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떠나는 '43년 한은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3.28 12:08:59
  • 호수 1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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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경제 뒤로한 채 가기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43년 한은맨이 떠난다. 문재인정부 내내 한국은행의 수장 자리를 지켰던 이주열 총재 임기는 이달 말까지다. ‘최장수 근무’ ‘중도 추진맨’ 등의 타이틀을 소유한 이 총재의 경력은 화려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됐다”고 입을 뗐다. 8년간 한국은행을 이끌며 산전수전을 겪은 이 총재는 퇴임을 앞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기준금리 결정과 국제협력, 내부경영 등을 두고 이 총재의 여러 선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998년부터
최장 근무자

이 총재는 2014년 4월부터 시작된 8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31일 한은을 떠난다. 그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의장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 연임한 첫 한은 총재다. 한은 부총재 퇴직 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한 2년을 제외하고 43년을 한은에 몸담아 ‘최장수 한은 근무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총재는 지난 23일 송별간담회를 통해 “한국은행에서 43년간 국가경제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건 영광이었다. 떠나는 자리에 덕담을 나누기에는 우리 경제가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많다”며 “이를 뒤로한 채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후임 총재와 임직원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미 연준이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을 예고했는데 우리가 지난 8월 이후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잠시 금리정책 운용의 여유를 갖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앞으로 그러면 기준금리를 어느 시점에 또 얼마만큼 어떤 속도로 조정해 나갈지는 후임 총재와 금통위가 금융·경제상황을 잘 고려해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와 세계 중앙은행·국제기구와의 더 많은 협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보수와 진보정권을 모두 거친 그는 대체로 선제적이고 과감한 기준금리 조정 등을 통해 경제상황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처하고, 적극적 통화스와프 체결 등으로 외환시장 안정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차분하고 말을 아끼는 성격인 것으로 알려진 이 총재는 청와대 또는 정부의 기준금리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순간 통화정책이 신뢰를 잃고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월호 참사·메르스 사태 등 
주재한 회의 무려 76회 달해

이 총재는 취임 기간 동안 다사다난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브렉시트, 미·중 무역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이 있었으며 코로나19에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벌어졌다. 그 기간 동안 이 총재가 주재한 금통위 회의만 무려 76회에 달했다.


그 동안 이 총재는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경기 회복세가 확인되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에 걸쳐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 시기는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과소평가하고 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던 때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출신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게재한 ‘제롬 파월 의장의 연준은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한은이 지난해 8월 이후 두 번째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연준이 말만 할 때 한은은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신중한 의사소통으로 시장을 안정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절제된 표현과 일관된 메시지를 통해 시장의 기대를 정교하게 관리한다는 것이다.

한 전임 금통위원은 “(이 총재는)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팩트를 말하는 것이 몸에 뱄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기 중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은 물론 중국인민은행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거나 연장해 우리나라 외환 안전망을 탄탄히 갖춘 점도 성과로 거론된다. 

신속하게
금리 조정

이 총재의 신망은 여야를 막론하고 두터웠다. 과거 한국은행 총재는 4년 임기를 채우면 물러났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돼도 전임 대통령 때 임명된 한국은행 총재는 당연히 임기를 완수하는 것이 임무였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새로운 4년 임기의 재신임을 했다. 한은 총재의 철저한 임기 완수 전통이 자리 잡은 덕택에 이 총재는 48년 만의 연임 총재라는 영광을 누렸다. 

2018년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 총재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관한 풍부한 식견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며 “그의 연임은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도 2018년 3월 한국은행 총재 인사청문회를 마친 직후 이 총재의 인사청문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신뢰를 보여줬다.

이 총재가 2014년 4월1일 취임할 당시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기준금리는 2.5% 수준이었다. 

이 총재는 4개월 만인 2014년 8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0.25%포인트 내려 연 2.25%로 조정했다. 일본의 엔화 약세정책에 세월호 참사 등 악재가 겹친 데다 정부에서 시장에 돈을 대거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초이노믹스’(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와 정책공조 필요성이 제기된 점을 감안했다.


