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수리남’ 실제 주인공 조봉행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19 13:18:52
  • 호수 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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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악명 떨친 한국 마약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히로뽕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사탄의 가래 같은 거고,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이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주인공 전요환의 말이다.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로, 전요환은 실제 인물인 1952년생 한국 마약왕 ‘조봉행’을 재창조해 구현했다. 드라마와 실제 조봉행은 얼마나 다를까.

지난 14일 기준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태프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수리남>이 14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해 바하마, 방글라데시, 홍콩, 자메이카, 케냐, 말레이시아, 모로코, 파키스탄, 싱가포르, 대만, 태국, 트리니다드토바고, 베트남 등에서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는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일 흥행
대박 조짐

<수리남>은 지난 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공개됐다. 공개 사흘째인 지난 12일 글로벌 8위에 오르며 이미 톱 10에 진입했다. 이튿날 6위로 오른 후 14일에는 3위까지 올랐다.

<수리남>은 배우 하정우·황정민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다. 한국 마약상이었다가 남미의 작은 국가 수리남으로 도피해 해외 마약상이 된 인물과 그를 잡는 국정원 요원의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김희준 대표변호사(법무법인 LKB)는 지난 13일 <조선닷컴>에 “사건 자체가 워낙 극적이라서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 제목인 수리남은 남아메리카 북부에 있는 국가로, 가이아나, 브라질, 프랑스령 기아나와 접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16만3821㎢, 2020년 기준 인구는 58만6348명이다. 남미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작은 국가로 남한의 약 1.6배 정도다.

산림이 국토의 94.6%를 차지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토 대부분이 거대한 열대우림이다. 이 같은 이유로 무거주지 비율이 98%고,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2%에 불과하다. 중앙 수리남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바로 이곳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배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인공 전요환이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한 장소다. 실제 사건에서도 그랬다. 

전요환의 실제 모델인 1952년생 조봉행은 수리남에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규모 마약밀매 조직을 운영했다. 국정원과 미국 마약단속국, 브라질 경찰과의 공조 작전으로 2009년에 체포됐다. 2011년에 징역 10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조씨는 출소 후 수리남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고 있다.

드라마에서 전요환은 한국에서 마약을 유통하다 수리남으로 향했다. 하지만 실제 조씨는 한국에서 마약상을 하지 않았다. 1994년 빌라 건축을 빌미로 10억원을 사기 친 후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이미 1980년대에 8년간 수리남에서 선박 냉동 기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던 조씨에게 수리남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또 수리남은 한국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곳이다.

10억원 빌라 건축 사기로 수리남행 선택
남미 마약조직 ‘칼리 카르텔’과 손잡아

이후 1995년쯤 한국 여권 재발급을 시도했지만 지명수배 등 이유로 어렵게 되자 조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다. 조씨는 한국인 최초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국제 마약 밀매조직을 구축한 사람이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한 공장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선 가공공장이었지만, 실상은 어업회사에서 세금 없이 제공되는 면세유를 돈을 받고 밀매하는 것이 주 수입원이었다.

조씨는 중국인 등을 공장에 취업시켜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단속 강화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었다. 이때 조씨는 마약을 선택했다. 즉시 다른 수입원을 모색해서 마약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손을 잡은 건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 조직인 ‘칼리 카르텔(Cali Cartel)’이다. 칼리 카르텔은 콜롬비아의 범죄 조직이다. 

콜롬비아의 도시 산티아고 드 칼리에서 활동한 형제 힐베르토와 미겔 로드리게스가 중심인물로 마약밀매를 했다. 한때는 콜롬비아의 마약 패권을 손에 쥐었으나 계속된 미국과 콜롬비아의 정부 수사로 두목과 형제들이 연달아 체포돼 힘을 잃고 붕괴됐다.

현재 칼리 카르텔 간부는 미국 교도소에 수감돼있고, 지난 6월1일 미국에 수감 중이었던 두목이 사망했다.

마약 사업을 하기로 선택한 조씨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수리남의 권력자 인맥을 만드는 것이다. 조씨는 수리남 정치인, 관료, 군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무려 육군 장교 출신 독재자인 수리남 대통령 데시 바우테르서와도 오랜 친분을 쌓았다.

이런 인맥으로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인 승객 명단을 미리 압수해 따로 만나서 그들을 마약 운반책으로 활용했다. 먼저 포섭한 것은 수리남에 온 한국 교포다.

조씨는 한국 교포에게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해 100여명을 모았다. 자신을 광물 보석상이라고 지칭했고 마약을 보석으로 속였다. 이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주부나 대학생으로, 어려운 사정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 

코카인 유통
왕국 건설

이런 수법으로 조씨의 사업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마약 거래를 하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마약 공급도 계획하고 있었다.  

조씨의 마약밀매 행각은 2002년 10월 프랑스령 가이아나에서 파리 오를리공항으로 코카인 37㎏을 갖고 들어오던 주부 장모씨 등 2명이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이어 2005년 3월엔 페루 리마 공항에서 네덜란드로 코카인 11.5㎏을 운반하려던 40대 후반의 이모씨가 당국에 체포됐다.

