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바람처럼 왔다 떠난 김정주 넥슨 창업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07 11:31:41
  • 호수 13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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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게임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27일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가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라인게임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1세대 벤처신화로 평가받는다.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진 것은 없으나 NXC는 고 김 이사가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최근 들어 악화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 게임의 역사를 쓴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는 언제부터 게임에 관심을 가졌을까. 김 이사는 학창 시절 이모부가 사준 컴퓨터를 가지고 놀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졌고, 컴퓨터 게임은 취미로 즐겼다. 이 같은 영향으로 1986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뒤 1988년 일본항공의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돼 일본 상지대(조치대)에서 연수 후 수료했다. 

KAIST 자퇴
신화의 서막

이전부터 컴퓨터게임을 즐겨 했던 그는 일본 게임산업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본 게임산업의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자서전 <플레이>에는 일본 방문 당시 닌텐도 게임기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기록하며 “꼭 닌텐도를 뛰어넘는 게임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회고했다. 

이후 카이스트(KAIST) 전산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카이스트 총장인 이광형 전산학과 교수는 김 이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라고 정의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다가 빨간색으로 염색했다. 어느 날은 짝짝이로 귀걸이를 달고 왔다.

특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고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외골수 성격 때문에 카이스트 학창 시절이 평탄하지 못했다. 박사 과정 중 지도교수가 “박사 과정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통보해 연구실에서 쫓겨났다.


그 뒤 김 이사를 받아준 것은 이 교수다. 하지만 이 교수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스탠포드로 떠난 사이, 임시 지도교수는 ‘공부 안 하고 게임만 만든다’는 이유로 김 이사에게 자퇴를 요구했다.  

카이스트 자퇴는 ‘넥슨’ 창업의 시일을 앞당길 뿐이었다. 김 이사는 1994년 12월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로부터 6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빌렸다.

그는 이 돈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오피스텔 사무실을 마련해 넥슨을 창업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로, 대학교 동기였던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와 카이스트 기숙사 옆방에 살았던 김상범 현 넥슨 이사가 공동창업자로 함께했다.

게임에 관한 열정은 가득했지만 초석을 쌓는 건 어려웠다. 김 이사는 당장 먹고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김 이사는 1995년 중반 기업들의 홈페이지와 인트라넷을 구축하는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자는 구상을 한 것이고, 예상은 적중했다.

당시 기업들이 홈페이지 제작에 나서면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감이 많아졌다. 넥슨은 1995년 초고속 정보통신사업기술개발 사업자로 선정됐고, 국내 최초 인트라넷 솔루션 ‘웹오피스(Web Office)’를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넥슨은 아시아나항공에 서버 데이터베이스(DB)와 연동하는 ‘온라인 예약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했다.


‘온라인게임’ 개척한 선구자
우울증 치료 최근 들어 악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 뒤 김 이사는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곧바로 넥슨의 대표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는 데 착수했고, 1996년 완성됐다. 바람의 나라는 국내와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가장 오래 서비스를 진행 중인 게임으로 전형적인 롤플레잉(RPG) 게임이다.

게임 방식은 온라인으로 접속한 게임 내 사람들과 만나 동료가 되고 퀘스트를 진행한다.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고, 함께 사냥을 나가며, 물건을 거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흔한 형태의 온라인게임이지만, 당시에는 희소성이 강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바람의 나라가 출시됐을 때 컴퓨터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마우스로 게임 화면의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작업을 지시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방식인 바람의 나라는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게임이고 메타버스의 효시라고 칭한 바 있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성공 이후에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던전앤파이터’ ‘피파 온라인’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등 다양한 장르의 성공작들을 쏟아냈다.

넥슨 게임의 인기는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던전앤파이터는 해외에서 큰 성공을 이뤘다. 2005년 출시한 던전앤파이터는 2D 도트를 활용한 그래픽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 형태다.

특히 2009년 국산 게임 중 최초로 한국·중국·일본 3개국 동시 접속자 수 2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연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던전앤파이터’의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는 8억50000만명에 달한다. 이런 흥행에 힘입어 넥슨은 국내 게임 기업 최초로 2011년 연 매출 1조원 고지에 올랐다.

2020년에는 국내 업계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매출은 신작 부재 등의 여파로 2조8530억원에 그쳤지만 여전히 국내 게임업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메타버스 효시
기념비적 게임

관심이 게임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었던 그는 어린이를 무척이나 아꼈다. 넥슨은 2014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200억원을 보탰다.


이후 2016년 4월28일 서울 마포구에서 개원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장애 어린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독립된 자아로 나아가도록 ‘의료+사회+직업’ 재활을 연계한 ‘장애어린이 전인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넥슨은 병원 건립 이후에도 환아들의 재활치료 지원과 안정적인 병원 운영을 위해 지난해까지 총 19억2000만원을 추가 기부했다. 기부금은 영‧유아 발달장애 치료 프로그램 운영, 청소년 재활치료실 설립, 병원 감염관리 체계 강화 등에 이용됐다.

2019년 2월에는 공공 어린이재활병원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00억원의 기금 기부를 약정해 수도권 외 지역의 어린이들도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앞장섰다.