금통위는 2014년 10월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내려 연 2.0%로 조정했다. 2015년 3월과 5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리면서 금리가 연 1.5%까지 떨어졌다.

2016년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등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하고 국내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2016년 4월에 새로 추천된 금통위 4명 가운데 상당수가 비둘기파로 분류된 점도 금리인하 전망의 근거가 됐다.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를 명분으로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라고 한은을 압박했을 때 당시 이 총재는 “(총재)직을 걸고 막겠다”면서 직원들의 동요를 차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재가 끝내 출자를 거부했고 대출 프로그램인 ‘자본확충펀드’를 제시한 뒤 실행요건을 까다롭게 했고, 결국 실적 없이 2017년 말 종료됐다. 

코로나 악재
‘빅컷’ 단행

금통위는 2016년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내려 기준금리는 연 1.25%가 됐다. 시장의 금리 동결 전망을 뒤엎은 결정이었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경기가 하강할 위험이 있어 선제적 완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반대로 2017년 들어 국내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금통위는 11월 기준금리를 1.50%로 올린 뒤 이듬해 11월 1.75%까지 추가 인상했다.

하지만 2019년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의 악재가 이어지자 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는 같은 해 7월과 10월 인하 결정을 통해 기준금리를 1.25%로 내렸다.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자 3월16일 임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나 한꺼번에 낮추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고, 5월28일 추가 인하로 사상 최저 수준인 0.50%까지 떨어뜨렸다.

당시 이 총리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라며 “통화정책은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될 때까지 완화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일제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추던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과감하게 금리를 인하해야 경제적 타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국내 경제가 수출 중심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으로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이 심해지자 8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 잇단 인상으로 1.25%까지 끌어올렸다.

박이 임명 문이 4년 재신임
절제된 표현·일관적 메시지

지난달 이 총재가 주재한 마지막 통화정책결정 회의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이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이 총재가 이끄는 금통위는 8년 동안 기준금리를 9차례 인하하고 5차례 인상했다. 이 총재 임기 중 기준금리는 최고 2.50%, 최저 0.50%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이 총재는 내부 경영면에서도 박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행 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3~10일 직원 7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조의 65.7%가 이 총재의 내부 경영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33.3%가 매우 미흡, 32.4%는 미흡이라고 응답했다. 25.9%는 보통, 7.0%는 우수, 1.5%는 매우 우수라고 답했다.

또 후임 총재에 대해서도 57.9%가 ‘외부 출신을 원한다’고 답했고 26.4%는 ‘한은 출신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답변은 보수와 복지를 비롯한 전반적 조직문화에 대해 한은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은 조직문화 개혁을 위해 지난해 맥킨지에 의뢰해 진단을 받기도 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이 내놓은 한은이 받은 해당 컨설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의 조직 건강도는 100점 만점 기준 38점 수준이었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 직무 외에도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이사에 올랐다. 2018년 11월11일 스위스 바젤 국제결제은행 본부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 정례 이사회에서 이사로 선출됐다. 임기는 2019년 1월부터 3년이었다.

BIS는 1930년에 설립된 국제기구로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린다. 주요 60개국 중앙은행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제금융 안정을 위해 협력한다.

BIS 이사회는 국제결제은행의 전략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집행부 업무를 감독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창설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 6명이 당연직 이사인데 미국 뉴욕 연방준비제도 총재가 지명직 이사로 일하며 선출직 이사 11명이 함께 이사회를 구성한다.

