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뒤집듯’ 중대재해처벌법 한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6.21 09:23:23
  • 호수 13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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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머리 아픈 세 가지 문제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공사현장은 늘 위험하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안전모 착용과 안전 난간 설치 등을 필수로 지정해도, 건물에 설치된 안전 난간·철골·지붕·작업 발판 등이 떨어져 노동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지만, 시행된 지 5개월 만에 책임자 처벌이 줄어들 상황에 처했다. 

‘중대재해’란 사망자가 1인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인 이상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직업성 질병자가 10인 이상 동시에 발생했을 때 중대재해로 정의한다. 

소규모 현장서 
사망사고 72%

이만큼 건설 현장은 항상 위험이 깔려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15일 발표한 ‘2021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을 통해 지난해 산재 사망자는 828명이며, 전년 대비 54명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사고 사망자 수는 ▲건설업 417명 ▲제조업 184명 등 건설·제조업에서 70% 이상 발생했다. 이외 업종에서는 227명 발생했다. 재해 유형별로는 ▲떨어짐 351명 ▲끼임 95명 등 대부분 기본적인 안전수칙 준수로 예방 가능한 재래형 사고가 전체의 53.9%를 차지했다.

▲부딪힘 72명 ▲깔림·뒤집힘 54명 ▲물체에 맞음 52명 등으로 조사됐다.


주요 기인물별로는 ▲건축·구조물이 239명으로 절반 이상 발생했고 ▲기계·장비는 108명 ▲부속물 및 설비는 41명 순으로 많이 발생했다. 건설업의 경우 50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 전체 사망사고의 71.5%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보호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사고가 난 뒤 그 무엇도 노동자를 지켜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2020년 3월4일 오전2시59분 충남 서산시 대산읍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들 수 있다. 

당시 폭발사고로 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2명의 노동자가 크게 다쳤다. 하루아침에 가족과 동료를 잃은 동료의 유족은 회사와 보상 문제로 갈등했다. 피해자를 대신해 노동조합이 회사와 합의를 시도했지만, 회사 측은 유족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보상 금액만 통보하고 등을 돌렸다. 

“책임자 처벌 과도” 국힘 개정안 추진
노동계 “목숨 담보한 충성 경쟁” 반발

노조는 회사를 향해 항의 집회를 열며 반발했고, 회사는 마지못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사망자의 시신은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12시간이나 장례식장에 안치돼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대산 공장 폭발사고가 ‘인재’라고 주장했다.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현장에 비숙련자를 고용해 인건비를 줄이는 등의 편법을 썼기 때문이다. 가령 공사현장에 17만5000원씩 일당을 지급하는 조건의 기술자 20명을 모집해야 한다면, 그중 실력 좋은 기능공은 한두 명만 뽑고 나머지 18명은 일당 13만원인 초보자나 아르바이트생을 뽑은 것이다.

이들을 관리하는 기술자도 고작 한두 명이 전부여서 제대로 된 교육이나 관리를 할 수도 없었다. 비숙련자들은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 일했다. 그 결과 제대로 된 줄을 묶을 실력도 없는 노동자들 때문에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문제는 대기업 사업장에는 이런 방식의 비용 절감이 만연했고, 이런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참사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고를 겪고 난 뒤 비극적인 시스템은 바뀌었다. 지난 1월25일부터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노동계 측은 법 시행을 무척 반겼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확보하기 위해 경영 책임자에게 의무를 부과한 법률이다. 경영 책임자는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처벌은 1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하거나 2명 이상 부상자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렇다고 모든 중대재해가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 책임자가 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계속되는 참사
‘인재’ 타령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지난 13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건은 모두 83건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가운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56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37건(중복 포함)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 중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수사 중인 10건은 수사를 완료한 뒤 관할 검찰에 송치했다.

