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바람처럼 왔다 떠난 김정주 넥슨 창업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3.07 11:31:41
  • 호수 1365호
  • 댓글 0개

“덕분에 게임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27일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가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라인게임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1세대 벤처신화로 평가받는다.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진 것은 없으나 NXC는 고 김 이사가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최근 들어 악화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 게임의 역사를 쓴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는 언제부터 게임에 관심을 가졌을까. 김 이사는 학창 시절 이모부가 사준 컴퓨터를 가지고 놀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졌고, 컴퓨터 게임은 취미로 즐겼다. 이 같은 영향으로 1986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뒤 1988년 일본항공의 장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돼 일본 상지대(조치대)에서 연수 후 수료했다. 

KAIST 자퇴
신화의 서막

이전부터 컴퓨터게임을 즐겨 했던 그는 일본 게임산업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일본 게임산업의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자서전 <플레이>에는 일본 방문 당시 닌텐도 게임기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기록하며 “꼭 닌텐도를 뛰어넘는 게임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회고했다. 

이후 카이스트(KAIST) 전산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카이스트 총장인 이광형 전산학과 교수는 김 이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라고 정의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했다가 빨간색으로 염색했다. 어느 날은 짝짝이로 귀걸이를 달고 왔다.

특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고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외골수 성격 때문에 카이스트 학창 시절이 평탄하지 못했다. 박사 과정 중 지도교수가 “박사 과정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통보해 연구실에서 쫓겨났다.


그 뒤 김 이사를 받아준 것은 이 교수다. 하지만 이 교수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스탠포드로 떠난 사이, 임시 지도교수는 ‘공부 안 하고 게임만 만든다’는 이유로 김 이사에게 자퇴를 요구했다.  

카이스트 자퇴는 ‘넥슨’ 창업의 시일을 앞당길 뿐이었다. 김 이사는 1994년 12월 아버지인 김교창 변호사로부터 6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빌렸다.

그는 이 돈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오피스텔 사무실을 마련해 넥슨을 창업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로, 대학교 동기였던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와 카이스트 기숙사 옆방에 살았던 김상범 현 넥슨 이사가 공동창업자로 함께했다.

게임에 관한 열정은 가득했지만 초석을 쌓는 건 어려웠다. 김 이사는 당장 먹고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김 이사는 1995년 중반 기업들의 홈페이지와 인트라넷을 구축하는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자는 구상을 한 것이고, 예상은 적중했다.

당시 기업들이 홈페이지 제작에 나서면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감이 많아졌다. 넥슨은 1995년 초고속 정보통신사업기술개발 사업자로 선정됐고, 국내 최초 인트라넷 솔루션 ‘웹오피스(Web Office)’를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넥슨은 아시아나항공에 서버 데이터베이스(DB)와 연동하는 ‘온라인 예약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했다.


‘온라인게임’ 개척한 선구자
우울증 치료 최근 들어 악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 뒤 김 이사는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곧바로 넥슨의 대표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는 데 착수했고, 1996년 완성됐다. 바람의 나라는 국내와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가장 오래 서비스를 진행 중인 게임으로 전형적인 롤플레잉(RPG) 게임이다.

게임 방식은 온라인으로 접속한 게임 내 사람들과 만나 동료가 되고 퀘스트를 진행한다.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고, 함께 사냥을 나가며, 물건을 거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흔한 형태의 온라인게임이지만, 당시에는 희소성이 강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바람의 나라가 출시됐을 때 컴퓨터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는 마우스로 게임 화면의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작업을 지시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방식인 바람의 나라는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게임이고 메타버스의 효시라고 칭한 바 있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성공 이후에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던전앤파이터’ ‘피파 온라인’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등 다양한 장르의 성공작들을 쏟아냈다.

넥슨 게임의 인기는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던전앤파이터는 해외에서 큰 성공을 이뤘다. 2005년 출시한 던전앤파이터는 2D 도트를 활용한 그래픽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 형태다.

특히 2009년 국산 게임 중 최초로 한국·중국·일본 3개국 동시 접속자 수 2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연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던전앤파이터’의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는 8억50000만명에 달한다. 이런 흥행에 힘입어 넥슨은 국내 게임 기업 최초로 2011년 연 매출 1조원 고지에 올랐다.

2020년에는 국내 업계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매출은 신작 부재 등의 여파로 2조8530억원에 그쳤지만 여전히 국내 게임업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메타버스 효시
기념비적 게임

관심이 게임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었던 그는 어린이를 무척이나 아꼈다. 넥슨은 2014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200억원을 보탰다.


이후 2016년 4월28일 서울 마포구에서 개원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장애 어린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독립된 자아로 나아가도록 ‘의료+사회+직업’ 재활을 연계한 ‘장애어린이 전인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넥슨은 병원 건립 이후에도 환아들의 재활치료 지원과 안정적인 병원 운영을 위해 지난해까지 총 19억2000만원을 추가 기부했다. 기부금은 영‧유아 발달장애 치료 프로그램 운영, 청소년 재활치료실 설립, 병원 감염관리 체계 강화 등에 이용됐다.

2019년 2월에는 공공 어린이재활병원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00억원의 기금 기부를 약정해 수도권 외 지역의 어린이들도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앞장섰다.

