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지금도 꿈꾸는 프리마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밤의 여왕 아리아>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는 한국의 조수미를 포함해 전 세계에 단 세 명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최근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로써 조수미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소프라노로 우뚝 섰다.  

2017년 경북 안동에서 열린 조수미 30주년 데뷔 기념 ‘조수미 콘서트’는 관객들의 행진이 이어져 조기 매진됐다. 지난 30년간 오페라, 가곡 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세계 각국을 누비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조수미가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세계 무대로 
활발한 활동

지난 13일(한국시각)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제17회 2021 아시아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 입회식에서 조수미는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선정됐다. 한국인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조수미가 최초다.

조수미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파리의 바스티유‧가르니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런던 코벤트 가든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30세 이전에 휩쓴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이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조수미는 지난 35년간의 노력으로 개인의 명예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인정받게 돼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네스코의 평화예술인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다음 35년 또한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은 2004년 미국 시애틀을 근간으로 창립된 비영리단체다. 아시아인들이 세계 발전에 끼친 공로를 알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분야의 아시안 리더를 선정, 동시에 아시안들의 권리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아시안들에 대한 폭력과 편견을 개선한다.

아시안 문화를 비롯해 다른 다양한 문화 간 유대감을 높여 상호 존경심과 존중을 끌어내기 위해 활동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는 소프라노 조수미뿐 아니라 미국과 인도, 자메이카, 홍콩 출신의 인물 10명이 새로 선정됐다. 

10명의 인물 가운데 예술 분야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일본계 미국인 대중음악 프로듀서 스티브 아오키, 중국계 자메이카인 기타리스트 필첸 등 3명이 포함됐다.

과거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홍콩 배우 이소룡과 피겨스케이팅 선수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국 언론인 코니 정,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킴 등이 있고 한국인으로는 조수미가 최초다.

공식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조수미는 비교적 친숙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지속적인 여러 가지 장르의 국내활동으로 대중들이 쉽게 클래식을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조수미는 평범한 성악가로 남기보다는 노래뿐만 아니라 의상과 세팅 등 아티스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등 늘 새로운 음악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엔터테이너’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정통 성악에서 벗어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남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 말해왔다. 

실제 조수미는 2006년 국내 성악가 중 최초로 바로크 음반을 냈다. 또 2008년에는 스웨덴 민요를, 2010년에는 독일 가곡 앨범을, 나아가 2011년에는 스페인의 민요를 내는 등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각종 드라마의 음반 작업과 OST 작업 등에도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MBC 드라마 <허준>의 ‘불인별곡’,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인 ‘나 가거든’을 불러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한 ‘Champions’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전에 쓰이며 유명해졌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명예의 전당’
유일한 동양인…‘세계를 사로잡다’

조수미는 국내 클래식 연주자 중 단연 독보적인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실제 조수미는 2000년 발매한 첫 크로스오버 앨범을 100만장 이상 판매하며 클래식 사상 전무후무한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1994년 발매한 한국 가곡집 ‘새야새야’가 40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수많은 앨범을 메가 히트시킨 연주자기도 하다.

조수미는 오페라에서 배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 것보다 독창회나 콘서트를 여는 등 관중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오페라 출연보다 음반 작업을 선호해 독창회 등 콘서트를 통한 전 세계 연주 여행을 다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수미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소프라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서 든든하게 조력자 역할을 해준 부모 덕분이다. 어린 조수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 바로 그의 부모다. 

네 살 무렵 한 번 들은 노래를 피아노로 거의 완벽하게 따라서 연주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본 모친은 딸이 재능을 펼 수 있도록 마음껏 연습할 수 있게 지원했다. 더불어 자신도 딸과 같이 연습을 병행하고 피아노 학원까지 함께 다니는 등의 열정을 보였다. 

조수미의 부친도 미래에 세계 무대를 누빌 딸을 위해 일찍부터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에 직접 찾아가 10년 뒤에 열 공연을 미리 예약할 정도로 자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부모의 이 같은 무한한 신뢰와 칭찬은 어린 조수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영향으로 조수미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씩씩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든든한 부모의 지원 아래 조수미는 선화예술중학교에 진학했고 본격적인 성악 전공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조수미는 타고난 재능을 위기의 순간마다 발휘해 당당히 실력을 입증했다. 조수미가 서울대학교 성악과 입학 실기 시험을 보러 갔을 당시 일화는 매 학기 후배들에게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예술을 전공하려면 대학교의 실기시험을 따로 봐야 한다. 서울대학교 입학을 결정짓는 실기 시험 당일에 피아노 반주 연주자가 도착하지 않아 모두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교수들은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 학생을 찾았고 엄숙한 시험장에서 조수미는 용기 있게 손을 들어 지원했다. 

천부적인 
음악 재능

의심의 눈초리로 조수미를 바라보던 교수들을 향해 조수미는 어렵지 않게 지원자 60명의 곡을 전부 반주해냈다. 마지막 자신의 차례가 오자 반주에 직접 노래까지 부른 교수들은 조수미의 실력에 감탄해 역대 최고점수를 줬다.


이후 조수미는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그는 진학 후 각종 노래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게 시시하게 느껴질만큼 자만에 이르렀다. 자유로운 대학 분위기에 한껏 매료됨은 물론 각종 유흥문화에 재미를 붙여 연습에 소홀하기 시작했다. 

