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진정한 메서드 연기 '지옥' 김신록

“연기란 허구 세계서 실제와 만나는 것”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김신록은 인지도랄 것이 없는 배우였다. 연극계에서는 유명했다고 하지만, 대중매체에서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다. 넷플릭스 <지옥>이 공개되기 전까진 그랬다.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됐다.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강렬하고 입체적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 팬들도 김신록의 내공을 알아볼 정도다. 단숨에 인생이 뒤바뀌는 전환의 시점에 놓인 김신록을 만났다. 

배우는 글을 해석해서 이를 구현하는 작업을 하는 직업이다. 창작자가 써낸 인물의 나이와 직업, 주변인과의 관계, 그가 맞닥뜨리는 사건이나 언행을 발판 삼아, 인물이 가진 심리나 감정을 찾아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캐릭터 연구’ 과정이다. 

집약된 감정
캐릭터 연구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일수록 이 작업에 집요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는다. 끊임없이 몰두해 인물의 언행에 숨은 당위성을 찾는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라 하더라도 구현하는 방법을 설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연출자가 잡은 방향성 내에서 시나리오에 담긴 인물의 정서는 담아내되, 수많은 감정을 함축시켜 표현해야 한다. 인물의 심리를 이해한 뒤, 목소리의 톤, 템포, 표정과 눈빛, 외형과 동선, 행동을 구체화한다.

시나리오의 세계와 부합하게 세팅된 촬영 현장에서는 무의식마저 인물처럼 행동하도록 집중한다.


좋은 연기자는 각 상황에 맞게 짧고 간결하며, 절제된 모습으로 집약된 감정을 드러낸다. 불안과 욕망, 분노, 슬픔처럼 덩어리가 큰 감정부터 자괴감, 죄책감, 그리움, 허무함과 같은 세밀한 감정도 표현한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모순된 포인트나, 너무 특이한 인물도 갖고 있을 만한 보편적인 인간성을 짚어낸다.

반대로 연기력이 부족하거나, 캐릭터 연구가 부족한 연기자는 단편적인 얼굴을 그린다. 기시감이 강한 평면적인 인물을 그려내는 데 그친다. 좋은 연기를 한다는 건 어쩌면 인문학적 이해가 깊다는 뜻도 된다. 

웹툰과 같은 원작이 있는 작품을 연기하는 건 더 어려운 미션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웹툰을 보며 머릿속에 그려놓은 인물에서 너무 엇나가도 불편함을 주고, 만화 속 인물 그대로 연기해도 뻔하다는 인상을 준다. 원작의 정서는 그대로 유지한 채, 어딘가는 새로운 느낌을 줘야만 원작 팬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배우 김신록이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보여준 연기는 배우에게 있어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 표본이 된다. 웹툰에서 그저 나약하고 무능하고, 힘없어 보이는 박정자가 드라마에서는 용기 있고 날렵하면서 강한 인상도 준다.

비록 가난으로 인해 누추한 집에서 지내지만, 그의 삶마저 남루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강인함이 엿보인다.

넷플릭스 <지옥>서 박정자 역으로 열연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놀라게 한 연기력

누구보다도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와 함께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두려움, 바닥까지 무너지고 싶지는 않은 인간의 자존심, 혹시나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희망, 지옥 사자를 만나기 직전의 고통스러움 등 박정자에게 놓인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감정이 김신록을 통해 드러난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숨 막힐 정도로 강렬하다. 워낙 인상적이었던 터라,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마저 놀라고 있다. 

이러한 연기는 오랜 시간 연기를 연구하고 부딪히며 갈고 닦은 김신록만의 방법론이 있어 가능했다. 글에 쓰여 있되, 정확히 표현되지 않은 수많은 의미를 찾아내면서 메소드에 가까운 연기를 펼친 것.

“연상호 감독님께서 박정자라는 인물에 대해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은 평범한 인물’이라고 하셨어요. 평범하다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평범함에 가려진 개인성이 드러났으면 했죠. 두 아이의 엄마지만 미혼모이고 아빠가 다르면서 옆가게 포장마차랑은 친분이 있어요. 언덕이 높은 다세대 주택에 살고. 애들이 엄마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준비하죠. 이런 식으로 환경과 관계를 짚어가면서 단순히 슬프고 절망스러운 것을 넘어 구체적인 입장과 감정을 찾으려 했어요.”

