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지금도 꿈꾸는 프리마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밤의 여왕 아리아>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는 한국의 조수미를 포함해 전 세계에 단 세 명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최근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로써 조수미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소프라노로 우뚝 섰다.  

2017년 경북 안동에서 열린 조수미 30주년 데뷔 기념 ‘조수미 콘서트’는 관객들의 행진이 이어져 조기 매진됐다. 지난 30년간 오페라, 가곡 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세계 각국을 누비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조수미가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세계 무대로 
활발한 활동

지난 13일(한국시각)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제17회 2021 아시아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 입회식에서 조수미는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선정됐다. 한국인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조수미가 최초다.

조수미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파리의 바스티유‧가르니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런던 코벤트 가든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30세 이전에 휩쓴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이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조수미는 지난 35년간의 노력으로 개인의 명예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인정받게 돼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네스코의 평화예술인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다음 35년 또한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은 2004년 미국 시애틀을 근간으로 창립된 비영리단체다. 아시아인들이 세계 발전에 끼친 공로를 알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분야의 아시안 리더를 선정, 동시에 아시안들의 권리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아시안들에 대한 폭력과 편견을 개선한다.

아시안 문화를 비롯해 다른 다양한 문화 간 유대감을 높여 상호 존경심과 존중을 끌어내기 위해 활동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는 소프라노 조수미뿐 아니라 미국과 인도, 자메이카, 홍콩 출신의 인물 10명이 새로 선정됐다. 

10명의 인물 가운데 예술 분야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일본계 미국인 대중음악 프로듀서 스티브 아오키, 중국계 자메이카인 기타리스트 필첸 등 3명이 포함됐다.

과거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홍콩 배우 이소룡과 피겨스케이팅 선수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국 언론인 코니 정,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킴 등이 있고 한국인으로는 조수미가 최초다.

공식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조수미는 비교적 친숙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지속적인 여러 가지 장르의 국내활동으로 대중들이 쉽게 클래식을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조수미는 평범한 성악가로 남기보다는 노래뿐만 아니라 의상과 세팅 등 아티스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등 늘 새로운 음악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엔터테이너’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정통 성악에서 벗어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남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 말해왔다. 

실제 조수미는 2006년 국내 성악가 중 최초로 바로크 음반을 냈다. 또 2008년에는 스웨덴 민요를, 2010년에는 독일 가곡 앨범을, 나아가 2011년에는 스페인의 민요를 내는 등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각종 드라마의 음반 작업과 OST 작업 등에도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MBC 드라마 <허준>의 ‘불인별곡’,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인 ‘나 가거든’을 불러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한 ‘Champions’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전에 쓰이며 유명해졌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명예의 전당’
유일한 동양인…‘세계를 사로잡다’

조수미는 국내 클래식 연주자 중 단연 독보적인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실제 조수미는 2000년 발매한 첫 크로스오버 앨범을 100만장 이상 판매하며 클래식 사상 전무후무한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1994년 발매한 한국 가곡집 ‘새야새야’가 40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수많은 앨범을 메가 히트시킨 연주자기도 하다.

조수미는 오페라에서 배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 것보다 독창회나 콘서트를 여는 등 관중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오페라 출연보다 음반 작업을 선호해 독창회 등 콘서트를 통한 전 세계 연주 여행을 다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수미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소프라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서 든든하게 조력자 역할을 해준 부모 덕분이다. 어린 조수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 바로 그의 부모다. 

네 살 무렵 한 번 들은 노래를 피아노로 거의 완벽하게 따라서 연주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본 모친은 딸이 재능을 펼 수 있도록 마음껏 연습할 수 있게 지원했다. 더불어 자신도 딸과 같이 연습을 병행하고 피아노 학원까지 함께 다니는 등의 열정을 보였다. 

조수미의 부친도 미래에 세계 무대를 누빌 딸을 위해 일찍부터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에 직접 찾아가 10년 뒤에 열 공연을 미리 예약할 정도로 자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부모의 이 같은 무한한 신뢰와 칭찬은 어린 조수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영향으로 조수미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씩씩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든든한 부모의 지원 아래 조수미는 선화예술중학교에 진학했고 본격적인 성악 전공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조수미는 타고난 재능을 위기의 순간마다 발휘해 당당히 실력을 입증했다. 조수미가 서울대학교 성악과 입학 실기 시험을 보러 갔을 당시 일화는 매 학기 후배들에게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예술을 전공하려면 대학교의 실기시험을 따로 봐야 한다. 서울대학교 입학을 결정짓는 실기 시험 당일에 피아노 반주 연주자가 도착하지 않아 모두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교수들은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 학생을 찾았고 엄숙한 시험장에서 조수미는 용기 있게 손을 들어 지원했다. 

천부적인 
음악 재능

의심의 눈초리로 조수미를 바라보던 교수들을 향해 조수미는 어렵지 않게 지원자 60명의 곡을 전부 반주해냈다. 마지막 자신의 차례가 오자 반주에 직접 노래까지 부른 교수들은 조수미의 실력에 감탄해 역대 최고점수를 줬다.

이후 조수미는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그는 진학 후 각종 노래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게 시시하게 느껴질만큼 자만에 이르렀다. 자유로운 대학 분위기에 한껏 매료됨은 물론 각종 유흥문화에 재미를 붙여 연습에 소홀하기 시작했다. 

