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떠나는 '43년 한은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3.28 12:08:59
  • 호수 13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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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경제 뒤로한 채 가기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43년 한은맨이 떠난다. 문재인정부 내내 한국은행의 수장 자리를 지켰던 이주열 총재 임기는 이달 말까지다. ‘최장수 근무’ ‘중도 추진맨’ 등의 타이틀을 소유한 이 총재의 경력은 화려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됐다”고 입을 뗐다. 8년간 한국은행을 이끌며 산전수전을 겪은 이 총재는 퇴임을 앞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기준금리 결정과 국제협력, 내부경영 등을 두고 이 총재의 여러 선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998년부터
최장 근무자

이 총재는 2014년 4월부터 시작된 8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31일 한은을 떠난다. 그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의장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 연임한 첫 한은 총재다. 한은 부총재 퇴직 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한 2년을 제외하고 43년을 한은에 몸담아 ‘최장수 한은 근무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총재는 지난 23일 송별간담회를 통해 “한국은행에서 43년간 국가경제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건 영광이었다. 떠나는 자리에 덕담을 나누기에는 우리 경제가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많다”며 “이를 뒤로한 채 떠나게 돼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후임 총재와 임직원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미 연준이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을 예고했는데 우리가 지난 8월 이후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잠시 금리정책 운용의 여유를 갖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앞으로 그러면 기준금리를 어느 시점에 또 얼마만큼 어떤 속도로 조정해 나갈지는 후임 총재와 금통위가 금융·경제상황을 잘 고려해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중앙은행의 역할 확대와 세계 중앙은행·국제기구와의 더 많은 협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보수와 진보정권을 모두 거친 그는 대체로 선제적이고 과감한 기준금리 조정 등을 통해 경제상황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처하고, 적극적 통화스와프 체결 등으로 외환시장 안정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소 차분하고 말을 아끼는 성격인 것으로 알려진 이 총재는 청와대 또는 정부의 기준금리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순간 통화정책이 신뢰를 잃고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월호 참사·메르스 사태 등 
주재한 회의 무려 76회 달해

이 총재는 취임 기간 동안 다사다난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브렉시트, 미·중 무역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이 있었으며 코로나19에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벌어졌다. 그 기간 동안 이 총재가 주재한 금통위 회의만 무려 76회에 달했다.


그 동안 이 총재는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경기 회복세가 확인되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8월과 11월, 올해 1월에 걸쳐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 시기는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과소평가하고 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던 때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출신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게재한 ‘제롬 파월 의장의 연준은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한은이 지난해 8월 이후 두 번째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연준이 말만 할 때 한은은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신중한 의사소통으로 시장을 안정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절제된 표현과 일관된 메시지를 통해 시장의 기대를 정교하게 관리한다는 것이다.

한 전임 금통위원은 “(이 총재는)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팩트를 말하는 것이 몸에 뱄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기 중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은 물론 중국인민은행과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거나 연장해 우리나라 외환 안전망을 탄탄히 갖춘 점도 성과로 거론된다. 

신속하게
금리 조정

이 총재의 신망은 여야를 막론하고 두터웠다. 과거 한국은행 총재는 4년 임기를 채우면 물러났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돼도 전임 대통령 때 임명된 한국은행 총재는 당연히 임기를 완수하는 것이 임무였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새로운 4년 임기의 재신임을 했다. 한은 총재의 철저한 임기 완수 전통이 자리 잡은 덕택에 이 총재는 48년 만의 연임 총재라는 영광을 누렸다. 

2018년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 총재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관한 풍부한 식견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며 “그의 연임은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도 2018년 3월 한국은행 총재 인사청문회를 마친 직후 이 총재의 인사청문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신뢰를 보여줬다.

이 총재가 2014년 4월1일 취임할 당시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기준금리는 2.5% 수준이었다. 

이 총재는 4개월 만인 2014년 8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0.25%포인트 내려 연 2.25%로 조정했다. 일본의 엔화 약세정책에 세월호 참사 등 악재가 겹친 데다 정부에서 시장에 돈을 대거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초이노믹스’(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와 정책공조 필요성이 제기된 점을 감안했다.


금통위는 2014년 10월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내려 연 2.0%로 조정했다. 2015년 3월과 5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리면서 금리가 연 1.5%까지 떨어졌다.

