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입이 화 부른 김성회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5.17 10:56:37
  • 호수 13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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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초토화시킨 ‘막말 종결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를 시민사회수석실 종교다문화비서관으로 임명했다. 그 후로 일주일 만인 지난 13일, 김 비서관은 사퇴했다.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라고 말해 자진사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질에 가깝다는 해석도 있다. 임명 후 그의 별명은 ‘폭탄·혐오발언 제조기’였기 때문이다.

김성회 전 시민사회수석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윤석열정부 출범 대통령실 비서관급 첫 낙마 사례다. 지난 12일까지만 해도 지켜보겠다던 대통령실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자칫 윤석열정부의 인사 검증 부실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운동권 출신
활동가의 길

혐오 발언으로 사퇴를 부른 김 전 비서관은 1965년 충북 괴산군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화려한 운동권 경력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민족 통일·민주 쟁취·민중 해방 이념을 목표로 한 전국 학생 총연합 삼민투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연세대학교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1985년 4월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1986년 5월 출소한 김 전 비서관은 인천과 수원 등지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87년 5월 위장취업이 들통나 다시 구속됐지만 두 달 만에 석방됐다. 그 후 그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구속돼 1년여의 옥살이를 했다.


1990년 연세대학교에 복학해 고시 공부를 시작했으나 집중할 수 없었던 그는 다시 운동단체의 상근 활동가의 길을 선택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연합이란 단체에서 교육선전국장을 맡았다. 1997년에는 대통령선거 때 국민승리21 권영길 대통령후보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운동권 활동가의 삶을 살던 그는 DJ(김대중)정부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1999년 6월 그는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청와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 전 비서관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거 경선 당시 이인제 캠프에 합류했다. 

이인제 캠프에서 경선 탈락이라는 결과를 맛본 그는 이후 급격하게 정치적 방향을 바꿨다. 김 전 비서관은 2007년 인터뷰에서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을 칭송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능동적인 산업화를 위해 국민적 힘을 모았다. 굉장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동원 능력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승만에 의해 토지개혁이 강도 높게 이뤄졌다. 또 국민 너나 없이 교육 받을 수 있게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전 비서관은 뉴라이트 창립에도 직접 관여했다. 당시는 이인제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2005년이다. 당시 <충청리뷰> 보도에 따르면 김 전 비서관은 장일 전 자민련 국장과 함께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전신이 되는 ‘뉴라이트 충청포럼’을 결성했다.

끝없이 정치 향한 도전
함께 터진 과거 발언들


이어 2007년에는 이 의원의 선거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이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새누리당으로 당을 갈아타는 기간에도 김 전 비서관은 함께했다. 

김 전 비서관이 직접 정치 행보를 걷기도 했다. 비록 탈락했지만 2014년에 새누리당 청원군 당원협의회장 공모에 응시했다.

2016년 11월10일 창립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팬클럽 ‘반딧불이’ 중앙회장을 맡았다. 이전까지는 운동권 출신과 뉴라이트로 이름을 알렸다면, 반 전 총장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을 맡은 뒤로는 판도가 바뀌었다. 이 팬클럽은 반 전 총장의 고향인 충북지역을 거점으로 생긴 순수 팬클럽으로 시작했다. 

반딧불이 회원은 2만5000명이나 됐고 정치인도 다수 참여했다. 반 전 총장이 한국에 입국할 당시 김 전 비서관은 500명 정도 회원과 함께 환영하는 활동을 했다.

정치인이 참여하는 싱크탱크 ‘글로벌 시민포럼’을 출범하기도 했다. 김 전 비서관은 글로벌 시민포럼에서 ▲군대 ▲저출산 ▲보육 ▲결혼 ▲일자리 ▲해외 취업 등 청년 정책을 망라해 거론했다.

2017년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으며 직간접적 지원사격을 펼쳤다. 이런 방식으로 김 회장은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폭탄·혐오발언 제조기’ 별명은 김 전 비서관의 정치활동과 함께 시작됐다. 2015년 12월 박근혜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김 전 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누리꾼과 설전을 벌였다. 누리꾼은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전 비서관은 “그럼 정부가 나서서 밀린 화대라도 받아내란 말이냐?”는 비난의 댓글을 남겼다. 

진정성
어디로?

페이스북은 이를 두고 규정 위반으로 판단해 차단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김 전 비서관은 “누군가 제 페이스북을 보며 끊임없이 신고한다. 어이없는 사안을 가지고 차단켜서 나의 언로를 막으려고 작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서 너무 심하다. 예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동성애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2019년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레인보우 합창단은 동성애와 상관없다.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병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며 “선천적으로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후천적인 버릇이나 습관을 자신의 본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경우에 동성애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흡연자가 금연 치료를 받듯이 일정한 치료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최근에 한 막말은 여성 비하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3월1일 김 전 비서관은 인터넷 언론사 <제3의길>에 ‘조선시대 절반의 여성이 성노리개였다’는 칼럼을 썼다.