조씨가 인터폴 수배명단에 오른 것은 2005년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조씨가 마약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7년 10월 조씨를 체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수리남과 대한민국은 수교 관계였지만 대사관이 없었다. 관련 업무는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었다. 또 이미 조씨가 수리남 경찰과 군조직을 매수했기 때문에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해 11월 돌파구가 마련됐다.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씨 때문에 낭패를 본 김모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국정원에 전달됐고, 국정원 측은 김씨에게 조씨 검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김씨는 고민 끝에 수락했다. 김씨는 국정원과 마약 수사기관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씨 사이의 마약 거래를 중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다.

김씨는 조씨와 그의 부하 몇몇과 한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밀 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국정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을 잘 때는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가 국정원과 연락한다는 사실을 조씨의 한국인 부하 A씨에게 들켰다. 김씨는 A씨를 붙잡고 “너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냐. 나하고 손잡고 좋은 일 하자”며 설득했다. A씨를 국정원과 통화하도록 연결해줬다. A씨는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협조를 약속했다.

물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3일 뒤 김씨의 집 거실에 A씨가 흑인 4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배신이었다. 이때 김씨는 조씨가 집 밖에 와 있을 거라고 판단해 “미스터 조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예상대로 조씨는 집 밖에 있었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김씨를 바라봤다.

목사 행세
무소불위 권력

김씨는 “나를 못 믿겠거든 마음대로 해라. 당신 부하가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게 내가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냐”고 항의했다.

조씨는 흔들렸다. “진짜 장난이었냐”고 묻고 부하를 나가게 했다. 거꾸로 A씨가 조씨의 미움을 사서 조직에서 밀려났다.

2008년 9월의 어느 날, 김씨와 조씨 일행은 수리남 수도인 파라마리보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김씨가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했다. 마약 조직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우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 총을 옆구리에 겨누며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행선지가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셔터가 올라가고 차가 출발했다.

김씨는 수리남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카지노, 클럽 등의 불빛이 눈가리개 너머로 어른거리는 걸로 이동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는 20여분 뒤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4개가 있었다. 한 더미는 300㎏으로 모두 1.2t이었다. 거래가만 1조원이 넘는 규모였다. 조씨는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

2008년 초 김씨와 국정원은 미국 마약 수사기관과 조씨의 현지 검거를 위한 공동작전에 착수하고 있었다.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미 해군과 특공대의 지원까지 약속했다. 김씨가 “창고를 확인했다”고 연락하자 국정원은 미국 측에 창고 급습과 조씨 검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마약 수사기관은 대규모 총격전과 인명피해를 우려해 작전을 차일피일 미뤘다. 수리남 마약 관련자들은 차 트렁크에 소련제 AK소총을 늘 넣어 가지고 다녔다. 결국 현지 체포는 실패했다.

현지 검거 작전이 실패하면서 김씨의 신변이 위험해졌다. 김씨는 2008년 10월에 귀국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조씨에게는 “마약 거래상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귀국 후 국정원과 김씨, 미국 마약 수사기관이 새로운 작전을 짰다.

7년간 끈질긴 추적 
브라질 공항서 검거

조씨를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는 계획이었다. 첫 번째 대상지는 미국령 괌이었다.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 거래를 이어갔다. 김씨는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액수와 송금 방법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조씨에게는 좋은 거래다.

김씨와 국정원은 심리전도 폈다. 김씨는 조씨의 전화를 며칠씩 일부러 받지 않았다. 계약 성사를 믿고 수리남 현지에서 수출용 목재 속에 코카인을 숨겨 넣는 작업까지 시작한 조씨는 마음이 다급했다. 조씨는 “구매자와 함께 빨리 수리남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김씨는 “구매자가 수리남은 치안이 워낙 불안해서 안 들어간다고 한다. 당신이 괌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조씨가 미국령으로 나올 가능성은 작았다. 계획을 바꿨다. 조씨를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계획했다. 브라질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고 현자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다.

김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조씨를 압박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 도시인 벨렘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브라질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수리남 마약밀매조직의 영향력이 벨렘에까지 미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장소를 상파울루로 바꿨다. 조씨는 거부했다. 다시 통화로 설득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2009년 7월23일 상파울로 구아룰류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현장에는 완전 무장한 브라질 현지 경찰이 입국장 주변에 잠복하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과 김씨도 현장에 합류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인 오후 5시에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예정된 탑승자 명단에도 조씨의 이름은 없었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조씨와 연락하는 척했고 브라질 현지 경찰의 철수를 늦췄다. 2시간 뒤에 조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브라질에 입국하는 조씨에게 브라질 경찰은 환영 선물로 수갑을 채웠다. 이렇게 수리남의 한국 마약왕은 브라질에서 허무하게 체포됐다.

서울중앙지법형사29부(배준현 부장판사)는 2011년 9월30일 조씨에 대해 징역 10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7년간 추적을 놓지 않은 결과다.

재판부는 “조씨가 마약 운반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함께 범행을 꾸민 공범과 이익 배분에 관해 사전에 논의한 사실이 있고 공범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마약왕의 검거 작전의 일등 공신은 김씨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 조씨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협조를 약속하고 수리남에 있을 때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때면 ‘괜한 일에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수교 관계

이어 “상파울루 공항에서 조씨 일행이 약속 시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말을 믿고 한국에서 날아온 국정원 요원들에게도 미안했다. 그래서 더 기다려보고 정말 안 온다면 내가 수리남으로 다시 들어가서라도 일을 성사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씨 부하가 배신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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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