한국은행 총재가 BIS 이사에 오른 것은 한국은행이 1997년 국제결제은행에 정식 가입한 뒤 처음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점과 함께 이 총재가 2014년부터 BIS 주요 현안 논의에 기여한 점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결재은행
이사직 겸직

한편 이 총재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만 8회 만나는 등 역대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중 가장 가까웠던 관계로 꼽힌다. 특별한 학연이나 지연으로 얽히진 않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김 전 부총리는 청와대 재정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또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맡으며 업무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다. 김 전 부총리가 이 총재에게 케이크를 선물하며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수석은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친 경제금융 전문가”라며 “국내·국제 경제 및 금융통화 이론과 정책 실무를 겸비했고 주변으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번 인선 과정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답하기 곤란하지만, 한국은행 총재직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참가한 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관료의 길을 걸어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경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MF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올라 국제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시장에서는 그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통화정책 수장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의 인선이 신구 정권이 교체되는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만큼, 정치적 변수에 따라 그가 새 총재 자리에 앉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청와대는 이 후보 인선에 윤 당선인 측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이 곧바로 “협의한 적이 없다”며 반박해 협치 인사가 아님을 강하게 시사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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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어 왕국’ 파주 갈릴리<br> 무슨 일이?

[단독] ‘장어 왕국’ 파주 갈릴리
무슨 일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상호만 말해도 ‘아, 거기 알아’ ‘가보진 않았는데 이름은 들어봤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전국구 맛집이 공공기관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업체는 ‘미래’ 자산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했고, 기관은 ‘현재’로선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경기도 파주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파주시의 랜드마크죠. 기업이나 다름없어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갈릴리 농원’. 장어 숯불구이를 판매하는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1년에 30만~40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직접 기른 장어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고 외부 음식도 반입이 가능해 40~50대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높다. 연 30만~40만 파주 랜드마크 지난 25일, 서울 강북 지역에서 강변북로를 타고 자유로를 거쳐 40여분 정도 달리자 길 옆으로 갈릴리 농원이 보였다. 오전 11시경이었는데 주차장은 이미 절반가량 차 있었다. 갈릴리 농원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차도를 사이에 두고 자리했다. 천정이 높은 카페에는 갓 만든 빵 냄새가 가득했다. 갈릴리 농원에 장어를 공급하는 양식장은 차로 10~15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양식장에 가까워질수록 도로가 좁아졌고 차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양식장에 도착했을 땐 갈릴리 농원 관계자의 차와 취재진의 차만 남았다. 양식장으로 이어진 길은 포장돼있지 않아 차가 지나가자 뿌옇게 흙먼지가 일었다. 양식장 진입로는 두 개였다. 양식장에 인접한 도로를 사이에 둔 양쪽 토지는 모두 갈릴리 농원의 소유다. 자유로 방향으로 서서 오른쪽은 양식장, 왼쪽은 추가 양식장을 만들기 위해 갈릴리 농원이 매입한 땅이다. 양식장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소형 굴착기 한 대를 조작하는 기사가 보였다. 양식장 부지는 2700여평, 장어를 양식하는 수조는 1100평에 달했다. 대형 장어 공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양식장에서 기르고 있는 장어 치어(어린 물고기)와 성체 장어 등은 120만마리 정도라고 한다. 이곳에서 양식된 장어는 갈릴리 농원을 통해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이른바 갈릴리 농원의 ‘젖줄’인 셈이다. 