1화 초반부 새 진리회 정진수(유아인 분) 의장으로부터 시연 장면 중계에 대해 제안을 받은 박정자는 민혜진(김현주 분) 변호사와 대면한다. 정진수가 30억원을 주기로 약속한 것을 법적으로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함으로 만난 자리였다.

감정이 오고 가기보다는 이성적인 정보가 많은 장면이다. 드라마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장면에, 김신록은 저항감을 드러낸다. 시청자의 무의식만을 자극하는 수준의 매우 희미하고 빠른 형태라는 게 포인트다. 

평범성
개인성

“비슷한 나이 또래인 민혜진 변호사가 들어오는데 정자는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은 상태잖아요. 사회적 지위, 경제력, 현재 처지 등이 너무도 차이가 나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아요.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처지지만 최소한의 품위는 잃고 싶지 않은 복합적인 감정이 생각났던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그런 말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민혜진이 정의로운 변호사이긴 하지만 소시민인 박정자라는 당사자의 심정과 입장을 정말 이해하느냐고요. 그런 점에서 약간의 반감과 저항감의 결을 넣으려 했어요.”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가 제작한 <지옥> 코멘터리에서 김신록에게 고맙다고 고백했다. 시나리오에는 아이들을 안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김신록이 해결해줬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나리오에는 박정자가 두 아이를 안고 독백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독백의 시간이 너무 길어 아이들과 함께 연기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됐다. 그 판단이 든 건 촬영 현장에서다. 

대본을 바꾸기 위해 연출진과 배우들이 대화를 나누던 찰나 김신록의 머릿속에 애드리브가 떠올랐다. 방에 들어가 아이들을 크게 혼낸 뒤 다시 돌아와 무릎을 꿇고 약속한 30억원을 꼭 아이들에게 전달해달라는 바람을 전하는 명장면의 탄생 배경이다.

이는 <지옥> 내에서 6부 엔딩과 함께, 가장 슬픈 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완벽한 연기를 넘어 연출에 가까운 능력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다.

“그때 다들 고민을 하고 있었죠. 저 역시 그랬고요.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오고 갔어요. 상황을 잘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정자는 집도 누추하고 중요한 손님들이 왔는데 내놓을 것도 없고 커피잔마저 짝이 안 맞아요. 그런 상태에서 한창 굴욕적인 이야기를 듣던 중에 애들이 뛰쳐나와서 겁도 없이 대들잖아요. 박정자라는 인물이 그런 심정일 것 같았어요. 사람들에게 아빠가 없다고 애들을 버릇없이 키우지 않았다는 변명도 하고 싶고 애들에게 엄마의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요. 그게 그만 애들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는 방식으로 표출된 거죠. 사람이라는 게 참 미성숙하잖아요.” 


박정자가 고지를 받고 지옥사자들에게서 목숨을 빼앗기기까지의 기간은 단 5일이다. 작품에는 그사이 새 진리회와 민혜진을 만나 죽음의 장면을 공개하기로 하는 과정과 아이들을 해외로 넘기는 장면만 담겨있다. 작품에는 나오지 않은 부분에 대해 김신록이 쓴 전사는 꽤 매력적이다.

“박정자가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지만 아마 그 5일동안 인생에서 가장 액티브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포장마차를 인계하고 빚도 정리하고 애들 은행계좌도 만들고 어린이집이나 학교도 정리하고 이래저래 엄청 바빴을 거예요. 그동안 아끼느라 제대로 못 먹였다는 생각에 시장에서 고기며 생선이며 과일이며 장도 몽땅 봐서 한상 차렸는데 은율이는 잘 먹지 않고 하율이는 신나게 먹다 체하고, 너무 속상했을 것 같아요. 작은 순간조차 뜻대로 안되잖아요. 애들에게 편지도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출국하는 바람에 쓰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죽음 앞에서
스포트라이트

<지옥>을 관통하는 가장 큰 장면이 박정자가 시연을 당하는 장면이다. 그의 죽음을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의 취재진이 몰리고, 마치 큰 구경거리라도 난 듯 가면을 쓴 사람들이 맨 앞자리에서 그의 죽음을 시청한다. 

