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바람처럼 왔다 떠난 김정주 넥슨 창업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07 11:31:41
  • 호수 13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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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게임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27일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가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라인게임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1세대 벤처신화로 평가받는다.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진 것은 없으나 NXC는 고 김 이사가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최근 들어 악화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 게임의 역사를 쓴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는 언제부터 게임에 관심을 가졌을까. 김 이사는 학창 시절 이모부가 사준 컴퓨터를 가지고 놀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졌고, 컴퓨터 게임은 취미로 즐겼다. 이 같은 영향으로 1986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뒤 1988년 일본항공의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돼 일본 상지대(조치대)에서 연수 후 수료했다. 

KAIST 자퇴
신화의 서막

이전부터 컴퓨터게임을 즐겨 했던 그는 일본 게임산업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본 게임산업의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자서전 <플레이>에는 일본 방문 당시 닌텐도 게임기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기록하며 “꼭 닌텐도를 뛰어넘는 게임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회고했다. 

이후 카이스트(KAIST) 전산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카이스트 총장인 이광형 전산학과 교수는 김 이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라고 정의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다가 빨간색으로 염색했다. 어느 날은 짝짝이로 귀걸이를 달고 왔다.

특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고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외골수 성격 때문에 카이스트 학창 시절이 평탄하지 못했다. 박사 과정 중 지도교수가 “박사 과정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통보해 연구실에서 쫓겨났다.


그 뒤 김 이사를 받아준 것은 이 교수다. 하지만 이 교수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스탠포드로 떠난 사이, 임시 지도교수는 ‘공부 안 하고 게임만 만든다’는 이유로 김 이사에게 자퇴를 요구했다.  

카이스트 자퇴는 ‘넥슨’ 창업의 시일을 앞당길 뿐이었다. 김 이사는 1994년 12월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로부터 6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빌렸다.

그는 이 돈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오피스텔 사무실을 마련해 넥슨을 창업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로, 대학교 동기였던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와 카이스트 기숙사 옆방에 살았던 김상범 현 넥슨 이사가 공동창업자로 함께했다.

게임에 관한 열정은 가득했지만 초석을 쌓는 건 어려웠다. 김 이사는 당장 먹고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김 이사는 1995년 중반 기업들의 홈페이지와 인트라넷을 구축하는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자는 구상을 한 것이고, 예상은 적중했다.

당시 기업들이 홈페이지 제작에 나서면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감이 많아졌다. 넥슨은 1995년 초고속 정보통신사업기술개발 사업자로 선정됐고, 국내 최초 인트라넷 솔루션 ‘웹오피스(Web Office)’를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넥슨은 아시아나항공에 서버 데이터베이스(DB)와 연동하는 ‘온라인 예약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했다.


‘온라인게임’ 개척한 선구자
우울증 치료 최근 들어 악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 뒤 김 이사는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곧바로 넥슨의 대표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는 데 착수했고, 1996년 완성됐다. 바람의 나라는 국내와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가장 오래 서비스를 진행 중인 게임으로 전형적인 롤플레잉(RPG) 게임이다.

게임 방식은 온라인으로 접속한 게임 내 사람들과 만나 동료가 되고 퀘스트를 진행한다.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고, 함께 사냥을 나가며, 물건을 거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흔한 형태의 온라인게임이지만, 당시에는 희소성이 강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바람의 나라가 출시됐을 때 컴퓨터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마우스로 게임 화면의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작업을 지시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방식인 바람의 나라는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게임이고 메타버스의 효시라고 칭한 바 있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성공 이후에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던전앤파이터’ ‘피파 온라인’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등 다양한 장르의 성공작들을 쏟아냈다.

넥슨 게임의 인기는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던전앤파이터는 해외에서 큰 성공을 이뤘다. 2005년 출시한 던전앤파이터는 2D 도트를 활용한 그래픽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 형태다.

특히 2009년 국산 게임 중 최초로 한국·중국·일본 3개국 동시 접속자 수 2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연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던전앤파이터’의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는 8억50000만명에 달한다. 이런 흥행에 힘입어 넥슨은 국내 게임 기업 최초로 2011년 연 매출 1조원 고지에 올랐다.

2020년에는 국내 업계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매출은 신작 부재 등의 여파로 2조8530억원에 그쳤지만 여전히 국내 게임업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메타버스 효시
기념비적 게임

관심이 게임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었던 그는 어린이를 무척이나 아꼈다. 넥슨은 2014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200억원을 보탰다.


이후 2016년 4월28일 서울 마포구에서 개원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장애 어린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독립된 자아로 나아가도록 ‘의료+사회+직업’ 재활을 연계한 ‘장애어린이 전인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넥슨은 병원 건립 이후에도 환아들의 재활치료 지원과 안정적인 병원 운영을 위해 지난해까지 총 19억2000만원을 추가 기부했다. 기부금은 영‧유아 발달장애 치료 프로그램 운영, 청소년 재활치료실 설립, 병원 감염관리 체계 강화 등에 이용됐다.

2019년 2월에는 공공 어린이재활병원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00억원의 기금 기부를 약정해 수도권 외 지역의 어린이들도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앞장섰다.

