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지금도 꿈꾸는 프리마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밤의 여왕 아리아>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는 한국의 조수미를 포함해 전 세계에 단 세 명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소프라노 조수미는 최근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로써 조수미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소프라노로 우뚝 섰다.  

2017년 경북 안동에서 열린 조수미 30주년 데뷔 기념 ‘조수미 콘서트’는 관객들의 행진이 이어져 조기 매진됐다. 지난 30년간 오페라, 가곡 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세계 각국을 누비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조수미가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세계 무대로 
활발한 활동

지난 13일(한국시각)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제17회 2021 아시아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 입회식에서 조수미는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선정됐다. 한국인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조수미가 최초다.

조수미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파리의 바스티유‧가르니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런던 코벤트 가든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30세 이전에 휩쓴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이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조수미는 지난 35년간의 노력으로 개인의 명예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인정받게 돼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네스코의 평화예술인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더로서 다음 35년 또한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시아 명예의 전당은 2004년 미국 시애틀을 근간으로 창립된 비영리단체다. 아시아인들이 세계 발전에 끼친 공로를 알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분야의 아시안 리더를 선정, 동시에 아시안들의 권리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아시안들에 대한 폭력과 편견을 개선한다.

아시안 문화를 비롯해 다른 다양한 문화 간 유대감을 높여 상호 존경심과 존중을 끌어내기 위해 활동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는 소프라노 조수미뿐 아니라 미국과 인도, 자메이카, 홍콩 출신의 인물 10명이 새로 선정됐다. 

10명의 인물 가운데 예술 분야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일본계 미국인 대중음악 프로듀서 스티브 아오키, 중국계 자메이카인 기타리스트 필첸 등 3명이 포함됐다.

과거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홍콩 배우 이소룡과 피겨스케이팅 선수 크리스티 야마구치, 미국 언론인 코니 정,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킴 등이 있고 한국인으로는 조수미가 최초다.

공식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조수미는 비교적 친숙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지속적인 여러 가지 장르의 국내활동으로 대중들이 쉽게 클래식을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조수미는 평범한 성악가로 남기보다는 노래뿐만 아니라 의상과 세팅 등 아티스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등 늘 새로운 음악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치는 ‘엔터테이너’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정통 성악에서 벗어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남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 말해왔다. 

실제 조수미는 2006년 국내 성악가 중 최초로 바로크 음반을 냈다. 또 2008년에는 스웨덴 민요를, 2010년에는 독일 가곡 앨범을, 나아가 2011년에는 스페인의 민요를 내는 등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각종 드라마의 음반 작업과 OST 작업 등에도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MBC 드라마 <허준>의 ‘불인별곡’,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인 ‘나 가거든’을 불러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한 ‘Champions’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전에 쓰이며 유명해졌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명예의 전당’
유일한 동양인…‘세계를 사로잡다’

조수미는 국내 클래식 연주자 중 단연 독보적인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실제 조수미는 2000년 발매한 첫 크로스오버 앨범을 100만장 이상 판매하며 클래식 사상 전무후무한 판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1994년 발매한 한국 가곡집 ‘새야새야’가 40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수많은 앨범을 메가 히트시킨 연주자기도 하다.

조수미는 오페라에서 배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 것보다 독창회나 콘서트를 여는 등 관중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오페라 출연보다 음반 작업을 선호해 독창회 등 콘서트를 통한 전 세계 연주 여행을 다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수미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소프라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서 든든하게 조력자 역할을 해준 부모 덕분이다. 어린 조수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 바로 그의 부모다. 

네 살 무렵 한 번 들은 노래를 피아노로 거의 완벽하게 따라서 연주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본 모친은 딸이 재능을 펼 수 있도록 마음껏 연습할 수 있게 지원했다. 더불어 자신도 딸과 같이 연습을 병행하고 피아노 학원까지 함께 다니는 등의 열정을 보였다. 

조수미의 부친도 미래에 세계 무대를 누빌 딸을 위해 일찍부터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에 직접 찾아가 10년 뒤에 열 공연을 미리 예약할 정도로 자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부모의 이 같은 무한한 신뢰와 칭찬은 어린 조수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영향으로 조수미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씩씩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든든한 부모의 지원 아래 조수미는 선화예술중학교에 진학했고 본격적인 성악 전공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조수미는 타고난 재능을 위기의 순간마다 발휘해 당당히 실력을 입증했다. 조수미가 서울대학교 성악과 입학 실기 시험을 보러 갔을 당시 일화는 매 학기 후배들에게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예술을 전공하려면 대학교의 실기시험을 따로 봐야 한다. 서울대학교 입학을 결정짓는 실기 시험 당일에 피아노 반주 연주자가 도착하지 않아 모두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당시 심사를 담당했던 교수들은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 학생을 찾았고 엄숙한 시험장에서 조수미는 용기 있게 손을 들어 지원했다. 

천부적인 
음악 재능

의심의 눈초리로 조수미를 바라보던 교수들을 향해 조수미는 어렵지 않게 지원자 60명의 곡을 전부 반주해냈다. 마지막 자신의 차례가 오자 반주에 직접 노래까지 부른 교수들은 조수미의 실력에 감탄해 역대 최고점수를 줬다.


이후 조수미는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그는 진학 후 각종 노래 시험에서 1등을 하는 게 시시하게 느껴질만큼 자만에 이르렀다. 자유로운 대학 분위기에 한껏 매료됨은 물론 각종 유흥문화에 재미를 붙여 연습에 소홀하기 시작했다. 