올해 완공이 목표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재활치료 시설은 물론 돌봄교실과 파견학습 등 교육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넥슨은 책을 통해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넥슨 작은책방’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넥슨 작은책방’은 어린이들에게 책과 독서 환경 및 독후 활동을 제공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2005년부터는 전국 지역아동센터와 초등학교 등에 도서 기증을 시작으로 유휴 공간에 아늑한 책방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현재까지 ‘넥슨 작은책방’은 총 130곳이다. 이곳을 이용한 어린이 숫자는 8만3000여명에 이른다. 넥슨이 기부한 도서는 12만8000권을 넘어섰다. 수도권 44곳, 강원도 10곳, 충청도 16곳, 경상도 16곳, 전라도 23곳, 제주 13곳 등 전국 각지에 두루 조성돼있다. 


확률형 아이템 
‘돈슨’ 오명도

지난 1일 이정헌 넥슨 대표는 “김 이사님은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넘쳤고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면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열정으로 빠져들던 분”이라며 “그래서인지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셨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으며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해나가는 것에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한국의 게임 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재활병원·작은 책방 건설에 큰 도움을 주는 사회 공적도 남겼다. 그야말로 명예와 부를 모두 가졌다. 이런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게임업계에서의 오명도 그를 힘들게 했다. 넥슨은 2000년 초반 PC방 정액제와 함께 아이템 부분 유료화 모델을 시작했다.

이는 김 이사가 돈을 밝힌다며 넥슨을 ‘돈슨’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했다. 이후 엔씨소프트 등 다른 게임업체들도 확률형 아이템과 과금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오명은 오로지 김 이사의 몫이었다. 

30년 지기 친구와 의가 상한 일도 있었다. 김 이사는 2012년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미국 EA(일렉트로닉 아츠)를 인수하기 위해, 넥슨 일본법인이 엔씨소프트 지분 14.68%를 매입했다.

당시 EA 인수는 실패했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지분관계만 남았다. 이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율을 높이고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을 백기사로 영입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2015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지분관계는 정리됐다. 하지만 대학 1년 선후배로 우애 좋았던 김 이사와 김택진 이사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 사태에서 김 이사의 시련은 이어갔다. 2005년 비상장 상태였던 넥슨 주식을 대학 동기인 진경준 전 검사장이 사서 160억원을 마련하는 등 40배 넘는 차익을 거뒀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진 전 검사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 이사 역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법원은 2017년 진 전 검사장이 받은 주식 등에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어린이 무척 아껴 각종 사회공헌
세계시장 공략 앞두고 돌연 별세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김 이사는 2019년 넥슨 매각설을 제기해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김 이사와 가족이 보유한 NXC 지분 98.6%를 매각한다는 것이다.

당시 김 이사의 지분 가치가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됐고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리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NXC 지분 매각은 2019년 6월 최종 무산됐다.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 이사의 경영 의지가 꺾인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김 이사는 2020년부터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하겠다는 신사업 진출 의지를 밝혔다.

넥슨은 지난해 6월 영화·드라마 제작사 AGBO에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일본의 반다이 남코 홀딩스와 세가 사미홀딩스, 코나미 홀딩스 등에 1조원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이 모두 글로벌 IP(지적재산권)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넥슨이 영상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계획이 김 이사의 별세를 더욱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지난달 27일 그의 별세 소식으로 각계각층의 애도가 잇따랐다. 김택진 이사는 김 이사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저녁 페이스북에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고 글을 남겼다.

이정헌 대표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넥슨의 창업주이자 저의 인생 멘토였던, 그리고 제가 존경했던 김정주 사장님이 고인이 되셨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위로했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애도를 표한 것은 단연코 바람의 나라 게임 이용자들이었다.

각계각층
추모 물결

이들은 지난 1일 밤 10시, 게임 내 부여성 남쪽 흉가 앞에 모였다. 이용자들은 “바람의 나라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덕분에 게임합니다” “이사님 덕분에 즐겁게 게임하고 있어요” “바람의 나라 아버지, 그곳에선 편안하세요”라며 김 이사를 기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정주 빠진 넥슨 경영은?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를 떠나보낸 넥슨은 당분간 한‧미‧일 각국의 법인을 이끄는 경영진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집단 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표면적으로는 넥슨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인수합병(M&A)이나 인재 영입 분야에서 역할을 맡아왔던 만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인은 지난해 7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대표이사에서 16년 만에 물러나며 이사직만 맡아왔다.

현재는 NXC 브랜드홍보본부장을 역임한 이재교 대표가 새로 선임돼 넥슨 계열사의 사업과 투자전략을 전반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당분간 한‧미‧일 집단체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2018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고 일본 넥슨 본사의 오웬 마호니 대표도 8년간 임기를 이어왔다.

미국에선 김 이사와 마호니 대표가 영입한 엔터테인먼트 전문가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과 알렉스 이오실레비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사내 게시판에 추모 글을 올리며 “넥슨의 경영진은 김 이사의 뜻을 이어받아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넥슨의 지배구조도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NXC의 최대주주인 김 이사의 지분(64.95%)이 부인 유정현 감사와 딸 2명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넥슨 사정에 밝은 게임업계 관계자는 “유족들의 선택에 따라 넥슨 매각설이 재차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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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