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6색' 차기 국세청장 쟁탈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3.31 09:30:57
  • 호수 1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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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 공식이냐 새로운 선택이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윤석열정부의 국세 행정을 책임질 국세청장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세청장 임명에는 암묵적인 공식이 있다. 국세청 차장, 서울국세청장 등 내부 승진이다. 하지만 윤정부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전 공식을 깨고 새로운 선택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권교체는 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다. 오는 5월10일 문재인정부가 막을 내리고 윤석열정부가 들어선다. 최대 관심사는 4대 권력기관이라 불리는 검찰청, 경찰청, 국가정보원, 국세청의 수장이 누가 될 것이냐는 점이다. 

역대 청장 
17명 보니…

장관급 직책이 아님에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권력기관들의 수장은 중립이 요구되는 직책이다. 역대 정권들은 4대 권력기관을 활용해 국정 운영을 수월하게 이끌어왔다. 검경을 통해 과거 사건을 수사하거나 국세청을 통해 기업 길들이기도 했다. 

국세청장의 역할만 따지면 장관급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문재인정부는 취임 초기 ‘적폐 청산’을 외치며 첫 국세청장으로 한승희 전 청장을 발탁했다. 한 전 청장은 고액 재산가와 대기업 수사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윤정부의 국세 행정을 책임질 국세청장으로 누가 낙점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윤 당선인은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곧바로 새 국세청장을 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장 임기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나 통상 2년을 주기로 바뀌고 있으며, 김대지 현 국세청장은 2020년 8월에 취임했다. 


과거 새 국세청장 후보자에 주로 내부 인사가 지명돼왔다. 국세청 차장, 서울국세청장, 중부국세청장, 부산국세청장 중에서 국세청장으로 내정됐다. 노태우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국세청장 17명 가운데 국세청 차장에서 승진한 인사는 7명, 서울청장에서 발탁된 인사는 6명, 중부청장에서 영전한 인사는 1명, 나머지 3명은 외부 인사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이 역대 어느 정부에서나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성원하고 국정과제를 적극 지원해 왔다는 점은 여·야 모두에게 각인돼있다”며 “이 때문에 국세청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없다면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내부 승진의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일요시사>는 윤정부 첫해 차기 청장 후보군으로 국세청장 6명을 분석했다. 

▲임광현 국세청 차장 = 임광현 국세청 차장은 국세청 2인자로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다. 1969년 충남 홍성 출신으로 강서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38회로 국세청에 입문했다. 1995년 공주세무서 직세과장으로 세정 업무를 시작했다. 

2015년 중부청 조사1국장으로 발령받으며 공직생활 20년 만에 고위 공무원으로 승진했다.

고위 공무원으로 승진한 이후 계속해서 조사국장으로만 근무했다. 이후 중부청 조사4국장, 서울청 조사2국장, 서울청 조사4국장, 서울청 조사1국장, 국세청 조사국장까지 무려 6번의 조사국장을 역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재임기간 2년…5월 내정 전망
임광현·임성빈 ‘2파전’ 유력


탁월한 업무능력을 선보이며 일찌감치 국세청장 재목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아온 엘리트 출신이다. 하버드 법대 출신인 그는 과장 시절에도 본청에서 정책보좌관과 조사기획과장을 거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일하면서 국세청 선배였던 전관 출신의 공직 퇴임 세무사에 대한 세무조사도 진두지휘했다. 또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일 때 마스크 온라인 판매상과 수출 브로커 등에 고강도 세무조사를 즉각 실시했다. 

부동산 법인에 대한 전수 검증과 탈루 혐의에 대한 조사도 적극 실시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또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다국적기업 등 그동안 쌓아왔던 조사 역량을 발휘하면서 진가를 뽐내기도 했다.

김대지 국세청장 취임 후 처음으로 실시한 고위 공무원단 인사에서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임명되며 고공단 가급으로 승진했다. 가급 승진이 2020년 9월이었고 지난해 7월 국세청 차장으로 이동하면서 국세청 2인자 자리에 앉게 됐다.

직원들의 평가도 좋다. 그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다는 한 직원은 “업무능력이 출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잔정이 많다”고 전했다. 일례로 직원들의 인사발령 후 반드시 직접 전화해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임 차장은 검소하기로도 유명하다. 오랫동안 같이 근무했던 한 간부는 2만원이 넘는 식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주말마다 산에 오른다고 알려져 있다.

▲임성빈 서울국세청장 = 임성빈 서울국세청장은 1965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37회로 국세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해 국세 행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지만 그중에서도 조사업무에 두드러진 장점을 보인다. 징세업무 뿐 아니라 조세심판원에서 2년간 근무한 경력으로 납세자 보호에 대한 이해도도 깊다. 중부청 조사1국, 서울청 조사4국, 본청 조사국 등 조사 분야에서 근무한 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파견을 다녀왔다.

국세청으로 복귀한 이후 서울청 국제조사3과장, 본청 국제조사과장 등 조사 파트 근무를 계속 이어갔다. 실무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노하우가 축적된다는 황금시기를 모두 조사국에서 보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국세청 최고 요직이자 어려운 자리로 불리는 ‘서울청 조사4국장’에 발탁돼 진가를 발휘했다.

조사 전문가? 
멀티플레이어?

이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부산지방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장까지 탄탄대로였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경남고 동문이다.

특히 임 청장은 2019년 일본 수출규제로 우리나라 기업이 많은 피해를 입었을 때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위한 각종 세정 대책을 내놓으며 위기 타계를 도왔다. 


일본 수출규제 피해기업 세정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본청과 지방청, 일선 세무서에 체계적인 협업을 만들었다. 피해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상 어려움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맞춤형 지원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도 보여줬다.

