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숨이 턱 막히는 1호선부터 대기시간 20분에 이르는 경의중앙선까지, 출퇴근길 뚜벅이들의 희망인 서울 지하철.
매일매일 온갖 일들이 일어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시설이죠.
그런데 지하철을 타다 보면 간혹 의아한 역들이 있습니다.
바로 역 이름 옆에 회사, 학교, 혹은 기업 이름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경우인데요.
이렇듯 괄호 속에 이름을 넣기 위해서는 무려 ‘수억원’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억대 괄호 쟁탈전’은 바로 서울교통공사의 ‘역명병기 사업’입니다.
즉, 돈을 받고 특정기관이나 기업의 이름을 일정 기간 노출해주는 일종의 홍보 사업인데요.
해당 사업은 2016년경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의해 시작됐지만 양 공사가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된 2019년 이후로 중단된 바 있습니다.
현재 1호선부터 9호선까지 총 288개 역을 관리하며 매일 700만명 넘는 시민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서울교통공사.
하지만 사업 적자가 점점 불어나 2021년 무려 1조원을 넘어서면서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해졌습니다.
따라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역명병기 사업이 부활하게 됐는데요.
괄호 안에 들어갈 기관/기업은 ‘공개입찰’을 통해 정해집니다.
아무래도 시민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시설인데다 모든 역에 비치된 노선도나 안내판을 교체해야 하는 만큼, 그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데요.
입찰을 원하는 기관은 ▲역에서 1km 이상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가져야 하고 ▲공사의 이미지를 저해해서도 안 되며 ▲만약 여러 기관이 같은 가격을 제시할 경우 ‘공익기관-학교-의료기관-기업-다중이용시설’ 순으로 결과가 정해집니다.
낙찰 시 계약 기간은 3년으로, 기존 역명 옆에 기관명이 표기됩니다.
현재 서울 지하철역 중 33곳이 병기돼있습니다.
역의 인지도와 유동인구, 상징성 등에 따라 가격대는 천차만별인데요.
현재까지 낙찰된 역 중 가장 몸값이 높은 역은 을지로3가역으로, 금융기업 ‘신한카드’에 의해 8억7400만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집니다.
신용산역은 기업 ‘아모레퍼시픽’에 3억8000만원에 판매됐죠.
이외에도 을지로4가 ‘BC카드’, 역삼 ‘센터필드’ 등 많은 역이 새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역명병기 사업의 수익은 연평균 약 25억원으로 예상되는데요.
적자 극복을 위한 공사의 노력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대표적으로 올해 1월부터 추진된 공식 캐릭터 ‘또타’ 관련 사업이 있습니다.
현재 ‘레일플래닛’을 통해 또타 USB, 뱃지, 인형, 피규어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 중이죠.
1조원의 구멍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안간힘을 쓰는 서울교통공사의 행보를 응원해봅니다.
만약 역명병기 사업이 추가적으로 실시된다면 또다시 ‘괄호 쟁탈전’이 일어날 전망인데요.
앞으로 과연 어떤 이름이 지하철 안내판에 등장할까요?
총괄: 배승환
기획: 강운지
촬영&구성&편집: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