지난 26일 오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서 조수미는 “학교(서울대)에 들어가자마자 연애를 진하게 해, 공부를 안 했다. 졸업 정원제도가 있었는데 꼴등했다. 수업을 안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학교서 쫓겨나기도 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하지만 조수미의 방황을 눈치 챈 부모와 교수가 해외에서 공부하길 권유해 유학길에 오른 그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다.

조수미는 “혼자 눈물을 머금고 이탈리아 유학을 가게 됐다. 어버지가 딱 300불을 줬던 시절,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짧게 공부하고 빨리 오려고 했다”며 당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고 노래해서 뭐하나 생각했는데 3개월 후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그때 결심했다. 내가 꼭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결심, 마음을 다잡고 독하게 성악 공부를 하게 됐다”며 성악에 올인한 계기도 설명했다.  


다잡은 마음과 달리 유학 생활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1983년 당시엔 실제 동양인 유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배역을 맡으려면 금발머리를 가진 유럽형 외모가 필요했다. 조수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캐스팅에서 제외하며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조수미는 1986년 공연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기 위해 나부터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국가를 대표하는 국제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참석했다.

등 떠밀리듯 
유학길 올라

조수미가 종종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소위 ‘오페라의 나라’다. 일찍부터 타지에서 홀로 생활한 조수미는 ‘과연 동양인이 성악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프리마돈나로 설 수 있을까’라는 시선을 견디기가 가장 힘들었다. 조수미는 최근 <유퀴즈>에 출연해서도 이와 관련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유학 당시 ‘수미 조, 얼마나 잘하나 보자’란 시선에 견디기 힘들었다며 “하루에도 백번은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테스트 하는 심정으로 악으로, 매일매일 답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악으로 버틴 조수미는 그 후 핀란드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첫 국제발표회를 가졌다. 마침내 조수미는 1986년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주인공 ‘질다’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당시 수많은 관객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질다의 모습을 연기한 조수미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고 질다를 연기한 조수미는 박수갈채와 함께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로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인 카라얀으로부터 오디션 제의까지 받게 됐다. 이 후 카라얀이 조수미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찬사를 내린 후 세계적인 스타 소프라노가 됐다.

조수미의 첫 앨범은 아델레 백작 부인 역을 맡은 오페라 오리백작에서 부른 곡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조수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고난도의 곡을 완벽히 불러내면서다. 그중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체르비네타의 노래’를 부른 건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최고음을 20분가량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으로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악보의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본이 아닌 원본 악보를 보고 완벽하게 부르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조수미는 프랑스 리옹에서 일본계 미국 지휘자 켄트 나가노와 녹음해 음반을 냈는데, 가장 힘든 녹음이었다고 회상했다.

피, 땀, 눈물…진화하는 연습 벌레
<밤의 여왕 아리아> 소화 단 세 명 뿐

특히 지금의 조수미를 만든 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곡으로 이뤄진 음반이다. 이 음반은 3년간 3개가 녹음되어 나왔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보통 한 회사는 오페라 전곡을 녹음한 가수와 3~5년간 타사의 같은 오페라를 녹음할 수 없는 것이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지휘자 였던 ‘게오르그 솔티’가 조수미에게 <마술피리> 작품에 대한 오디션을 요청했고 조수미가 오디션 후 조수미의 목소리가 탐난 솔티가 녹음사인 에라토사를 적극적으로 설득시켜 이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당시 솔티는 “75세인 자신의 마지막 <마술피리>가 될지도 모르는 녹음에 그토록 원했던 목소리를 가진 밤의 여왕과 함께하고 싶다”는 편지를 에라토사에 보냈다.

결국 완강하던 에라토사의 허락을 맡았고 그렇게 데카와 에라토 레이블로 1991년 1992년 1993년에 각각 게오르그 솔티의 지휘로 3개의 <마술피리> 음반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후 솔티는 조수미에게 “내가 만난 최고의 밤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다.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가 됐고 동양인 최초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도 수상했다.

당시 세계적인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며 감탄했다.

또 공연을 보도한 뉴욕 메트로 폴리탄 극장 오페라 뉴스는 “그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극찬했으며 프랑스 <르 몽드>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 

조수미는 지난 2008년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세계 3대 소프라노로 선정돼 베이징올림픽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수미는 1993년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준다는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초빙 석학 교수로 임용된 조수미는 내년 1학기부터 학부생·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인생의 전반전이 전문 성악인으로서 혼신의 힘을 쏟은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후학 양성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될 테다.

조수미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의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면서 한국의 대학 강단에 서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부연했다.

더불어 2023년에는 프랑스에서 조수미의 이름을 딴 성악 전문 국제콩쿠르도 창설될 예정이다.

고난도의 곡
완벽히 불러

이 또한 조수미가 오랫동안 구상한 인생 후반전의 최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이미 설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제반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한 지역에서 열릴 이 국제콩쿠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젊은 성악가가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등용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수미는 이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lyricki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럽 코로나19 재확산
조수미 데뷔 35주년 공연 취소

소프라노 조수미의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이 유럽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취소됐다.

조수미는 지난 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세계 무대 데뷔 35주년 기념공연을 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 17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를 기록하는 변수가 발생했다.

현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악화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방역 조치를 강화했고, 공연은 취소됐다. 

이와 관련해 조수미 콘서트를 준비한 공연 기획사 SBU의 유소방 대표는 “코로나19 확산과 오스트리아 정부의 강화된 방역 조치에 부득이하게 취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연 기획사 측은 “추후 공연을 다시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부연했다.  <서>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