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수리남’ 실제 주인공 조봉행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9 13:18:52
  • 호수 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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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악명 떨친 한국 마약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주인공 전요환의 말이다.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로, 전요환은 실제 인물인 1952년생 한국 마약왕 ‘조봉행’을 재창조해 구현했다. 드라마와 실제 조봉행은 얼마나 다를까.

지난 14일 기준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태프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수리남>이 14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해 바하마, 방글라데시, 홍콩, 자메이카, 케냐, 말레이시아, 모로코, 파키스탄, 싱가포르, 대만, 태국, 트리니다드토바고, 베트남 등에서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일 흥행
대박 조짐

<수리남>은 지난 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개됐다. 공개 사흘째인 지난 12일 글로벌 8위에 오르며 이미 톱 10에 진입했다. 이튿날 6위로 오른 후 14일에는 3위까지 올랐다.

<수리남>은 배우 하정우·황정민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다. 한국 마약상이었다가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도피해 해외 마약상이 된 인물과 그를 잡는 국정원 요원의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김희준 대표변호사(법무법인 LKB)는 지난 13일 <조선닷컴>에 “사건 자체가 워낙 극적이라서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 제목인 수리남은 남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국가로, 가이아나, 브라질, 프랑스령 기아나와 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6만3821㎢, 2020년 기준 인구는 58만6348명이다. 남미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국가로 남한의 약 1.6배 정도다.

산림이 국토의 94.6%를 차지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 대부분이 거대한 열대우림이다. 이 같은 이유로 무거주지 비율이 98%고,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2%에 불과하다. 중앙 수리남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바로 이곳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인공 전요환이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한 장소다. 실제 사건에서도 그랬다. 

전요환의 실제 모델인 1952년생 조봉행은 수리남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규모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했다.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 브라질 경찰과의 공조 작전으로 2009년에 체포됐다. 2011년에 징역 10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조씨는 출소 후 수리남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전요환은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다 수리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실제 조씨는 한국에서 마약상을 하지 않았다. 1994년 빌라 건축을 빌미로 10억원을 사기 친 후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이미 1980년대에 8년간 수리남에서 선박 냉동 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던 조씨에게 수리남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또 수리남은 한국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곳이다.

10억원 빌라 건축 사기로 수리남행 선택
남미 마약조직 ‘칼리 카르텔’과 손잡아


이후 1995년쯤 한국 여권 재발급을 시도했지만 지명수배 등 이유로 어렵게 되자 조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다. 조씨는 한국인 최초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국제 마약 밀매조직을 구축한 사람이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한 공장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선 가공공장이었지만, 실상은 어업회사에서 세금 없이 제공되는 면세유를 돈을 받고 밀매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조씨는 중국인 등을 공장에 취업시켜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단속 강화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었다. 이때 조씨는 마약을 선택했다. 즉시 다른 수입원을 모색해서 마약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손을 잡은 건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 조직인 ‘칼리 카르텔(Cali Cartel)’이다. 칼리 카르텔은 콜롬비아의 범죄 조직이다. 

콜롬비아의 도시 산티아고 드 칼리에서 활동한 형제 힐베르토와 미겔 로드리게스가 중심인물로 마약밀매를 했다. 한때는 콜롬비아의 마약 패권을 손에 쥐었으나 계속된 미국과 콜롬비아의 정부 수사로 두목과 형제들이 연달아 체포돼 힘을 잃고 붕괴됐다.

현재 칼리 카르텔 간부는 미국 교도소에 수감돼있고, 지난 6월1일 미국에 수감 중이었던 두목이 사망했다.

마약 사업을 하기로 선택한 조씨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수리남의 권력자 인맥을 만드는 것이다. 조씨는 수리남 정치인, 관료, 군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무려 육군 장교 출신 독재자인 수리남 대통령 데시 바우테르서와도 오랜 친분을 쌓았다.

이런 인맥으로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인 승객 명단을 미리 압수해 따로 만나서 그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했다. 먼저 포섭한 것은 수리남에 온 한국 교포다.

조씨는 한국 교포에게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해 100여명을 모았다. 자신을 광물 보석상이라고 지칭했고 마약을 보석으로 속였다. 이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주부나 대학생으로, 어려운 사정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 

코카인 유통
왕국 건설

이런 수법으로 조씨의 사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마약 공급도 계획하고 있었다.  

조씨의 마약밀매 행각은 2002년 10월 프랑스령 가이아나에서 파리 오를리공항으로 코카인 37㎏을 갖고 들어오던 주부 장모씨 등 2명이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이어 2005년 3월엔 페루 리마 공항에서 네덜란드로 코카인 11.5㎏을 운반하려던 40대 후반의 이모씨가 당국에 체포됐다.


조씨가 인터폴 수배명단에 오른 것은 2005년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조씨가 마약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7년 10월 조씨를 체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리남과 대한민국은 수교 관계였지만 대사관이 없었다. 관련 업무는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었다. 또 이미 조씨가 수리남 경찰과 군조직을 매수했기 때문에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해 11월 돌파구가 마련됐다.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씨 때문에 낭패를 본 김모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국정원에 전달됐고, 국정원 측은 김씨에게 조씨 검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김씨는 고민 끝에 수락했다. 김씨는 국정원과 마약 수사기관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씨 사이의 마약 거래를 중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다.