지난 26일 오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서 조수미는 “학교(서울대)에 들어가자마자 연애를 진하게 해, 공부를 안 했다. 졸업 정원제도가 있었는데 꼴등했다. 수업을 안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학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하지만 조수미의 방황을 눈치 챈 부모와 교수가 해외에서 공부하길 권유해 유학길에 오른 그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다.

조수미는 “혼자 눈물을 머금고 이탈리아 유학을 가게 됐다. 어버지가 딱 300불을 줬던 시절,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짧게 공부하고 빨리 오려고 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노래해서 뭐하나 생각했는데 3개월 후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그때 결심했다. 내가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결심, 마음을 다잡고 독하게 성악 공부를 하게 됐다”며 성악에 올인한 계기도 설명했다.  


다잡은 마음과 달리 유학 생활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1983년 당시엔 실제 동양인 유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배역을 맡으려면 금발머리를 가진 유럽형 외모가 필요했다. 조수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캐스팅에서 제외하며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조수미는 1986년 공연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기 위해 나부터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국가를 대표하는 국제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참석했다.

등 떠밀리듯 
유학길 올라

조수미가 종종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소위 ‘오페라의 나라’다. 일찍부터 타지에서 홀로 생활한 조수미는 ‘과연 동양인이 성악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프리마돈나로 설 수 있을까’라는 시선을 견디기가 가장 힘들었다. 조수미는 최근 <유퀴즈>에 출연해서도 이와 관련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유학 당시 ‘수미 조, 얼마나 잘하나 보자’란 시선에 견디기 힘들었다며 “하루에도 백번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테스트 하는 심정으로 악으로, 매일매일 답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악으로 버틴 조수미는 그 후 핀란드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첫 국제발표회를 가졌다. 마침내 조수미는 1986년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주인공 ‘질다’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당시 수많은 관객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질다의 모습을 연기한 조수미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고 질다를 연기한 조수미는 박수갈채와 함께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인 카라얀으로부터 오디션 제의까지 받게 됐다. 이 후 카라얀이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찬사를 내린 후 세계적인 스타 소프라노가 됐다.

조수미의 첫 앨범은 아델레 백작 부인 역을 맡은 오페라 오리백작에서 부른 곡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조수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고난도의 곡을 완벽히 불러내면서다. 그중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체르비네타의 노래’를 부른 건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최고음을 20분가량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으로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악보의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본이 아닌 원본 악보를 보고 완벽하게 부르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조수미는 프랑스 리옹에서 일본계 미국 지휘자 켄트 나가노와 녹음해 음반을 냈는데, 가장 힘든 녹음이었다고 회상했다.

피, 땀, 눈물…진화하는 연습 벌레
<밤의 여왕 아리아> 소화 단 세 명 뿐

특히 지금의 조수미를 만든 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곡으로 이뤄진 음반이다. 이 음반은 3년간 3개가 녹음되어 나왔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보통 한 회사는 오페라 전곡을 녹음한 가수와 3~5년간 타사의 같은 오페라를 녹음할 수 없는 것이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지휘자 였던 ‘게오르그 솔티’가 조수미에게 <마술피리> 작품에 대한 오디션을 요청했고 조수미가 오디션 후 조수미의 목소리가 탐난 솔티가 녹음사인 에라토사를 적극적으로 설득시켜 이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당시 솔티는 “75세인 자신의 마지막 <마술피리>가 될지도 모르는 녹음에 그토록 원했던 목소리를 가진 밤의 여왕과 함께하고 싶다”는 편지를 에라토사에 보냈다.

결국 완강하던 에라토사의 허락을 맡았고 그렇게 데카와 에라토 레이블로 1991년 1992년 1993년에 각각 게오르그 솔티의 지휘로 3개의 <마술피리> 음반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후 솔티는 조수미에게 “내가 만난 최고의 밤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다.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가 됐고 동양인 최초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도 수상했다.

당시 세계적인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며 감탄했다.

또 공연을 보도한 뉴욕 메트로 폴리탄 극장 오페라 뉴스는 “그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극찬했으며 프랑스 <르 몽드>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 

조수미는 지난 2008년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세계 3대 소프라노로 선정돼 베이징올림픽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수미는 1993년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준다는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 석학 교수로 임용된 조수미는 내년 1학기부터 학부생·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인생의 전반전이 전문 성악인으로서 혼신의 힘을 쏟은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후학 양성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될 테다.

조수미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의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면서 한국의 대학 강단에 서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부연했다.

더불어 2023년에는 프랑스에서 조수미의 이름을 딴 성악 전문 국제콩쿠르도 창설될 예정이다.

고난도의 곡
완벽히 불러

이 또한 조수미가 오랫동안 구상한 인생 후반전의 최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이미 설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제반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한 지역에서 열릴 이 국제콩쿠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젊은 성악가가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등용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수미는 이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lyricki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럽 코로나19 재확산
조수미 데뷔 35주년 공연 취소

소프라노 조수미의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이 유럽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취소됐다.

조수미는 지난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을 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 17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를 기록하는 변수가 발생했다.

현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악화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방역 조치를 강화했고, 공연은 취소됐다. 

이와 관련해 조수미 콘서트를 준비한 공연 기획사 SBU의 유소방 대표는 “코로나19 확산과 오스트리아 정부의 강화된 방역 조치에 부득이하게 취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연 기획사 측은 “추후 공연을 다시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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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