마치 무대에 선 배우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박정자의 얼굴에는 오만가지 감정이 엿보인다.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공포, 염세적이기도 하면서, 피폐해 보이기도 한다. 2021년 최고의 명장면을 만든 장본인은 그 순간 몸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감정보다는 몸에 집중하려 했어요. 5일 가까이 아무것도 못 먹었을 테니 당도 다 떨어지고 탈진 직전의 몸 상태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손발이 저리고 몸이 의지대로 작동하지 않고 말초신경이 극히 예민해져서 사람이 지나가면 흠칫 놀라 쳐다보게 되고요. 그런 몸들이 감정을 대변해준 게 아닌가 싶어요.”


예사롭지 않은 연기력에 국내는 물론 세계 팬들이 놀라고 있다. 박정자만의 고유의 색깔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물론, 누구든 보일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이 뚜렷하게 녹아있다. 발성이나 발음, 표정과 같은 기본기는 탁월하다.

어떤 고민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입체적이고 색다른 인물을 구현할 수 있을까. 그가 작품에 접근할 때 주목하는 건 인물에게 주어진 환경과 관계다.

“인물 자체를 보여주기보다 인물과 환경의 관계를 보여주려 해요. 박정자와 민혜진 변호사가 만나는 첫 장면에서 변호사와 소시민간의 계급 차이와 당사자와 조력자 간의 입장 차이 같은 관계성이 드러났으면 했어요. 인물이라고 하는 게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의 총합이잖아요. <방법>은 산중의 폐가에 살고 매일 소주를 마시고 안주는 김치, 아픈 딸이 있고 초자연적인 신을 모신다는 환경이 있었죠. 인물을 둘러싼 환경을 상상하고 인물이 어떤 것과 연결됐는지를 보고 연결된 것들을 다층적으로 가져가려 해요.”

17년 차 무명 배우에 찾아온 전환의 시점
“구조적으로 기능하는 역할이 흥미로워요”

김신록만의 연기관이다. 본인도 여기를 배우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던진 말이다.

“연기는 허구를 다루는 예술인 것 같지만 동시에 현실에 있는 물리성이 만나는 것이기도 해요. 시연 직전 장면을 예로 들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고 제 옆을 지나갔어요. 누가 댓글에 ‘정신없는 연기 잘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정신없는 걸 표현하려 하지 않았고 그냥 지나가길래 쳐다본 거예요. 당시에 주변이 산만했으니 그 실제 환경에 집중했고 그러다 보니 정신없는 게 표현됐나봐요.”

서울대 지리학과 출신인 김신록은 사회대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대기업 인턴십 생활을 잘 마쳐 좋은 대우의 정규직 전환도 제안받았지만, 연기에 열망 때문인지 썩 내키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길은 연극이었다. 

“매우 좋은 조건으로 정규직을 제안받기도 했는데, 제 마음이 뜨뜻미지근하더라고요. 제가 연기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나 봐요. 대학생 인턴십은 꽤 많이 했어요. 연극을 좋아했어요.”

막상 연극을 접하니 연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김신록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오랜 기간 강의도 한다. 연극과 강의를 병행하며 경력과 내공을 탄탄히 쌓아왔다. 10여년 넘게 강의와 무대를 오고 간 김신록은 39세가 돼서 학교를 그만둔다. 

“제가 학교 시스템이 정해놓은 시간 안에서 6살부터 39살까지 살았더라고요. 학교가 생계를 해결해주기도 했지만 시간의 제약을 주기도 했어요. 문득 다른 시계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강의를 그만둘 즈음에 드라마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인지도였던 김신록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일생일대 최대의 전환기에 놓여있다. 내면의 동요는 크지 않더라도, 제안받는 작품의 양이나 캐릭터의 질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과연 그는 어떤 방향을 갖고 있을까. 또 그가 흥미를 느끼는 작품은 무엇일까. 답은 명쾌했다.

무명의 인지도
전 세계 주목

“어려운 질문이에요. 연극에서는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동의하는지를 봐요. 또 인물의 언어를 나의 말로써 발화할 힘이 있는가도 생각하고요. 연기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도 생각하죠. 이런 여러 가지 질문에 큰 거슬림이 없는 게 필요해요. 그런데 영상 분야는 아직 경력이 짧다 보니 작품을 선택하는 방향성이 확고하지 않아요. 시간을 들여 작품을 하다 보면 선택할 때 좀 더 나다운 기준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구조적으로 기능만 할 수 있다면 특색있는 작은 역에서부터 전체를 아우르는 큰 역할까지 두루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극적인 작품부터 섬세하고 소소한 작품도 넘나들고 싶습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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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br>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