올해 완공이 목표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재활치료 시설은 물론 돌봄교실과 파견학습 등 교육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넥슨은 책을 통해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넥슨 작은책방’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넥슨 작은책방’은 어린이들에게 책과 독서 환경 및 독후 활동을 제공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2005년부터는 전국 지역아동센터와 초등학교 등에 도서 기증을 시작으로 유휴 공간에 아늑한 책방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현재까지 ‘넥슨 작은책방’은 총 130곳이다. 이곳을 이용한 어린이 숫자는 8만3000여명에 이른다. 넥슨이 기부한 도서는 12만8000권을 넘어섰다. 수도권 44곳, 강원도 10곳, 충청도 16곳, 경상도 16곳, 전라도 23곳, 제주 13곳 등 전국 각지에 두루 조성돼있다. 


확률형 아이템 
‘돈슨’ 오명도

지난 1일 이정헌 넥슨 대표는 “김 이사님은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넘쳤고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면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열정으로 빠져들던 분”이라며 “그래서인지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셨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으며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해나가는 것에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한국의 게임 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재활병원·작은 책방 건설에 큰 도움을 주는 사회 공적도 남겼다. 그야말로 명예와 부를 모두 가졌다. 이런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게임업계에서의 오명도 그를 힘들게 했다. 넥슨은 2000년 초반 PC방 정액제와 함께 아이템 부분 유료화 모델을 시작했다.

이는 김 이사가 돈을 밝힌다며 넥슨을 ‘돈슨’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했다. 이후 엔씨소프트 등 다른 게임업체들도 확률형 아이템과 과금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오명은 오로지 김 이사의 몫이었다. 

30년 지기 친구와 의가 상한 일도 있었다. 김 이사는 2012년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미국 EA(일렉트로닉 아츠)를 인수하기 위해, 넥슨 일본법인이 엔씨소프트 지분 14.68%를 매입했다.

당시 EA 인수는 실패했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지분관계만 남았다. 이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율을 높이고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을 백기사로 영입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2015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지분관계는 정리됐다. 하지만 대학 1년 선후배로 우애 좋았던 김 이사와 김택진 이사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 사태에서 김 이사의 시련은 이어갔다. 2005년 비상장 상태였던 넥슨 주식을 대학 동기인 진경준 전 검사장이 사서 160억원을 마련하는 등 40배 넘는 차익을 거뒀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진 전 검사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 이사 역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법원은 2017년 진 전 검사장이 받은 주식 등에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어린이 무척 아껴 각종 사회공헌
세계시장 공략 앞두고 돌연 별세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김 이사는 2019년 넥슨 매각설을 제기해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김 이사와 가족이 보유한 NXC 지분 98.6%를 매각한다는 것이다.

당시 김 이사의 지분 가치가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됐고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리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NXC 지분 매각은 2019년 6월 최종 무산됐다.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 이사의 경영 의지가 꺾인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김 이사는 2020년부터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하겠다는 신사업 진출 의지를 밝혔다.

넥슨은 지난해 6월 영화·드라마 제작사 AGBO에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일본의 반다이 남코 홀딩스와 세가 사미홀딩스, 코나미 홀딩스 등에 1조원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이 모두 글로벌 IP(지적재산권)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넥슨이 영상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계획이 김 이사의 별세를 더욱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지난달 27일 그의 별세 소식으로 각계각층의 애도가 잇따랐다. 김택진 이사는 김 이사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저녁 페이스북에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고 글을 남겼다.

이정헌 대표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넥슨의 창업주이자 저의 인생 멘토였던, 그리고 제가 존경했던 김정주 사장님이 고인이 되셨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위로했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애도를 표한 것은 단연코 바람의 나라 게임 이용자들이었다.

각계각층
추모 물결

이들은 지난 1일 밤 10시, 게임 내 부여성 남쪽 흉가 앞에 모였다. 이용자들은 “바람의 나라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덕분에 게임합니다” “이사님 덕분에 즐겁게 게임하고 있어요” “바람의 나라 아버지, 그곳에선 편안하세요”라며 김 이사를 기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정주 빠진 넥슨 경영은?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를 떠나보낸 넥슨은 당분간 한‧미‧일 각국의 법인을 이끄는 경영진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집단 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표면적으로는 넥슨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인수합병(M&A)이나 인재 영입 분야에서 역할을 맡아왔던 만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인은 지난해 7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대표이사에서 16년 만에 물러나며 이사직만 맡아왔다.

현재는 NXC 브랜드홍보본부장을 역임한 이재교 대표가 새로 선임돼 넥슨 계열사의 사업과 투자전략을 전반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당분간 한‧미‧일 집단체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2018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고 일본 넥슨 본사의 오웬 마호니 대표도 8년간 임기를 이어왔다.

미국에선 김 이사와 마호니 대표가 영입한 엔터테인먼트 전문가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과 알렉스 이오실레비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사내 게시판에 추모 글을 올리며 “넥슨의 경영진은 김 이사의 뜻을 이어받아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넥슨의 지배구조도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NXC의 최대주주인 김 이사의 지분(64.95%)이 부인 유정현 감사와 딸 2명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넥슨 사정에 밝은 게임업계 관계자는 “유족들의 선택에 따라 넥슨 매각설이 재차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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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