2016년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등 국제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하고 국내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2016년 4월에 새로 추천된 금통위 4명 가운데 상당수가 비둘기파로 분류된 점도 금리인하 전망의 근거가 됐다.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를 명분으로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라고 한은을 압박했을 때 당시 이 총재는 “(총재)직을 걸고 막겠다”면서 직원들의 동요를 차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재가 끝내 출자를 거부했고 대출 프로그램인 ‘자본확충펀드’를 제시한 뒤 실행요건을 까다롭게 했고, 결국 실적 없이 2017년 말 종료됐다. 

코로나 악재
‘빅컷’ 단행

금통위는 2016년 6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내려 기준금리는 연 1.25%가 됐다. 시장의 금리 동결 전망을 뒤엎은 결정이었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경기가 하강할 위험이 있어 선제적 완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반대로 2017년 들어 국내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금통위는 11월 기준금리를 1.50%로 올린 뒤 이듬해 11월 1.75%까지 추가 인상했다.

하지만 2019년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일본 수출규제 등의 악재가 이어지자 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는 같은 해 7월과 10월 인하 결정을 통해 기준금리를 1.25%로 내렸다.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자 3월16일 임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나 한꺼번에 낮추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고, 5월28일 추가 인하로 사상 최저 수준인 0.50%까지 떨어뜨렸다.

당시 이 총리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라며 “통화정책은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될 때까지 완화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일제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추던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과감하게 금리를 인하해야 경제적 타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국내 경제가 수출 중심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으로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이 심해지자 8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 잇단 인상으로 1.25%까지 끌어올렸다.

박이 임명 문이 4년 재신임
절제된 표현·일관적 메시지

지난달 이 총재가 주재한 마지막 통화정책결정 회의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이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이 총재가 이끄는 금통위는 8년 동안 기준금리를 9차례 인하하고 5차례 인상했다. 이 총재 임기 중 기준금리는 최고 2.50%, 최저 0.50%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이 총재는 내부 경영면에서도 박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행 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3~10일 직원 7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조의 65.7%가 이 총재의 내부 경영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33.3%가 매우 미흡, 32.4%는 미흡이라고 응답했다. 25.9%는 보통, 7.0%는 우수, 1.5%는 매우 우수라고 답했다.

또 후임 총재에 대해서도 57.9%가 ‘외부 출신을 원한다’고 답했고 26.4%는 ‘한은 출신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답변은 보수와 복지를 비롯한 전반적 조직문화에 대해 한은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은 조직문화 개혁을 위해 지난해 맥킨지에 의뢰해 진단을 받기도 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실이 내놓은 한은이 받은 해당 컨설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의 조직 건강도는 100점 만점 기준 38점 수준이었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 직무 외에도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이사에 올랐다. 2018년 11월11일 스위스 바젤 국제결제은행 본부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 정례 이사회에서 이사로 선출됐다. 임기는 2019년 1월부터 3년이었다.

BIS는 1930년에 설립된 국제기구로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린다. 주요 60개국 중앙은행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제금융 안정을 위해 협력한다.

BIS 이사회는 국제결제은행의 전략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집행부 업무를 감독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창설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 6명이 당연직 이사인데 미국 뉴욕 연방준비제도 총재가 지명직 이사로 일하며 선출직 이사 11명이 함께 이사회를 구성한다.

한국은행 총재가 BIS 이사에 오른 것은 한국은행이 1997년 국제결제은행에 정식 가입한 뒤 처음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점과 함께 이 총재가 2014년부터 BIS 주요 현안 논의에 기여한 점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결재은행
이사직 겸직

한편 이 총재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만 8회 만나는 등 역대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중 가장 가까웠던 관계로 꼽힌다. 특별한 학연이나 지연으로 얽히진 않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김 전 부총리는 청와대 재정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또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맡으며 업무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다. 김 전 부총리가 이 총재에게 케이크를 선물하며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수석은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친 경제금융 전문가”라며 “국내·국제 경제 및 금융통화 이론과 정책 실무를 겸비했고 주변으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번 인선 과정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답하기 곤란하지만, 한국은행 총재직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참가한 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관료의 길을 걸어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경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MF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에 올라 국제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시장에서는 그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통화정책 수장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의 인선이 신구 정권이 교체되는 민감한 시기에 이뤄진 만큼, 정치적 변수에 따라 그가 새 총재 자리에 앉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청와대는 이 후보 인선에 윤 당선인 측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이 곧바로 “협의한 적이 없다”며 반박해 협치 인사가 아님을 강하게 시사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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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