최근 양식장과 인접 도로가 갈릴리 농원과 한국농어촌공사 간 법정 공방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갈등은 부동산 개발업체로 알려진 A사가 양식장 인근 부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도로와 구거를 진출입로로 사용하기로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구거는 하천보다 규모가 작은 4~5m 폭의 도랑, 개울이다. 농업용수 공급, 배수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수로라고 보면 된다. 전국구 맛집 VS 정부 기관 도로 사용 허가 놓고 갈등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해당 도로와 구거는 1975년경 경지 정리사업으로 설치한 농업용 수로 및 도로 부지다. 그때부터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와 A사는 2022년 11월 해당 도로와 구거를 두고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2023년 1월부터 2033년 1월까지 10년 동안 A사가 이 도로와 구거를 농로 목적 외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도로 사용 허가를 받은 A사는 파주시에 개발허가를 신청했다. 파주시는 2023년 9월 해당 부지에 사무소, 야적장 등을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내줬다. 파주시에 따르면 올해 A사가 개발 내용을 변경해 신청했고 허가가 나왔다.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아직 모르지만 허가 내용상으로는 편의점 등 건축법상 소매점도 들어설 수 있는 상태다. 갈릴리 농원 측은 한국농어촌공사와 A사의 계약, 파주시의 개발허가 등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갈릴리 농원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쯤에 인부들이 도로와 구거에 붉은 깃발을 연이어 설치해서 ‘뭘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A사가 도로 확장 공사를 한다고 하더라. 이후 정보공개를 통해 계약 내용을 일부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소음과 진동이다. 갈릴리 농원 관계자에 따르면 장어는 소음과 진동에 매우 취약한 어종이다. 개발을 위한 공사 차량이 도로를 오가면서 생기는 소음과 수조의 진동이 장어를 폐사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소음과 진동에 노출된 양식 어류가 정상 어류와 비교해 사망지수가 6배 가까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갈릴리 농원은 부지 개발을 원하는 A사, 도로 사용 허가를 내준 한국농어촌공사, A사에 개발허가를 내준 파주시 등과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갈릴리 농원 관계자는 “A사가 개발하려는 부지로 진입할 수 있는 도로가 두 개다. 하다못해 양식장에 인접하지 않은 도로를 사용하면 안 되냐고 제안했는데 도로 포장비용을 우리에게 부담하라고 해서 (A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농어촌공사 사용 허가 한국농어촌공사가 A사에 사용 허가를 내줄 당시 도로를 포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진출입로를 변경하는 대신 그 도로를 갈릴리 농원 측에서 포장해 달라는 뜻이다. A사가 양식장에 인접한 도로를 진출입로로 선택한 이유는 옆 도로보다 접근성이 좋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실제 옆 도로는 양식장 인접 도로와 비교해 진입 지점까지 거리가 훨씬 길었다. 갈릴리 농원 측은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시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양식장 피해를 호소하며 사용 허가 및 개발허가를 취소하거나 A사와 협의할 수 있게 조율해 주길 원했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갈릴리 농원 관계자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는 기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소송을 걸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갈릴리 농원이 한국농어촌공사를 상대로 ‘국유지 사용계약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농어촌공사와 A사가 맺은 임대차계약은 무효라는 내용이 골자다. 갈릴리 농원 관계자는 “파주시가 (A사에) 개발허가를 내준 배경은 한국농어촌공사가 도로 사용 허가를 내줬기 때문”이라며 “모든 일은 그 임대차계약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도로 사용 허가가 없었으면 개발허가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지 묻는 의 질문에 “무조건은 아니지만 안 나갈 수도 있었다”면서도 “그 부분(도로 사용 허가)이 선행돼서 개발허가에 절차상 문제가 생기지 않은 건 맞다”고 말했다.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은 한국농어촌공사에 해당 도로에 대한 사용 허가권이 있는지다. 농어촌정비법 제23조(농업생산기반시설의 사용 허가) 조항이 언급됐다. 갈릴리 농원 측은 현행법에 따라 해당 도로의 사용 허가권이 지자체장에게 있다는 견해고 한국농어촌공사는 자사에 허가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파주시는 개발허가 해당 조항은 ‘농업생산기반시설관리자가 농업생산기반시설이나 용수를 본래 목적 외의 목적에 사용하려 하거나 타인에게 사용하게 할 때는 시장·군수·구청장의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농업생산기반시설관리자가 한국농어촌공사인 경우와 농업생산기반시설의 유지·관리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미한 사항이면 그렇지 않다’는 단서가 달렸다. 