지난 26일 오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서 조수미는 “학교(서울대)에 들어가자마자 연애를 진하게 해, 공부를 안 했다. 졸업 정원제도가 있었는데 꼴등했다. 수업을 안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학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하지만 조수미의 방황을 눈치 챈 부모와 교수가 해외에서 공부하길 권유해 유학길에 오른 그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다.

조수미는 “혼자 눈물을 머금고 이탈리아 유학을 가게 됐다. 어버지가 딱 300불을 줬던 시절,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짧게 공부하고 빨리 오려고 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노래해서 뭐하나 생각했는데 3개월 후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그때 결심했다. 내가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결심, 마음을 다잡고 독하게 성악 공부를 하게 됐다”며 성악에 올인한 계기도 설명했다.  

다잡은 마음과 달리 유학 생활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1983년 당시엔 실제 동양인 유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배역을 맡으려면 금발머리를 가진 유럽형 외모가 필요했다. 조수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캐스팅에서 제외하며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조수미는 1986년 공연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기 위해 나부터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국가를 대표하는 국제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참석했다.

등 떠밀리듯 
유학길 올라

조수미가 종종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소위 ‘오페라의 나라’다. 일찍부터 타지에서 홀로 생활한 조수미는 ‘과연 동양인이 성악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프리마돈나로 설 수 있을까’라는 시선을 견디기가 가장 힘들었다. 조수미는 최근 <유퀴즈>에 출연해서도 이와 관련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유학 당시 ‘수미 조, 얼마나 잘하나 보자’란 시선에 견디기 힘들었다며 “하루에도 백번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테스트 하는 심정으로 악으로, 매일매일 답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악으로 버틴 조수미는 그 후 핀란드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첫 국제발표회를 가졌다. 마침내 조수미는 1986년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주인공 ‘질다’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당시 수많은 관객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질다의 모습을 연기한 조수미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고 질다를 연기한 조수미는 박수갈채와 함께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인 카라얀으로부터 오디션 제의까지 받게 됐다. 이 후 카라얀이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찬사를 내린 후 세계적인 스타 소프라노가 됐다.

조수미의 첫 앨범은 아델레 백작 부인 역을 맡은 오페라 오리백작에서 부른 곡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조수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고난도의 곡을 완벽히 불러내면서다. 그중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체르비네타의 노래’를 부른 건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최고음을 20분가량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으로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악보의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본이 아닌 원본 악보를 보고 완벽하게 부르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조수미는 프랑스 리옹에서 일본계 미국 지휘자 켄트 나가노와 녹음해 음반을 냈는데, 가장 힘든 녹음이었다고 회상했다.

피, 땀, 눈물…진화하는 연습 벌레
<밤의 여왕 아리아> 소화 단 세 명 뿐

특히 지금의 조수미를 만든 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곡으로 이뤄진 음반이다. 이 음반은 3년간 3개가 녹음되어 나왔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보통 한 회사는 오페라 전곡을 녹음한 가수와 3~5년간 타사의 같은 오페라를 녹음할 수 없는 것이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지휘자 였던 ‘게오르그 솔티’가 조수미에게 <마술피리> 작품에 대한 오디션을 요청했고 조수미가 오디션 후 조수미의 목소리가 탐난 솔티가 녹음사인 에라토사를 적극적으로 설득시켜 이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당시 솔티는 “75세인 자신의 마지막 <마술피리>가 될지도 모르는 녹음에 그토록 원했던 목소리를 가진 밤의 여왕과 함께하고 싶다”는 편지를 에라토사에 보냈다.

결국 완강하던 에라토사의 허락을 맡았고 그렇게 데카와 에라토 레이블로 1991년 1992년 1993년에 각각 게오르그 솔티의 지휘로 3개의 <마술피리> 음반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후 솔티는 조수미에게 “내가 만난 최고의 밤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다.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가 됐고 동양인 최초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도 수상했다.

당시 세계적인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며 감탄했다.

또 공연을 보도한 뉴욕 메트로 폴리탄 극장 오페라 뉴스는 “그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극찬했으며 프랑스 <르 몽드>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 

조수미는 지난 2008년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세계 3대 소프라노로 선정돼 베이징올림픽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수미는 1993년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준다는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 석학 교수로 임용된 조수미는 내년 1학기부터 학부생·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인생의 전반전이 전문 성악인으로서 혼신의 힘을 쏟은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후학 양성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될 테다.

조수미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의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면서 한국의 대학 강단에 서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부연했다.

더불어 2023년에는 프랑스에서 조수미의 이름을 딴 성악 전문 국제콩쿠르도 창설될 예정이다.

고난도의 곡
완벽히 불러

이 또한 조수미가 오랫동안 구상한 인생 후반전의 최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이미 설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제반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한 지역에서 열릴 이 국제콩쿠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젊은 성악가가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등용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수미는 이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lyricki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럽 코로나19 재확산
조수미 데뷔 35주년 공연 취소

소프라노 조수미의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이 유럽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취소됐다.

조수미는 지난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을 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 17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를 기록하는 변수가 발생했다.

현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악화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방역 조치를 강화했고, 공연은 취소됐다. 

이와 관련해 조수미 콘서트를 준비한 공연 기획사 SBU의 유소방 대표는 “코로나19 확산과 오스트리아 정부의 강화된 방역 조치에 부득이하게 취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연 기획사 측은 “추후 공연을 다시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서>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