김씨는 조씨와 그의 부하 몇몇과 한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밀 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국정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을 잘 때는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가 국정원과 연락한다는 사실을 조씨의 한국인 부하 A씨에게 들켰다. 김씨는 A씨를 붙잡고 “너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냐. 나하고 손잡고 좋은 일 하자”며 설득했다. A씨를 국정원과 통화하도록 연결해줬다. A씨는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협조를 약속했다.


물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3일 뒤 김씨의 집 거실에 A씨가 흑인 4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배신이었다. 이때 김씨는 조씨가 집 밖에 와 있을 거라고 판단해 “미스터 조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예상대로 조씨는 집 밖에 있었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김씨를 바라봤다.

목사 행세
무소불위 권력

김씨는 “나를 못 믿겠거든 마음대로 해라. 당신 부하가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게 내가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냐”고 항의했다.

조씨는 흔들렸다. “진짜 장난이었냐”고 묻고 부하를 나가게 했다. 거꾸로 A씨가 조씨의 미움을 사서 조직에서 밀려났다.

2008년 9월의 어느 날, 김씨와 조씨 일행은 수리남 수도인 파라마리보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김씨가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했다. 마약 조직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우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총을 옆구리에 겨누며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행선지가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셔터가 올라가고 차가 출발했다.

김씨는 수리남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카지노, 클럽 등의 불빛이 눈가리개 너머로 어른거리는 걸로 이동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는 20여분 뒤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4개가 있었다. 한 더미는 300㎏으로 모두 1.2t이었다. 거래가만 1조원이 넘는 규모였다. 조씨는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

2008년 초 김씨와 국정원은 미국 마약 수사기관과 조씨의 현지 검거를 위한 공동작전에 착수하고 있었다.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미 해군과 특공대의 지원까지 약속했다. 김씨가 “창고를 확인했다”고 연락하자 국정원은 미국 측에 창고 급습과 조씨 검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대규모 총격전과 인명피해를 우려해 작전을 차일피일 미뤘다. 수리남 마약 관련자들은 차 트렁크에 소련제 AK소총을 늘 넣어 가지고 다녔다. 결국 현지 체포는 실패했다.

현지 검거 작전이 실패하면서 김씨의 신변이 위험해졌다. 김씨는 2008년 10월에 귀국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조씨에게는 “마약 거래상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귀국 후 국정원과 김씨, 미국 마약 수사기관이 새로운 작전을 짰다.

7년간 끈질긴 추적 
브라질 공항서 검거

조씨를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는 계획이었다. 첫 번째 대상지는 미국령 괌이었다.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 거래를 이어갔다. 김씨는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액수와 송금 방법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조씨에게는 좋은 거래다.

김씨와 국정원은 심리전도 폈다. 김씨는 조씨의 전화를 며칠씩 일부러 받지 않았다. 계약 성사를 믿고 수리남 현지에서 수출용 목재 속에 코카인을 숨겨 넣는 작업까지 시작한 조씨는 마음이 다급했다. 조씨는 “구매자와 함께 빨리 수리남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김씨는 “구매자가 수리남은 치안이 워낙 불안해서 안 들어간다고 한다. 당신이 괌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조씨가 미국령으로 나올 가능성은 작았다. 계획을 바꿨다. 조씨를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계획했다. 브라질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고 현자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다.

김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조씨를 압박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 도시인 벨렘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브라질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수리남 마약밀매조직의 영향력이 벨렘에까지 미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장소를 상파울루로 바꿨다. 조씨는 거부했다. 다시 통화로 설득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2009년 7월23일 상파울로 구아룰류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현장에는 완전 무장한 브라질 현지 경찰이 입국장 주변에 잠복하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과 김씨도 현장에 합류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인 오후 5시에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예정된 탑승자 명단에도 조씨의 이름은 없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조씨와 연락하는 척했고 브라질 현지 경찰의 철수를 늦췄다. 2시간 뒤에 조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브라질에 입국하는 조씨에게 브라질 경찰은 환영 선물로 수갑을 채웠다. 이렇게 수리남의 한국 마약왕은 브라질에서 허무하게 체포됐다.

서울중앙지법형사29부(배준현 부장판사)는 2011년 9월30일 조씨에 대해 징역 10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7년간 추적을 놓지 않은 결과다.

재판부는 “조씨가 마약 운반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함께 범행을 꾸민 공범과 이익 배분에 관해 사전에 논의한 사실이 있고 공범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마약왕의 검거 작전의 일등 공신은 김씨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조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협조를 약속하고 수리남에 있을 때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때면 ‘괜한 일에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수교 관계

이어 “상파울루 공항에서 조씨 일행이 약속 시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말을 믿고 한국에서 날아온 국정원 요원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더 기다려보고 정말 안 온다면 내가 수리남으로 다시 들어가서라도 일을 성사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씨 부하가 배신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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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