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두 얼굴’ 기막힌 기부의 세계

내고도 욕먹는 이상한 나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되는 기부지만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기 및 비리의 온상으로 치부되기도 할 정도. 기부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자 전문가들은 ‘현명하게 기부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부’는 어려운 사람들을 자의적인 마음으로 돕는다는 점에서 자원봉사와 함께 대표적인 선행으로 꼽힌다. 기부단체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모인 돈이나 물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등 각 기부단체의 목적을 위해 쓰인다. 

대표적 선행
단점도 다수

기부와 자원봉사를 병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부와 자원봉사를 결합한 재능기부라는 형태도 등장했다.

기부가 좋은 취지로 시작되는 것은 맞지만 마냥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돈이 돌아다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를 노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서 사기 및 비리의 온상 중 하나로 꼽힌다.

일부 자선단체의 경우 기부받는 나라의 현지 사정을 무시하고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기부단체의 이름을 사칭해 모금한 뒤 돈을 갖고 잠적하는 경우도 꽤 있다. 특히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앵벌이가 이런 경우다.


길거리나 지하철 입구 계단 등에서 금전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단체에게 돈을 주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에게 기부된 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이후 행방을 알 수도 없고, 기부받는 단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단체인지, 혹은 사칭인지 사실 여부도 알 수 없으며 영수증도 발급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행위는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약자들이 구걸에만 의지하게 만들어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기부할 때에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저명한 기부 단체인지 확인해야 하고 해당 단체의 목적을 확인해 기부금이나 물품이 어떻게, 어디에 투명하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기부하는 것이 좋다. 

기부하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돈이나 물건만 전해주고 나서 관심을 끊을 뿐, 전체적인 상황들을 검토해서 진실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또 사기임이 밝혀져도 후원금을 돌려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소송 비용이 후원금 액수보다 더 크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냥 포기한다. 

기부금을 낸 사람은 기부금을 추적하는 것도 어렵다. 수십만원에서 수억원을 넘는 기부금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거나 엉뚱한 데 사용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개인단체들이라는 점이다. 

국가가 개입하면 기부를 가장한 국외 지원이니 이론상 지원받은 국가의 외교적 관례상으로는 완전한 부패 행정 정도는 막을 순 있겠지만, 영향력 행사라는 외교 관련 논란이 생길 수 있고, 민간의 경우는 대놓고 활동하는 기부단체를 제외한 기부단체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1990년대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 불우이웃돕기 기부금을 걷었지만 1994년 감사원 감사 결과 내무부·경기도 등 17개 기관이 기부금을 유용해 기관장 경조사비·판공비 등으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민간 주도로 전환됐다. 

좋은 취지로 시작되지만…끊임없는 논란
‘기부는 좋은 일’ 명분으로 정당화하기도

이후 2000년대에는 ‘사랑의 열매’와 사랑의 온도계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국가가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시행됐으나 2011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마저 성금 일부를 단란주점, 유흥주점, 노래방, 래프팅, 바다낚시 등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가 주도하거나 간접적으로 특정 단체를 지원하는 형식의 기부는 사라지게 됐다. 

이 같은 문제로 상세하게 집행 내역을 공개하는 단체들도 있으며 모든 자선단체가 마냥 풍족한 지원을 받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다.

기부금의 실 사용 문제로 이야기가 많은 요즘은 홈페이지에 예산 책정이나 기부금 사용내역을 공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 단체의 경우 놀랄 정도로 기부금 내역을 상세히 공시하는 단체들도 있다. 

반대로 이 같은 점을 역용해 기부금 상세 내역을 믿도록 유도하는 단체들도 있다. 물론 기부단체가 전부 사기꾼인 것은 아니지만 영수증 자체를 가짜로 발급하는 단체마저 있는 상황에서 기부자 개개인이 인터넷상의 정보만으로 기부단체를 전적으로 믿을 근거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기부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세금을 동원한 국가의 복지기능 확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으로, 기부가 없으면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는 반박도 있다.