또 ‘제1항의 따른 사용 허가는 그 본래의 목적 또는 사용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 이 경우 농업생산기반시설 관리자는 미리 관계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갈릴리 농원 측은 허가 주체가 한국농어촌공사가 아니라 지자체장이기에 해당 도로에 대한 임대차 계약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어촌정비법 제23조, 농어촌정비법 시행령 제31조(농업생산기반시설이나 용수의 사용 허가) 제2항을 들어 허가권이 있다고 반박했다. 해당 조항은 ‘농어촌정비법 제23조 제1항 단서에 따라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농업생산기반시설이나 용수를 본래 목적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용신청서를 한국농어촌공사에 제출해야 하며,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농업생산기반시설이나 용수의 사용에 관한 사항은 한국농어촌공사 정관으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문제의 도로는 농로여서 공사를 위한 진·출입로 등 농업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국농어촌공사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임대차계약에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일단 한국농어촌공사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갈릴리 농원 측은 지난 4월 한국농어촌공사를 상대로 ‘행정처분 효력 정치 신청’을 제기했다.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대차계약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내용이다. A사가 도로공사를 진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한 취지로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 갈릴리 농원 관계자는 “피신청인(한국농어촌공사)이 도로 공사를 하겠다며 우리 땅에서 도로 쪽으로 흘러내린 토사 일부를 원상복구하라고 요구해 왔다. 해당 요구는 도로를 무단 임대한 불법행위를 배경으로 한 부당한 처사”라며 “또 토사가 일부 흘러내렸다고 해서 실제 도로의 효용에는 아무런 지장도 발생하지 않는다. 명백한 권리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양식어류, 소음과 진동에 취약” “실질적 피해 없다” 가처분 패소 그러면서 도로 공사를 위해 중장비 차량이 오가는 사이 발생한 소음과 진동으로 장어가 먹이를 먹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3년 동안 2주에 한번씩 갈릴리 농원에서 양식 중인 장어를 대상으로 ‘병성 감정 업무’를 수행해온 수산질병관리원의 소견서도 제시했다. 소견서에 따르면 “최근(2025년 4월1일) 실시한 검사에서 특별한 병원체의 감염은 확인되지 않으나 사료 섭이가 떨어지는 증상이 관찰되고 있다”며 “이 같은 섭이 저하 증상이 대형 차량 운행에 의한 소음, 진동과 상관관계가 있는지 확인을 위해서는 세부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사육 중인 장어에 지속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갈릴리 농원 측은 검사 사흘 전인 지난 3월29일 도로 공사를 위한 중장비 차량이 오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정부지법은 갈릴리 농원 측의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신청인(갈릴리 농원)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신청 취지 기재 처분으로 인해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 그 효력을 정지할 긴급할 필요가 있음이 소명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소송 상대인 한국농어촌공사나 개발허가를 내준 파주시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주시 관계자는 “시가 봐야 할 부분은 허가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는지다. 개발허가를 내주기 전 양어장 주변까지 고려해 도시계획 심의도 진행했다. 도시계획 심의는 법적인 부분 외에도 주변 환경 등을 포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갈릴리 농원과 A사가 ‘민사’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을 고려하면 다른 한쪽이 손해 보는 구조다. 인허가 문제로 시가 개입하는 사례도 있지만 이 건은 서로 입장 차가 뚜렷해 시는 절차의 적법성만 따졌고 (그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어촌공사는 “갈릴리 농원 측에서 장어 피해와 관련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A사와 맺은 임대차계약을 문제 삼아서 의외였다”며 “우리는 현행법에 따라 우리가 관리하는 농업생산기반시설을 목적 외로 사용하겠다는 신청이 들어오면 농기계 통행 등 농민에게 피해가 있는지를 검토해 허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이런 문제는 지자체가 개발허가를 내줄 때 전체적으로 고려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결국 비용 문제”라며 “갈릴리 농원과 A사, 두 업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책임 없다” 핑퐁 게임? 갈릴리 농원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한국농어촌공사’를 검색하면 ‘국민의 먹을거리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 농어촌 생활환경 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농정 최일선 기관’이라는 글이 뜬다. 하지만 지금 하는 행태를 보면 한국농어촌공사는 양식업에 종사하는 우리보다 부동산 개발업체의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존재 의의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