올해 완공이 목표인 ‘대전충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재활치료 시설은 물론 돌봄교실과 파견학습 등 교육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넥슨은 책을 통해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넥슨 작은책방’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넥슨 작은책방’은 어린이들에게 책과 독서 환경 및 독후 활동을 제공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2005년부터는 전국 지역아동센터와 초등학교 등에 도서 기증을 시작으로 유휴 공간에 아늑한 책방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현재까지 ‘넥슨 작은책방’은 총 130곳이다. 이곳을 이용한 어린이 숫자는 8만3000여명에 이른다. 넥슨이 기부한 도서는 12만8000권을 넘어섰다. 수도권 44곳, 강원도 10곳, 충청도 16곳, 경상도 16곳, 전라도 23곳, 제주 13곳 등 전국 각지에 두루 조성돼있다. 


확률형 아이템 
‘돈슨’ 오명도

지난 1일 이정헌 넥슨 대표는 “김 이사님은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넘쳤고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면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열정으로 빠져들던 분”이라며 “그래서인지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셨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으며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해나가는 것에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한국의 게임 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재활병원·작은 책방 건설에 큰 도움을 주는 사회 공적도 남겼다. 그야말로 명예와 부를 모두 가졌다. 이런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게임업계에서의 오명도 그를 힘들게 했다. 넥슨은 2000년 초반 PC방 정액제와 함께 아이템 부분 유료화 모델을 시작했다.

이는 김 이사가 돈을 밝힌다며 넥슨을 ‘돈슨’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했다. 이후 엔씨소프트 등 다른 게임업체들도 확률형 아이템과 과금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오명은 오로지 김 이사의 몫이었다. 

30년 지기 친구와 의가 상한 일도 있었다. 김 이사는 2012년 엔씨소프트와 손잡고 미국 EA(일렉트로닉 아츠)를 인수하기 위해, 넥슨 일본법인이 엔씨소프트 지분 14.68%를 매입했다.

당시 EA 인수는 실패했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지분관계만 남았다. 이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율을 높이고 경영권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을 백기사로 영입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2015년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지분관계는 정리됐다. 하지만 대학 1년 선후배로 우애 좋았던 김 이사와 김택진 이사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 사태에서 김 이사의 시련은 이어갔다. 2005년 비상장 상태였던 넥슨 주식을 대학 동기인 진경준 전 검사장이 사서 160억원을 마련하는 등 40배 넘는 차익을 거뒀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진 전 검사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 이사 역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법원은 2017년 진 전 검사장이 받은 주식 등에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어린이 무척 아껴 각종 사회공헌
세계시장 공략 앞두고 돌연 별세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김 이사는 2019년 넥슨 매각설을 제기해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김 이사와 가족이 보유한 NXC 지분 98.6%를 매각한다는 것이다.

당시 김 이사의 지분 가치가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됐고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리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NXC 지분 매각은 2019년 6월 최종 무산됐다.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김 이사의 경영 의지가 꺾인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김 이사는 2020년부터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하겠다는 신사업 진출 의지를 밝혔다.

넥슨은 지난해 6월 영화·드라마 제작사 AGBO에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일본의 반다이 남코 홀딩스와 세가 사미홀딩스, 코나미 홀딩스 등에 1조원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이 모두 글로벌 IP(지적재산권)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넥슨이 영상 콘텐츠를 앞세워 세계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계획이 김 이사의 별세를 더욱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지난달 27일 그의 별세 소식으로 각계각층의 애도가 잇따랐다. 김택진 이사는 김 이사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저녁 페이스북에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고 글을 남겼다.

이정헌 대표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넥슨의 창업주이자 저의 인생 멘토였던, 그리고 제가 존경했던 김정주 사장님이 고인이 되셨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위로했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애도를 표한 것은 단연코 바람의 나라 게임 이용자들이었다.

각계각층
추모 물결

이들은 지난 1일 밤 10시, 게임 내 부여성 남쪽 흉가 앞에 모였다. 이용자들은 “바람의 나라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덕분에 게임합니다” “이사님 덕분에 즐겁게 게임하고 있어요” “바람의 나라 아버지, 그곳에선 편안하세요”라며 김 이사를 기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정주 빠진 넥슨 경영은?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를 떠나보낸 넥슨은 당분간 한‧미‧일 각국의 법인을 이끄는 경영진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집단 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표면적으로는 넥슨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인수합병(M&A)이나 인재 영입 분야에서 역할을 맡아왔던 만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인은 지난해 7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대표이사에서 16년 만에 물러나며 이사직만 맡아왔다.

현재는 NXC 브랜드홍보본부장을 역임한 이재교 대표가 새로 선임돼 넥슨 계열사의 사업과 투자전략을 전반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당분간 한‧미‧일 집단체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2018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고 일본 넥슨 본사의 오웬 마호니 대표도 8년간 임기를 이어왔다.

미국에선 김 이사와 마호니 대표가 영입한 엔터테인먼트 전문가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과 알렉스 이오실레비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사내 게시판에 추모 글을 올리며 “넥슨의 경영진은 김 이사의 뜻을 이어받아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넥슨의 지배구조도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NXC의 최대주주인 김 이사의 지분(64.95%)이 부인 유정현 감사와 딸 2명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넥슨 사정에 밝은 게임업계 관계자는 “유족들의 선택에 따라 넥슨 매각설이 재차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