기부가 만사의 해결책처럼 여겨진다는 주장도 있다. 근본적으로 기부받아야 될 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사회적 구조나, 법망의 문제 등에 대한 개선을 논하기보다는 기부행위 자체를 추켜세우고 그런 원인으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기부에 의존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기부금 지출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오히려 비효율적인 지출이 이뤄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체 지출 중 실제로 사업에 들어간 비용의 비율이 높은 단체는 효율적이고 청렴한 단체며, 그렇지 않으면 불투명한 단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인식
불투명 운영


최근 횡령 문제로 인해 단체의 투명성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일반인이 재정보고서를 읽어봐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단체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수입이 이렇게 많은데 사업비 지출은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걸고 넘어질 수도 있다.

단체 입장에서도 후원자 입맛에 맞추려면 사업비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어 곤란하기는 매한가지다.

인기 후원수단인 1:1 결연 후원 방법에도 문제가 많다. 결연 후원은 후원자와 아동을 연결해 서로 편지를 주고받고 선물을 보내는 등 인간적 교류를 할 수 있는 후원수단으로 보통 단체로 들어오는 개인 후원금의 절반 이상이 이 1:1 결연 후원으로 들어올 정도로 보편적이다. 

신규 후원자를 유입하는 효과가 높아 많은 국제구호개발단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많다. 실제로 정직하게 1:1로 연결하더라도 비판은 피할 수가 없다.

첫 번째 문제는 아동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 노출에 대한 윤리 부분이다. 비록 좋은 의도라고는 하나 아직 정보 공개에 대한 판단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외국 후원자에게 신상정보와 성장 과정을 노출하는 게 과연 문제가 없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평성으로 동일 지역, 같은 사업 혜택을 받으면서도 어떤 아동은 후원자와 연결될 수 있고 어떤 아동은 후원자를 만나지 못해 평등구호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유니세프가 1:1 결연 후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평등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세 번째는 과연 임의적이고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관계가 아동 및 후원자의 정서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아동이 성인이 되어 결연 후원이 종료될 때까지 후원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 해당 아동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물론 단체에서는 1:1 결연 후원이 끊긴 아동도 지역 사업비용으로 계속 지원하게 되므로 후원이 끊겼다고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지만, 나를 지원해주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어른이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후원자 쪽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데, 구호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지역 특성상 아동 및 청소년이 어른이 되기 전에 사망 혹은 실종되거나 부모에 의해 어딘가로 팔려가거나 성폭행, 조혼 등의 임신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일들이 상당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희생자 중에 자신의 후원을 받던 아이들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과 슬픔에 빠진 이들이 많았다.

“기부는 좋은 일”이라는 명분으로 기부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긍정적인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에 일반인부터 유명인이나 부유한 사람에게 사람들이 대놓고 기부하라고 강요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일반인의 경우 지나가다 보면 보이는 기부단체의 기습 질문이나 설문에 참여하면서 시작된다. 

기부 강요자가 어느 정도 권력이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협박 및 갈취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돈 내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기부하라는 말로 대체함으로서 마치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디까지나 기부는 기부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타인이 기부자를 설득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기부자를 비난하거나 강요할 권리는 없으며 남에게 기부하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반대로 기부했다는 실적을 면죄부로 사용하기도 한다. 

선의로 기부
세금 부메랑

선의의 기부가 ‘세금폭탄’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기부처에 따라 제3자에게 재산을 준 것으로 보고 상속세를 매기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손들이 한국을 알리기 위해 해외 대학 등에 40여억원을 기부했지만, 돌아온 것은 ‘세금폭탄’이었다.

김구 선생의 차남인 고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2006년부터 10여년간 미국 하버드대, 브라운대 등 유수의 대학 등에 42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장학금으로 쓰이기도 했고, 항일 투쟁의 역사를 알리는 ‘김구포럼’ 개설, 한국학 강좌 개설 등 한국을 알리는 데 쓰였다.