국세청 1급인 부산국세청장으로 승진하고서도 서울 국세청장 자리까지 앉았다.

김대지 청장을 제외하고 현재 최고참 행시 출신으로 국세청 내부에서의 신망도 두텁다. 임 청장을 잘 아는 지인들은 선이 굵으면서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조직을 관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고 했다. 또 남다른 정무적 감각으로 상황 판단을 거시적으로 해내면서 상하 직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김재철 중부지방국세청장 = 김 청장은 1964년 생으로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순천고와 국립세무대학을 4기로 졸업했다. 8급 특채의 국세청 고위직 명맥을 이어가면서 세대 출신 국세청 직원들의 희망으로 불린다. 세대 출신 중에서 국세청 고공단 가급으로 승진한 것은 역사적으로 김재웅 전 서울청장, 김한년 전 부산국세청장 단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김 청장의 경우 본청 세정 홍보과에서 근무 당시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그는 4년간 본청 세정 홍보과에서 근무하면서 국세청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성실납세를 지원한다는 납세자 친화적 이미지로 변화하는 데 큰 노력을 쏟았다.

이후 목포세무서장으로 초임 기관장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서울청 조사3국3과장으로 본격적인 관리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후 김희철 전 서울청장을 보좌하는 서울청 운영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최초로 서울청의 균형 성과평가 조직평가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세대냐
행시냐

이후 본청으로 입성해 국세청 납세자 보호담당관으로 근무하면서 세무조사 실시간 모니터링, 조사팀 교체명령, 세무조사 입회제도와 같은 획기적인 제도도 내놨다. 또 국세청 최초로 세무대학 출신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대변인 시절 국세청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경청하는 폭넓은 대인관계를 가졌다. 또 국세청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등 특유의 친화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세대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중부청장 자리에 앉으면서 세대 출신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 김덕중 전 중부국세청장이 일약 국세청장으로 발탁된 적이 있어 김 청장도 기대해볼만하다. 

▲노정석 부산지방국세청장 = 노정석 부산지방국세청장은 196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해 대광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38회로 국세청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노 청장은 사무관 시절 서울 대기업의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1국1과1계장으로 근무하다 노무현정부 말기에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을 다녀왔다. 국세청에서 근무하다 청와대 파견의 길을 걸으면 어김없이 잘나가는 선배들의 길을 그대로 밟아왔다.

본청 입성 후에는 자산과세국장, 국제조세관리관, 조사국장, 법인납세국장 등 주요 요직에서 근무했고, 고공단 가급으로 승진하며 부산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됐다.

특히 본청 자산과세국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고액자산가의 변칙 상속, 증여, 자본거래 등을 통한 부의 무상이전에 대해 적극 대응한 바 있다. 자산과세 분야 과세 인프라 확충 및 전산화, 과학화를 위해 노력해 자산과세 행정 발전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그해 우수공무원으로 포상받기도 했다.

새 정권 새 청장은 누구?
내부 승진? 외부 영입론도

본청 조사국장 당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비대면 중심의 간편조사 방식의 전환과 세무 부담은 완화시키면서도 경제위기 상황에서의 반사회적 탈세에는 조사역량을 집중하면서 역량을 발휘했다. 코로나 여파로 법인세수 절벽으로 위기상황이었던 시기에는 법인납세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납세자 성실신고를 적극 지원해 성실납세 문화를 조성하는 등 안정적 세수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얻었다.

▲강민수 대전국세청장 = 강민수 대전국세청장은 1968년 경남 창원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행시 37회로 국세청에 발을 디뎠다. 

그는 제주세무서 총무과장, 안양세무서 소득세과장을 시작으로 버밍엄대 국외훈련, OECD 사무국 파견돼 국제 관련 실무를 익혀왔다. 이후 강 청장은 국세청 기획재정담당관, 부산국세청 조사1국장, 조세심판원 상임조세 심판관,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특히 강 청장의 경우 문재인정부에서 홀대받은 인물로 유명하다. 본청 국장을 5번이나 지내면서 1급 승진 후보에 다섯번이나 올랐지만 “현 정부에 미운털이 밝힌 것 아니냐, 뒷배가 없으니 계속 밀린다” 등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7월부터 2급 지방청장직을 맡고 있다. 

▲김창기 전 부산청장 = 김창기 전 부산청장은 1995년에 제주세무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경북 봉화 출생으로 대구 청구고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행시 37회로 공직에 입문, 국세청 감사관과 개인납세국장, 중부지방국세청장 등 주요 직위를 두루 거쳤다. 

중부국세청장 시절 신종업종·취약분야에 대한 신고 도움자료 제공을 확대, 수요자 중심의 성실신고 지원 강화로 세입예산의 안정적 조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퇴임사에서 공무원으로서의 보람은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본청에 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동료들과 토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일했던 시절에 가장 보람을 느꼈고, 직급의 높낮이나 경력, 나이는 이와 큰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천장은 오랫동안 국세청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퇴직한 국세청 외부 인사로서 상황에 따라 내·외부 인사로 유연하게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5년 만에 정권교체 후 새 정부의 첫 지명인만큼 보수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역대 사례들을 보면, 정권 첫 청장으로 차장이나 서울청장을 지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정부에선 외부 인사인 이용섭 전 국세청장을 지명했다.

파격적인
결정할까

이런 분위기에서 내부승진 후보군을 뛰어넘어 노정석 부산청장을 비롯해 문재인정부에서 소외됐던 강민수 대전청장 등이 급부상하고 있다. 아예 이들을 제외한 외부영입론도 나오고 있다. 부산청장, 대전청장에서 곧바로 국세청장에 오른 케이스는 아직 없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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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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