여성과 함께 올라탔다. 다음 정류장에서 모자를 쓰고 파란 점퍼를 입은 남성이 버스에 탔다.

버스는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이 계속 나아갔다. 40분 정도 흘렀을까. 용미리 묘지 입구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구파발역에서 본 두 여성과 파란 점퍼의 남성, 손에 뭔가를 잔뜩 든 한 여성 등 7~8명이 한꺼번에 내렸다. 파란 점퍼의 남성의 말을 걸어왔다. “1시에 뭘 한다는데… 무연고… 아내가…” 

지난 4월 아내를 잃은 남성은 5분 남짓 함께 걷는 내내 아들들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아들이 잘 먹고 잘사는 데도 불구하고 엄마를 모시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통이 터지는 듯했다. 그는 조계종 사노위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안내판도 표식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건물만 멍하니 바라봤다. 무연고추모의집이었다. 


30여명쯤 모인 추모객은 맨 바닥에 앉아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었다. 서로 팔짱을 끼고 있던 두 여성도 제단 근처에 앉아 있었다. ‘한 분씩 나와서 인사를 드려도 된다’는 사회자의 말에 금세 줄이 길게 생겼다. 버스에서부터 손에 잔뜩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여성은 막걸리를 꺼내 제단 옆에 놨다. 

양한웅 사노위 집행위원장은 “무연고추모의집은 상시 개방이 아니라 1년에 한 번만 열립니다. 왜 닫아놓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추모객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계속 열어둬야지, 1년에 한 번이 말이 됩니까? 그리고 표지판도 없습니다”라며 “여기에 모실 수 있는 분이 2000분밖에 안 돼요. 2000분이 넘으면 유골함을 처리해 버립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처리되는
사체들

추모객은 고인과 살아생전 함께 정을 나눈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유골함을 모신 무연고추모의집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나눔과나눔 관계자가 내부에서 추모객에게 유골함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줄은 길게 늘어섰지만 누구 하나 재촉하지 않았다. 유골함을 보고 나온 추모객의 눈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난달 21일 경기 고양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두 명의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가 진행됐다. 서울 동대문구에 살던 1963년생 이○○(60세)씨는 지난달 8일 요양병원에서 직장암으로 숨을 거뒀다. 서울 성북구에 살던 1960년생 이○○(63세)씨는 지난 8월11일 내재적 질병으로 거주지에서 사망했다.

고인들은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여러 사람의 애도 속에 나란히 떠났다. 

2평 남짓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위한 ‘그리다’ 빈소는 장례의식을 진행하는 나눔과나눔, 장례서비스업체 해피엔딩 관계자, 수녀님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전 10시 정각에 고인 소개를 시작으로 장례의식이 시작됐다. 묵념 이후 향을 피우고 고인에게 마지막 식사를 올리는 상식의 예를 진행했다. 이어 술을 올린 뒤 상주가 두 번 절했다. 

임정 나눔과나눔 팀장이 축문을 읽었다. “아무리 슬퍼도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외롭고 힘들었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이렇게 술 한 잔 올려 드렸습니다. 잠시 후면 장지로 떠나도록 돼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 없으나 고이 길 떠나소서.”

모르지만
국화꽃 헌화

빈소에 있는 모두가 고인을 애도하며 헌화했다. 사진 없이 비어있는 영정사진 앞에 놓인 두 고인의 위패 옆으로 국화꽃이 나란히 놓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이날만큼은 우리 모두가 그들의 조문객이었다. 그들은 살아생전 한 번도 본 적 없었을 사람들에게 분명한 애도를 받았다. 

임정 팀장은 “서울시립승화원에 공영장례를 위한 빈소가 마련된 이후 지나가던 시민이 불쑥 들어와 술을 올리고 절을 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유족이 또 다른 고인을 위해 애도를 전하는 ‘애도의 선순환’ 현장이 된 셈이다. 

고인 예식을 마치고 사체를 운구해 화장장으로 이동했다. 임정 팀장과 수녀님은 둘로 나뉘어 관망실로 향했다.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관을 보면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곧이어 두 고인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1시간30분 후 두 고인은 말 그대로 ‘한줌의 재’가 됐다.


60세 이씨는 무연고추모의집에 봉안, 63세 이씨는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 산골됐다.

3년째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는 임정 팀장은 원래 장례지도사로 일했다. 장례지도사로 활동하던 때 오랫동안 안치실에 놓인 사체를 보게 됐는데 나중에야 무연고 사망자인 사실을 알았다. 수소문 끝에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을 알게 됐고 자원봉사를 하다 정식 직원이 됐다.

무빈소 직장 방식에서
애도 시간과 공간 제공

놀라운 점은 임 팀장이 나눔과나눔에서 처음으로 모신 무연고 사망자가 바로 병원 안치실에 오래 놓여있던 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눔과나눔은 사회가 무연고 사망자를 보는 시각에 편견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은 “무연고 사망자라고 하면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게, 그리고 빈곤하고 안타까운 슬픈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장례 현장에서 만나보면 그렇지 않다. 사망하기 전까지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고 분명한 자신의 삶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연고자’라는 제도적인 기준과 경제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그 두 가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무연고 사망자가 되고 있다. 이른바 ‘제도가 만들어낸 피해자’다. 이 지점에서 죽음 이후의 격차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영장례는 무연고 사망자에게 생긴 ‘죽음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장례의식에는 고인을 배웅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고인과 관계를 맺었던 이들이 고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명복을 비는 행위도 포함된다.

다시 말해 이 의식이 없다면 고인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나눔과나눔은 장례를 가족과 가구의 영역을 넘어 사회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책임질 수 없는 국가로, 그 정도 여력도 없는 국가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물론 가야 할 길은 멀다. 아직 지자체 중에는 공영장례 조례가 없는 곳도 많다. 서울의 시스템으로 서울만큼 하고 있는 곳은 서울이 유일하다. 예산의 규모도 다른 지자체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무덤까지
배웅했다

63세, 60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두 고인은 사망할 때는 외로웠을 수도 있다. 요양병원 병상에서, 집에서 배웅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승으로 떠나는 길만큼은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을 듯하다. 그들은 더 이상 무연고자가 아니었다. 국가가 그들의 연고자였고 조문객이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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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