이 칼럼에서 그는 “일반 여성 노비들의 경우 결혼하기 전에는 낮에 집안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양반집 주인이나 그 아들의 성노리개가 돼야 했다. 그리고 결혼은 노비를 양산하기 위해 주인이 정해주는 대로, 다른 외거 노비나 일반 양민과 결혼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주인이 노비가 결혼해 살림하는 곳으로 찾아와 남편을 내쫓고 잠자리를 갖기 일쑤였다. 즉, 결혼하고서도 성노리개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문화센터
공금 횡령도

김 전 비서관의 과거 발언이 화두가 된 것은 그가 시민사회수석실 종교다문화비서관에 임명된 후부터다. 이미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는 김 전 비서관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 상황을 의식했는지 김 전 비서관은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

사과문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밀린 화대’ 발언, 동성애가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한 발언 등에 관해 설명했다. 우선 ‘밀린 화대’에 관해서는 “박근혜정부 때 진행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두고 포괄적 사과와 배상이 이뤄지자 누리꾼이 트집을 잡았다.


개인 보상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누군가와 언쟁을 하면서 댓글로 짤막하게 대답한 것이 문제가 됐다”며 “이건 페이스북에서 개인 사이 언쟁으로 일어난 일이다. 지나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깨끗이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김 전 비서관은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동성애 발언에 대해서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성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전달했다. 

사과문을 통해 그는 “개인들의 다양한 성적 취향에 대해 존중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 후천적인 버릇이나 습관인데 동성애를 자신의 본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본다”며 “이런 경우에는 동성애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흡연자가 금연 치료를 받듯이 일정한 치료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나온 말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성적 취향에 대한 혐오 발언의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위안부) 화대라도 받아내라고”
“동성애, 정신병 일종으로 생각”
“조선시대 절반의 여성 성노리개”

김 전 비서관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사과문은 시민사회수석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을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커진 결과를 초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전 비서관의 사과문에 진심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며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요구했다.

민주당 신현영 대변인은 지난 1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김 전 비서관이 일본군 위안부 비하 발언에 대해 깨끗이 사과한다면서도 비판이 과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신 대변인은 “억울하지만 마지못해 하는 사과는 무늬만 사과”라며 “왜곡된 역사 인식과 그릇된 가치관에 아무런 단서도 달지 말고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김 전 비서관의 동성애 혐오 발언을 지적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 11일 “김 전 비서관이 혐오 발언에 대해 깨끗이 사과한다는 형식적인 말과 달리 오래된 혐오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며 “발언을 한 이가 대통령 비서관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윤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미 후보 시절부터 차별적 구조를 외면하고 동성혼을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하던 대통령은 자신이 처음으로 임명한 비서관의 이러한 혐오 발언에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느냐”며 “평등과 존엄을 규정한 헌법 준수 의무를 선언한 이로써 임기 이틀 만에 성 소수자들이 이렇게 모욕을 당하는 상황에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질책했다.

문제는 김 전 비서관의 문제가 막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전 비서관은 과거 대표로 있었던 ‘한국다문화센터’의 공금을 횡령하고 적발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한국다문화센터는 후원자들의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운영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2016년 김 전 비서관은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로 재임했다. 당시 본인 소유의 SUV 차량을 할부로 구입했지만, 차량 구매 할부금은 다문화센터가 내게 했다. 차량 할부금을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가 아닌 한국다문화센터 명의 계좌로 바꿔놓은 것이다.

김 전 비서관이 한국다문화센터 공금을 사용한 것은 업무상 횡령이다. 이런 수법으로 김 전 비서관은 2016년 11월21일부터 2018년 3월20일까지 약 437만원의 공금을 횡령했다. 그는 2019년 3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고, 같은 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다문화센터의 자문 관리 등을 총괄하는 이사로서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다문화센터의 자금을 자신의 소유인 경우와 같이 처분하고자 했다. 불법 영득의 의사를 인정함에 지장이 없다”고 판시했다.

임명 직후 
사퇴 여론

김 전 비서관은 “차량은 다문화센터 업무를 위해 사용했고, 횡령의 고의는 없었다”고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2020년 11월10일 ‘400만원 벌금형’이 최종 확정됐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광훈 매체서 ‘김건희 찬양’ 후 비서관 내정됐던 김성회

윤석열정부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으로 임명후 자진사퇴한 김성회 전 비서관은 전광훈 목사가 창간한 극우성향 매체 논설위원을 맡아 여러 차례 윤 당선자 부인 김건희씨를 치켜올리는 기사와 칼럼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회 전 비서관은 지난해 12월21일 <자유일보>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를 인터뷰한 기사를 올렸다. 인터뷰는 서울 서초구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닷새 뒤 김 전 비서관은 같은 매체에 “윤석열이라는 시골 검사를 대선후보의 반열에 올려세운 것은 ‘평강공주 김건희’였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기고를 게재했다.

그는 대선 당일인 3월9일 칼럼에서도 “고구려 귀족 집단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선택하고 키웠듯이, 김건희 대표는 파격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썼다.

<자유일보>는 2020년 2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가 창간한 매체다.

전 목사는 지난달 26일 설교에서 “조·중·동이 박근혜 탄핵에 앞서는 바람에 내가 <자유일보>라는 일간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매체 대표이자 발행인은 전 목사의 딸인 전한나씨다.

이 매체는 누리집에 ‘공산제국주의 세력과의 100년 전쟁을 주요 테마’라고 명시하고, 올해를 ‘건국 74년’이라며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등 극우 성향을 띤다.

김 전 비서관은 지난해 12월부터 객원 논설위원과 논설위원으로 30여개의 칼럼을 썼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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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