김 전 총장은 지난 2016년 5월 별세했고, 국세청은 2년여가 지난 2018년 10월 김 전 총장의 자녀들에게 상속세(9억원)와 증여세(18억원) 27억원을 부과했다. 현행법상 공익법인에 출연하거나 기부한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를 감면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해외 대학은 공익법인이 아니라서 세금을 감면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상속·증여세는 재산을 받은 사람이 내야 하지만, 해외에 거주자에게 증여했을 경우 증여자가 내야 한다. 해외 거주자에게 국내 과세당국이 현실적으로 세금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 장손인 김진씨가 해외 대학 송금 내역과 기부 소식을 보도한 현지 기사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해 소명했지만, 국세청은 원칙에 따라 과세하겠다고 했다. 결국 김구 선생의 후손들은 지난해 1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1년5개월여간의 심사 끝에 조세심판원은 지난 9일 김구 선생의 후손들에게 부과된 세금 27억원 중 절반가량인 14억원을 취소했다. 

김구 선생의 사례 외에도 공익 목적의 고액 기부에 ‘세금폭탄’을 맞는 사례는 ‘수원교차로’ 사건 등 종종 있어왔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의 창업주인 고 황필상 박사는 2003년 18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 90%를 모교인 아주대와 함께 설립한 ‘구원장학재단’에 증여했다. 장학재단은 학생 1000여명을 지원했다. 

그런데 2008년 국세청은 해당 재단에 증여세와 가산세 등 140억원을 부과했다. 의결권이 있는 회사 주식 5% 이상을 초과해 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재벌이나 부자들이 장학재단이나 공익법인 등을 설립해 회사 주식을 넘겨 ‘기부’라는 이미지는 얻고, 공익법인을 지주회사 삼아 계열사들을 조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 규정이 되레 황 박사와 같은 공익 목적 기부자들에게 세금폭탄을 안긴 것이다. 

선의로 수십억 냈지만 ‘세금폭탄’
전문가 ‘현명하게 쾌척 방법’ 제시

2009년 시작된 행정소송은 2017년 대법원이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까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으로 끝났지만, 황 박사는 대법원 결정 이듬해인 2018년 사망했다.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문가들은 현명하게 기부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로 자원봉사를 통한 직접 경험한 단체에 기부하는 방법이다. 직접 구성원이 되어 단체의 윤리적 운영 및 활동을 확인해 지역사회 자선활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식을 쌓는 데도 도움을 준다.

두 번째는 기부금 영수증을 받는 것이다. 기부금 영수증 발급이 가능한 단체는 지정기부금 또는 법정기부금 단체로 정부로부터 공익성을 인정받은 단체다. 또 연말정산 시 기부금 영수증이 있어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는 단체에 관한 객관적이고 신뢰성 높은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물론 최근 국내서도 ‘빈곤 포르노’를 이용한 일부 자선단체의 모금활동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감성에 호소하는, 자극적인 정보와 이미지로 모금활동을 하는 자선단체일수록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가이드스타’ 홈페이지에서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에 공개된 기관정보, 회계정보와 언론 보도자료 등 다양한 자선단체 정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자선단체를 통한 기부다. 새희망씨앗 등 자선단체의 기부금 사기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간혹 몇몇 기부자들은 자선단체를 믿지 못해 개인에게 직접 기부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다양한 매체에서 정보수집이 가능한 자선단체를 통해 기부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특히 직접 기부할 경우 증여세와 상속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혹시 자선단체 모금가로부터 직접 기부 요청을 받았다면 후원계좌의 예금주가 기관명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또 유명 자선단체와 단체명이 유사한 단체는 한 번 더 면밀한 확인이 필요하다.

현명한 기부
주의사항 숙지

아울러 단체의 정보공개를 꺼려하거나 기부자의 기부금 관련 질문에 합리적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단체엔 소중한 돈을 기부할 필요는 없다. 이처럼 현명한 기부를 위한 주의사항들을 확인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서까지 기부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수도 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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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