이 중 ㈜삼표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사건이다. ㈜삼표산업은 지난 1월29일 경기도 양주 채석장 작업 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천공기·굴삭기 기사 등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숨지게 했다.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장 A씨는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대표이사를 의정부 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기북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도 A씨를 포함한 현장 직원 9명과 본사 직원 3명 등 모두 12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사흘 만에 발생한 사고로 ㈜삼표산업이 골재 채취량을 늘리기 위해 채취 과정에서 발생한 돌가루와 같은 ‘슬러지(찌꺼기)’를 쌓아 놓았던 곳까지 작업을 진행하면서 발생했다.

고용노동부 수사 결과 ㈜삼표산업이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하면서 현장 작업자 등을 통해 토사 붕괴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발생 이후 대표이사 지시를 바탕으로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붕괴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방대한 양의 디지털 증거 분석 때문에 수사가 지연됐다. 이날 ㈜삼표산업뿐 아니라 ▲경남 고성 조선소에서 자재를 나르던 하청 노동자가 숨진 삼강에스앤씨 ▲유독성 세척물질로 인해 노동자 13명이 급성 독성 간질환 진단을 받은 경남 김해의 대흥알앤티 대표이사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청에 송치됐다.

“조치 했어도…”
사업주 지키기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 등 10인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개정안)’을 접수했다. 기존 중대재해처벌법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개정안은 현행법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게재했다.

이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를 위한 충분한 조치를 했어도 재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런 경우 과도한 처벌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제13조에 따른 기술 또는 작업환경에 관한 표준의 적용에 대한 사항을 중대재해 예방에 관한 것으로 한정한다’ ‘중대재해 발생 위험에 관한 감지된 정보를 송신·수신해 재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통신시설을 설치한다’ ‘법무부 장관은 중대재해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사업장과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이 기준에 적합하게 운용되는지 인증하는 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 등이 담겼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개정안이 국민 목숨을 담보로 한 충성 경쟁이라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3조에 따른 기술 또는 작업환경에 관한 표준의 적용에 대한 사항을 중대재해 예방에 관한 것으로 한정한다’ 항목에서 문제 되는 지점은 산업안전보건법 제13조에서 지정한 표준 자체가 19개 이상 작업지침으로 존재해 과도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것만 본다면 작업지침이 더 줄어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관계법령’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 등으로 축소해 입법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5개월 동안 사건 모두 83건
실질적인 산재 예방에 도움?

정보통신시설 설치에도 반대 의견을 표했다. 현장에 다수 설치된 바디캠, CCTV 등은 명확한 법적 판단이 없는 것들이다. 

특히 최근 노동 현장에서 바디캠과 CCTV를 산업재해 예방 목적으로 설치하고 있지만, 안전을 위한 목적과는 달리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안전보건과 관련 없는 감시‧통제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견이다.

현재 개인정보 보호법상으로는 개인정보 처리자와 정보 주체를 대등한 당사자로 전제하고 있으나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갖는 노동 현장의 현실에서 원래 목적과 취지를 잊은 채 악용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노동자 감시·통제 등으로 악용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빈약한 정보통신 기술로 인해 경영 책임자의 처벌 회피를 위한 법률적 근거가 된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장관이 지정한 인증기관은 경영 책임자가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현재 노동 현장에는 안전보건 인증제도인 ‘안전보건 경영시스템’이 있지만, 일부 기업은 인증을 형식적으로만 유지할 뿐 실질적인 산재 예방에는 소홀해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실정이다.

그 예로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파트 참사가 있다.

결국 또 다른 인증이 실질적 산재 예방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며, 기존의 ‘안전보건 경영시스템’부터 제대로 정착시키라는 의견이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제16조(정부의 지원) 등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국은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개악 시도를 중단하라. 산재 예방과 감소를 위해 정치권과 노사정이 할 일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드는 것이 아닌 현장 정착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명히
악용될 것”

이어 “정부는 엄정한 수사와 대폭적인 지원을 해야 하고, 국회는 후퇴한 조문을 되살리는 개정 작업을 해야 한다. 노사는 실질적인 참여와 안전보건 투자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 뿌리내리도록 할 필요가 있다.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발의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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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